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48) - 시간은 늘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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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48) - 시간은 늘 빠르다
  • 차근욱
  • 승인 2015.07.0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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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살다보면, 정말 시간이 빠르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서, 라디오 비밥을 연재한지 1년이 되었다던가, 내가 어느덧 스무살이 되었던 순간이라던가. 하하하.

시간에 대해서 살면서 처음 인식한 것은 열 살 무렵이었다. 당시의 나는 TV매체를 통해서 ‘무서운 10대’라는 표현을 자주 들었었기 때문에 그 10대라는 단어의 의미를 10살로 생각하고 있었다. 뭐, 9살짜리 꼬마였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9살에서 10살이 될 무렵 즈음에는 굉장히 두근거렸었는데, 10살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알 수 없는 설렘과 기대감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자리 수의 나이가 좀 창피했다. 그래도 두 자리 수의 나이쯤 되어야 인생을 논할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뭐, 누가 뭐래도 9살짜리 꼬마였으니까.

물론 주변에서 10살이 먼저 넘은 형과 누나들을 보아서 10살이 되어 봤자 별 것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이었달까. 어린 마음에 무엇이 10살을 무섭게 하는 것일지 고민하면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10살이 되면 무언가 스스로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라며 설레었었다. 무서운 10대라고들 하잖아.

특히 10살 생일을 앞 둔 전날 밤에는 마치 자고 일어나면 헐크처럼 무언가 내가 변화될 것만 같아서 굉장한 흥분상태가 되었었는데, 부모님께서는 10살 생일을 앞 둔 내가 왜 그렇게 흥분했었는지 아마 당시에는 모르셨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 이윽고 10살 생일이 되었던 날 아침, 당연한 일이지만 - 별다른 일은 없었다. 당연히 아무 일도 없었다. 여전히 해태 타이거즈는 잘 치고 잘 달리는 상태였고 한창의 파란 여름 하늘 아래, 자동차들은 역시 씽씽 잘만 달리고 있었다. 현대자동차도 대한민국도 모두 하면 된다는 자신감에 모두가 힘찬 아침을 맞고 있었달까.

10살이 된 첫 아침에 느꼈던 감정은 ‘실망’이었다. ‘에이, 뭐야. 달라진게 하나도 없잖아.’라면서. 혹시 아버지처럼 털이 자랐을까 싶어 겨드랑이를 만져 보았지만, 보들 보들한 내 살결은 전혀 털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그렇겠지. 9살에서 이제 막 10살이 되었는데.

아침에 등교하면서도 심각하게 왜 ‘무서운 10대’라고들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혹시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0대가 무서운게 아니라, 10대는 무서움에 떨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부터 무언가 무서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일까, 하면서.

지금이야 10대란 당연히 13~19살 정도 나이의 친구들을 지칭하는 사회적 의미라는 것을 잘 안다. 10살 정도의 꼬마야 무서울 것이 전혀 없는 것이 사실이지. 9살에서 10살이 되던 무렵의 나는 10대란 그냥 10살을 뜻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왜 10대를 무섭다고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과연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리운 것은 사실이다. 그 시절에는 굳이 몰라도 되는 사실은 모를 수 있었으니까.

남자 꼬마였던 시절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되고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고 돈을 벌어서 먹고 싶은 것을 얼마든지 실컷 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꼬마인 주제에 말보로 맨이나 위스키잔을 든 본드를 동경했기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 시절에는 술과 담배를 지독하게 싫어하는 어른이 될 줄은, 나이가 들고서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 직업을 갖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청개구리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려서 생각했던 어른이 된 나의 모습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어른이 되어 버렸다. 물론 지금은 억지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니 괴로움의 정도가 어린시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지만, 그래도 역시 만만치는 않다고 생각한다. 정말입니다. 나름 빡쎄다구요.

나뿐만이 아니겠지만, 어린 시절에는 다들 어른 흉내를 냈다. 빨리 어른이 되고들 싶어했다. 하지만 재미있지 않나? 어른이 되고 나면 이젠 반대로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좋아했던 장난감을 사 모으기도 하고 좋아했던 불량식품을 구해 먹기도 한다. ‘추억팔이’라고 해서 지난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프로그램과 상품이 날개 돋힌 듯 팔리기도 해,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그때 우리가 속했던 세상에선 적어도 슬픈 계산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믿고 의지할 수 있었기에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아마도 세상에 치이고 힘들수록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까닭은, 그 시절의 우리는 서로를 소중히 여겼기에 마음 둘 곳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전혀 무섭지 않은 10대가 된 나는 어른들은 순 거짓말쟁이거나 바보라고 생각했다. 내가 어디가 무서워서. 10살이 뭐가 어때서.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어느새 난 10살보다도, 10대보다도 훨씬 나이가 들어버렸다. 그리고는 알게 된 것인지도 모르지. 10대가 무섭다는 말은, 결국 우리 스스로가 서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아 만들어낸 무관심이 무섭다는 뜻일지도 모른다고. 그런 말이 있다. 10대에는 시간이 10킬로로 흐르고, 30대에는 30킬로로, 50대에는 50킬로로, 70대에는 70킬로로 흘러간다고.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그 말처럼 슬프고도 무서운 말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시간이 빨리가기 시작했으니까.

라디오 비밥이 1주년을 맞았다. 1년 전, 7월을 맞이해서 새롭게 시작하는 이 연재 코너를 어떻게 채워갈지 두근두근해 하며 컴퓨터 앞에 앉았던 자신이 떠오른다. 어떤 독자들과 어떻게 만나게 될지, 어떤 이야기들로 지면을 채워갈지를 생각하며 가슴 설레 했었다. 시작할 당시에는 1년을 넘도록 연재가 가능할지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 전에 짤리지 않을까 싶기도 했으니까. 돌아보니 참 빨리도 지나간 1년이었지만, 안짤리고 용케 여기까지 왔구나 싶어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다. 편집장님은 분명히 꽃미남이시리라고, 지금 나는 격하게 그리 생각하고 있다.

후후후, 위기는 물론 있었다. 분명히 연재를 1회 쉬었었으니까. 그래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번 펑크를 낸 적이 있었던 것을 빼고는 제법 그럭저럭 잘 해 왔다고 생각한다. 1주년 이라면서 왜 52회가 아니라 오늘 48회냐고 따지시는 분이 계신다면, 후후후. 뭐, 인생 살다보면 그런 것 아닙니까. 지금의 심정은, 마치 개근상을 받는 친구를 보면서 하루의 출석일수를 채우지 못한 학생이 안타까운 눈으로 친구의 꽃다발을 바라보고 있는 심정이랄까.

원래 라디오 비밥은 다른 지면에서 연재하기로 계획이 되어 있었다. 해당 잡지는 월간지였는데, 처음에 월 1회 연재라서 부담이 없으려니 하고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것은 원래 알 수가 없어, 나름의 운명을 따라 이렇게 매주 많은 분들과 교감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깊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아무도 축하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만은 열심히 타자를 쳐 내려가던 순간들이 떠올라 라디오 비밥의 1주년이 조금은 아련하다.

인생의 순간이 소중한 까닭은 인생의 모든 순간이 단 한 번의 기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0살이 되면서 무언가 내 인생이 이제는 달라지는구나, 생각했던 것처럼. 사실 별다를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실은 그때부터 이제는 남자의 인생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다시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나는 설렌다. 매 순간을 소중히 여겨, 매 순간을 힘껏 살아가야지.

시간은 늘 빠르다. 항상 조심스러운 것은 게으름과 미루는 순간이다. 혹시나 내 인생에서 소중한 순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인생은 돌이킬 수 없는데, 나는 가끔 게으름을 부리거나 일을 미루어 나중의 후회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비밥의 의미는 아마 그런 것이 아닐까. 스스로 자기 삶의 그러한 순간들을, 한 번쯤은 되돌아보면서 살아있음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것. 문득 ‘자기 앞의 생’을 다시금 읽고 싶어졌다. 살아있다는 것, 엄청난 기적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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