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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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41)
  • 신종범
  • 승인 2015.11.2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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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갈이

 

 

 

 

신종범
법무법인 The Firm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법률저널에 법정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한지도 어느새 2년여가 되어 가고 있다. 초기에는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던 때가 많았다. 나름 열심히 쓴 글임에도 신문에 실린 글을 직접 볼 때면 그 부족함에 민망함을 느꼈던 적도 꽤 있었다. 지금은 그래도 조금은 나아진 것 같지만 여전히 쓸 때마다 글 쓰는 것이 참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어려운 주제도 옛날이야기 전하듯 쉽게 그리고 감칠맛나게 글로써 풀어내는 분들을 보면 그 내공에 존경심과 함께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아, 나도 저런 글을 쓸 수 없을까?’ 글을 쓰다보면 누군가 써 놓은 좋은 표현들을 그대로 옮기고 싶다는 충동이 들 때가 있다. 일부 표현을 그 저자를 표시하여 인용하는 것이야 괜찮겠지만 마치 자신이 직접 쓴 것인냥 쓰게 되면 도의적, 양심적 문제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이른바 ‘표절’과 저작권 침해 문제가 야기되는 것이다. 보통 ‘표절’이 문제되는 사건은 저작자의 창작적 표현 일부를 그대로 베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얼마전 일부가 아닌 저작물 전체에 저작자의 이름만 바꿔서 문제가 된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표지갈이’ 사건이다. 

며칠전 의정부지검이 ‘표지갈이’ 수법으로 책을 내거나 이를 눈감아준 혐의(저작권법위반 등)로 전국 50여개 대학교수 200여명을 입건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표지갈이’란 무슨 말일까 궁금했는데 책 내용은 전혀 바꾸지 않은채 책 표지의 저자 이름만 바꾸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즉, A교수가 저술하여 이미 발간된 서적을 B교수를 저자로 그 표지만 바꾸어 다시 출간하는 수법이다. 일부 교수들은 의심을 피하려고 책 제목에 한두 글자를 넣거나 빼기도 했다고 한다. 적발된 교수들은 재임용시 요구되는 연구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이 같은 일을 저질렀고, 출판사는 팔리지 않은 전공서적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교수들을 부추겼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면, 이 같은 ‘표지갈이’에는 저작권법상으로 어떠한 법적 책임이 따를까? 

먼저, A교수가 저술한 서적을 B교수가 저자인 것처럼 ‘표지갈이’하여 C출판사가 발간하였는데 A교수가 모르고 있었다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A는 서적의 저작권자로서 서적의 원본이나 복제물에 그의 실명이나 이명을 표시할 권리(성명표시권. 저작권법 제12조)를 가지는데 저작자가 아닌 B가 A의 저작물에 B의 이름을 표시하였으므로 A의 성명표시권을 침해한 것이 된다. 또한, A는 서적의 저작권자로서 그 서적을 복제(복제권. 저작권법 제16조)하고, 배포(배포권. 제20조)할 권리를 가지는데, B가 A의 허락없이 A의 저작물인 서적을 출판하였으므로 A의 복제권과 배포권을 침해한 것이 된다. 이에 따라 A는 B의 저작권 침해에 대하여 그 서적의 출판 중지, 서적의 폐기 등을 청구할 수 있고(저작권법 제123조), 그 손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 또한 B는 A의 성명표시권을 침해한 행위, A의 복제, 배포권을 침해한 행위에 대하여 각 형사책임도 지게 된다(저작권법 제136조). 다만, 이 경우에 B에게 영리의 목적이나 상습성이 없다고 한다면 A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다. (저작권법 제140조) 

다음으로, A교수가 자신의 저작물인 서적을 B교수가 이름만 바꾸어 출판하는 것에 대하여 동의하거나 묵인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경우에는 저작자인 A 스스로 자신의 저작물에 B의 이름이 표시되는 것을 허락하거나 묵인하였으므로 자신의 성명표시권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또한, 자신의 저작물이 출판(복제되어 배포되는 것을 의미)되는 것을 허락하였으므로 복제권 및 배포권의 침해도 없게 된다. 결국, 이 경우 B는 A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았으므로 위에서 살펴본 A의 B에 대한 손해배상 등 민사상 청구는 인정될 여지가 없다. 나아가 B의 A에 대한 성표표시권 침해, 복제 및 배포권 침해에 대한 형사책임도 물을 수 없게 된다. 문제된 사건에서 자신의 서적을 ‘표지갈이’하는 것에 동의하거나 묵인한 교수들도 상당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경우에는 ‘표지갈이’에 어떠한 책임도 따르지 않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저작권법은 원칙적으로는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그 권리 침해에 대한 책임을 규정하고 있지만 저작권자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은 경우에도 형사책임을 지울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다. ‘부정발행죄’가 그것인데, 저작권법 제137조 제1항 제1호에 의하면, “저작자 아닌 자를 저작자로 하여 실명, 이명을 표시하여 저작물을 공표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보통 이 규정은 문제된 사건과는 달리 주로 저작물의 판매 촉진을 목적으로 저명인을 그의 의사와 무관하게 저작자로 표시하는 경우에 주로 적용되어 왔는데 문제된 사건의 경우에도 저작자 아닌 사람을 저작자로 표시하여 출판한 이상 적용이 가능하다 할 것이다. 사안에 따라서는 저작자인 교수마저도 ‘부정발행죄’의 공범으로 처벌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표지갈이’는 1980년대부터 출판업계에서 성행한 수법이라고 하고, 문제된 사건은 파주 출판단지만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수사가 전국적으로 확대될 경우에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꽤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조류 등 동물들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털갈이’를 하지만 ‘표지갈이’를 통해서는 변화 하는 교육환경에 적응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번 사건이 대학사회의 연구 풍토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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