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나는 조선의 국모다4(작가 이수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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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 나는 조선의 국모다4(작가 이수광)
  • 이수광
  • 승인 2015.09.2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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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70년, 명성황후 시해 120년 - 다시쓰는 나는 조선의 국모다

연재순서 : 1.조선의 마지막 왕비,2.왕이 되고 싶은 사나이,3.여걸의 탄생 4.감고당의 천재 소녀 5. 조선의 국왕 6.천하를 손에 넣다 7.도끼와 작두로 다스리라 8.경복궁에 이는 풍운

감고당의 천재 소녀

왕궁시위대 대장 현흥택은 자정이 조금 지났을 때 경복궁의 경비 상태를 평소처럼 순찰했다. 왕궁시위대는 약 5백 명으로 편성되어 있었는데 미국인 퇴역장군 맥이 다이가 훈련을 맡고 있었다. 그들의 주요 임무는 궁성 수비와 왕실 경호였다. 그날 밤은 달빛이 교교하게 비치는 맑은 날로 모든 것이 신비스러울 정도로 조용했다.

달빛은 5백 년 고도의 심장인 대궐의 숲과 누각에 신비롭게 흐르고 나뭇잎들은 달빛에 씻기어 하얗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바람은 이따금 잔잔하게 불었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서늘한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들이 살랑살랑 몸을 흔들면서 떨어졌고, 떨어진 나뭇잎들이 대궐의 마당으로 쓸려 다녔다.

가을이었다. 중추절을 지난 지 어느새 닷새째 되는 새벽, 중천에 걸린 달이 점점 서쪽으로 기울면서 달빛도 희끄무레하게 시들어가고 있었다.

대궐은 수상한 조짐이 전혀 없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대궐 근처에서 일본 병사들이 움직이는 듯했으나 곧 조용해져 만호 한양 장안이 고요했다.

현흥택은 대궐을 순찰한 뒤에 다이 장군과 함께 사용하는 당직실로 들어가 잠자리에 들었다. 대궐은 안팎이 조용하여 지극히 평화로운 가을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성안에 유포된 훈련대 반란설, 일본인들의 왕비 시해설은 단순한 유언비어인 모양이었다.

그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대장님! 대장님!”

현흥택이 눈을 뜬 것은 다이 장군의 통역관으로 있는 이학균 참위가 허겁지겁 달려와 어깨를 흔들어댔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가?”

현흥택은 눈을 부릅뜨고 이학균을 쏘아보았다. 자정이 지나서 잠이 들었기에 몹시 피곤했다.

“일본군 수비대 병사들이 추성문과 춘생문 밖에 몰려와 있습니다.”

이학균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본군이 확실한가?”

“확실합니다. 일본군의 동태가 수상합니다.”

“다이 장군을 깨우게. 나는 대군주 폐하에게 달려가 보고하겠네.”

“예.”

현흥택은 가슴이 급박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닥쳐온 것 같아 다리가 후들거리고 떨렸다.

현흥택은 부랴부랴 건청궁에 있는 곤령합으로 달려갔다. 그 시간 국왕과 왕비는 궁녀들을 거느리고 대궐 뜰을 산책하고 있었다. 달빛이 푸르고 가을이 깊은 탓인가. 국왕과 왕비도 잠이 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군대를 앞세운 일본의 행패가 심해지자 국왕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하!”

현흥택은 국왕 앞에 달려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무슨 일이냐?”

국왕이 떨리는 목소리로 하문했다. 왕비는 서릿발처럼 차가운 눈으로 현흥택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깊은 눈망울을 대할 때마다 현흥택은 기이하게 가슴이 떨렸다.

“폐하, 일본군이 삼군부에 들어와 있습니다. 변란을 대비하셔야 합니다.”

현흥택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국왕은 가슴이 철렁했다. 일본군이 무엇 때문에 삼군부까지 쳐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으나 불길한 일이 닥쳐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군이 삼군부에 들어왔다고?”

국왕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러하옵니다.”

현흥택은 국왕의 얼굴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는 어떤 왕명도 내리지 않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현 부령, 그들이 무슨 연유로 삼군부를 침입한 것이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왕비가 현흥택을 싸늘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아직 연유를 알 수 없습니다.”

“답답한 일이 아니냐? 일본군이 침입을 했으면 마땅히 문정(問情)을 하여 연유를 묻거나 군사로써 내쳐야 하지 않느냐?”

“소신은 중전마마의 안위가 적정되어…….”

“현 부령은 당장 돌아가서 일본군을 삼군부에서 내치시오. 내일 미우라 일본 공사를 불러 엄중히 따지겠소.”

왕비가 재빨리 대책을 지시했다.

“황송하옵니다. 중전마마. 소신 물러가옵니다.”

현흥택이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건선문 쪽으로 총총히 달려갔다.

왕비는 국왕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국왕은 망연한 표정으로 현흥택이 달려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왕비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예상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군이 드디어 대궐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병하가 일본인들에게 넘어갔어.’

이제는 대궐을 탈출하여 피할 방법이 없다. 왕비는 가슴속으로 찬바람이 불어오는 듯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

훈련대 연대장 홍계훈은 훈련원 막사 앞에서 새벽하늘을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었다. 하늘은 전에 없이 별빛이 초롱초롱했다. 1895년 8월 20일, 미명의 새벽이었다. 그런데도 아직 야간훈련에 동원된 제1, 제2훈련대 병사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제1훈련대 대대장은 이두황이고 제2훈련대 대대장은 우범선이었다.

홍계훈은 연대장이면서도 휘하 병력이 야간훈련에 동원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는 연대 부관으로부터 병영을 지키는 1소대만 남기고 연대 병력이 야간훈련에 동원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어리둥절했다.

홍계훈은 국왕인 재황으로부터 8월 20일자로 훈련대 연대장에 임명된 상태였다. 연대장인 그를 제외하고 훈련대 대대장들은 모두 친일파인 데다가 교관들은 일본군 중대장이었다. 그런 까닭에 훈련대는 조선의 군사들이면서도 일본군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국왕파라고는 연대장에 임명된 홍계훈뿐이었다.

‘왕궁에 무슨 일이 있다.’

홍계훈은 밤중에 달려와 훈련대를 인수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훈련대 장교들이 병력을 인계하지 않고 훈련을 한다는 핑계로 병사들을 이끌고 사라진 것이다.

‘이놈들이 내가 연대장에 임명되어 훈련대를 해산하려는 것을 눈치챈 게 틀림없어.’

왕비는 신식 군대로 양성하기 시작한 훈련대가 일본군의 꼭두각시가 될 기색이 보이면 해산하라고 밀명을 내렸다. 홍계훈은 일본군 장교에 의해 훈련을 받은 훈련대를 인계받을 수 없었고, 차선책으로 훈련대를 해산하여 새로운 군대를 창설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왕비는 총명한 여인이었다. 일본인들은 명성황후를 조선의 ‘여우’라고 비하했으나 서구 열강의 공사들은 왕비를 조선의 여걸이라고 했고 ‘철의 여인’이라고도 불렀다. 삼국간섭이 날로 심해지자 왕비는 교묘하게 줄타기 외교 솜씨를 발휘하여 일본의 조선 침략 정책을 와해시키고 있었다.

“훈련대가 실탄까지 가지고 야간훈련에 나갔나?”

홍계훈은 부동자세로 서 있는 부관에게 물었다.

“예.”

“지휘자들은 누구인가?”

“대대장 이두황, 우범선…… 중대장은 이범래, 남만리와 일본군 교관들입니다.”

“군부대신도 알고 계시나?”

“모릅니다.”

“이런 변고가 있나? 군부대신 댁으로 가자.”

홍계훈은 가슴이 철렁했다. 군부대신도 모르게 병력이 출동한 것은 수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홍계훈은 병영에 남아 있는 1개 소대를 지휘하여 안경수 군부대신의 집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훈련대가 야간훈련을 하다니 이 무슨 변괴인가?”

자다가 일어난 안경수 군부대신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군부대신 각하, 훈련대는 오늘자로 저의 지휘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대장 우범선과 이두황이 군사를 이끌고 나갔습니다.”

홍계훈은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일본군이 왕비를 시해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타는 것 같았다.

“이자들이 혹시 왕궁을 침범하려는 것이 아닌가?”

“소인도 그렇게 의심하고 있습니다.”

“낭패로구먼. 이 일을 어쩌지? 시위대만으로 훈련대를 막을 수 없을 텐데…….”

“군부대신 각하, 일단 대궐로 달려가야 합니다. 이들이 반란을 일으킨다면 중전마마가 목표가 될 것입니다.”

“허어!”

안경수 군부대신이 탄식했다.

“알았네. 어떻게 하든지 훈련대가 대궐에 난입하는 사태는 막아야 하네. 자네는 먼저 광화문으로 가게. 나도 의관을 갖추고 뒤따라가겠네.”

“예!”

홍계훈은 안경수 군부대신의 지시를 받고 즉각 건춘문 밖에 가서 영문도 모르고 도열해 있던 제1훈련대의 1중대를 설득했다. 1중대는 다행히 홍계훈의 설득을 받아들여 무장을 한 채 홍계훈의 뒤를 따라 돈화문 쪽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성벽의 망루 부근에 일본군 수비대가 삼엄한 기세로 주둔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탁지부청(度支部廳)을 우회한 뒤 광화문으로 달려갔다.

홍계훈은 초조했다. 훈련대 병사들이 일본군 사관들의 지시를 받아 왕궁으로 들어가면 왕비의 생명이 위태로울 것이 분명했다. 그들이 탁지부청을 우회하여 광화문 가까이 이르렀을 때야 안경수 군부대신이 말을 타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어떻게 되었나?”

안경수 군부대신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홍계훈에게 물었다. 광화문 앞쪽으로 일본군 수비대 병력과 조선군 훈련대 병사들이 계속 몰려가고 있었다.

“돈화문 성벽엔 이미 일본군 수비대가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훈련대의 반란이 아니지 않는가?”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일본이 음모를 꾸민 것 같습니다.”

“어서 광화문으로 가세.”

안경수 군부대신이 다급하게 재촉했다. 그러나 그들이 광화문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훈련대 제2대대가 대로 양쪽에 도열해 있고 일단의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쇄도하고 있었다. 이미 경복궁의 왕궁시위대와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총소리와 함성이 요란했다.

“큰일이다! 큰일이야!”

군부대신 안경수가 당황하여 몸을 부르르 떨었다.

“군부대신 각하, 훈련대 병사들이 궐에 진입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홍계훈이 다급하게 안경수 군부대신을 재촉했다.

“조선군 병사들은 들으라! 병사들은 대궐에 들어가지 마라!”

안경수 군부대신이 그때서야 말 위에서 소리를 질렀다.

“나는 훈련대 연대장 홍계훈이다! 병사들은 대궐에 진입하지 마라!”

홍계훈도 악을 쓰듯이 소리를 질렀다. 광화문 일대에 총연이 자욱하게 퍼지고 있는 가운데 두 사람의 고함 소리가 조선군 훈련대 병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군부대신이 여기 계신다! 병사들은 절대로 대궐에 진입하지 마라!”

“병사들은 대궐에 들어가지 마라!”

훈련대 1중대 병사들도 일제히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광화문을 통해 대궐로 들어가던 병사들이 주춤했다. 대궐로 들어가던 병사들은 홍계훈이 설득하여 광화문으로 데리고 온 병사들보다 훨씬 많았다. 게다가 일본군 수비대까지 앞뒤에서 포진하고 있어서 무력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홍계훈은 그들을 저지할 수가 없어서 목이 터질 듯이 소리만 질러댔다.

“훈련대는 대궐로 들어가지 마라!”

홍계훈은 병사들에게 더 크게 소리를 지르라고 한 뒤 광화문을 향해 달려 나갔다. 훈련대 병사들이 연대장인 자신을 향해 총을 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홍계훈의 착각이었다. 홍계훈이 광화문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몇 발의 총성이 요란하게 들려왔다.

  도서출판 북오션 : 자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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