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대통령 복이 없는 대한민국 국민, 그래도 새벽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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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대통령 복이 없는 대한민국 국민, 그래도 새벽은 온다
  • 오시영
  • 승인 2015.11.2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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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 / 변호사 / 시인

어제, 거산 김영삼 전 대통령은 88세의 삶을 마감하고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차디찬 흙 속에서 자신의 흙 됨을 얼마나 깊이 깨닫고 있을까? 인생사 무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영욕을 떠올리며 대한민국민은 “참으로 대통령 福이 없는 국민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긴 500년 조선 역사 속에서 세종, 성종, 정조대왕 정도를 성군으로 꼽을 정도니 국민의 견제를 받아야 하는 민주주의국가에서 좋은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는 미루어 짐작이 간다. 이승만, 윤보선(장면 내각),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전ㆍ현직 대통령들을 떠올려볼 때 대한민국민은 좋은 대통령을 가질 복이 그리 많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각 대통령들도 나름대로 공도 있겠지만, 역사의 재평가 속에서 유난히 역대 대통령들의 과가 두드러지니 이 일을 어찌 할 것이냐 싶기도 하다.  

김영삼 대통령을 조문한 이회창 전 새누리당 대통령후보가 조문사로 남긴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음수사원이라는 사자성어는 중국 남북조시대의 시인 유신(庾信, 513~581)이 징조곡(徵調曲)에 수록한 “열매를 딸 때는 그 나무를 생각하고/ 물을 마실 때는 그 근원을 생각한다(낙기실자사기수 음기유자회기원, 落其實者思其樹 飮其流者懷其源).”라는 시구에서 나온 것으로, 두 문장을 줄여 “낙실사수 음수사원(落實思樹 飮水思源)”이라 회자되고 있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대통령들의 독재에 대한 국민의 저항으로 얻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이승만 대통령이 무리하게 발췌개헌(拔萃改憲, 1952년의 1차 헌법개정으로, 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하도록 된 종전 헌법 하에서는 다수당을 차지하지 못한 자유당 국회의원만으로 대통령에 당선될 수 없게 되자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로 개정한 헌법)을 하여 2대 대통령이 되지 않았거나, 4사5입개헌(1954년의 2차 헌법개정으로, 대통령을 1차 중임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헌법을 “이승만 대통령에 한해 1차 중임제한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예외를 인정”하도록 개정한 것으로, 국회표결결과 재적인원 203명, 재석인원 202명, 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 7표가 나와 의결정족수인 국회 재적 인원 203명의 3분의 2인 136표에 1표가 부족하여 사회를 보던 최순주 국회부의장이 부결을 선포하였으나 자유당간부회에서 203명의 3분의 2는 135.333……이므로 0.33은 1인이 되지 못하므로 사사오입에 의해 135명이 재적 인원 3분의 2가 된다는 엉터리 해석을 통해 이승만 대통령만 3선이 가능하도록 특권을 인정한 황당한 개헌)을 통해 3선 대통령이 되지 않았더라면, 4ㆍ19민주혁명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위 사사오입개헌은 203명의 3분의 2 이상은 136명이어야 하는데, 그 이하인 135명을 3분의 2 이상으로 해석한 것이 첫 번째로 황당하고, 일단 부결 선포한 의안을 다시 엉터리 논리로 가결을 재차 선포한 것이 두 번째로 황당하고, 헌법 공포 당시의 대통령인 이승만에 한하여 3선을 허용한다는 평등권 위배의 내용이어서 세 번째로 황당한 헌법개정이었다고 할 것이다. 이 사사오입 개헌하던 195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25세의 초선 국회의원으로 반대투쟁에 앞장섰으니 독재의 출발점에서 민주화투쟁을 벌린 김영삼 전 대통령이 巨山-큰 산이 되어 이승만 독재를 막으려 몸부림쳤음이 새삼스럽다. 당시 자유당 의원이었던 김두한 의원이 민관기 의원과 단 둘이서 위 사사오입개헌에 대한 자유당 내부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져 의기를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김두한 의원의 딸 김을동 의원이 새누리당에서 활약하며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앞장서고 있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85세가 된 3선대통령 이승만의 노욕과 총기의 흐려짐은 1960년 자유당정권의 3.15부정선거를 막지 못하였고, 4.19민주혁명으로 하야되어 하와이로 쫓겨 가 거기에서 90세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정치가의 탐욕이 얼마나 스스로를 비참하게 하는지 새삼스럽다. 윤보선 대통령은 1960년 8월 12일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혼란한 정국을 바로잡으려 애썼으나, 박정희 소장의 5ㆍ16쿠데타로 인해 실각하고 말았다.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 소장은 공화당을 창당하여 정권을 잡아 제3공화국을 수립하여 대통령 연임에 성공한 직후 1967년부터 3선 개헌작업에 착수하여 내부적으로 3선 개헌에 반대하며 김종필을 차기 대통령으로 지지하던 김종필계 국회의원들을 중앙정보부에서 불법연행, 고문하여 제거하고 김종필을 핍박하여 스스로 정계에서 은퇴선언을 하게 한 후 1969년에 3선 개헌에 성공하였다. 그 3선 대통령 선거가 바로 김대중 대통령과 붙은 1971년 대통령선거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95만 표 차이로 당선되었으나, 부정선거였다는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쳤던 선거였다.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이 40대 기수론(1971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54세의 젊은? 나이였다)을 내세우며 대통령 후보전에 뛰어들자 그를 제지하고자 당시 민주당 유진산 당수를 회유하여 그로 하여금 나오도록 뒷돈을 대주기도 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유진산 당수가 출마하지 않자 김대중, 이철승 의원 등이 모두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후보전에 뛰어들었고, 1차 투표에서 김영삼 후보가 1위를 하였으나 결선투표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었고, 1971년 대통령선거전에서 위와 같이 패배한 후 박정희 대통령의 제거음모에 시달리며 고난의 가시밭길을 걷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은 3선 대통령이 되어 1972년 10월 17일 유신선포를 하고 유신헌법을 제정하여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만들고 거기에서 대통령을 선거토록 하여 소위 체육관대통령시대를 열어 99%의 찬성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북한의 김일성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독재자의 길을 걷기에 이르렀다고 할 것이다.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늘리고 대통령의 연임 제한 규정을 폐기하여 박정희 1인 영구집권을 가능하게 하고, 국회의원 3분의 1을 유정회라고 하여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뽑도록 하여 대통령이 직접 뽑는 거나 다를 바 없게 하였고, 중선거구제를 통해 여야 국회의원이 1명씩 동반당선되도록 하여 국회를 장악하고서도, 국회해산권을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도록 헌법을 만들어 국회를 완전 식물국회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긴급조치발령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그 긴급조치에 대하여는 사법심사(법원의 재판)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여 긴급조치 1호부터 9호까지 남발하여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불법감금하고 고문하고 죽이고 하였던 것이다(긴급조치는 최근에 와서 모두 위헌이라고 판결이 났다). 구국의 영단이고,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황당한 민주주의의 본질을 왜곡한 궤변을 늘어놓으며 영구집권의 길로 들어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통해 “전형적인 독재자의 길”로 들어섰고, 결국 그 말로는 1974년 부인 육영수 씨가 문세광의 총에 맞아 죽고, 자신도 부하였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죽는 비극의 죽음으로 종결되었다고 하겠다.

그 뒤를 이어 전두환 소장이 역시 1979년 12월 12일 12.12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후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을 총칼로 탄압하여 수백 명의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후 최규하 임시대통령을 총칼로 협박하여 물러나게 한 후 5공화국을 수립하였으나 결국 6.29선언으로 국민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고, 김대중ㆍ김영삼 양김의 분열로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되었으나, 그 역시 청와대로 재벌총수들을 불러 직접 부정한 돈을 받는 일을 수없이 저지르는 부정축재를 일삼았던 것이다. 어찌 하나 같이 독재자, 부정축재자의 길로 들어서서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고 손가락질 당하는 말로를 걷고 있는지, 정말 좋은 대통령을 가질 수 있는 복을 대한민국 국민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 아닌가 싶은 것이다.

민주화투쟁에 앞장섰던 김영삼 전 대통령도 변절자라는 말을 들어가며 3당 합당을 통해 김영삼, 김종필, 노태우 세 사람이 힘을 합쳐 여소야대를 졸지에 여대야소로 바꿔 국민의 열망을 저버렸으나 다행히도 당내 투쟁에서 성공하여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문민정부를 수립하여 금융실명제, 군 사조직인 하나회 척결, 공직자재산등록 등 통 큰 정치와 소통의 정치를 이룩하였으나 임기말에 이르러 차남 김현철의 전횡과 부정한 정치자금의 수수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되고 아이엠에프사태라는 초유의 국가부도사태를 가져와 국민을 도탄에 빠뜨린 후유증은 지금의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시작의 단초가 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대통령의 실정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시대를 열어 민주정부로의 이행을 가능토록 한 것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 역시 국가인권위원회의 활성화를 비롯하여 금모으기 운동으로 상징되는 아이엠에프사태의 조기탈출과 국가경제의 안정화를 도모하였으나, 결국 자식들의 불법정치자금 수수 등이 문제가 되고 노쇠함으로 인한 많은 문제를 남겼으나,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의 시대로 권력승계를 가능토록 한 것은 나름대로 성공적인 대통령직 마무리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서민대통령으로 권위주의의 탈피, 국가권력기관의 전횡 금지와 본연의 임무로의 복귀, 국민의 인권신장, 국민소득 2만 불 시대의 개화, 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남북 간 긴장완화 및 협력체계 구축 등 수많은 긍정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층의 반발로 인한 언론기관과의 적대 시, 재벌기업과의 불안한 동거(나중에는 삼성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정책의 시행) 등 부정적 시각 또한 없지 않고, 이명박 정권의 정치공작적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부정한 자금수수 등으로 인한 수사 도중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에 의한 부정적 이미지 또한 없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비비케이 사건으로 대통령 당선 전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으나, 점차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4대강 사업의 부정적 혈세 지출, 엄청난 혈세를 낭비한 해외자원개발사업, ‘萬事兄通’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진 부정자금수수 등의 이미지가 강해 지금도 많은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아가 언론에 대한 통제와 집회 및 시위에 대한 통제 등으로 인권과 민주화를 후퇴시킨 잘못은 두고두고 지탄받아도 부족함이 없다 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2차 남북정상회담정신을 제대로 승계하지 못하고 북한과 대결구도로 치달아 연평도 포격사건과 천안함사태의 발생이라는 남북긴장관계를 고조시킨 것은 통일을 멀게 한 것으로 참으로 안타깝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국정원 댓글과 국군사이버사령부를 통한 댓글 공작 등을 통한 정치개입행위는 민주주의를 역행한 것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은 또 어떠한가. 소통의 정치인이었던 김영삼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불통 이미지가 더욱 강하게 박히고 있다. 한 마디로 능력부족의 한계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필자는 오래 전 공주인 박근혜와 대통령 박근혜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공주는 떼만 쓰면 된다. 모든 것을 신하들이 다 해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주는 오류가 없고 잘못이 없으며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공주는 공주일 때는 전지전능한 것이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되면 모든 것이 180도 달라진다.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국민을 먹여 살려야 한다. 최근 들어 박근혜 대통령의 언어가 고상함과는 거리가 먼 거의 조폭 수준의 막말로 변해가고 있다. 공주 때 모든 것이 가능했다면 대통령 때는 더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착각이었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주 때는 다 잘 되었는데, 대통령이 되니 갑자기 안 된다고 하는 사람, 특히 야당의 반대가 극심한 것이다. 여전히 심복들은 “예, 공주님”하고 대통령을 공주처럼 떠받드니 안에서는 잘 되는 것 같은데, 이것이 밖으로만 나가면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화가 날 대로 난 것이다. 대통령이 대한민국 분쟁의 트러블메이커가 되어 가고 있다. 국민의 혼이 비정상이라고 하지를 않나, 의견을 주장하는 시위대를 향해 IS 테러리스트 같다고 하지를 않나, 국회의원들을 향해 립서비스만 한다거나 위선자라고 몰아붙이지를 않나, 자신의 비서 출신 여당 원내대표를 배신자라고 하지를 않나, 청와대 참모들의 총선 출마를 위한 사퇴 직후 진실한 사람을 뽑아 달라고 하지를 않나, 하여튼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주 아프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대통령의 격무로 인해 심신이 피곤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말 한 마디로 되어야 했던 60평생의 삶 속에서 요즘처럼 “아니 되옵니다.”하고 기다리도록 하는 상황이 자주 전개되다 보니 심화가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3년을 거의 지나려 하지, 해 놓은 것은 거의 없지, 주위 참모들의 조언대로 무언가 좋다고 내놓으면, 그것이야말로 최대의 개악이라며 야당과 국민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반대하지 하니 죽을 맛인 것이다. 

이제라도 합리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국민들이 좋아할 정책을 내 놓아야 한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같은 시대퇴행적 정책을 접어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자신이 대통령후보 시절 내놓았던 공약집을 열 번 스무 번 읽고, 그때의 절실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 보면 대통령후보시절 했던 공약을 전부 뒤집어 놓고 있다. 그로 인해 국민의 마음을 완전 뒤집어 버렸다. 그러니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대통령후보 시절 공약을 내세우지 않았다면 국민은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반대도 안 할 것이다. 그런데 한다고 했던 것들을 거의 다 안 하겠다고, 안 하는 정도가 아니라 반대방향으로 유턴을 해버렸으니 딱지를 떼는 교통경찰처럼 국민들이 레드카드를 내보이며 다시 대통령후보시절의 공약을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님, 오늘 사태의 모든 책임은 당신 책임이고, 당신이 만든 올가미이고, 당신이 해결해야 할 당신의 약속입니다. 당신이 스스로 한 약속을 이행하며 국민의 등을 또닥거려 주고, 국민의 눈물을 함께 나누며 “미안합니다. 내가 잘못했나 봐요, 지금부터라도 초심으로 돌아가 잘 할께요.”라고 하면 많은 국민이 “반대해서 미안해요, 대통령님이 그러시니 우리도 함께 도와 좋은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협력할께요.”라고 할 것이다. 제발 화 좀 내지 마시기 바란다. 고양이 앞의 생쥐꼴인 국무위원들, 아무도 제대로 된 말을 직언하지 못하는 그림자 같은 국무위원들 앞에서 자꾸 인상을 쓰면서 사나운 표정으로 거친 말을 하시니 그 전의 좋았던 이미지마저 나빠지고 있으니, 이제 그만 화를 내고 심화를 가라앉혀 건강을 회복하기 바란다. 계속 화를 내면 더 자주 아플 것이다. 필자도 얼마 전 과로로 졸도하여 연구실 복도에서 쓰러져 코뼈가 부러진 상처를 입어 사흘간 입원하여 수술을 받기도 하였다. 비슷한 연배의 우리, 이제 좀 느긋하게 화 안 내며 좋은 일 하며 살아 보면 어떨까 합니다.    
 
흙으로 돌아간 김영삼 대통령님, 당신이 평생 사랑했던 하나님께 귀천하셨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의 공과도 역사가 심판하겠지요. 몇 가지 커다란 잘못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신 삶의 대부분은 참으로 위대하였음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한 마디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진리의 말씀이 새삼스럽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꾸 민주주의를 유신시대로 회귀시키려는 듯 하여 당신의 죽음의 가치를 덮으려 해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새벽은 오겠지요? 민주주의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독재자들도 다 죽지 않습니까? 이왕 죽는 거 독재자였다라고 무덤에 침을 뱉게 하는 것보다는 당신은 참 좋은 민주주의 대통령이었습니다라는 칭찬의 역사적 평가를 받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미소를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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