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나는 조선의 국모다6(작가 이수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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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 나는 조선의 국모다6(작가 이수광)
  • 이수광
  • 승인 2015.10.1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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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70년, 명성황후 시해 120년 - 다시쓰는 나는 조선의 국모다

연재순서 : 1.조선의 마지막 왕비,2.왕이 되고 싶은 사나이,3.여걸의 탄생4.감고당의 천재 소녀 5. 조선의 국왕 6.천하를 손에 넣다 7.도끼와 작두로 다스리라 8.경복궁에 이는 풍운

천하를 손에 넣다

대원군 이하응은 가마에서 내려 건청궁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일본군이 대궐에 난입하여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곤욕을 당하고 있는 것은 내관들과 궁녀들이었다. 오랜 정적인 왕비를 제거하는 일이었지만 일본군이 대궐에 난입하여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본 이하응은 비감했다.

‘왕비가 기어이 비명에 죽는 것인가?’

이하응은 대궐이 일본군에 짓밟히는 것을 보고 몸을 떨었다. 20년 동안 며느리인 왕비 민씨와 원수처럼 지냈다. 그러나 그녀가 이제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회한이 밀려왔다.

‘총명한 아이였는데…….’

민씨는 너무나 똑똑하고 다부졌다. 여자로 태어나지 않고 남자로 태어났다면 세상을 뒤흔들고 남았을 것이다. 아니 여자의 몸인데도 조선은 물론 청나라와 일본까지 흔들었다.

‘우리가 평범한 며느리와 시아버지로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하응은 민씨가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낭인 오카모토 유노스케는 이하응의 늙은 얼굴을 힐끗 쳐다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미 조선의 왕궁은 일본군 수비대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일은 조선 국왕의 거처인 건청궁에서 왕비를 찾아내어 살해하는 것뿐이었다. 시간이 약간 지체되기는 했으나 만족스러웠다.

날은 점점 훤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오카모토는 공식적으로 조선의 궁내부 문관이었다. 그는 처음에 조선의 궁내부 문관에 임명되었을 때 조선이 예상보다 훨씬 허약하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왕실의 재정은 바닥이 나 있었고 나라엔 제대로 된 군대가 없었다. 대대로 귀족 노릇을 해온 양반들은 백성들을 착취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근대화의 척도가 되는 상공업은 원시 수준이었다. 백성들은 마을 단위로 자급자족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많은 백성들이 소작농을 하고 있었고, 양반과 토호들이 소출의 대부분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기층 민중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다 못해 굶어 죽는 자가 허다했다.

‘이런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 가겠는가?’

오카모토는 조선이 멸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조선은 일본군 1개 사단만 있어도 충분히 멸망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군대를 동원해 강제로 멸망시키지 않는 것은 러시아 때문이었다.

‘불쌍한 여인…….’

무너져가는 조선을 부둥켜안고 자신을 불태우는 왕비를 생각하자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카모토는 국왕의 거처인 건청궁 쪽으로 서서히 걸음을 떼어놓았다.

‘왕비를 죽이는 일에 아버지를 내세우다니…….’

이재면은 오카모토가 건청궁 쪽으로 걸음을 떼어놓자 씁쓸했다. 아버지와 왕비 사이가 나쁘다고 하더라도 며느리를 죽이는 일에 시아버지가 나서는 것은 옳지 않았다. 그러나 왕비는 이하응의 손자이자 그의 아들을 죽이려고 했다. 이재면은 재황을 왕좌에서 몰아내고 이준용을 왕으로 옹립하려던 이하응의 음모가 실패로 돌아가자 연금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준용은 교동부로 유배를 가고 박준양을 비롯한 다섯 명의 대신들은 교수형을 당했다.

“아들을 내쫓고 손자를 왕으로 세우려고 하는 것은 늙은이의 욕심이다.”

왕비 민씨는 일본과 협조하여 박영효 내각을 세우고 이준용을 일본으로 추방했다. 역모의 중심인물인데도 죽이지 않고 일본으로 보낸 것은 이하응을 배려했기 때문이다.

대궐 침범이 지체된 것은 이하응 때문이었다. 미우라 공사와 스기무라 서기관이 작성한 방략서에 따라 하기하라 히데지로오가 일본 영사 경찰을 동원하여 공덕리의 운현궁을 습격했다. 그들은 조선 순경 10여 명을 창고에 감금한 뒤에 이하응에게 입궐을 요구했으나 한사코 거부하여 시간이 지체된 것이다.

이하응을 입궐하게 하려는 것은 왕비 제거를 이하응의 조종에 따른 훈련대의 반란으로 뒤집어씌우기 위해서였다.

‘아버님도 왕비를 죽이는 일은 하고 싶지 않은 거야.’

정적이라고 해도 며느리였다. 그 질긴 실타래 같은 운명이 그를 대궐로 이끌었으나 가슴이 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새벽 3시였다. 이하응은 풍운을 꿈꾸며 잠들어 있었다. 오카모토는 운현궁을 경비하는 조선인 순경들을 포위하여 무장 해제시키고 조선인 순경들의 옷을 벗겨 일본 순사들에게 입힌 뒤에 이하응을 깨웠다. 그리고 통역을 통해 이하응과 견원지간인 왕비를 제거하겠다, 국왕의 안전은 절대로 보장한다, 이하응의 장자 이재면을 궁내부대신에 임명하겠다…… 하고 설득했으나 이하응은 완강하게 거절했다.

뜻밖의 사태였다. 오카모토는 두 시간 반 동안이나 설득을 하다가 안 되자 이하응을 강제로 끌어내어 가마에 태운 뒤 협조하지 않으면 국왕까지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했다. 이하응은 그때서야 국왕의 목숨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협조를 약속했다.

오카모토는 이하응의 가마를 일본 순사들에게 호위하게 하여 서대문을 향해 달려갔다. 방략서에는 남대문에 가까운 고개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합류하게 되어 있었으나 이하응 추대에 시간이 오래 걸렸고 수비대와 연락이 되지 않아 서대문으로 진출한 것이다.

그들이 서대문 밖의 대로가 의주로와 만나는 네거리에 있는 한성부청 앞에 도착했을 때 우범선이 지휘하는 훈련대 제2대대 병사들이 가로 양쪽에 도열해 있었다. 일본군 수비대의 병사들도 다수 보였다. 그러나 수비대의 본진은 보이지 않았다.

오카모토는 이하응의 가마 행렬을 그곳에서 대기하게 했다. 날이 점점 부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부지런한 조선인들은 두셋씩 오가면서 조선군 훈련대와 일본군 수비대, 그리고 이하응의 행렬을 괴이한 눈빛으로 살피고 있었다.

그때 수비대 본진이 도착했다. 이하응의 가마를 중앙에 두고 일본군 수비대가 전면에 서고, 훈련대는 가마 앞뒤를, 그 뒤를 다시 수비대가 따랐다. 이 진(陣)은 왕궁을 수비하는 시위대의 저항을 무력화시키고 이하응과 훈련대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교묘한 술책이었다.

그들은 구보로 정동을 지나 광화문을 향해 달렸다.

“서둘러라!”

사관들이 병사들을 재촉했다. 서둘러야 했기에 그들이 광화문에 도착했을 때는 숨이 가빠 모두 헐떡거리고 있었다.

오카모토가 광화문 앞에 도착하자 파성관 낭인부대와 구스노세 중좌가 기마로 도착해 수비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그들은 광화문의 석벽을 사다리를 타고 넘어가 성문을 열고 돌진했다. 그때서야 뒤에서 함성이 일어나며 요란한 총성이 들렸다. 조선의 안경수 군부대신과 훈련대 연대장 홍계훈이 훈련대의 대궐 난입을 필사적으로 저지하고 있었다. 시위대 군사 외에 병사들이 대궐에 들어가는 것은 불법이었다.

훈련대 병사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광화문 서쪽으로 달아나려고 했다. 조선의 훈련대 병사들은 그때서야 자신들이 야간훈련에 동원된 것이 아니라 일본군의 대궐 침입에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대오를 이탈하지 마라!”

그러나 구스노세 중좌가 기마로 돌아다니며 대오를 정리하느라고 소리를 지르고 후위에 있는 일본군 수비대가 사납게 함성을 지르며 돌진을 하자 엉겁결에 광화문 안으로 내몰렸다.

궁성 시위대의 저항은 미약했다. 미국인 퇴역장군 맥이 다이와 시위대의 부령 현흥택이 시위대를 지휘하고 있었으나 지난해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했을 때 실탄을 연못 속에 버리고 실탄의 반입을 차단시켰기 때문에 변변한 무기가 없었다. 그리고 그때쯤에는 이미 건청궁의 북쪽 담벼락을 넘은 일본군 수비대가 조선 국왕을 제압하고 있었다.

오카모토는 건청궁의 남쪽 문으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건청궁은 이미 일본군 수비대가 삼엄하게 에워싸고 있었다. 문마다 일본군 수비대가 2명씩 보초를 서고 있었고 옥호루 앞에는 우범선이 지휘하는 조선군 훈련대 병사 40여 명이 총을 어깨에 메고 도열해 있었다.

오카모토는 건청궁의 남쪽 문으로 들어섰다. 역사적인 사건, 명성황후의 시해 현장을 직접 목격하기 위해서였다.

 

***

 

미야모토 다케타로오 소위는 궁녀의 가슴에 군도를 겨누고 잠시 가쁜 호흡을 진정시켰다. 가슴이 뛰고 눈에 핏발이 섰다.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궁녀는 의외로 조용했다. 그녀는 칼을 겨누고 있는데도 두려워하는 빛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서둘러야 해…….’

미야모토 소위는 눈을 부릅떴다.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하면 ‘여우 사냥’이라는 작전명이 붙은 조선 왕비 살해 임무가 중대한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 이미 건청궁은 일본군 수비대가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고 내전 안에서는 왕비를 찾으려는 낭인 무리와 군인들, 조선인으로 변장한 일본 순사들이 사방에 늘어선 방을 휘젓고 다니며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왕비를 찾는 일이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왕비는 어디에 있는가?”

미야모토 소위는 궁녀의 가슴을 겨누던 군도를 궁녀의 목덜미에 옮겨 핏자국을 내며 다그쳤다. 조선말이었다. 궁녀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지며 미약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너희들 중에 누가 왕비인가?”

미야모토 소위는 눈을 부릅뜨고 재차 궁녀를 다그쳤다.

“하기하라!”

여우 사냥 작전의 왕성 침입 및 왕비 살해 책임자로 임명된 호리구치 영사보(領事補)가 하기하라를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기하라는 일본 공사관의 경부로 여우 사냥 작전에서 순사 동원 책임을 맡고 있었다.

“핫!”

하기하라 경부가 재빨리 달려와 호리구치 영사보 앞에서 부동자세를 취했다.

“궁녀들에게 누가 왕비인지 찾아내라고 하라!”

“핫!”

“궁녀들이 반항을 하거나 왕비의 소재를 말하지 않으면 베어버려도 좋다!”

“핫!”

조선의 왕비가 거처하는 곤령합에는 궁녀가 수십 명이 있었다. 그들 중에 누가 왕비인지 알 수 없어 낭인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하기하라는 낭인들과 함께 방마다 돌아다니며 궁녀들의 머리채를 끌고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낭인들은 궁녀들의 머리채를 끌고 나와 마당에 내던지고 발로 짓밟으면서 왕비가 있는 곳을 말하라고 살기등등하게 소리를 질렀으나 궁녀들은 일본 말을 알아듣지 못해 울부짖기만 할 뿐이었다.

“왕비는 어디에 있는가?”

미야모토 소위가 궁녀를 윽박질렀다. 궁녀는 겁에 질린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미야모토 소위의 물음엔 대꾸하지 않고 벽에 등을 기댄 채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궁녀의 나이는 기껏해야 스물두세 살로 보였다. 젊디젊은 여인이었다.

“말하지 않으면 죽인다!”

“…….”

“요시!”

미야모토 소위는 군도로 궁녀의 목덜미를 힘껏 찔렀다. 궁녀의 입에서 헉, 하고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나는 미야모토 무사시의 후예다!’

다음 순간 미야모토 소위는 짧은 기합 소리를 내뱉고 궁녀의 목덜미에서 군도를 뽑아 궁녀의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허리로 내리쳤다.

‘베었다!’

미야모토 소위는 속으로 환성을 질렀다. 군도가 궁녀의 몸을 베는 감촉이 칼자루를 쥔 손을 통해 짜릿하게 느껴졌다.

“악!”

궁녀의 입에서 처절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미야모토 소위는 얼굴을 찡그렸다. 군도가 사선으로 비껴간 궁녀의 가슴에서 그때서야 붉은 피가 주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궁녀가 재빨리 자신의 가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군도에 베인 옷자락 사이로 궁녀의 하얀 젖무덤이 얼핏 보였다. 그곳에서 선혈이 쏟아지며 옷자락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설베었어.’

미야모토 소위는 가슴이 뜨끔했다. 궁녀는 가슴을 베였는데도 쓰러지지 않고 있었다. 궁녀가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탓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핫!”

미야모토 소위는 또다시 큰 소리로 기합을 지르며 군도로 궁녀의 허리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힘껏 그었다. 그러자 궁녀가 그의 얼굴을 향해 뜨거운 것을 왈칵 뱉어냈다. 미야모토 소위는 얼굴을 찡그렸다. 궁녀가 쿵하고 마룻바닥으로 쓰러졌다. 군도가 정확하게 궁녀의 복부를 가른 것이다. 궁녀의 아랫배에서 하얀 내장이 뭉클거리고 쏟아져 나왔다.

미야모토 소위는 또다시 얼굴을 찡그렸다. 얼굴이 끈적끈적했다.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자 피가 묻어났다.

“더러운 조센진…….”

미야모토 소위는 쓰러진 궁녀의 얼굴을 군홧발로 내질렀다. 궁녀의 얼굴에서 퍽 소리가 났다.

도서출판 북오션 : 자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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