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시험 한국사과목 그곳에 가면 기출문제가 보인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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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시험 한국사과목 그곳에 가면 기출문제가 보인다8.
  • KG패스원
  • 승인 2015.10.3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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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기출문제가 보인다.

연재순서 : 1주차: 제주도, 2주차: 울릉도와 독도, 3주차: 강화도, 4주차: 간도, 5주차: 공주 6주차: 경주, 7주차: 평양, 8주차: 서울

“다음 왕은 이씨이며, 도읍은 한양으로 정한다.”

『도선비기』에 한양도읍설이 나온다. 개경의 지기는 이미 쇠하였으며, 신하가 임금을 폐하는 망국의 터라는 것이다. 태조 이성계는 왕위에 즉위하자, 한양으로 천도할 계획을 발표하고 1394년 재위 3년 만에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를 단행한다. 한양(漢陽)이 역사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경덕왕 때 중국식 지명으로 고치면서부터인데, 여기서 한(漢)은 한강이다. 양(陽)은 ‘음양(陰陽)’의 ‘양’으로, 풍수에서는 산의 남쪽을 양이라 하고, 물의 북쪽을 양이라 하므로 한양은 곧 한강의 북쪽 땅을 말한다.

  정선, 한양전경

서울에서 찾는 역사 이야기

♢ 서울 암사동 유적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는 기원전 8천 년경부터 시작되었다. 신석기 시대에는 신석기 혁명이라 불리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농업이 처음 시작되었고, 인류에게도 원시적이지만 신앙의 형태가 나타났다. 또 구석기 시대와 달리 사람들이 음식을 저장하기 시작하였는데, 토기의 존재가 그 사실을 확인해준다. 신석기 시대의 대표 토기는 빗살무늬 토기인데, 서울 암사동에서 이 토기가 출토되었다. 탄화된 좁쌀이 발견되어 (밭)농사의 시작을 알려준 것도 역시 서울 암사동 유적이니, 신석기 시대 많은 유적지들이 있지만 공무원 한국사를 공부하는 수험생들은 특히 암사동 유적은 꼭 기억해 두어야 한다.

♢ 서울이 사랑한 백제, 백제가 사랑한 서울

백제의 첫 수도에 관하여는 학자들마다 이견이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지금의 몽촌토성보다 풍납토성으로 짐작하고 있다. 백제는 22대 문주왕 때 고구려에 쫓겨 수도를 웅진으로 천도(475)하기 전까지 지금의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하였는데, 이미 3세기 고이왕 때 한강 유역을 완전히 차지하고, 삼국과의 항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었다. 500여 년 동안이나 백제의 수도로 자리매김한 곳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유난히 서울시 한국사 시험에 백제 관련 문제가 빈출되는 것 같다. 올해(2015) 서울시에도 시험에서도 역시 백제의 문화재를 고르는 문제(9급)가 나와 수험생들을 당황하게 했으니, 앞으로 서울시 시험을 대비하는 수험생들은 특별히 더 관심을 두고 백제의 역사를 조명해야겠다.

♢ 조선 왕조 500년의 수도

1392년 조선이 건국되고, 1394년 한양으로 천도한 이후, 조선 왕조의 수도는 쭉 한양이었다. 굳이 풍수의 지리를 논하지 않더라도, 형세의 길함을 알지 못하더라도, 한강을 끼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수도로써 지리적 이점이 있었다는 점은 누가 봐도 수긍이 간다. 조선 왕조 500년을 지탱한 수도, 한양의 건설은 삼봉 정도전(1342~1398)의 작품인데, 그는 조선의 궁궐 이름과 작은 길 이름 하나까지 모두 지으며 서울을 만들었다. 왕조 교체를 주도하는 혁명의 시작부터 그 기반이 되는 터전을 실질적으로 갖추기까지 그의 손에서 조선과 한양이 운명을 같이하게 된 것이다.

♢ 각지의 임시 정부 - 한성정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일어난 3.1 운동을 계기로 좀 더 조직적으로 독립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수립되었는데, 국내에서는 1919년 4월 23일 서울에서 13도 대표 24명이 모여 국민 대회를 개최한 후 이승만을 총재로, 이동휘를 국무총리로 하는 한성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후 9월에 각지에서 수립된 임시 정부를 단일 정부로 통합하자는 운동이 일어나자 상하이에서 통합 정부가 재탄생하였는데, 위치는 외교 활동에 유리한 상하이에 있었으나 법통은 한성 정부안을 계승하여 정통성을 확립하였다. 13대 대표가 모여 구성되었기 때문에 연해주 지역의 정부나 상하이에 있던 정부에 비해 대표성이 있는 정부라는 점에서 한성 정부 법통 계승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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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출 문제를 확인해보자.

삼국의 쟁패와 신라의 삼국 통일 과정에 대한 설명 중 옳지 않은 것은?    2013 서울시 7급

①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강국을 건설한 나라는 백제로서, 한성에 도읍하였던 500여 년간을 백제의 전성기로 볼 수 있다.

② 고구려의 남하정책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는 백제로서, 5세기 말 수도를 웅진으로 옮긴 것은 국력이 역전되는 계기가 되었다.

③ 신라가 최대 강국으로 등장한 계기는 한강을 차지함으로써 마련되었다.

④ 고구려는 수·당과의 거듭된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국력을 키울 수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신라를 압박하였다.

⑤ 백제는 의자왕이 한때 신라의 대야성을 비롯한 40여 성을 빼앗는 업적을 세우기도 하였으나,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정답] ④

[해설] 고구려는 수나라의 거듭된 침략을 물리친 후, 천리 장성을 축조하고, 안시성 전투도 승리로 이끄는 등 당의 빈번한 침략을 막아냈으나 이 과정에서 고구려 역시 국력이 소모되었다.

[오답풀이] ① 백제의 역사를 크게 한성시대, 웅진시대(문주왕 때 웅진 천도 이후), 사비시대(성왕 때 사비 천도 이후)로 나누어 본다면 한성을 수도로 하였던 한성시대 약 500여 년 간이 백제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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