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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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28)
  • 신종범
  • 승인 2015.05.2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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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참여권

신종범 법무법인 더 펌(The Firm)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변호사를 하면서 꺼려지게 되는 일 중 하나가 의뢰인이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을 때 변호인으로 참여하는 일이다. 시간을 많이 소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수사기관에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눈치가 보이고 명색이 변호사인데 피의자가 신문을 받는 동안 똑같이 범인으로 조사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대부분 기소된 이후에 변호사를 선임하여 변호사가 수사단계부터 개입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았고, 수사단계에서 변호사가 선임되더라도 변호사가 피의자 신문시 참여할 수 있는 것인지 조차 알 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서는 수사단계에서부터 변호사를 선임할 뿐만 아니라 수사기관의 조사에 변호인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 당연시 되어 가고 있다. 변호사로서 편한 것만 따지면 썩 내키지는 않은 현상이지만 변호사가 어떤 일을 해야하는 사람인지를 생각해 보면 당연히 해야할 일이다. 더욱이 아직도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이 존재하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말이다. 

최근 강기훈씨의 유서대필 관련 재심사건에서 무죄의 확정 판결이 있었다. 강기훈 씨는 무려 24년 만에 동지의 자살을 부추긴 파렴치한 인간이라는 누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당시의 수사가 어떻게 시작되어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 그리고 이제는 법조인으로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당시에는 집회 장소 근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연행이 되었고, 연행이 되면서도 왜 연행이 되는지 알 수도 없었으며 지금은 누구나 알고 있는 ‘미란다 원칙’이라는 것은 무슨 음료수 이름인 것처럼 치부되었다. 당연히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으면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상상 조차할 수 없었다. 그 후 수 많은 사람들의 피의 댓가로 이 나라에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고 우리는 그 과실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우리 주변의 누군가가 그의 가족도 모르게 국가권력에 의해 불법으로 체포·감금되고 고문을 받는 상황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온전히 자유와 법치를 누릴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을까? 

한 동안은 이제 우리도 그러한 단계에 접어 들었다고 생각했다. 군검찰관으로 재직하면서 수사절차에서 피의자의 인권이 보장되고 적법절차가 준수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고 변호사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법치주의가 뿌리 내렸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이러한 생각이 무너지고 마는 사건을 겪어야만 했다. 

지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문의를 받았다. 지인이 알고 지내는 A가 경찰서로부터 참고인 조사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수사기관에 조사를 받으러 가는 것이 처음이고 이미 조사를 받은 다른 참고인으로부터 경찰이 너무 강압적으로 수사를 하여 무서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해야할지 두렵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필자에게 참고인 조사에 참여하여 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이전에 피의자 신문에 변호인으로 참여한 적은 여러차례 있었지만 참고인 조사에 참여한 적은 없어 어떻게 해야할지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피의자 신문에 변호인 참여가 가능한 이상 참고인 조사시 변호인이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참고인 조사시에도 변호인의 참여를 허용하는 훈령(변호인 접견·참여 등 규칙)을 만들었다는 경찰청의 홍보기사도 생각이 나서 혼쾌히 참여하겠다고 하였다. 그 후 통지된 참고인 조사 일자에 A와 함께 경찰서를 방문하여 선임서를 제출하고 참고인 조사시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경찰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담당경찰은 A를 필자와 분리하여 다른 조사실로 부르더니 한동안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한참을 기다리다 담당경찰을 불러 왜 참고인을 변호인과 분리하여 조사를 하느냐고 항의하자 담당경찰은 오히려 수사를 방해하는 것이냐며 화를 내었다. 필자는 어이가 없어 담당경찰에게 변호인의 참여권을 침해하고 있으니 즉시 시정을 하지 않으면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겠다고 하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참고인 조사에 응할 수 없다고 하면서 A와 함께 귀가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담당경찰은 당황하며 변호인 참여하에 조사를 하겠다고 하면서 조사를 진행하였다. 나중에 A에게 물어보니 담당경찰이 변호인은 어떻게 선임하였는지 물어보더니 조사에 성실히 응하지 않으면 하고 있는 일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그날 최대한 진정을 하면서 조사에 참여하였지만 아직도 이러한 불법적인 수사관행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서울변호사협회로부터 온 메일을 보니 필자처럼 경찰로부터 변호인 참여권을 침해받은 사례가 여럿 있었음을 확인하게 되면서 수사기관이 이제는 교과서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인권을 보장하고 적법절차를 준수하고 있을 것이라 믿었던 필자가 너무나 순진하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경찰은 참고인에게도 변호인 참여를 보장하는 규칙을 제정하였다고 하면서 경찰이 인권보장을 위해 앞장 서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였었다. 그러나, 변호인으로 참여해 보면 현장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경찰이 수사권 독립을 주장하지만 검찰의 수사지휘를 받지 않아도 경찰 스스로 인권 보장과 적법절차를 준수하고 있는지 먼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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