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덕윤의 언어논리 이야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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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윤의 언어논리 이야기(6)
  • 문덕윤
  • 승인 2015.05.2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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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윤
베리타스 PSAT 언어논리 전임

학생들과 개별 면담을 할 때 저는 시험지를 챙겨오라고 합니다. 시험지에 문제를 풀이한 흔적을 보면 사람의 사고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언어논리를 단순하게 점수 올리기를 위한 스킬로 생각할 때 쉽게 놓치는 부분이 “사람의 시각”입니다. 습관적으로 종이 위에 쓰인 것은 지식이고, 이걸 빨리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 안에 얼마나 빨리 읽느냐, 그래서 나에게 얼마나 익숙한 내용인가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렇게 이해할 때, 지문은 그냥 “지식”으로 받아들여질 것이고, 여기서 중요한 사람은 글쓴이가 아닌 “나”가 됩니다. 쉽게 얘기해서 지문을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해서 읽기 쉽습니다. 자, 이 지점에서 우리가 읽어야 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지문에서는 글쓴이가 “주체”입니다. 여러분은 글쓴이의 생각을 옆에서 듣고 있는 “관찰자”입니다. 그리고 시험지라는 광장에서 출제자가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위 글로 미루어 볼 때”, 즉 글쓴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입니다. 그래서 관찰자에게는 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일관성 있는 정답의 도출을 위해서 철저하게 글쓴이의 관점에서 생각을 따라가야 하는 겁니다. 글쓴이가 만들어 놓은 구조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읽기법이 달라집니다. 그럼, 핵술관계와 대비관계에 따라서 독자의 시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연습해 봅시다.

Code No.4 핵술관계와 대비관계 – 지문의 구조에 따라 읽기법이 달라진다.

핵술관계와 대비관계는 두 개의 개념이 나와 있기 때문에 언뜻 보았을 때는 비슷해 보이지만, 설정 자체가 매우 다른 구성이다. 제한시간 내에 논의의 구조를 빠르게 잡아야 할 때라면 핵술관계에서 ‘술’에 해당하는 예시, 인용, 유추, 상술, 부연 등은 모두 괄호 등으로 축약하여 읽어도 된다. 반면에 대비관계에서는 한 개념이 다른 개념을 흡수할 수 없다. 힘이 대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비관계에서는 속성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지난 시간에 보여주었던 그림을 다시 한 번 참고하여 머릿속에 기준을 명확하게 하고 예제로 들어가자.

[예제] 다음 지문을 구조독해하시오. (지문의 문맥을 감안하여 정확한 밑줄을 그어보시오.)

20세기에 들어와서, 영국의 철학자 러셀은 국민 개개인의 절대적 권리보다는 탁월한 지도자를 선택하는 계약 당사자로서의 국민의 자질을 강조하였다. 즉 아무리 국민이 민주적이며 자발적으로 지도자를 선택해서 선출한다고 해도, 지도자가 명령을 내리고 일반 국민이 이에 따르는 한에서는, 권력 관계의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이상은 현실적으로 훼손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이런 한계 속에서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의 적절한 자질이 중요하다고 러셀은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일단 선택된 지도자의 결정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태도나, 반대로 소수의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태도 모두를 지양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지도자를 선택한 이후에도 모든 것을 지도자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다수결을 통해 지도자의 결정에 대한 수용과 비판의 지속적인 태도를 보여 주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지도자나 국민 모두 회의주의나 극단주의에 경도되는 것을 경계해야 민주 국가에서 지도자와 국민의 바람직한 관계가 가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지문은 핵술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핵”에 해당하는 개념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선 관점의 주체로 러셀이 보인다. 러셀의 관점을 타라고 지시하고 있으므로, 이럴 때는 세모를 사용하여 기준을 명확하게 세워 두고 읽으면, 일관성 있게 독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핵”이 무엇일까? 계약당사자로서의 국민의 자질이고, 여기서 계약 당사자로서 국민의 자질이란 수용과 비판의 지속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주변의 다른 정보들은 술로 묶여, 핵에 포섭된다. 구조독해를 제대로 했다면 다음과 같은 밑줄이 나올 것이다.

그럼 지문을 하나 더 읽어보자. 그리고 위 지문과 같은 구성인지 판단해 보도록 하겠다.

조선 후기 역사학에서 정통론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홍여하(洪汝河)의 동국통감제강에서였다. 이는 17세기 중엽, 명․청 교체라는 동아시아 ‘천하’ 질서의 근본적 동요에 따라 중국 대륙에서 중화(中華)가 공석이 되었다는 의식과 함께, 주자학을 수용하여 도학을 밝힌 조선이 이제 소중화(小中華)로서 중화를 대위(代位)한다는 각성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이러한 소중화 의식은 효종 대의 북벌론을 사상적․정치적으로 지지하면서 점차 조선 사회에서 보편화되었다. 다수의 노론 계통 사상가들도 화이(華夷)의 구분은 지리 경계나 종족에 있지 않다고 보면서, ‘오늘날에는 우리가 중화’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처럼 주자에 의해 확립되고 조선 왕조에서도 그 동안 굳게 신봉되었던 화이관, 즉 중국 강역에서만 그리고 중국족에 의해서만 ‘화(華)’가 성립될 수 있다는 전통적인 화이관은 크게 변질되었다. 나아가 중국 밖에서도, 비중국족에 의해서도 화가 성립될 수 있다는 인식은 문화 중심 화이론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역사 인식에서 보면 ‘존조선(尊朝鮮)’ 의식의 성립, 강목체(綱目體) 서술의 강화, 그리고 정통론(正統論)의 조선사 적용 등이 그 반영이었다.

이익(李瀷)은 바로 그와 같은 역사 인식을 계승하면서 더욱 논리적으로 체계화하고 질적으로 심화시켰다. 그는 우선 “지금의 중국은 대지 중의 한 조각 땅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하여, 전통적 화이관의 대들보였던 중국 중심의 ‘천하’ 사상을 분쇄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나라는 중국 중심의 ‘천하’에 소속된 존재가 아니라, 각기 하나의 독자적 유기체를 이루고 있다고 인식하게 된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중국 중심 천하관, 즉 유일한 ‘천하’로서의 ‘중국 천하’는 병렬된 개별 국가로 분절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조선은 하나의 독립된 ‘역사적 세계’였다. 여기에서 이익의 ‘삼한 정통론’이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정통론의 적용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이익의 정통론이 북벌론자들이나 노론 계열의 그것과 크게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후자는 중화의 현실적인 대위라는 ‘존아적 자기 인식’에서 발로된 것이었을 뿐 중국 중심의 ‘천하’ 의식은 여전했던 데 반해, 전자는 하나의 독립된 역사적 세계로서의 조선 인식에 기초한 것이었다. 즉 이익은 중국 중심 ‘천하’의 부정을 전제로 조선의 독자성에 대한 인식에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후자는 예악(禮樂)을 기준으로 하되 조선만을 소화 내지 중화로 보았던 데 반해, 이익은 예악이 요(遼)․금(金)․원(元) 등 만리장성 바깥에서도 성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이해했다. 다시 말해 이익은 중국족의 습속까지 예악에 포함시켰던 노론 계열의 소화 의식과는 달리, 예악을 유교적인 학문과 제도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였느냐에 한정하여 그 성립 기준을 완화하였다.

자, 같은 구성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 지문은 대비관계이다. 이익의 삼한 정통론이 북벌, 노론 계열 정통론자들의 생각에 완벽하게 포섭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을 상위-하위 개념관계에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지문의 문맥을 읽기 위해서 우리가 주목해야 되는 부분은 공통점과 차이점이다.

[예제] 위 글에서 노론․북벌 계열의 정통론자들과 이익의 사상을 비교 대조하시오.

관점

노론․북벌 계열 정통론자

이익(삼한 정통론)

공통점

 

차이점

 

 

 

 

정확하게 정리했는지 확인해 보자. 공통점-차이점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합의점과 쟁점을 잡아내는 작업이 중요하다. 우선, 쟁점부터 확인해 보자. 두 관점이 보고 있는 대상을 추려내 보면 쟁점이 나온다. 쟁점은 “천하”와 “예악”이다. 합의점이 보이는가? 합의점은 “문화 중심 화이론”이다. 이 글의 제일 마지막에 정답을 붙여두겠다. 본인이 작성한 표와 비교해 보면, 이 지문의 대비관계를 제대로 읽었는지 스스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문제를 하나 가볍게 풀어보는 것으로 마무리해보자.

[문제] 위 글에서 제시한 정통론의 유형 분류 기준에 따를 때, ‘천하’에 대한 관점이 다른 것은?

①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어찌 내외의 구분이 있겠는가. 이러한 까닭에 각기 자기 사람들을 친숙하게 여기고 자기 임금을 높이며 자기 나라를 지키고 자기 풍속에 편안해 하는 것이니, 화와 이는 한 가지인 것이다.

② 내 생각으로는 이른바 중국이란 것이 어찌하여 중(中)이 되는지를 모르겠고, 이른바 동국이란 것이 어찌하여 동(東)이 되는지를 모르겠다. 대저 이미 동서남북의 가운데라면 어느 곳이나 중국 아닌 곳이 없을 것이니, 동국이란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③ 어찌 유독 중화에만 군주가 있을 것이며, 어찌 이적(夷狄)에는 군주가 없겠는가. 천지는 넓고 넓어 한 사람이 홀로 주인 노릇 할 수 없으며, 우주는 광대하니 한 사람이 오로지 할 바가 아닌 것이다. 천하는 곧 천하인의 천하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다.

④ 비록 이적의 사람들이라도 이적의 행동거지를 버리고, 중국의 도를 사모하고, 중국의 옷을 입고, 중국말을 하고, 중국의 행위를 할 수 있다면 이 역시 중국일 뿐이다. 지금 우리 조선만이 주자학을 종주로 삼고 있으니, 주례(周禮)가 노(魯)에 있는 격이다.

⑤ 중국인은 중국을 정계(正界)로 여기고 서양을 도계(倒界)로 여긴다. 서양인은 서양을 정계로 여기고 중국을 도계로 여긴다. 그러나 하늘 아래 땅을 밟은 이상, 다들 처한 곳에 따라 정계라고 하는바, 횡계(橫界)도 도계도 없으며 모두 다 같은 정계인 것이다.

정답 : ④

첫 번째 쟁점인 “천하”에 대한 해석 차이를 묻는 문제이다. 나머지 선택지들은 모두 병렬된 독립 국가들의 “수평적 천하관”을 표현한 것인 반면, 4번 선택지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수직적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문제는 지문의 구조를 일관성 있게 구현하고 있다. 따라서 문제 해결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지문의 구조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다음 시간에는 세 번째 관계코드인 “나열관계”를 다루도록 하겠다.

 

노론․북벌 계열 정통론자

이익(삼한 정통론)

공통점

문화중심 화이론

차이점

수직적 세계관

(수직적 천하관, 소중화의식)

수평적 세계관

(병렬된 독립 국가)

엄격한 기준

(중국족의 습속대로 예악을 지켜야 한다)

완화된 기준

(습속까지 바꿀 것 없이 객관적으로 유교식 제도를 받아들이면 된다)

조선

조선, 요, 금, 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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