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박종국 시인의 “누가 흔들고 있을까”와 외신의 “독재자”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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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박종국 시인의 “누가 흔들고 있을까”와 외신의 “독재자” 보도
  • 오시영
  • 승인 2015.12.0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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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 / 변호사 / 시인

동료이자 선배 문우인 박종국 시인이 며칠 전 귀한 시집 “누가 흔들고 있을까”를 보내왔다. 사업을 하면서도 꾸준히 시를 발표해 온 박 선생은 요즘 소일거리로 텃밭에서 소규모 밭농사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 모양이다. 60 중반을 넘어서니 모든 삶이 새롭게 보이나 보다. 시집에 실린 “바람 소리”는 이렇다. “누가 흔들고 있을까// 바람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저 바람은 어디서 시작되어 예까지 왔을까/ 그리고 어디로 가는 걸까// 하나에서 열까지 내 손이 필요한 밭에서/ 이놈 저놈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가꾸다 보면/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거리에 지쳐서/ 한때는 그만 둘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손끝에 스치는 부드러운 흙의 감촉/ 찡하게 파고들어 가슴을 울리는 생명의 움직임, 이것이/ 나를 흔드는 바람 소리라는 생각이 가슴을 내리눌렀다// 잠시나마 지쳤던 마음이 부끄러운, 그때/ 머릿속으로 번쩍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흔들린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고/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고/ 살아 있다는 말은 바람소리 같이 떨림에서 나오는 소리// 흔들리지 않고 살아 있다고 말을 할 수는 있을까” (‘바람 소리’ 전문, “시집 누가 흔들고 있을까”에 수록, 2015, 천년의 시작 간).  

좋은 시는 쉬운 시를 말한다는 말이 있다. 난해한 시가 난무하는 요즘, 쉬우면서도 삶의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성찰을 담은 시다. 나도 모르게 “누가 흔들고 있을까?”라는 소리를 읊조린다. 그래, 우리네 삶을 누가 흔들고 있는 것일까? 오랜 신앙인으로서 신이 흔들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깊었는데, 요즘 들어 “사람이 사람을 흔드는구나!” 하는 생각에 자주 잠긴다. 농경사회를 벗어난 지 오래된 대한민국에서 “나의 삶이 다른 사람에 의해 흔들리는구나.”하는 생각에 빠져 창밖을 내다볼 때가 자주 있다. 저 맑고 푸른 하늘처럼 평화롭고 조용하게,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며 편안하고 자유하고 싶은데, 얽히고설킨 이 세상이, 사람이 자꾸 나를 흔들어대는구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가 불쌍해져 내 자신을 위로할 때가 많다. “너만이라도 남을 흔들지 마라.”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하지만 나 역시 남을 많이 흔들고 있을 게다. 어디 몇 사람이나 자신이 남을 흔들고 있다고 인식하면서, 아니 흔들어야겠다고 작정하고서 흔드는 사람이 있겠는가? 물론 아주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누구처럼 말이다.

지난 19대 대통령선거 시 외국의 주요 외신은 박근혜 대통령후보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묘사하고는 하였다. 독재자의 딸 박근혜 후보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 같다고. 그 외신의 보도대로 박근혜 후보는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취임하고 2년 9개월이 흐른 지금 외국의 주요 외신은 박근혜 대통령을 “독재자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독재자”로 묘사하기 시작하고 있다. “독재자의 딸”에서 “독재자”로 변모하는 기운(?)을 외국 주요 언론들이 느껴버린 것이다. 한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 그곳까지 바람 소리되어 전달되고 있는 모양이다. 미국의 뉴욕타임지는 지난 19일 사설에서 “해외에서 한국에 대한 평판을 좌우하는 가장 큰 Risk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라며 박근혜 정부가 강압적으로 역사를 다시 쓰고 반대 여론을 잠재우려 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낮과 밤처럼 남한과 북한을 구별토록 한 민주적 자유를 거꾸로 돌리고 있음이 우려스럽다고 지적하였다. 낮과 밤, 남한과 북한의 차이는 “남한이 민주적 자유”를 누리고 있음에서 구별되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되돌려 독재의 시대로 역행해 “남한과 북한을 같은 등급의 나라”로 만들어 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지의 세계적 영향력에 비추어 사설에서 이를 다루고 있음은 대한민국으로서 수치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 속의 독재자들은 그 누구도 자신을 독재자라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야말로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고, 국민을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려고 애쓰는 참으로 고마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가장 희극적이고 가장 어리석으며, 가장 어리석은 바보임을 스스로만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 누가 조언을 한들, 그 조언자만 가장 나쁜 놈이고 불평불만자일 뿐, 자신은 우국충정과 애국애민의 선각자라고 자칭하고 자애하고 있다. 조용하던 대한민국이 불과 몇 달 만에 왜 이리 시끄럽고 폭력적인 거친 나라가 되어 버렸을까? 도대체 어디에서 온 바람이 이렇게 대한민국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을까?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는 이 모든 바람의 진원지는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주간지 ‘The Nation’은 ‘독재자의 딸이 노동자를 탄압하다'라는 제목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독재자였던 부친의 발자국을 따라, 증폭되고 있는 여당인 새누리당의 권위적 정책에 반대하는 노동자와 시민들을 탄압하고 있다(Following in the footsteps of her dictator father, South Korea’s President, Park Geun-hye, is cracking down on labor and citizens groups opposed to the increasingly authoritarian policies of her ruling “New Frontier” party known as Saenuri).”라고 보도하였다. 국내 주요 보수언론들은 이러한 외신 앞에서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외신은 꾸준히 한국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상황을, “박근혜 대통령이 독재국가를 향해 역행 중”임을 경고하고 나섰다. 세계 경제 10위의, 한류 열풍이 세계를 휩쓸고 있는 저력을 가진 21세기 문명국가인 대한민국이 “밤의 독재국가 북한”을 닮아 “민주적 자유”를 침탈하는 국가로 역행 중이라는 비난을 받게 한 자가 누군가 말이다. 

1979년, 국회의원 김영삼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독재자 박정희 정권을 지원하는 것을 비판하며 지원 중단을 촉구하였고, 이를 계기로 국회에서 제명당하였고, 이때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명언이 나왔었다. 김영삼 의원 제명으로 부마항쟁이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났고, 결국 그 부마사태를 어떻게 진압할 것인가를 놓고 경호실장 차지철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언쟁하는 과정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NYT의 위 사설에 상당한 충격을 받음직도 한데, 여전히 강경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해 헛갈리기만 하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현상은 “독재자의 딸”이라는 2단계 수식어에서 “독재자”라는 직접 수식어로 점차 외신 및 내신, 야당과 국민의 지칭어가 바뀌어 가고 있는 현상은 아주 심각한 “불행을 향한 바람 소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유신시대의 종말을 고한 1979년 당시나 전두환 5공정권의 종말을 재촉한 1987년 당시는 강력한 야당이 존재하여 국민의 구심점이 되어 독재정권에 결연히 항쟁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주류와 비주류로 나뉘어 당권투쟁에 열을 올리고 있고, 국민 역시 먹고 살기가 곤궁해져 하나로 힘을 뭉치지 못하는 지경에 놓여 있다. 뿐만 아니라 N포세대로 상징되는 청년 실업의 증가로 희망을 포기한 젊은이들과 대학생들이 의기를 모아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행동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음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수많은 종편들이 앞장서 친여 분위기를 앞장서 조장하고 있고, 합리적 판단력을 상실한 일부 극보수단체의 무법자 수준의 횡포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환골탈태의 쓴 약을 먹어야 한다. 사약에 준하는 쓴 약을 마셔야 한다. 안철수 의원과 박지원 의원으로 상징되는 비주류는 호남을 볼모 삼는 분열 정책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새누리당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최적 조건을 갖춘 정당, 새정치민주연합은 선거에서 패배하기 위한 최적 조건을 갖춘 정당이라는 세간의 비아냥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먼저 당명을 바꾸라. 필자는 그 전에도 당명 변경의 타당성을 밝힌 바 있다. 당명에서 “민주”라는 말을 빼라. 국민의 고정관념은 대단히 무섭다. 여당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은 민주라는 말은 자신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면서도 민주가 들어간 당명은 “새정치민주연합은 호남당”이라는 지역적 카테고리에 가두고 있다. 그런 세뇌된 인식에 의해 중도보수 또는 중도진보의 국민을 야당의 지지세력으로 확보할 수 없는 한계에 처해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이나 그 전의 한나라당은 영남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면서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여 전체 국가를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을 사용하여 지역당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켜 지원세력의 확장을 도모하였고, 이를 통해 전국적 선거에서 항시 승리하였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현재의 대한민국의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입으로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한들, 힘으로 밀어붙이기로 작정한 여당과 박근혜 정권의 공안정치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건전한 시민단체와 자유민주주의를 염원하는 국민의 힘을 결집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야당부터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안철수 의원과 박지원 의원은 작은 욕심에 천착해서는 안 된다. 보다 큰 꿈을 가지고 멀리, 깊게 내다보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분열보다는 단합과 결집이 힘을 갖고, 화해와 통합의 정신으로 힘 있는 건전한 야당이 될 수 있도록 문재인 대표를 도와야 한다. 문재인 대표는 당내에서는 당권 투쟁의 대상이겠지만, 그래도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48% 넘는 국민의 지지를 받은 야당대통령후보였고, 여전히 국민의 기대를 받고 있다. 

자꾸 흔드는 바람이 되지 마라. 물론 바람에 흔들려야 저항력이 생기고 생명력도 생긴다. 그렇지만 지금은 야당이라는 죽어가는 환자상태의 현실을 직시하고, 힘 있는 야당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재인 대표를 끌어내리고, 과연 누가 새정치민주연합의 얼굴이 되어 국민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겠는가? 지금은 죽을 힘을 다해 당대표를 도와 새정치민주연합이 새롭게 건강한 야당으로 부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때이지, 내 말을 들어 주지 않으면 탈당하겠다거나 문재인 대표가 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한다든지 하는 억지를 부릴 때가 아니다. 지난 대선 때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도왔더라면 어떠한 결과가 나왔을까? 문재인 대표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탈당도 불사하겠다는데, 탈당해서 도대체 야당의 세력을 분열과 혼란으로 몰아 넣어 얻을 이익이 무엇인가? 김영삼 대통령이 비난받아가며 3당합당을 단행하고 그 속에서 내부투쟁을 거쳐 대통령이 되었듯, 밖으로는 힘을 합해 싸우고 내부로는 당권투쟁을 해서 최종 승리를 쟁취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그때가 아니다. 총선에서 승리해야 대선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총선에서 분열로 패배하면 그 다음 대선은 꿈도 꿀 수가 없다.

박종국 시인은 말한다, “한때는 농사를 그만 둘까 했다고, 손끝에 스치는 부드러운 흙의 감촉, 찡하게 가슴을 울리는 생명의 움직임, 그것이 나를 흔드는 바람 소리였다.”고. 그리고 또 말한다, “잠시 지쳤던 마음이 부끄러웠다.”고. 그리고 또 말한다, “흔들린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고,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고, 흔들리지 않고 어찌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저 시를 다시 한 번 음미해보기를 권한다. 한 줄의 시가 주는 여운이 더 진실일 수도 있다. 지금이 기회이다. 그때다.  

슬프지만 외신이 앞 다투어 전하는 “독재자의 길”이라는 말의 무게를 우리는 뜨겁게 느껴야 한다. 생명의 바람 소리를 들어야 하고, 민주와 자유와 정의의 바람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야당이 존재하여야 한다. 그래야 여당도 건전해지고, 대한민국도 건전해진다. 구박받은 며느리가 나중에 시어머니가 되면 더 모진 시어머니 된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내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릴 민중궐기 2차 대회가 어떻게 될지 염려스럽다. 왠지 역사의 전환점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자꾸 든다. 모든 것이 평화시위로 마무리되어,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고, 잘못된 것이 시정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엇갈리는 톱니바퀴처럼 이에 대처하는 경찰과 집회 주최측의 뒤틀림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린다. 

“누가 흔들고 있을까......” 조용히 읊조리며 심호흡을 해 본다. 누가 흔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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