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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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39)
  • 신종범
  • 승인 2015.10.3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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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서적과 국정교과서
 

신종범
법무법인 The Firm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역사교과서의 국정화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논란을 지켜 보면서 지난 날의 한 사건이 불현듯 떠올랐다. 벌써 7년전 군법무관으로 근무할 때 일이다. 국방부에서 뜬금없이 불온서적이라며 그 목록과 함께 해당 서적의 군내 반입을 금지한다고 발표하였다. 국방부는 군인복무규율을 근거로 불온서적의 반입을 금지한다고 했지만 군사정권 시절에나 있었던 불온서적 이야기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고, 지금의 국정교과서 만큼은 아니지만 적잖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불온’하다는 의미는 “온당하지 않음”. 즉, “판단이나 행동 따위가 사리에 어긋남”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당시 국방부가 ‘사리에 어긋난다’고 발표한 서적들을 보자. ‘북한식 우리의 문화’(주강현), ‘지상에 숟가락 하나’(현기영),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노엄촘스키), ‘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 ‘대한민국 사(史)’(한홍구), ‘세계화의 덧’(하랄트 슈만, 한스 피터 마르틴) 등이다. 국내외 저명교수의 책, 당시 인기가 높았던 TV 프로그램인 느낌표에서 권장도서로 소개한 책, 그리고 대학교 교양교재로 널리 쓰이고 있는 책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럼 국방부는 이 책들의 내용을 다 파악한 후에 불온하다고 판단한걸까? 무슨 기준으로 도서를 선정한걸까? 국방부의 기준이 있긴 있었다. 국방부는 당시 대학가 운동권단체인 한총련에서 군내 도서보내기 운동을 계획하고 있다는 첩보를 보고받고 한총련이 보내려고 한다는 도서 목록을 입수한 후 재분류하여 총 23권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하였다. 소위 좌파 운동권세력이 선정한 책이니 책 내용도 보지 않고 불온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그후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국방부의 지침대로 선정된 불온서적이 군내에 반입될 수는 없었지만 군 밖 세상에서는 그 서적들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휩쓸었던 것이다. 이미 출간된지 꽤 지난 책들도 말이다. 장병들도 군내에서는 읽을 수 없었지만 휴가 나가서는 구해서 많이들 읽었었다. 어릴 적 읽지 말라고 하면 호기심에 어떻게든 더 찾아 읽어보려했던 심리랑 똑같은 이유일게다. 당시 저술한 책 2권이 불온서적으로 선정된 미국의 저명한 언어학자 노엄촘스키는 "불온서적 판매량 증가는 한국인들의 양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국방부가 자유를 두려워하고 사람들을 통제하려 하는 것은 불행한 일" 이라고 비판했다. 국방부는 지침을 내려 불온서적이라고 판단한 서적의 군내 반입은 강제로 막을 수 있었지만 장병들의 읽을 자유를 완전히 뺏을 수는 없었다. 당시 필자는 군 간부였지만 행정기관이 나서서 책을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군인이라는 이유로 그 읽을 자유를 침해하는 조치에 대하여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특히, 사회 친구들을 만났을 때 '군인들은 책도 맘대로 못 읽나보네. 그러니까 군바리란 소리를 듣지' 라는 비아냥을 들었을 땐 너무나 참담하였다. 군법무관들 사이에 법적으로 다투어 보자는 얘기들이 나왔고 뜻을 모은 몇 군법무관들이 국방부의 불온서적 선정과 그 근거인 군인복무규율에 대하여 헌법소원을 청구하였다. 그러자 국방부는 헌법소원을 청구한 법무관들을 색출하여 징계에 나섰다. 헌법상 권리인 재판청구권 행사로 헌법소원을 청구한 것이 징계사유가 될 수 있느냐 라는 또 다른 논란이 있었지만 법무관들을 징계함으로써 군내에서 일고 있는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었기에 징계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특히, 2명의 법무관은 그전에는 언제 있었는지 확인도 되지 않았던 파면 처분을 당했다. 다행히 행정소송에서 파면은 취소되었지만 그동안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불온서적 반입 금지 조치 후 과연 그 조치대로 실행되었을까?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몇 군대 부대 도서관을 가보니 불온서적으로 선정된 도서들이 그대로 비치되어 있었고 장병들은 무엇이 불온서적으로 선정되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이번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보며 7년 전의 일이 불현듯 떠 오른건 두 가지 사건이 유사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먼저 그 뜬금없음이다. 21세기 선진국에 진입하였다는 대한민국에서 전체주의 또는 후진국가에서나 있을법한 불온서적과 교과서의 국정화 이야기라니 말이다. 다음으로 이유를 알지 못함이다. 왜 ‘불온’하다고 판단하였는지, 기존 역사교과서는 무엇이 잘못되었다는건지 모르겠다. 불온서적 선정시에는 그 내용도 모른채 단지 운동권에서 군에 보내려는 도서라서 선정했다고 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서는 기존 교과서 집필자들이 좌파라서 편향된 교과서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어떤 부분이 편향되었냐는 물음엔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비판적 목소리에는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고 이념적으로 몰아가는 것도 유사하다. 불온서적 선정에 대하여 헌법소원을 청구한 법무관들에게 좌파 딱지를 붙였듯 이번엔 역사학자의 80% ~ 90%를 좌파라고 몰아 붙이고 있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읽을 자유를 침해하고 국민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점이다. 이러한 책은 불온하니 읽지 말라고 했듯 정부에서 정해준 역사만을 교육 받으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사건이 유사하듯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도 그 의도대로 뜻을 이루진 못할 거 같다. 불온서적으로 선정된 도서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장병들이 오히려 휴가를 나가서 더 많이 보았으며 결국 불온서적 반입 금지 지침이 유야무야 되었듯 역사교과서가 국정화되어도 학생들은 그와 달리 서술된 다양한 관점의 역사를 다른 경로를 통해서 배울 것이고 획일적인 국정교과서의 역사 교육은 다양한 관점으로 쓰여진 자유로운 역사 교육과의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온당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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