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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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1)
  • 박준연
  • 승인 2015.10.02 11:35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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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연재를 시작하며...로스쿨 1학년의 기억, 최고의 순간은 아직

로스쿨을 졸업한지 6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왜 미국 로스쿨에 진학했냐는 질문을 받는다. 도쿄에서 1년 교환학생 과정을 마친 것 이외에는 한국에서 줄곧 생활하다가 외무공무원 생활을 3년간 한 후 뉴욕에서 로스쿨 JD 과정을 시작한 이력이 아무래도 특이해서일 것이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주변에 아무도 힘들다고 가지 말라고 해 준 사람이 없어서요.” 대답을 들은 상대방은 웃음을 터뜨리지만, 이건 농담만은 아니다. 나의 선택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선택을 하기 전에 로스쿨 진학, 로펌 근무가 실제로 어떤지 구체적으로 알았다면 똑같은,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기 그지없는 선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위치한 NYU 로스쿨의 티쉬만 강당. 이 곳에서 로스쿨 첫 날이 시작되었다. 로스쿨 시작 나흘 전에 뉴욕에 도착하여 시차 적응도 덜 된 상태에서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접하게 되어 불안했다는 기억 외에 하나 더 기억에 남는 것은 학생담당 부학장이 짧게 연설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덧붙인 한마디. 너희들에게 최고의 순간은 아직이야 (The best is yet to come).

그렇게 불안과 기대가 뒤섞인 채로 시작한 로스쿨 1학년(1L) 생활은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계약법, 불법행위법, 민사소송법 수업과 자료조사 및 글쓰기 방법론(Lawyering) 수업까지 빼놓지 않고 그날 수업 분량을 예습해도 수업을 따라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게 첫 학기가 금세 지나고 첫 학기 성적이 발표되었다. 아주 좋은 성적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기대에 많이 못 미치는 성적이 나온 걸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시험 성적 때문에 큰 걱정을 해본 적이 없어서 더더욱 생각이 많아졌는지도 모르겠다. 

당장 수업을 듣는 교수님들을 찾아갔다. 로스쿨 오기 전엔 유학 경험이 없어서 공부를 따라가기 힘들다는 얘기를 꺼내는 건 좀 자존심이 상했지만 학생 신분으로 자존심 상하는 게 어떤가 싶었다. 교수님들 허락을 받아 수업 내용을 녹음했다. 녹음한 내용을 들어가며 노트를 작성하니 과목에 따라선 학기말 100페이지에서 200페이지에 가까운 노트가 완성되었다. 그 노트에 교과서 요약, 참고서에서 본 도움이 되는 내용을 넣어 시험공부를 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보니 요령도 생기고 공부에 재미도 붙었다. 100여 명의 반(section)이 함께 수강하는 강의에서도 나처럼 학부를 외국에서 마치고 온 유학생은 거의 없었다. 가끔 손을 들고 유창하지 않은 영어로 발표를 하면 교수님들이나 같은 반 동기들이 고개를 끄덕여주는 게 기뻤다.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질문도 적극적으로 했다. 한번은 형법 수업 마치고 60∼70대의 연세가 많은 교수님께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교수님은 내 얘기를 듣더니 물끄러미 나를 보시다가 다음 시간에 설명해주시겠다고 하시고는 이후 더 이상 말이 없으셨다. 형법 기말고사 문제를 보고서야 이유를 알았는데, 내 질문이 그대로 시험문제 중 한 문제로 출제되었던 것이다. 학기의 대부분을 주말, 평일 없이 새벽까지 로스쿨 도서관에서 보낸 두 번째 학기는 그렇게 가고 훨씬 좋아진 성적과 함께 미국 생활에도 로스쿨에도 어느 정도 적응을 했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다만, 그 이후로 로스쿨 생활이 쉬워졌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대학 졸업 후 희망을 가지고 시작했던 일을 그만두고 미국 뉴욕에 와서 고생을 자청했던 이유가 뭔지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선택에 후회는 없다. 로스쿨 교수님 중 한 분이 수업 중에 이렇게 자문자답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왜 정치학 대학원에 안가고 로스쿨에 왔을까? 그야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어서, 또 현실적이어서(closer to the ground).” 이 말은 메모해두었다가 종종 생각해보곤 한다. 드라마 ‘슈츠(Suits)’에 보면 근사하게 차려입고 화려한 로펌 오피스에서 일하는 변호사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변호사 업무의 본질은, 현실과 가까이 있으면서 문서의 시시콜콜한 부분을 고민하고,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일을 기꺼이 하기를 원한다면 나와 같은 길을 권하고 싶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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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2015-10-04 23:41:42
좋은 글 기대됩니다. 바쁜 와중에 이런 글을 연재해 주시겠다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변호사님 하시는 일에서도 최고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학생 2015-10-04 10:14:57
블로그 검색해도 안나와요 ㅜ 저도 보고싶은데 주소가 어떻게되나요?!

기대돼요 2015-10-03 23:10:17
블로그글 항상 재밌게 보고 있었는데 이 연재도 흥미롭게 잘 보게 될 것 같아요! 기대할게요.

숨은 팬 2015-10-03 17:54:44
몇 년 전부터 블로그를 즐겨찾기 해두고 종종 들어가보고 있어요. 쌀쌀해지는데 건강 챙겨요.

감사 2015-10-02 16:58:22
미국 로펌 생활기? 정말 생소하면서도 알고싶은 미국로스쿨과 로펌에 관한 이야기? 정말 기대네요. 앞으로 많은 정보 부탁드립니다. 첫 연재부터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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