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과거제는 조선 5백년의 근간, 사법시험 존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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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과거제는 조선 5백년의 근간, 사법시험 존치해야”
  • 서완석
  • 승인 2015.12.08 16:22
  • 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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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완석 전국법과대학교수회장 / 가천대 법과대학장
 

존경하는 천경훈 교수님

학회에서 뵙고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건강하신지요? 어느 조간신문에 실린 “사시존치론, 조선 말 과거제 집착과 비슷하다”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사시존치론을 주장하고 있는 전국법과대학교수회 회장으로서 몇 말씀 드려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특히 이 문제에 대해 혼란을 느끼고 계실 국민 여러분들에게 마치 우리가 잘못된 제도에 집착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필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교수님께서는 윤기(尹愭)가 그의 ‘무명자집(無名子集)’에서 말한 바와 같이 조선시대의 과거제도가 애초 의도했던 ‘어질고 방정하며(賢良方正)’, ‘정직한 말로 적극 간쟁하는(直言極諫)’ 선비를 선발하려던 애초의 의도와 달리 점차 퇴폐하여 온갖 이기적이고 거짓된 행태가 생겨나고, 법망을 이용하여 교묘한 수작을 부리기도 하며, 공무를 빙자하여 사욕을 채우기도 하는 등 과거제도의 폐단이 극도에 달함으로써 애당초 조용히 지내며 각고의 노력으로 공부를 하지는 않고 오직 과거 급제를 따내기 위해 꾀를 쓸 뿐이고, 시험을 주관하는 자들도 나라를 위해 공정함을 지키려는 뜻은 없고, 오직 사정(私情 )에 이끌려 편법 쓰기만을 능사로 여기는 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과 같은 것들을 염두에 두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려시대 음서제가 성행할 때 유행하던 은문(恩門)과 좌주문생(座主門生)관계의 폐단을 아시는지요? 자기를 공직에 나가게 해준 사람을 은문이라 하고 시험관인 좌주와 응시자인 문생은 평생의 정치적 결합관계를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고려의 건국 세력은 신라 하대에서 후삼국 시대에 형성된 지역유력가인 호족들이었고, 고려 건국 이후 귀족이 되었습니다. 이미 고려 태조인 왕건 시기부터 귀족은 왕권에 대한 강력한 도전자였습니다. 그리하여 광종은 귀족들에 대한 견제를 위해 과거를 도입하였으나 결국 고위 귀족의 자식들을 과거 없이 관리로 등용하는 음서를 병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고려말 성리학이 전래되면서 신진사대부에 의해 유교적 이상에 의한 정치의 실현이 강조되었고, 모든 관리를 과거를 통해 선발하자는 주장이 거세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조선시대 500년 문치의 기틀은 과거시험, 그것도 공정한 인재선발로 인한 사회통합과 승복에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로스쿨이 도입될 당시 그 도입에 찬성했던 사람입니다. 어느 제도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단점이 있게 마련이고 사법시험도 문제점을 갖고 있었으며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면 그러한 문제점이 개선될 것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로스쿨 제도는 우리가 모델로 삼은 미국제도와 너무나 다르고 일본의 제도와도 많이 다릅니다. 특히 윤기가 무명자집에서 비판했던 과거제도의 문제점과 어쩌면 그렇게도 닮은 점이 많은지 너무나 걱정입니다.

우리 전국법과대학교수회는 단 한 번도 로스쿨 제도의 폐지를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로스쿨 교수들을 비난한 적도 없습니다. 이 나라 법학교육의 미래를 다 같이 걱정하며 그 개선책을 모색하는 데 로스쿨 교수와 비로스쿨 교수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로스쿨 학생들을 비난 한 적도 없습니다. 그들 또한 이 나라 법제도의 한 축을 담당할 매우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국민여론조사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우리 전국법과대학 교수들은 현행 로스쿨 제도가 우리 헌법 전문에서 밝히고 있는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할 수 없는 측면이 존재하고 있다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며, 학문후속세대를 키울 수 없는 현재의 제도 하에서는 우리 법학교육의 붕괴가 명약관화하다는 데 말할 수 없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천교수님!

조선은 과거제도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라 과거제도 덕분에 500여년을 유지한 당시 세계에서 최장기간 존속한 왕조였습니다. 조선왕조가 망한 것은 수구 기득권층의 부패, 사회적 제도 모순, 민란 및 서세동점의 제국주의 세력인 외세개입 등 총체적인 원인에서 찾아야 할 것이지 직접적 관련이 없는 과거제도에서 찾는 것은 역사왜곡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제 짧은 소견입니다. 설령 간접적으로 과거제도가 관련되어 있다 하더라도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은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국가가 망할 때에는 평소에 국가 발전의 근간이었던 제도도 그 단점이 부각되어 망국의 원인이 되기에 끊임없이 개혁하고 자기수정을 거쳐야 그 국가의 수명이 길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국가가 망할 때의 공통점은 상위 10%가 전체의 부나 권력의 90%를 차지하면 망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왕조가 개창되었을 때 부의 재분배를 한 경우에는 성공적이었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왕조의 지속을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조선시대의 과전법이 그러하고, 대한민국의 농지개혁이 농토의 재분배를 통한 새로운 국가건설의 토대가 된 것이 그러합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소득양극화가 상당 수준으로 진척되고 있고 점차 계층 간 이동이 기득권층 중심의 사회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과거제도는 동양적 인재선발제도로 장단점이 있는 제도로서 마테오리치가 중국의 과거제도를 유럽에 소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유럽 국가들이 효율적인 국가체제를 정비하게 된 바탕이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를 열었던 피렌체의 경제발전은 길드의 개방성과 사법관을 외국인에게 맡겨 공정성을 담보할 정도의 시스템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로스쿨은 어떻습니까? 폐쇄적 길드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극단적으로 말해 지금 같은 로스쿨 체제의 구조 하에서라면 과연 로스쿨 출신 판검사에게 승복을 할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로스쿨이 도입된 후 과연 로스쿨이나 그 소속 교수님들이 로스쿨의 문제점 개선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셨는지요? 사법시험 존치 논의가 불붙기 시작한 것은 바로 현 로스쿨 제도의 설계의 문제점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그동안 기득권 세력이 되어 버린 로스쿨 체제에 안주하며 시스템 개혁에 눈을 감고 있던 로스쿨 교수님들의 태도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국민들의 문제점 지적에는 눈과 귀를 닫은 채 국민여론을 의식하여 문제점을 개선해보겠다는 법무부를 몰아세우는 것은 상식 있는 분들의 태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다산 정약용은 그의 목민심서에서 과거제도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과거제도가 확립되지 않으면 선비들이 분발하지 않는 점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우리 전국법과대학교수회는 로스쿨 제도에도 장점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사법시험 또한 로스쿨 제도와 비교하여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단점을 시정하고자 도입된 제도가 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도 우리 법과대학교수들이나 법무부 등의 유관기관이 가만히 있어야 되는 것인지요? 우리 법학자들은 현행 제도가 가진 문제점을 들추어내어 그 개선점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자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제도는 시정되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입니다. 우리는 로스쿨 제도의 폐지나 정원감축을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로스쿨 교수들은 로스쿨 정원이 늘어나야 한다는 점과 변호사 숫자가 더 늘어나야 한다는 점에 동의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런데도 사법시험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세간에서 회자되고 있는 로스쿨 출신과 사법시험 출신간의 격차문제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사법시험 정원은 로스쿨 정원에 비해 턱없이 적습니다. 몇 년 만 지나면 로스쿨 출신이 사법시험 출신자의 숫자를 능가할 것입니다. 지금도 기득권 세력으로서 톡톡히 그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때는 어떨까요? 그런데도 무엇이 두려운가요?

사법시험이 폐지된 후 현재 상태로 로스쿨체제가 안착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사시존치를 주장하고 나서야 로스쿨 측에서 마지못해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이 장학금혜택 확충과 등록금 감축, 그리고 야간 및 온라인 로스쿨 정도의 대책입니다만 현재의 로스쿨 재정형편 상 국립대학을 제외한 사립대학은 실현 불가능한 대책으로 보이고 야간로스쿨이나 온라인 로스쿨 또한 비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제도의 일원화 문제 또한 관리의 문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군인 경찰, 일반행정직도 다양한 형태의 선발시험을 혼용해 사용하고 있고 지금 당장 우리의 변호사 선발제도 또한 두 가지 형태로 선발되고 있으며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의 말씀대로 해야 한다면 현재의 행정고시, 입법고시, 기술고시 등의 고등고시제도도 모두 바꿔야 하는 것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과거제도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는 것은 식민사관입니다. 조선은 과거제도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라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장수하고 늙어서 망한 것이라고 해석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사법시험제도가 로스쿨 제도보다 훌륭하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로스쿨 제도가 사법시험보다 더 나은 제도라고는 더더욱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기존의 사법시험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한 사법시험제도를 로스쿨 제도와 병용시행해보고 로스쿨 체제로 안착시킬 것인지, 아니면 두 가지 형태를 수렴한 형태로 갈 것인지 등을 논의해도 늦지 않다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천교수님! 교육현장에 계시니까 로스쿨 체제 하에서는 학문후속세대가 단절될 수밖에 없는 점에 동의하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제국의 법제도를 꾸준히 연구하고 도입해야 할 법률중진국입니다. 기존의 사법시험 체제 하에서는 실무교육이 허술하다고 해서 도입한 로스쿨 체제 하에서는 이론교육이 붕괴되고 있는 점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제 풀타임으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우수한 학생들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법과대학에서라도 이론교육을 담당할 인력을 선발해서 교육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사법시험이 폐지된다면 우수인력이 법과대학에 진학할까요? 대학본부에서는 바로 법과대학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입니다.

로스쿨 학생들이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집단행동을 한다고 합시다. 그러나 한국법학교육의 미래를 같이 걱정하고 그 개선책을 같이 고민해야 할 로스쿨 교수님들마저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이 옳은가요? 사법시험과 변호사시험 출제를 거부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로스쿨 교수님들의 사법시험 출제와 평가를 거부한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 로스쿨은 우리 비로스쿨 교수들에게 겨우 문제출제만 맡길 뿐 채점하는 자리에는 얼씬도 못하게 합니다. 무엇이 두려워서 그러는 것인가요? 오히려 공정성과 신뢰성을 얻을 텐데 말입니다.

존경하는 천교수님!

저는 요즈음 학회에 나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심포지엄 장에서 사시존치론자들과는 어떠한 논의도 해서는 안 된다는 극단적인 소리도 들었습니다. ‘똘레랑스’는 민주주의의 근본이자 학자들의 기본적 태도가 아니던가요? 학회에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5년 12월 8일 

전국법과대학교수회 회장 겸 가천대학교 법과대학장 서완석 올림  
 

[편집자 주] 본 기고는 중앙일보 2015년 12월 7일자에 게재된 천경훈 서울대 로스쿨 교수의 “사시존치론, 조선 말 과거제 집착과 비슷하다”는 시론에 대한 반론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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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대가어딨어요? 2015-12-11 16:31:58
가천대가 어딘가요? 첨 들음ㄷㄷㄷ 가천대도 로스쿨 하려다가 안되었나보네요!! 가천대도 로스쿨 되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수준이 쯧쯧 2015-12-11 12:05:12
사시 존치해서 기득권 유지하고 고시병 앓다가 일본 식민지 되라는거군.

ㅎㄹ 2015-12-11 11:49:08
니네 학교가 로스쿨 인가 받았으면 지금 같은 글을 쓸 수 있을까ㅎㅎ 결국 자기네 학교도 로스쿨 인가 신청 했다가 안되니까 이제와서 로스쿨 흔들기하는 수준하고는 ㅉㅉ 여러분, 열등감이 이렇게 무서운겁니다.

2015-12-09 20:08:54
로스쿨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적시하면서 문제점이 있다고 말씀하세요.
로스쿨의 기득권이 대체 무엇인지도 짚어주시고요.
막연하게 문제있다 기득권 있다라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글을 쓰시려면 그정도 논거는 들면서 써야 설득력이 있습니다.

ㅅㅅ 2015-12-09 16:46:15
교수님 저희 수업들을 땐 좀 다른입장이셨던거같은데...7년이 꽤 긴시간인거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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