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92 / 감정평가와 기준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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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92 / 감정평가와 기준가치
  • 이용훈
  • 승인 2015.06.1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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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메르스’ 광풍이 좀체 사그러들지 않는 요즘, 간염치료차 인근 대형병원을 찾은 장모님은 미열과 기침이 있다는 사유로 일단 메르스 검진부터 받았다. 문진표 작성하고 객담 체취하느라 분주했을뿐 정작 간염치료는 검체 결과 이후로 미뤄졌다. 이번 사태가 잠잠해질쯤 분명 연구기관이나 언론 서너곳은 메르스 사태로 인한 경제적 피해액 추산치를 공표할 것이다. 예정된 회합의 취소, 연기 등으로 인한 손실은 상당할 것이다. 심리적 위축현상에 따른 소비침체가 더해지면 그 규모는 통상적인 추경예산 이상일 것이다. 최소한 단번에 확진 판정을 내릴 수 있는 진단시약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확진판정이 번복되면서 의심환자와 그 가족들이 겪은 피로감만큼은 경감시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 자산에 대한 적정 가격을 추적할 때 진단시약 같은 과학적 판단 기준은 없지만, 향후 가격의 등락에 대한 예상은 범인(凡人)의 잣대를 적용해도 된다. 그만큼 셈법이 간단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기준이 널리 퍼져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올해 배추 흉작이란 소식만 들려도 당장 김장비용이 오르겠거니 걱정한다. 머지않아 일반음식점은 ‘채소값이 올라 부득이하게 가격 올린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라고 꾹꾹 눌러 쓴 주인의 해명문을 벽면에 붙인다. 전세품귀 뉴스는 어떤가. 재계약을 코앞에 둔 가구는 전세금 몇 천 만원 폭등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소식에 부동산 시장은 반색한다. 채무자는 대출이자 좀 줄어드니 기뻐하고, 투자자는 쥐꼬리만한 예금이자에 만족하지 못해 수익성 부동산에 눈을 돌리기 때문이다. 

가격의 등락이 현 매매상황, 원가의 변동, 수익의 예측에 좌우됨을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그렇지만 원가나 수익으로 설명 못하는 상황도 적잖다. 천 원 단위로 뛰는 영화관람료가 과연 물가상승률만큼 인상되고 있다고 누가 믿겠는가. 그렇다고 영화관람의 효용이 그만큼 증가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공급자의 담합을 시장이 용인한다면 때마다 반복되는 큰 폭의 가격 인상은 특수하지만 고착화된 시장상황으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물론 최저임금이나 봉급쟁이의 급여가 찔끔 오를 동안 공과금처럼 부동산 가격이 계단식 상향패턴을 보이는 현상 역시 그러려니 해야 한다. 반대로 주식폭락만큼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추락하지 않는 것은 퇴출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특수성 곧 하방경직성으로 봐야 한다. 요컨대 원가와 수익으로 설명 안되면 최후의 변(辯)은 ‘시장이 그렇다’는 것이다. 

가격을 정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보상’ 이라는 기제가 작용함은 분명하다. 강남권에 위치한 국내 굴지 건설사의 사옥 옆에 저층의 낡은 업무용 건물이 들어서 있다. 그것까지 매입해서 초고층 오피스빌딩을 올려 쌍둥이 타운을 만들려는 건설사의 바람은 실현되기 까마득하다. 층별로 소유자가 다른 집합건물이라면 성공확률은 더 낮아진다. 모든 구분소유자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데 그 중 협상에 응하지 않고 막차 를 기다리는 구분소유자는 시가의 몇 배를 당당히 불러 이쪽을 심히 당황케 할 것이다. 

가격에 대한 이견, 부동산만큼 심한 게 있을까. 여기저기서 ‘너무 높다’, ‘너무 낮다’ 아우성이다. 재산세 부과 시즌이면 이런 불평은 연례행사다. 공시가격에 대한 불만이 봇물 터진다. 구청장 면담을 요구하고 세금폭탄으로 인한 가계 도산을 운운한다. 올려도 너무 올렸다는 볼멘소리다. 재산세는 안중에 없는 이들은 그 대척점에서 그에 맞는 논리를 내세운다. 재산세 몇 푼보다 재산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 것이 시급하다고 여긴다. 재개발지역 주민은 ‘도대체 시가가 얼마인데, 공시지가를 이렇게 낮게 책정했냐’ 호통이다. 특히 청산자는 공시가격 수준을 그렇게 못마땅해한다. 

토지보상가액은 어떤가. 주민은 시가 이상을 원하고 사업시행자는 저가 평가를 종용한다. 증여세나 양도세 납부예정자는 부동산 과세표준액을 낮추려는 희망을 전달한다. 담보가액을 시가에 근접하도록 높이고 싶어하고, 개발사업 담보물에 대해선 고개 뒤로 젖혀질 만큼 눈높이를 더 높여 시장가격을 뛰어 넘는 상상 이상의 숫자를 갈망한다. 별 관심이 없던 경매 법사가도 요즘은 채무자나 입찰자 모두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래저래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동일한 물건을 이렇제 저렇게 평가하면서 평가액이 넓은 스펙트럼을 이룬다면, 고가니 저가니 하는 지적은 암묵적인 하나의 명제를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기준’이 되는 가치가 있다는 것. 권장소비자가격 역할을 하는 기준가치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이다. ‘가치’를 부동산 같은 자산의 내재적이고 본질적인 절대값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시장에서 적정한 가격과 가치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감정평가를 함에 있어 등장한 ‘기준가치’는 감정평가의 기준이 되는 가치로 정의되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기준으로 삼았단 말인가. 시장에 몸을 맡긴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대상 물건의 감정평가액은 시장가치를 기준으로 결정한다’는 규정(「감정평가에 관한 규칙」제5조 1항)은 ‘기준가치’를 ‘시장가치’로 하겠다는 선언이다. ‘통상적인 시장에서 충분한 기간 동안 거래를 위하여 공개된 후 그 대상물건의 내용에 정통한 당사자 사이에 신중하고 자발적인 거래가 있을 경우 성립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인정되는 대상물건의 가액(價額)’이라면 적정한 가격으로 볼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으로 보고 이를 ‘시장가치’로 정의했다. 

‘시장’이라는 단어 이면에는 거래될 만한 시장이 없거나 거래할 성질의 것이 아닌 물건은 다른 대안을 찾으라는 요구가 담겨 있다. ‘기준가치’를 ‘시장가치’ 외의 것 중 적합한 것으로 대체해야 할 경우도 있다는 말. 물론 이런 경우는 예외적일 것이고, 대부분 시장가치를 도출하는 목적으로 감정평가를 수행한다. 요즘은 감정평가에도 ‘정식’이니 ‘약식’이니 하는 말을 사용한다. 시장가치를 추계하는데 X-ray로 충분한지 MRI검사까지 마칠지에 대한 구분으로 이해하면 된다. 대부분의 약식평가는 ‘공동주택가격자문’의 형태로 수행되며 아파트, 다세대, 연립 등 공동주택에 한정된다. 매매사례가 풍부하고 매물검색도 용이하며 지역별로 대략 가격이 어느 정도 수준이라는 감(感)이 드는 물건들이다. 하다못해 진솔하게 공인중개사무소에 음료수 한 박스 들고가거나 가장(假裝)매수인 형태로 중개사무소에 들러 슬쩍 매물동향을 파악하는 일로, 적정한 가격대는 추려지기 때문이다. 

감정평가함에 있어 기준을 이렇게 삼았지만, 의뢰자 및 평가자 면면에 따라 기준선이 흔들릴 때가 발생하니 문제다. ‘시장가치’에 대한 이해가 실무자마다 조금씩 다른 것도 감안해야 한다. ‘현재의 가격’이냐, ‘아름다워 보이는 가격’이냐로 견해가 나뉘기도 한다. 또 의뢰자에 따른 평가 결과의 기울어짐 현상은 윤리성, 공정성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잊을만하면 나오는 부실평가나 위법한 평가는, 배의 평형수를 제대로 안 채워 한쪽으로 급격하게 쏠리면서 좌초되는 상황을 자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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