차근욱의 'Radio Bebop'(69) - 낮선 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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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69) - 낮선 거리에서
  • 차근욱
  • 승인 2015.12.09 14:2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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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낮선 길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낮선 거리도 좋지만, 일상에서 만나는 낮선 거리는 내게 작은 모험이 된다. 혼자서 걷는 낮선 길은 조금 심심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길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도.

대학시절에는 여행을 정말 좋아했었다. 비록 20만원 정도의 차비만을 들고 가는 가난한 여행길이었지만, 낮선 길에서 낮선 이야기를 만나는 설레임이 무엇보다도 좋았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이들의 고민을 접하며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하고, 조금은 틀어지는 상황을 헤쳐가며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했었다. 지금이야 시간에 쫓겨 여행이라도 한번 갈라치면 시간 조율하기가 쉽지 않지만, 대학 시절에는 낡긴 했지만, 내겐 가장 소중한 친구였던 니콘 FM2 한 대만 들고 혼자 터덜 터덜 잘도 떠났었다. 그 FM2는 필름카메라였기 때문에 필름을 최대한 아껴가며 찍었었는데, 대부분이 풍경 사진이었다. 난, 나의 사진을 찍지 않으니까.

정신 없이 살다가 혹 전망이 좋은 유리창 앞에라도 서게 되면 문득, 그 시절의 여행이 생각난다. 이제는 그 시절의 FM2에 비하면 훨씬 좋은 디지털 카메라도 생겼지만, 왠지 쉽게 떠나질 못한다. 이런 것이 나이 드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면 왠지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 쉬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1년 중, 이 맘 때가 오면 내소사 여행이 떠오른다. 그 당시 나는 곧 스무살을 앞두고 있었고, 처음 접했던 대학생활과 인간관계에 있어서 뭔가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앞으로 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사람들과 어떻게 인연을 쌓아 가야 할지 모든게 혼란스러운 기분이었다. 그래서 떠났던 여행은 사찰 투어였는데, 평소 존경했던 스님의 권유로 스님께서 아시는 큰 스님께 인사도 드리고 말씀도 듣는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사실 스님께서 내게 인사라도 드리고 오라고 하셨던 큰 스님은 한 분이셨지만, 그 큰 스님께서는 다른 스님에게 보내시고, 그리고 또 그 다른 스님께서는 또 다른 스님께 보내시면서 나는 운 좋게도 훌륭하신 큰 스님들께 차를 얻어 마실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이어 이어 내소사에 계시던 큰 스님을 찾아 뵙게 되었는데, 내소사에 도착할 무렵은 좀 늦은 저녁이었다. 스님께 안내를 받아 저녁에 인사를 드렸더니 스님께서는 처음 보는 내게 하시는 말씀이 ‘밥은 먹었어?’였다. 물론 여기 저기 돈없이 무전여행하는 처지에 늦지 않게 오려다보니 끼니를 맞추어 식사를 제대로 하기는 어려운 일이었기에, 밥을 먹었을 리가 없었다. 아직이라 말씀드리니 스님께서는 공양주 보살님께 미안하지만 밥이라도 좀 내주시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오늘 맛있던 거 있지요? 김치볶은거. 그것도 줘요.’라고. 조금 놀랐다. 큰 스님이신데 반찬까지 그렇게 챙겨주라 하실 줄은 생각하지 못했었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분명 공양주보살님께는 폐였겠지만 늦게 찾아간 깊은 산사에서 마주한 밥상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꿀 맛이었다. 쉬실 시간이셨을 공양주보살님께는 정말 너무 너무 죄송했지만. 식사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차를 한 잔 내어 주셨는데, 그 맛이 어땠는지는 지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스님께서 가지신 차 중에서 좋은 차였으리라. 스님은 그런 분이셨으니까.

“그래, 큰 스님은 잘 계시고?”
“예, 이번에 스님 찾아 뵙고 인사드리라고 하셔서 마음만 앞서다보니 너무 늦었습니다.”
“괜찮아. 그래, 자네는 학생인가?”
“예.”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예, 스님. 대학에 들어가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속만 더 시끄러워져서 좀 괴롭습니다. 혼자 있으면 외롭고 쓸쓸한데, 또 사람들 속에 있으면 시달려서 힘이 듭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활짝 웃으셨다.

아마 풋내기스러운 고민이기도 하려니와, 어린 학생이 나름 진지한 얼굴로 찾아와 괴롭다 하는 모습에 지금 나이를 조금 더 먹고 생각해 보니 자연히 웃음이 나시지 않으셨을까 싶다.

“흔들바위는, 흔들거리면서 있으니까 흔들바위인게야.”

한참 웃으시던 스님께서 차를 한 모금 하시곤 빙그레 웃으시며 해 주신 말씀이셨다. 그저 한 마디, 툭 하고 던져 놓으신 그 한 마디에 뭔가 뒤통수를 얻어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나름대로는 심각한 고민이었겠지만, 누구나 하는 고민. 하지만 해결은 나지 않는 고민.

그 때, 스님께서 해 주셨던 말씀은 그날 이후 지금까지도 일상 속에서 순간 순간 떠오르곤 한다. 존재는 흔들리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기에 존재를 이어간다. 삶이란 그렇게 흔들리고 흔들리지만, 자기 자리를 지키며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라고. 꽃은 흔들리면서 피는 것이라고. 나는 스님의 말씀을 그렇게 멋대로 해석했다. 하지만 그 말씀은 이 날까지 살아오면서, 가끔 흔들리고 쓸쓸할 때면 큰 힘이 되었다. 사람의 만남이란 이처럼 소중한 것임을 나는 큰 스님께 배웠다. 그래서인지, 누군가를 앞에 하면 항상 큰 스님의 그 웃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부끄럽지 않도록, 후회가 없도록.

다음 날 아침에는 밥값을 하자 싶어, 일찍 일어나 경내를 쓸고 아침 공양을 했다. 그리곤 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서울로 향했다. 나의 고민은 스님의 말씀에 나름의 길을 찾을 수 있었기에 더 다른 답을 찾아 떠날 필요가 없었기에. 스님께서도 그것을 아셨는지 굳이 다른 스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라는 말씀은 하시지 않으셨다. 아마, 감히 비유를 들자면 염화미소(拈華微笑) 같은게 아니었을까.

서울로 온 뒤 속 시끄러운 일도 많았지만, 그날 이후로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은 균형을 잡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살아가다보면, 스승이 절실할 때가 있다.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을 먼저 가본 선배로서 그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무엇을 놓쳐선 안되는지, 삶의 중심을 볼 수 있는 관점을 물을 수 있는. 그런 측면에서 그 시절의 여행은 내게 행복한 시절이었다. 삶에 대해서, 존재에 대해서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전해 받을 수 있었으니까.

낮선 거리를 걷다가 삶이란 낮선 거리를 걷는 것과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인가 생각해서 가지만 자신의 뜻과는 다른 곳으로 가게 되는 경우도 있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길로 이어질 때도 있다. 어린 시절에는 아는 길이 아니면 겁부터 났지만, 조금씩 성장하면서 흔들리더라도 중심을 잃지 않으면 비록 낮선 길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아는 길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 낮선 길을 벗어나려고만 하는 불안이 아니라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소중한 마음이니까. 낮선 거리를 걸으면 이런 생각을 한다. 흔들리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이 한걸음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시간이 지나, 우연히 큰 스님에 관한 인터뷰 기사를 읽게 되었다. 큰 스님께서 그 날의 일까지는 기억하시지 못하시겠지.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건강하신 모습을 뵈니 그냥 참 좋았다. 언젠가 다시 차를 앞에 두고 뵐 날이 온다면, 나는 내가 걸어온 낮선 거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어떻게 말씀 올릴지, 빙긋이 웃으며 나는 생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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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2015-12-09 22:53:47
선생님 그냥 읽고넘어가기엔
낮선이란 단어가 너무많아요ㅎ 큰스님화내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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