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덕윤의 언어논리 이야기(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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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윤의 언어논리 이야기(14)
  • 문덕윤
  • 승인 2015.10.1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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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윤
베리타스 PSAT 언어논리 전임

우리 삶에 논리가 필요한 이유는?

세상은 가끔 우리에게 누가 봐도 저 놈은 나쁜 놈이라는 판단이 들게 만드는 사건을 던진다. 매주 한 번씩은 저녁 뉴스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사건으로 누가 봐도 간악한 흉악범죄가 나올 때도 있고, 사회 부조리에 대한 고발이 전면을 장식할 때도 있다. 그런데 가끔 우리를 더 빡치게 하는 뉴스가 나올 때가 있다. 누가 봐도 나쁜 놈이었는데 법원에서 생각보다 가벼운 형을 내릴 때, 인터넷 게시판은 분노로 터져나갈 것 같이 끓어오른다. 미성년자인 피해자는 강간으로 인해 신체가 심하게 훼손되었음에도 조두순이 만취 상태였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을 인정받아 징역 12년을 선고받았을 때, 우리는 과연 삶에 논리가 개입하는 것이 정의로운 판단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의 감정은 “저런 놈은 그냥 죽이든지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되는 것이 맞다.”라고 이야기한다. 과연 나쁜 놈은 판결로 대표되는 합리적인 판단을 거칠 필요가 없이 그냥 죽여야 할까? 여기 그냥 죽어도 싼 놈이라는 평가가 나올 법한 조선 시대의 사건이 하나 있다.

[예제] 다음 대화에서 알 수 없는 것은? (2014 PSAT 언어논리)

신하:죄인 박도경의 옥사(獄事)에 관해 아뢰옵니다. 품위를 지켜야 할 양반이 그 격에 맞지 않게 가혹하게 노비를 때린다면 집안사람들이 만류하여 노비를 구하려는 것은 인정상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박도경은 이를 말리던 아내에게 도리어 화풀이를 하여 머리채를 움켜쥔 채 문지방에 들이박고 베틀로 마구 때려 멀쩡하던 사람을 잠깐 사이에 죽게 하였습니다. 피해자의 사인(死因)과 관련자들의 증언이 모두 확실하니 속히 박도경의 자백을 받아 내어 판결하소서.

임금:노비를 구타할 때 뜯어말리는 것은 집안에서 일상적으로 있는 일에 불과하다. 그런데 박도경은 무슨 마음으로 아내에게 화를 옮겨 여러 해를 함께 산 배필을 순식간에 죽게 했는가. 그 흉악함은 실로 보기 드문 일이다. 박도경을 사형에 처할지 말지는 그가 아내를 죽인 것이 우연히 저지른 일인지 아니면 반드시 죽이고자 하였는지의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박도경을 엄히 신문하여 그에 대한 자백을 기필코 받아 내도록 형벌을 담당하는 추관(秋官)에게 특별히 당부하라. 지금까지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죄안(罪案)은 실정이 있든 없든 대부분 살려주는 쪽으로 결정하였다. 이는 배우자를 죽인 죄가 용서할 만하고 정상을 참작할 만해서가 아니다. 부부 사이에는 장난이 싸움으로 번지기 쉽고, 아내가 이미 죽었는데 남편까지 사형에 처한다면 죄 없는 자녀들이 그 해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본디 범인을 사형에 처하는 것은 죽은 자의 억울함을 달래 주기 위해서인데 죽은 자는 범인의 아내이다. 만약 죽은 자에게 지각이 있다면 어찌 지아비를 법대로 처분하여 사형에 처하는 것을 통쾌히 여기겠는가. 때문에 아내의 생명에 대해 남편의 목숨으로 보상하는 판결이 어려운 것이다. 신임 관찰사로 하여금 관련 사안을 잘 살펴 보고하게 하고, 보고가 올라온 후 처리하도록 하라.

① 증거와 주변의 증언은 판결의 근거로 사용된다.

② 최종 판결은 박도경의 자백 이후에 이루어진다.

③ 아내를 살해한 남편은 대개 사형에 처해지지 않았다.

④ 살인의 고의성이 증명되면 박도경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⑤ 남은 자녀에 대한 부양책임이 참작되면 박도경은 방면될 것이다.

문제의 풀이

정답이 잘 보이는가? 이 문제는 의외로 정답률이 낮다.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박도경을 용서해 주는 것처럼 읽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본래의 죄보다 가볍게 처벌받을 것 같은 흐름을 머릿속에서 긴장감 없이 수용하다 보면, ‘아 용서를 했어? 그러면 방면, 말이 되네. 자연스러워.’라고 은연중에 판단을 하게 된다. 그래서 정답이 안 보이는 것이다. 다 맞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시험장에서 시간제한 내에 문제를 풀 때는 우리에게 이런 상황은 가급적이면 안 발생하는 것이 좋다. 후진하여 다시 생각하는 데 우선 시간이 걸리고, 다시 생각하면서 머릿속이 헝클어져 일관성이 무너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자, 그럼 후진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보자.

논점

박도경을 사형에 처할 것인가

판단기준

고의인지 과실인지 (반드시 죽이고자 했는지, 우연히 죽게 만든 것인지)

기존판례

결론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사건 : 대부분 사형에 처하지는 않았다.

이유

자녀의 부양을 위해

여기까지 정리되었다면 5번에 어떤 균열이 나타났는지도 이미 파악이 되었을 것이다. 박도경은 방면되지 않는다. 다만 사형에 처해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5번 선택지의 논리에 비약이 있다.

감정의 상대성 vs 논리의 객관성

지문에서 문제로 구성되지는 않았지만, 조선 시대의 법감정을 공유하지 않는 현대의 독자들이 읽었을 때는 불편한 부분도 있다. “만약 죽은 자에게 지각이 있다면 어찌 지아비를 법대로 처분하여 사형에 처하는 것을 통쾌히 여기겠는가.” 부분을 보면, 아내가 남편의 사형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임금이 전제로 사용하고 있다. 이른바 당시의 인지상정이 작동한 것인데, 가부장을 중심으로 가정이 구성되어 있기에 아내 입장에서는 날 죽인 사람에게 응보의 댓가를 요구하는 것보다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살아있기를 바란다는 해석을 하고 있다. 지금의 가치 기준이라면 친정 부모가 있으며, 자신을 죽인 남자에게 자식을 맡기고 싶어 하는 여자가 어디 있겠냐는 반론이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이 지문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 법감정이 다르다는 것은 바로 “인지상정”으로 대표되는 숨은 전제들이 작동하는 것이다.

감정은 상대적이다. 그래서 어느 쪽의 입장에서 사건을 읽는지, 어떤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지에 따라 논증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어느 쪽이 “반드시” 옳은 것인지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법정으로 대표되는 공적 논쟁이 필요한 이유는 법의 판단이 옳음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논증의 과정에 각자의 입장이 전제되기 때문에 결론에는 “좋음”에 대한 선호가 배어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좋음”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증거와 논리에 기반한 합리성이 더해짐으로써 이렇게 정리하는 게 최선의 결론이라는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이 판결이다. 객관성은 양쪽 관점을 살피고 어느 쪽의 논증이 더 합당한지 판단하는 과정을 보장하여, 저놈 나쁘다 아니다로 판단할 때 발생할지도 모르는 편협함을 경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객관성은 편협함을 이기기 위한 최선이기 때문이다.

나쁜 놈은 그냥 죽어야 하나?

정말 극단적인 사례에서는 그냥 너는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조두순 사건을 두고 사람들이 보인 반응 역시 같은 감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때로는 이런 감정이 논리적으로 각자의 상황을 참작하는 것보다 사회적 통념이나 상식에 들어맞을 때가 생각보다 많다. 우리가 일상적인 단계에서 생각을 할 때는 오히려 그게 편하다. 상식에 맞는다는 것은 내 믿음을 강화시키는 아주 강력한 논거이며, 나쁜 놈은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험은 일상적인 단계보다 한 단계 위에서 “객관성”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상식이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정말 잘못된 사람이라 하더라도 참작해 볼 사유를 제시할 절차적 기회를 주는 것이 최종적인 결론의 객관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적 판단은 감정의 단계보다 위에서 이루어진다. 지문을 읽을 때 여러분의 감정을 최대한 내려놓고, 지문 위에 주어진 사실관계와 논리적 구성에만 집중해 보라고 하는 게 구조독해이다. 꾸준히 훈련을 지속하여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익숙해진다면 지문에서 강약을 조절하면서, 일관성을 위한 기준을 세워 가면 읽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게 될 것이다.

[정답 및 해설]

정답 : ⑤

① 증거와 주변의 증언은 판결의 근거로 사용된다.

: 신하의 “피해자의 사인(死因)과 관련자들의 증언이 모두 확실하니 속히 박도경의 자백을 받아 내어 판결하소서.”에서 증거와 관련자들의 증언이 판결의 근거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② 최종 판결은 박도경의 자백 이후에 이루어진다.

: 신하의 “피해자의 사인(死因)과 관련자들의 증언이 모두 확실하니 속히 박도경의 자백을 받아 내어 판결하소서.”와 임금의 “박도경을 엄히 신문하여 그에 대한 자백을 기필코 받아 내도록 형벌을 담당하는 추관(秋官)에게 특별히 당부하라.”는 부분에서 판결 이전에 자백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③ 아내를 살해한 남편은 대개 사형에 처해지지 않았다.

: 임금의 “박도경을 엄히 신문하여 그에 대한 자백을 기필코 받아 내도록 형벌을 담당하는 추관(秋官)에게 특별히 당부하라.”에서 확인할 수 있다.

④ 살인의 고의성이 증명되면 박도경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 임금의 “박도경을 사형에 처할지 말지는 그가 아내를 죽인 것이 우연히 저지른 일인지 아니면 반드시 죽이고자 하였는지의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에서 확인할 수 있다.

⑤ 남은 자녀에 대한 부양 책임이 참작되면 박도경은 방면될 것이다.

: 부양 책임이 참작되면 사형을 면하는 것이지, 풀려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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