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47) - ‘테레비’가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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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47) - ‘테레비’가 문제야
  • 차근욱
  • 승인 2015.06.25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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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최근 들어 알게 된 사실인데, 버스나 기차에서 잠을 잘 때 좋은 안대를 착용하면 훨씬 깊이 잘 잘 수 있다. 혼자서 굉장한 발견을 했다면 흥분했었는데, 요즘 쓰고 있는 안대는 참숯가루가 들어가 있는 안대이다. 정말로 참숯가루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일단은 그냥 천으로만 된 안대보다는 훨씬 안정감이 있고 개운한 느낌이랄까.

이 안대는 2002년 월드컵 기념으로 어딘가를 지나가다 어디선가 아무 생각 없이 산 물건이다. 당시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요즘 들어 ‘굉장한 선견지명이었다’, 라며 스스로에게 감탄하고 있는 중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쓸데가 과연 있을까 싶어 10년 동안 자신이 저지른 과소비의 만행을 두고두고 반성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 안대를 버스나 기차에서 사용하게 된 이유는 사실 미디어 공해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는 TV도 라디오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잘 보지 않는데, 유독 버스나 기차를 타면 거의 강제적으로 TV를 보아야 하는 상황에 갇히게 되어 솔직히 어마 어마한 고통에 시달렸었다. 특히 드라마는 평소에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피하는 편인지라 버스에서 드라마가 보이기 시작하면 정신적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소리는 이어폰을 꼽고 음악으로 지운다고 해도, 시야만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그것도 정말 아주 우연히, 서랍에서 펜을 찾다가 13년 전에 샀던 안대를 찾아 착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버스나 기차에서 안대를 한다는 것에 좀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마스크까지는 이해한다고 해도 안대는 좀 유난을 떠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고,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었는데, 버스나 기차에서 안대를 쓰고 난 다음부터는 거의 구원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평온해졌다. 나는 창밖의 풍경과 조용한 정적을 즐기고 싶은데, 세상은 어찌된 것인지 폭력에 가까운 미디어 공해를 강요한다. 어느 순간인가 버스에도 기차에도 지하철에도 스크린이 들어와 사람의 사고를 장악해 오기 시작했다.

인간의 두뇌는 여백의 시간을 통해서 마음이 정돈되고 휴식으로 재충전된다. 하지만 스크린은 쓸데없고 자잘하고 무의미한 화면들로 이 모든 것을 원천봉쇄해 버린다. 어떻게 보면 아예 생각자체를 못하고 살게 하려는 국제적 음모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게 거창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문제는 문제가 아닌가 싶었다. 이동의 여백과 정적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배려라고는 해도 이것은 좀 지나치다.

버스를 탈 때에도 원래는 맨 앞자리가 좋았다. 버스의 시원시원한 앞 창 유리를 통해 비치는 경치를 보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는 시간이 워낙 즐거웠기 때문인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의 행복을 TV스크린이 공격해 빼앗기 시작했고 그 TV를 피해 도망치다보니 결국 버스의 맨 뒷자리까지 이르르게 되었다. TV난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TV라면 당연히 전체적으로 피하고 싶지만, 기필코 피하고 싶은 것은 ‘드라마’이다. ‘드라마’만은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도 반드시 피하고 싶다.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인데,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많은 사랑 또한 받고 있는 드라마가 바로 대한민국의 한류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대한민국의 드라마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 날인가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결론은 드라마 등장인물들의 ‘이해할 수 없는 감정폭발’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나라의 드라마에는 유독 소리 지르고 우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울부짖고 포효하고 악을 쓴다. 왜?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그런 흉폭한 모습에 공감도 가지 않을뿐더러 귀도 아프고 보기도 흉하다. 그런데 출생의 비밀이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 것처럼, 이러한 극단적 감정표현 역시 드라마에서는 빠지지 않는다. 이유는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게다가 드라마 속에 흔히 등장하는 집이나 차는 대부분 우리가 평생 접해보기도 어려운 집과 차들뿐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판타지랄까. 뭐, 있는 사람들에게야 시시한 일상의 풍경일지 모르겠지만, 나처럼 평범한 인생을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생각보다 좁고 어질러진 집에서 위로받으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기 위해 파김치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내 눈에 비추인 드라마 속의 일상은 나와 내 이웃의 일상과는 태양과 명왕성까지의 거리만큼이나 멀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가 마주했던 드라마 속의 일상은 언제나 재벌 집의 일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드라마는 원래 대리만족을 위한 것이니 원래 그래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면 뭐, 할 말 없겠지만.

내가 삐뚤어져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라마 속의 사람들이 누리는 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이 초라해지기까지 한다. 500원 1000원에 점심메뉴를 고민해야 하는 우리네 모습은 없다. 그저 레스토랑과 해외여행이 난무할 뿐이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의 직업도 평범한 회사원이나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나 가정주부는 드물다. 드라마 속 대부분의 직업은 의사나 변호사 아니면 교수, 혹은 CEO다. 서러운 서민도 없고 고단한 노년도 없다. 당장 오늘 점심 값을 아껴야 한다거나 다음 달 공과금을 고민해야 하는 우리네 일상의 구질구질함은 없다. 그저 모두 화려하고 전부 자신감에 차 있다. 그러다보니 드라마 속 사람들의 고민은 내가 볼 땐 배부른 이야기일 뿐이고 그들에게 찌질할 수 밖에 없는 나의 고민과 그들의 고민은 그처럼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다. 결국 남의 이야기인 게다. 드라마는. 그러니 진솔하지도 않고 공감도 가지 않으며 악을 써대는 드라마가 좋아질 리가 있나.

그래서 결국 드라마는 정말로 피하고 싶어져 버렸다. 보고 있노라면 자신이 패배자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자신의 인생 또한 무가치하게 느껴질 할 만큼이나 드라마에서는 모두가 잘났으니까. 게다가 모두들 강박에 가까울 만큼 멋있으려고만 하다 보니, 과하게 힘이 들어간 연기를 보는 것도 쉽지는 않았고.

난 소소한 일상의 소소한 행복 속에서 진솔하게 살아가는 우리네 이웃의 이야기가 좋으니까, 차라리 동화를 보면서 우리가 함께 웃고 위로하며 힘을 내도 쉽지 않은 인생의 한 대목에서, 어느날 갑자기 악쓰고 울부짖는 소리들로 인해 깜짝 깜짝 놀라고 싶지는 않으니까.

예능프로그램이나 라디오 프로그램 역시 되도록 피한다. 예전에 강호동씨가 나오는 1박2일이 유일하게 보는 프로그램이었었는데, 멤버가 바뀌고 나서는 역시 보지 않게 되었다. 물론, 지금의 인기 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 위로도 받고 재충전을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그런 좋은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 인생을 너무 쉽게 쉽게 이야기하는 연예인이 미디어에 나올 때면 좀 섭섭했다. 말장난이 너무 심하면 실례가 될 때도 있으니까. 어쩌면 너무 속 좁은 것이 아니냐, 라는 핀잔을 받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는데, 뭐 어쩔 수 없다. 느껴지는 것은 느껴지는 것이고 괴로운 것은 괴로운 것이니까. 그래서 버스나 기차, 그리고 지하철에서 무의미하게 뿌려지는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 울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니 안대가 당연히 구원이랄 밖에.

흔히 하시는 말씀들 중에,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꺄우뚱 했다. ‘왜 욕을 하면서까지 굳이 봐야 하는 거지?’ 하고. 나는 싫으면 보지 않는다. 좋으면 보고. 간단하다. 욕하면서 보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의 억지 전개라는 생각이 든다면 다신 보지 않는다, 라는 주의랄까. 하지만 세상 일이 재미있어서, ‘욕을 먹는 드라마’,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는 공전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유명 프로그램이 된다. 그렇다면 작가도 욕을 먹는 것을 의도해서 드라마를 쓸 수 밖엔 없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니 드라마 작가분도 역시 쉬운 일은 아니겠다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나도, 잊을 수 없는 드라마가 있다. ‘왕좌의 게임’시즌 1은 정말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것도 있었구나 싶었었는데,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판타지 계열인데다가 용까지 나왔음에도 감탄을 하면서 봤었다. 인생의 모든 것을 담았구나, 하면서.

생각해보면 그렇다. 세상은 무엇을 꼭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가의 문제일지도 모르지. 아무리 판타지이고 용이 나온다고 해도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진솔하다면 그 마음이 전해지기 마련이 아닐까. 왕좌의 게임을 보면서 뭐, 그런 깨우침도 있었다. 시시하다면 시시한 깨우침이지만.

버스나 기차를 타고서 창 밖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 삶의 쉼표다. 그런 소중한 순간을 TV따위에게 빼앗겼으니 분통이 터지지 않을 리가 없다. 어쩌면 모 선생님 말씀처럼, 대한민국은 진짜 ‘테레비’ 때문에 망할지도 모른다. 미래세계의 몰락처럼, 자신이 만든 피조물의 습격으로 종말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것이 굳이 ‘스카이 넷’이 아니더라도. 하지만 뭐 아무렴 어떤가. 오늘 밤에 고속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나에겐 참숯이 들어간 안대가 있는데. 잠 한 숨 푹 자고 나면, 그까짓 종말쯤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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