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55) - 도넛이 너무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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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55) - 도넛이 너무 달다
  • 차근욱
  • 승인 2015.08.1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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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엘비스의 공식적인 사인은 심장마비로 알려졌었다. 일각에서는 각성제의 남용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하지만 또 일각에서는 평소 도넛을 너무 좋아했던 엘비스가 도넛으로 건강을 해쳤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도넛? 그렇다. 도넛.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도넛이 바로 그 도넛이다.

개인적으로 도넛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도넛가게가 있다면 왠지 한번은 들어가 보게 되는데, 바바리안 크림이 들어가 있는 도넛이라도 볼라치면, 어쩐지 하나 정도는 사서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유혹에 고민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 도넛을 보고 있노라면 엘비스 생각이 먼저 나서 선뜻 집어 들어 입으로 가져가기 망설여지기도 한다.

엘비스의 마지막을 따르고 싶지는 않다고나 할까. 그렇다고는 하지만, 가끔 피곤하고 허기질 때 먹는 도넛의 맛이 얼마나 놀라운지 우리는 체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결국, 도넛이라 하여도 절대적으로 먹어야 하는 도넛도, 절대적으로 먹어서는 안되는 도넛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던가. 담배가 그렇고 설탕이 그렇고 소금이 그렇다. 뭐, 굳이 꼽자면 도넛도 그렇고.

우리는 회색지대에 산다.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없고, 절대적으로 틀린 것도 없다. 완전한 악인도 없고 완전한 선인도 없다. 다들 그저 자기 깜냥대로 살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물건을 어떠한 가치에 따라 어떻게 활용할지가 문제일 뿐이지, 세상만사 절대적으로 틀린 것은 없지 않을까.

흔히들 착하게 대하는 사람은 좋아하지만 못되게 구는 사람은 싫어한다. 하지만 업무영역에 있어서 착하고 무능한 사람이 얼마나 악인인지, 못되게 굴지만 일처리 하나는 확실한 사람이 얼마나 선인인지, 사회에서 눈물에 젖은 밥을 먹어본 사람은 안다. 조직생활에서도 늘 친절하고 착한 사람에게 처음에는 좋다고 하다가도 나중에는 그냥 그러려니 생각하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뜻대로 행동해주지 않는 그 사람을 비난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험하게 굴다가도 어쩌다 한번 친절을 베푸는 사람에겐 감동하고 감읍하기도 한다. 그러니 세상살이라는 것이 알다가도 모를 일이랄까.

얼마 전에 아는 분께 어려운 부탁을 하나 받았다. 당신의 조카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선택과목과 교재나 강좌를 선정해서 수험생활 로드맵을 짜 달라는 이야기. 하하하. 그런데, 그게 일괄적으로 어디 가능한 이야기인가. 일단 사람에 따라서 강의가 필요한 사람인지 독학이 필요한 사람인지 모두 다른데다가 선택과목의 경우에는 자신이 관심이 있는 분야가 어떤 분야인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과목은 어떤 과목인지도 개인차가 있어 천차만별이다. 특히 책과 강의는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본인이 편한 것이 따로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주관적일 수밖에는 없다. 그러다보니, 모든 판단은 본인이 하고 본인이 실천하고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것 또한 수험생활의 특성이라 할 밖에.

살다보면 우리는 늘 이런 문제와 마주한다. 무엇을 어떻게 어느 선까지 활용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교육의 목적이란, 자주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을 길러내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초등교육이 되었든, 중등교육이 되었든, 고등교육이 되었든. 결국 합리적 판단능력을 길러내는 것이 관건이다. 그렇게 본다면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에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영어단어 하나 더 알고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더더욱 절실한 시대이므로.

원점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쉽기도 하지만 또한 어려운 문제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을 망각하기도 하므로. 언제나 길을 잃으면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자신만의 원점이 필요하지 않을까. 마치 대서양을 건널 때 의지할 수 있는 북극성처럼.

나는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었다. 단순히 조금 덜 걱정하며 생활비를 벌고 의식주를 해결해가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인생의 순간으로 내 삶을 채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어느새 인가 일 중독자가 되어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인생의 모순도 생겨났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나는 가끔 그렇게 곰곰이 부끄러운 자신을 돌아본다. 눈 덮힌 자작나무 숲길 같이 걷고 싶은 인생길이었으니, 그렇게라도 밸런스를 맞추어 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인생이란 것이 원래 모순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한 번씩 돌아보는 계기는 중요하다. 그런 순간도 없다면 맹목적이 되어 버리거나 폭주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최근 인문학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살아가고자 하는 최소한의 탐구로서 존재하는 것이 인문학이니까.

사람들은 손해 보기를 두려워한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할 것도 없다. 나부터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호구만은 되고 싶지 않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다들 손해 보기 싫어서 벌어지는 우리사회의 단면들을 보면, 과연 이것이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정상적인 판단인지 의문이 갈 때가 많다. 도로에서는 최소한의 교통법규가 무시되는 단계를 넘어 보복운전이 횡행하고 있고, 차량을 빼달라는 요구에 옆구리를 흉기로 찌르는 목사님도 계신다. 일부의 중고자동차 매매상들은 감금과 협박도 불사하고 있으며, 중·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까지 친구를 괴롭힐 뿐만 아니라 끝내 사망하는 학생까지 생겨났다는 뉴스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원칙은 과연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달콤한 도넛을 무작정 먹다보면 어느새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잃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정말 모르는 것일까. 일부에서는 사회 안전을 지켜내기 위해서 법적 제재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어느 선 정도에서 도넛 먹기를 멈추어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운용의 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보면 장난을 칠 때도 있고 화가 나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해야 할 때도 있다. 진실로, 필요한 요소일 수도 있고 필요한 순간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엔 사람의 문제다. 언제나 불안정하고 언제나 믿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이니까. 우리가 그토록 좋은 교육, 뛰어난 스펙을 바라는 이유는 이렇듯 불안정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올바른 가치관과 판단력을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였는데, 왜인지 모르게 뛰어난 스펙과 학벌을 갖춘 사람은 많아도 올바른 판단을 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너무나 어려워졌다.

세상에는 나쁜 행동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행동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순간에, 어떤 의미로, 어떠한 원점을 향해가고 있느냐의 문제이지. 같은 술이라고 해도 사람들을 살리는 약주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를 죽이는 독주가 될 수 있는 것 또한 결국 사람의 일이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나만 그런게 아니니까 그래도 된다거나,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으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하다보면, 분명 누군가는 도넛을 너무 많이 먹게 될지 모른다. 우리는 도넛을 너무 많이 먹는다며 문제를 제기할 용기를 이미 잃어버렸으므로.

굳이 논어나 맹자를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삶의 원점은 무엇이었는지, 자신은 어디로 가려고 했던 것인지를 한번쯤 돌아보며 자신이 잡을 수 있는 눈앞의 도넛을 어떻게 할 것인지, 모두가 한번쯤 돌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도넛 정도의 판단이라면, 굳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고 하여도, 스팩이 남들보다 월등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정도의 판단력이라면 우리도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지 않았을까.

자 그런데, 이제 이 글을 쓰면서 눈 앞에 놓아 둔 먹던 중의 글레이즈드와 블랙커피는 어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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