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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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37)
  • 신종범
  • 승인 2015.10.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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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살래요”

 

 

 

 

 

 

신종범
법무법인 The Firm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추석 연휴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어느 날 A가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법원에서 송달된 소장 부본이 들려 있었다. A를 상대로 제기된 손해배상청구 소장이었다. A는 자신이 감사로 있는 재건축조합의 비리를 발견하고 조합장 B에게 시정을 요구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재건축조합원들이 가입되어 있는 인터넷카페와 유인물을 통해 비리 사실을 알리고 조합장 B를 비판하였다. 이에 대하여 B가 A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하고,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하였던 것이다. B는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여 사건을 진행하고 있었다. 소장을 살펴보니 그럴싸하게 청구원인이 구성되어 있었다. A는 소장에 기재된 내용이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고 자신은 재건축 조합의 감사로서 맡은 바 임무를 충실하게 하였을 뿐이라며 분개하였다. 그러면서 B가 이렇게 나온 이상 자신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나도 변호사 사서 싸우겠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가끔씩 TV를 보거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할 때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긴다’라거나 ‘변호사에게 사건을 위임한다’라고 하지 않고 ‘변호사를 산다’라는 말을 흔히 듣게 된다. ‘회계사를 산다’, ‘법무사를 산다’라고는 잘 하지 않는데 ‘변호사를 산다’라는 말은 이젠 꽤 익숙해졌다. 왜 ‘변호사를 산다’라고 할까? 막상 변호사 활동을 직접 해보니 ‘변호사를 산다’는 표현이 그다지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사고 파는 대상은 물건이나 용역이지 사람 자체가 그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변호사는 법률전문가로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여 성심껏 의뢰 받은 사건을 처리하는 용역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는 것이지 마치 노예처럼 자기 자신을 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변호사를 다른 전문직보다 낮게 보거나 하찮게 여겨 - 사실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 그런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사건을 맡기면서 ‘변호사를 산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과 관련된 중요한 사건에 있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하여 비교적 많은 보수를 지불하고 자신을 대신하여 일을 처리해줄 전문가를 구한다는 의미라고 애써 해석하고 싶다. 

변호사는 사건을 맡으면서 법적 의미대로 사건을 위임받았으므로 위임계약서를 작성하고 위임에 따른 수임인으로서의 의무에 따라 사건을 처리함과 동시에 변호사로서 법령에 규정된 의무도 준수해야 한다. 한편, 사건을 맡긴 의뢰인은 변호사에게 보수를 지급하고 사건을 처리하여 달라고 ‘변호사를 샀으므로’ 그가 자신이 뜻하는 방향대로 움직여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를 바란다. 이렇듯 사건을 맡고, 맡기는 사람 사이에 입장 차이가 있다보니 상호간 소통이 잘 되고 그 결과까지도 좋으면 괜찮은데 그렇지 않으면 마찰이 생기곤 한다.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맡긴 사건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 것 같고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변호사에게 큰 불만을 갖게 되지만,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사건을 맡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의뢰인이 말한 사실과 다른 진실을 접하게 되거나 의뢰인이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원하는 결과를 얻어 달라고 할 때는 참으로 곤혹스럽다. 이 때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변호사의 사명과 변호사는 진실을 은폐하거나 거짓 진술을 할 수 없다는 변호사법상의 의무를 이야기해 보지만 자신의 이익 실현을 위해 많은 보수를 지불하고 ‘변호사를 샀다’라고 생각하는 의뢰인에게는 허울 좋은 말잔치에 불과할 뿐이다. 

필자는 ‘변호사를 산다’는 표현이 현대 사회와 법적인 의미에서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변호사와 의뢰인의 관계를 왜곡시켜 사법질서를 혼란하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 근대적 표현이 오히려 우리의 현실에서는 딱 맞는 표현이 되어 가고 있으니 참으로 씁쓸하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우리 변호사 수는 가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법률수요는 거의 그대로인데 말이다. 우리는 지하철역, 버스 안, 인터넷 광고 등에서 ‘개인회생, 파산 100% 성공’, ‘기각시 착수금 100% 환급’ 이라는 유혹적인 문구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변호사 사무실이나 법무법인 광고를 수 없이 접하고 있다. 얼마전 방송인으로 유명했던 모 변호사는 자극적인 문안으로 변호사 광고를 하다 변호사협회로부터 제재를 받았지만 오히려 노이즈마케팅으로 상당한 홍보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하긴 나도 그의 기사를 여러번 클릭했으니 틀린 말이 아니다. 변호사들은 경쟁에 내몰려 자신을 ‘사 달라고(?)’ 규정을 위반하면서까지 홍보를 하고, 의뢰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않고 자신의 사익을 실현시켜줄 변호사를 구할 수 있게 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다. 어쩌면 이미 치열한 생존 경쟁에 돌입한 변호사업계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필자의 우둔함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행태를 보면 낯이 뜨겁다. 그동안 우리는 법률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여 터무니 없는 고액의 수임료에다 일반 국민들이 사법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등 많은 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공급만 무턱대고 늘리고 그에 대한 부작용은 제대로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할 시점이 된 거 같다. 사법서비스는 물건을 사거나 다른 용역을 제공받는 것과는 다른 특징이 있음을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한다. 사법서비스는 사법작용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권리를 확인받고, 실현하며, 형사벌을 가하는 등 국가의 정의 실현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의가 돈에 의해 좌우될 수는 없지 않은가. 

A의 사건을 수임하면서 A에게 말했다. “변호사로서 나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성의를 다하여 사건을 맡겠으니 나를 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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