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개소리]우연은 없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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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개소리]우연은 없다(3)
  • 법률저널
  • 승인 2004.02.17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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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장의 인솔하에 대민지원을 나온 그들은 어쨌든 부대 밖으로 나왔다는 것이 그저 즐거울 뿐이었다. 하지만 인솔자가 곽병장이라는 것이 그들의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들었다. 김래원이 웃으면 살인미소지만 곽병장이 웃으면 살인미수였고, 다른 부대원들이 나가면 대민지원이었지만 곽병장이 나가면 대민피해였던 것이다. 고문관 곽병장의 파란만장한 군생활도 거꾸로 매달아도 간다는 국방부의 시계 덕에 어설프지만 어느덧 병장이 되어, 물병장은 나가지도 못한다는 대민지원을 떠밀리듯 자원해서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윤씨네 집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윤씨아저씨는 88담배를 하나씩 나눠주며 오늘도 열심히 일해보자며 할일을 말하려는데, 눈치를 살피던 곽병장이 오자마자 화장실에 가겠다며 아저씨를 건드렸다. 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아저씨는 하는 수 없이 그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들이 오늘 해야 할 일은 포도밭에서 하는 쉽지 않은 일로 고참병들이 안나가려고 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비스듬하고 좁은 포도밭을 따라 고개를 쳐들고 어린 포도순을 따내는 작업은 고개도 아프고 온몸이 피곤한 일이었다. 아저씨가 경운기에 시동을 걸자 곽병장은 자기가 몰고 가겠다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나머지 모두가 걸어가겠다고 하자, 얼굴이 갑자기 살인미수범으로 변하는 바람에 후임병들은 잔뜩 긴장을 한 채 뒤에 올라탔다. 아저씨는 불안했지만 큰일이야 나겠나 싶어 그냥 두기로 했다.

덜덜덜....시골길을 아슬아슬하게 잘 가는가 싶더니만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갑자기 커브 길에서 핸들을 틀지 못하고 그대로 도랑에 쳐 박고 말았다. 순간 뒤의 대원들은 모두 재빨리 뛰어내려 다행히 무사했지만, 곽병장 본인은 허둥대다가 경운기와 함께 길옆에 쳐 박혔다. 곽병장......크게 다친 건 아니지만 허리가 이상하다며 죽는 시늉을 하는데 도대체 우연히 벌어진 일이라고는 봐 줄 수가 없었지만 윤씨아저씨와 다른 대원들...울며겨자먹기로 그걸 인정해야 했다. 가뜩이나 일손도 모자란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패전병이 생겼으니 나머지 사람들만 더 고달파 진 것이다. 그래도 잔대가리 굴린 곽병장을 저대로 하루 종일 편하게 놔둘 수는 없었던 아저씨는 아줌마가 새참으로 준비해야 할 라면을 대신 끓이게 했다. 먹성 좋은 곽병장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 같아 그것도 불안했지만, 설마 그 많은 라면을 끓이면서 혼자 다 먹겠나 싶어 시켰는데 역시 그것도 맘에 들게 해내지 못했다. 모두들 불어터진 라면을 먹고 있을 때, 배부른 곽병장은 시원한 그늘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시험을 여러 번 떨어지고 군에 끌려온 곽병장은 사회에서 잘나가던 엘리트 법대생이었다. 졸업 할 때까지 반드시 합격하여 군대는 장교로 갈 생각으로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5학년을 다닐 때까지 합격을 하지 못하자 대학원으로 군대를 미뤄볼까도 생각했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 군대에 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는 지금 배불리 라면을 먹고 시원한 그늘에 누워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꿈속에서 어느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다가 무의식적으로, 고시생이면 받을만한 스트레스에 대해 물었다. "할아버지...저는 시험에 합격하지 못할 운명인가요?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합격할 수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상하신 목소리로 대답하신다. "운명이란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우연이라는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지......"

그러자, "하지만 저에게는 합격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위해 우연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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