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101 / 협의보상의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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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101 / 협의보상의 단면
  • 법률저널
  • 승인 2015.08.2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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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제 14조부터 17조까지는 협의보상 절차를 담고 있다. 첫발은 토지조서와 물건조서를 작성해 토지소유자와 관계인의 서명 또는 날인을 받는 것. 중개물건을 설명하는 ‘중개대상확인서’를 떠올려도 좋다. 거래 대상을 확인하는 일이 매매협상의 첫 단추를 꿰는 일이지 않는가. 이 내용과 함께 보상의 시기나 방법, 절차를 신문에 공고하고 당사자에게 열람시켜 수정할 사항이 생기면 반영할 수 있다. 이렇게 확정된 거래대상을 놓고 매수자는 매도자와 성실하게 협의해야 한다. 의견의 합치가 있으면, 도장을 찍는다. 언뜻 중개사무소 내에서 벌어지는 부동산 매매체결 상황을 설명해 놓은 것 같지만, 자유로운 매매와 다른 이질적인 요소가 숨어 있다. 

어쨌든 계약서를 쓰고 도장 찍는 일, 거래대금을 건넨 후 등기 이전되는 모든 절차는 평범한 거래와 다를 바 없다. 협의보상을 사법상 계약의 형태로 해석하는 다수의 의견도 외관상 부동산 거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질적인 요소를 들먹이는 이유는 ‘거래의 실질’이 분명 다르다는 것이다. 순수하게 자유로운 계약이라고 할 수 없는 성격 중 하나는, 협상을 백지화시키고 나면 현상이 유지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후 버젓이 강제 수용 절차가 대기하고 있다. 수용 방식은 코너에 몰아넣고 강제로 지장(指章)을 찍게 하는 것이다. 어쩐지 ‘포로수용’의 냄새가 난다. 좀 심하게 말해, 협의 보상은 ‘간’ 보는 것. 자연스레 팔아주면 좋고 협상이 어긋나면 강제력을 발동할 수 있으니. 

보통 부동산 매매에서는 파는 쪽이 가격을 제시하고, 사는 쪽이 흥정하게 마련이다. 공인중개사 역시 매물로 내놓는 쪽의 희망가격을 먼저 신경 쓴다. 중개자의 구미에 맞는 물건이라도 구매자가 터무니없는 가격에 질려버리면 말도 못 꺼낼 테니. 협의보상에서는 사는 쪽이 가격을 제시한다. 감정평가사가 보상평가를 거쳐 협의보상액을 대신 제공해 주는 것이다. 대중을 위한 보상 안내서 성격의 책자 내용 중 ‘협의가격은 시세의 90%에서 손을 내민다.’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그 이후 재결단계, 소송단계를 거쳐 증액되는 보상금이 협의보상금 대비 10% 안팎에 이르는 점을 고려해 최종 보상금을 시세라고 볼 때, 협의보상금은 시세의 90%라고 편하게 해석한 것이다. 그러면 손을 잡아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강제로 뺐어가는 절차를 거치더라도 조금 버티는 게 숨어 있는 10% 보상금을 쟁취하는 방법이리라.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시행규칙 17조에서는 평가를 한 후 1년이 경과할 때까지 보상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경우 다른 2인 이상의 감정평가업자에게 대상물건의 평가를 다시 의뢰하여야 한다고 했다. 협의 계약이 결렬되더라도 수용재결 절차가 미적거리면서 1년이 살짝 넘었다면, 재협상을 해야 하고 기준시점도 1년 뒤로 미뤄진다. 이 기간 부동산 가격 상승 요인이 있기만을 바라야 할 것이다. 이것까지 염두에 두고 ‘협상지체전략’을 쓴다면 지능범이다. 

보상의 첫 단추를 협의보상 단계로 이해한다고 해서 이때의 보상액이 매수자가 내 놓은 최저가라고 볼 수는 없다. 협의보상 평가 기준과 이후 수용재결, 이의재결, 행정소송 평가 기준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냥 그럴 것 같은 느낌일 수 있다. 물론, 시점의 차이와 평가 관행으로만 보면 그렇게 해석할 여지도 있다. 재결까지 가면 일단 시점이 달라진다. 협의할 당시와 시차가 발생하니, 그 기간 지가상승이 살짝 얹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평가자가 달라지면서 ‘측은지심’이 작동되기도 한다. 너무 억울하니 협의를 안 했을 것이고, 사정 좀 봐줄 여지가 있는지 찾아보는 이들이 적잖다. 재량의 영역에서는 숨 쉴 틈이 약간은 벌어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재결 평가금액이 협의보상액보다 낮다면 재결평가사는 철저히 공정하고 사심 없이 평가한 것이고, 협의 평가사는 넉넉히 평가한 것으로 귀결된다. 

협의보상금액이 두둑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개입됐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매수자가 일정에 치여 서둘러야 하는 상황에서 소유자가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이다. 선심 쓰듯 보상금을 지급해서라도 일정에 맞추려는 급박한 사정에 과연 감정평가사가 부응해야 하는가는 다른 문제일 수 있다. 국가적인 사업이니 혹은 시급한 사업이니 하면서 좀 넉넉히 평가하라고 독려하는 사업시행자를 가끔 목격했다. 담당자가 사업지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면 적극성이 남다르다. 흔히 ‘퍼준다’, ‘금액이 빵빵하다’는 이 업계 내 표현은 특수한 상황 하에 나온 감탄사로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토지소유자등의 ‘협의 동의율’이 평가의 공정성을 가늠하는 리트머스지라고 말할 수 없다. 오죽 과다 보상했으면, 예외 없이 모두가 도장을 찍었겠는가. 팔 수 없는 물건이 보상에 엮어 금액이 좀 만족스럽지 않아도 이번 기회를 타서 도장 찍고 나갈 수도 있는 것이니, 턱 없이 낮은 보상금에도 협의 동의율은 치솟을 수 있다. 한때 보상금을 통제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사업시행자가 한정된 예산을 보여주며, 총 보상금액의 쿼터를 시달하기도 한다. 지자체든 공사든 이런 행태를 보이는 곳은 혈세낭비니 과다보상이니 명분을 내걸면서 감정평가사를 압박한다. 실은 경제적 사업을 했다고 자랑거리를 만들려했거나 예산 절감 사유로 진급 명단에 실리고 싶은 바람일 수 있다. 

요즘은 지혜로운 이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건축물등’의 지장물 보상금은 수령하고, 토지 보상금액에 대해서만 다투는 이들이 그렇다. 일부 협의와 일부 불복을 병행하는 것. 토지와 건물 중 상대적으로 넉넉히 주는 것은 후자라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보상금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율 면에서 토지를 물고 늘어지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 증액비율이 동일하다면 금액 큰 쪽에 콩고물이 많이 떨어진다. 

여전히 과다보상과 헐값보상의 주장이 첨예하게 상존하는 것이 공익사업의 현장이다. 중재자의 자리에서 감정평가사는 처신을 조심해야 한다. 책임은 오직 ‘위법’, ‘부당’, ‘미흡’한 평가에만 한정된다. 그런 면에서 사업시행자의 다급한 일정, 소유자의 억울한 사정 모두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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