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29)
상태바
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29)
  • 신종범
  • 승인 2015.06.12 1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법정 예의

 

 

 

 

 

 

신종범 법무법인 더 펌(The Firm)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소송수행자로 국가를 대리하여 처음으로 법정에 갔을 때 일이다. 지정된 내 사건 시간 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진행 중인 법정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변호사석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나이 지긋하신 변호사님께서 법정 문을 열고 들어오시면서 법대를 향해 고개를 깊이 숙이시더니 내 옆에 앉으시며 필자에게도 가볍게 목례를 하셨다. 그 변호사님의 인사에 첫 사건 변론으로 잔뜩 긴장하고 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 변호사님 사건이 먼저 지정되어 있어 변론을 지켜볼 수 있었다.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을 차분하게 이야기 하고, 상대방 변호사의 반박도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경청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이후 법원에 가게 되면 법정에 들어가고 나올 때 법대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옆 자리의 다른 변호사나 상대방 변호사에게도 먼저 인사를 건네게 되었다. 물론 재판부의 재판 진행에 불만이 있을 때나 상대방 변호사가 사실이 아닌 주장을 하는 경우에는 가끔씩 생까기(비속어가 아니다)도 하지만 말이다. 

법정에 들어서며 법대에 인사하는 것은 자기 사건을 잘 봐달라는 판사에 대한 아부가 아니라 공정한 잣대로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길 바라는 사법부의 권위에 대한 예의이고, 법정에 함께 하고 있는 변호사에 대한 인사는 사법 정의를 함께 구현해 나가는 동료에 대한 예의이며, 상대방 변호사의 주장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것은 합리적 변론을 거쳐야 합당한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사법 절차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이러한 법정에서의 예의는 대리인 없이 본인이 직접 소송을 하는 분들께는 사실 기대하기 어렵다. 분쟁에 있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해 마지막 수단으로 “법대로 하자”를 외치며 찾아온 곳이 법정이고, 상대방과 직접 맞서 싸워 이겨야 하는 마당에 한가롭게 예의를 지킬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법정에서 서로의 감정을 드러내며 당사자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하지만 대리인으로 선임된 변호사는 다르다. 변호사는 분쟁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변호사가 사건을 대리하는 경우 법정은 싸움판이 아니라 토론의 장이 될 수 있고, 상대방은 적이 아니라 반론자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우리는 변호사에게 의뢰인의 이익을 최대한 대변하면서도 법정 예의를 지킬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법정 예의가 무엇인지 학교나 사법연수원에서 별도의 과정으로 배운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사법연수원 시절에 법원 소속 어느 교수님으로부터 "준비서면에 주장과 입증 대신 상대방에 대해 비난을 하고, 상대방 주장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무조건 틀렸다고 기재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에도 어긋나는 것이고, 재판부의 판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국가를 대리하여 소송을 수행하고, 변호사로 의뢰인을 대리하면서 지정된 기일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준비서면은 최소한 기일 1주전에는 제출하여야 하며, 변론시 쟁점에 대한 주장과 입증은 명확히 하되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감정적 발언은 하지 않고, 상대방의 주장을 경청하고 그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반박해야 한다는 것 등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변호사들이 대리하는 사건들은 대부분은 이와 같은 것들이 지켜지는 가운데 분쟁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 변호사 수가 많아지면서 예의에 어긋나는 상대방 변호사의 행위에 간혹 마음이 불편해 지는 경우가 있다. 이미 합의하에 지정된 기일을 불과 몇일 앞두고 변경 신청하는 경우, 기일이나 기일 하루전에야 준비서면을 제출하는 경우, 변론시 상대방 변호사의 말을 끊거나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경우 등이다. 어떤 변호사는 변론을 종결하는 날 불출석하였다가 변론이 종결되자 기일을 착각하였다고 하면서 변론재개를 요청한 경우도 있었다. 물론 재판부에서 받아들여주지 않았지만 말이다. 경험한 바로는 상대방 변호사로부터 준비서면을 받았는데 그 내용이 필자가 주장한 것에 대한 논리적 반박은 찾아볼 수 없고 무조건 ‘허무맹랑한 주장’, ‘얼토당토아니한 주장’, ‘독자적 주장’, ‘법률적 근거 없는 주장’ 등으로 표현된 것을 보았을 때 가장 마음이 불편했었다. 마음은 불편하지만 그런 하수가 상대방 대리인인 경우 재판의 결과는 항상 좋을 수 밖에 없다. 

사법 절차에 참여하는 사람들 특히, 대다수 국민들을 대리하게 되는 변호사들이 법정 예의를 지켜나갈 때 법정은 싸움터가 아닌 건전한 토론장으로, 새로운 분쟁의 싹을 틔우는 곳이 아닌 화해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변호사가 되는 과정에 법정 예의에 관한 교육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만약 없다면 그 교육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필자 또한 사건을 대리하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