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결정의 순간과 결정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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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결정의 순간과 결정장애
  • 신희섭
  • 승인 2015.10.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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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비난과 환호의 중심에 선 한 걸그룹이 있다. 이 그룹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축제에서 과도한 노출로 인해 TV 뉴스에서 질타를 받았다. 반면 과감한 노출로 걸그룹매니아들과 걸그룹성애자들의 팬클럽 가입이 쇄도하고 있다고도 한다. 관련 기획사 홈페이지는 문을 닫아버렸다.

노팬티로 보이는 전략까지 써야 할 정도로 걸그룹들의 노출전략이 진화했다.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는 걸그룹들. 자신들을 알리기 위한 무한경쟁. 살아남기 위한 기획사들의 전략. 더 자극적인 것에 열광하는 팬들. 복잡한 세상에 더 많은 자극을 원하는 이들의 수요와 공급을 맞춰주는 노출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

가혹한 자본주의 경쟁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걸그룹 경쟁은 기획사들에게 끊임없이 판단을 강요한다. 문제는 몇 몇의 과도한 노출경쟁이 다른 경쟁자들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우먼그룹도 아니고 걸그룹이라고 범주화가 된 이들을 더 몰아갈 곳이 있을까?

오늘 이야기하려는 핵심은 걸그룹은 아니다. 오늘 다룰 주제는 결정과 결정장애에 관한 것이다.

위의 걸그룹 노출사례와 최근 국정교과서채택 논의나 여야간 공천제도논쟁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결정이 어렵다는 것과 결정의 어려움이 결정의 방향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어떤 전략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비슷한 실력과 대중들의 비슷한 기대에 맞추어서 어떻게 자신들에게 관심을 돌릴 수 있는가? 세간의 여러 가지 평가와 관계없이 부동층을 어떻게 끌어 모을까? 지금 이 순간 나에게는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가? 걸그룹이나 정치권이나 이들이 던지는 질문은 유사하다.

결정은 찰나의 과정이다. 많은 생각과 고심 끝에 내려지는 찰나의 순간. 복잡함이 단순함으로 변화하는 경계선. 생각에서 행동으로 그리고 책임으로 전환하는 과정.

결정내용에 대한 도덕적인 판단이전에 결정이 내려지는 과정으로 가보자. 어떻게 홍보를 할 것인가? 어떤 사람들을 자신들의 지지자로 끌어 모을 것인가? 많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걸그룹이나 정치권이나, 여기서 확장해서, 개인들 혹은 기업들이 결정을 내린다. 이렇게 내려진 결정이나 결단자체는 두 가지로 평가될 수 있다. 하나는 과정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결과에 관한 것이다.

결과는 결정의 내용이 잘 되었는가에 관한 것이다. 결정을 통해 진행될 사안이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과정은 과연 결정이라는 것이 내려진 진행상황이 어떤 것이었는가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결정의 결과는 결정의 과정에 영향을 받는 산물이다. 대체로 결정의 과정이 좋을 때 결과가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물론 과정은 좋았지만 결과가 기대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는 하다. 거꾸로 과정은 시원찮으나 결과가 좋은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는 운이다. 그리고 운은 우리의 통제범위 밖이다.

위의 사례들처럼 필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결정을 어려워한다. 결과가 좋을지 혹시 주변의 질타를 받는 것은 아닌지를 우려한다. 한편으로 어떤 것들을 고려하고, 어떤 사람들까지를 염두에 두어야 할지, 그리고 어떤 순서로 풀어가야 일이 꼬이지 않을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을 거치다 보면 어느 순간 인내심을 잃어버리게 되고 “아 몰라!” 아니면 “아 짜증나게 복잡해!”를 외치게 된다.

이런 일을 몇 번 경험하면 무엇을 결정하는 것이 무척 어렵게 된다. 하다못해 중국집에 가서 짜장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를 두고도 어려워한다. 이런 상황을 결정장애라고 한다. 결정을 하는 데 심리적으로 애를 먹을 뿐 아니라 심리적 위축이나 공황장애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이 평범한 개인에게만 일어날까? 그렇지 않다. 많은 결단의 순간들에서 이런 결정장애는 비일비재하다. 그 중 가장 극적인 것아 전쟁을 결정하는 순간일 것이다. 전쟁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수 없는 우연을 포함한다. 따라서 전쟁은 체계적인 결정으로 운을 줄여야 한다. 클라우제비츠가 이야기 한 대로 전쟁이라는 ‘도박’에서 패배할 확률을 줄여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합리적인 대비와 합리적 결정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미국에 대해 전쟁을 결정했던 것과 같이 결정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이 떠밀려 가는 경우들이 많다.

전쟁이라는 복잡하고 거대한 이야기 말고 우리 일상으로 돌아와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매 순간 결정을 해야 한다. 어떤 안전한 교통수단을 이용할 것인지,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지, 어느 곳에서 자야할지를 매 순간 순간 결정한다. 너무나 익숙해서 결정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것과 익숙지 않아서 따로 결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차이만 있다.

결정을 내리는 것에는 영향이 작은 결정에서 영향이 클 것으로 기대되는 결단까지 범위가 넓다. 여기서 말하는 영향이 큰 것과 작은 것은 대체로 두 가지에 의해서 결정된다. 첫 번째, 내게 미치게 될 결과이다. 공부를 더 할 것인가 취업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두 번째, 이 결정에 의해서 영향을 받게 될 다른 사람의 크기이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하고 가족 간에 유대를 만드는 것과 이성 친구를 사귀기로 결정하는 것을 구분해 볼 수 있다.

그럼 왜 결정장애로 고통을 받을까? 가장 단순한 이유는 복잡하기 때문이다. 고려할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내가 받을 영향과 어떤 타인이 받게 될 영향. 자신의 입장과 타인입장의 고려. 결정의 순서들. 여기에 더해 자신이 지금 생각 못하고 있는 변수들. 이런 부분들을 모두 고려하면 결정은 너무 복잡해진다.

그렇지만 복잡성은 핑계일 수 있다. ‘자아 부재’에 대한 핑계. 결정이 어려운 것은 복잡함 보다는 복잡한 것을 결정하는 “내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소한 것부터 자신이 별로 결정해 본적이 없다가 더 큰 결정을 내리는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들의 경우 이런 경우가 많다. 지금 청소년들은 이것 먹어야 하고 저것입어야 하고 어느 학원을 다녀야 하고 인생에서 무엇이 되어야 하며 누구와 사귈 것인지 등등을 자신이 결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대부분 주로 엄마들이 결정을 한다.

요즘 청소년들은 결정장애로 어려워한다. 이것은 당연하다. 자아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문제에 대해 내가 가진 그림이 없는데 무엇을 중요하게 여길 것인지 어떻게 결정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결정장애보다 더 문제는 결정을 내릴 기준으로 자신의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없다는 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부모의 가치관과 결정기준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정의 순간 혼돈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결정기준은 타인의 시선으로 확장 될 수도 있다.

앞선 사례처럼 결정장애는 청소년들과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논쟁이 뜨거운 한국사국정교과서채택논의나 정당공천제 역시 결정장애를 보여준다. 결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결정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기준이 없는 것이다.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데다 지향할 가치관과 철학이 부족하니 정치지도자들이 매 결정마다 흔들리는 것이다.

대통령 말 한 마디에 정당이고 관료 모두가 보여주는 즉흥성. 절차와 과정에 대한 무시. 결정의 내용을 통해 결정과정 무시라는 결정장애의 전형.

요즘 한국사회에 철학적 기준에 대한 교육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다시금 실감한다. 호주는 환경이라는 가치를 강조하여 자동차산업을 자국에서 철수시키고 있다. 또한 환경을 생각해 자국산 원유를 한국에서 정유하게 한다. 더 많은 일자리를 약속하고 더 많은 부를 약속해서 호주 정치인들도 더 많은 표를 챙길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역사 속에서 다음세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며 자신들의 공동체를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리더십의 본질은 결정을 내리는 결단력에 있다. 따라서 본인이 미래 리더가 되기를 원하고 자식들을 미래 리더로 만들려면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연습부터 시켜야 한다. 바로 지금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기준을 만들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 이것이 리더로 가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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