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99 / 감정평가의 전관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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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99 / 감정평가의 전관예우
  • 이용훈
  • 승인 2015.08.0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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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전관예우. 법조개혁을 논하는 글마다 이를 수면으로 끌어올리지 않는 필자도 없다. 하나의 ‘인습’, ‘관행’이라고 불리기엔,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으나 그 뿌리가 너무 견고해 제도적 장치로도 쉽게 제어되지 않으니 말이다. 감정평가업계는 어떤가. 수험계 강사 생활을 몇 년 했던 필자도, 시험을 앞두고 짧은 출제위원 특강이 개설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 해 출제에 들어가는 평가사나 교수가 출제 공정성을 의심받으면서 몇 푼 받겠다고 나오겠는가. 요 몇 해 전 출제위원이 ‘전관’의 명함으로 초빙되는 것이다. 어느 해는 ‘출제위원급’ 특강이라는 광고가 나기도 했다. 실력면에서 출제위원과 우열을 가릴 수 없는 현직 강사가 특강에 나선다는 호객행위다. 어쨌든 위에 언급한 이런 저런 모습을 전관예우의 틀 안에 넣기에는 좀 가볍다. 

3심제와 같이 받아들일 수 없는 평가 결과물을 한 번이나 두 번 더 다툴 수 있는 길이 있다. 보상에서는 협의평가 뒤 수용재결, 이의재결 평가를 거칠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의 마지막은 소송이 담당한다. 아마 가장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평가를 소송평가라고 이해해도 좋다. 소송평가자는 이 건을 법원에서 의뢰받았고, 법원은 그저 공정하게만 평가해 달라고 요청한다. 원·피고 어느쪽 입김도 작용하지 않는다면 평가자는 이해관계 없는 접근, 합리적인 평가 결과물에 여타 평가보다 근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감정평가 타당성 검토’에 의한 재조사도 있는데, 이는 재정신청과 같은 성격의 이의 신청으로 연결시켜도 무방하다. 

알박기 성격의 감정평가라는 게 과연 있을까? 사전 감정을 그리 볼 여지가 있다. 미리 추정가액을 알아보자는 취지의 의뢰지만, 내심 그 결과물이 사후에 에정된 평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하려 했다면 말이다. 적지 않은 수수료 부담과 사전 평가 결과물의 입김을 이리 저리 재 봤지 않겠는가. 간혹 본 감정평가와 다른 조건을 부가한 사전 평가보고서를 발견하기도 한다. 사전 평가는 수의 계약조건을, 사후 평가는 공개경쟁입찰조건이었다면, 결과물은 서로 독립적이라고 봐야 한다. 수의계약조건이 경쟁입찰조건과 사실 뭐 다를 게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지정된 입찰 대상자에게 부여한 호헤적 성격의 조건이 있었거나 그 반대의 구속적 부관이라면 서로 다른 대상을 평가했다고 해석될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닌데, 예정된 평가를 염두에 두고 동일한 조건으로 동일한 대상을 한참 일찍 평가해 그 결과물을 심어 놓은 경우 ‘알박기’를 부인할 수 없다. 

재개발사업 구역 내 현금청산 평가에서는 기싸움이 팽팽하다. 법률 당사자가 치고받는 싸움은 구시대로 끝났다. 법률 대리인간 치열한 공방만이 있을 뿐이다. 감정평가사도 자신의 고용주 이익을 위해 실력으로 맞서며 싸운다. 시·도지사 추천 평가사가 중립이라면 조합 추천평가사는 피고 대리, 소유자추천 평가사는 원고 대리 입장을 취한다. 종전자산 평가금액이 유의미한 정보이긴 해도, 필지별 상대적 균형을 절대적으로 지키지만, 정비사업의 사업성과 비례율을 맞추기 위한 일률적 하향, 상향 조정을 이유로 절대적 정확성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다. 시가와의 격차는 사업구역마다 천차만별이다. 종전 평가 금액이 정확히 시가에 맟춰진 후 현금청산금액은 이보다 낮게 나온 잔혹사가 종종 보인다. 후속 재결절차를 앞둔 청산협의라면 현금 청산 평가는 협의보상 성격의 평가로 볼 수 있다. 개발이익배제의 논리가 적용됐다고 주장하면 후속 평가금액이 내려간 이유로 충분하다. 면피사유로 부족함 없다. 10% 이상 현금 청산금액이 올랐다면 어쨌든 소유자추천 평가사의 공헌이 큰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2~30% 상향된 청산 평가 금액이라면, 종전평가결과는 ‘시가’가 아니었음이 명백히 드러난다. 

퇴임한 판사 선배가 담당변호를 맡은 사건에서의 단독심 판사의 부담감, 과연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전관예우는 최소한의 선배 대우라고 보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평가업계는 어떤가. 먼저번 평가를 담당한 법인이 어디인지, 서명을 한 담당평가사가 누구인지에 따라 뒤 이은 평가사가 이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고 말하기에는 찜찜하다. 원래부터 무리한 평가를 도맡아 하며 악명을 높인 자라면 후속 평가자는 떳떳할 수 있으나, 실력과 경력, 게다가 평판까지 잧추고 개인적인 친분까지 있었다면 ‘전관’을 ‘예우’하려는 맘이 솔직히 생길 때도 있다. 

필자는 올해부터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논문 작성법에 대해 여기저기서 파편적인 조언을 듣고 있다. 아니, 논문 준비를 위해 가져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 여러 교수님으로부터 조언을 듣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 세상을 보라’. 이구동성 인용하는 관용구다. 우리 중 모든 것을 처음부터 쌓아올린 사람이 있던가. 그들의 결과물이 후속 연구자의 선행연구로 검토되는, 연구의 토양을 제공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감정평가사는 어떤가. 재결평가사는 협의평가서를, 소송평가사는 재결평가서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선행 평가자의 시각을 배울 수 있다. 가급적 파열음이 생기지 않도록 후속 평가사는 동일 물건 전례를 존중하려 하는 관행이 있으나, 반면 전관예우 때문에 스스로 불합리한 결과를 떠 안으려는 부담은 지지 않으려는 생존본능도 숨어 있다. 그러니, 얼마든지 사전감정을 해도 좋다. 다만, 용기 있는 어떤 평가사는 기존 보고서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쳐 누더기로 만들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감정평가업계에서는 ‘합리적인 전관’만 ‘예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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