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 '공감'(46)-[ TED 전기수-선택에 대한 해로운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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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공감'(46)-[ TED 전기수-선택에 대한 해로운 집착]
  • 이유진
  • 승인 2015.05.2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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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KG패스원 국어

시험이 다가올수록 공부 자체보다 수험생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일까?’, ‘이 길이 옳은 것일까?’, ‘실패하면 어쩌지?’와 같은 고민들입니다. 공무원이 되려는 강한 열망으로 공부를 시작한 사람들보다, 일종의 도피로 이 길을 선택한 경우에 더 고민이 심각한 경우가 많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떠밀린 선택을 한 경우’ 말입니다.

저는 일단 어떤 이유로든 이미 수험생이 되기로 결정을 내렸다면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주제의 글을 여러 번 썼습니다. 모두가 어깨에 짐을 지고 뛸 때 짐을 내려놓고 뛰면 더 빨리 결승점에 닿을 수 있듯이, 의심과 후회와 모든 부정적인 상상을 버리는 것,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것에 앞서, 자신의 선택을 정말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게 한 강연이 있습니다. 리나타 샬레클(Renata Salecl)의 강연인 ‘선택에 관한 해로운 집착’을 전해 드릴게요.

이유진 강사와 공무원국어에 대해서 더 깊이 공감하고 싶다면 이유진강사 카페:http://cafe.daum.net/naraeyoujin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세요^^

“‘선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롭게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우리는 ‘선택’과 더불어 끝없이 진보하게 될 거라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항상 죄책감, 부적절하다는 느낌,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낍니다. 슬프게도 이것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사상가가 되어야 하는 우리를 아주 효과적으로 억압합니다. 우리는 종종 사회를 비판해야 하는 상황에도 자신의 탓을 하며 자기비판에 빠져들죠. 몹시 가난해서 ‘선택’을 할 기회가 없는 사람들마저도 자신이 스스로 한 선택과 어쩔 수 없이 수용한 선택을 구별하지 못하고 자신을 탓합니다.

‘선택’은 미래를 고찰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제 친구 마냐는 자동차 거래상으로 일했습니다. 그녀는 고객과 만났을 때, 차 구입에 돈을 얼마나 쓸 것인지, 자녀가 몇 명 있는지, 무엇 때문에 차가 필요한지 등을 상담했습니다. 그리고 고객과 함께 어떤 차가 그에게 가장 완벽한 차일지, 적절한 결론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고객이 최종적으로 마음을 굳히기 전에, 마냐는 그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지금 사는 차는 완벽합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 당신의 아이들이 독립을 해서 약간의 여유가 생긴다면 다른 차가 이상적이겠죠. 그러나 지금 당신이 사는 차는 지금의 당신에게 최고입니다.”

자, 이 말을 들은 대다수의 고객들은 다음날 다시 와서 전날 사려던 차와 다른 차를 삽니다. 그가 필요했던 차보다 훨씬 비싼, 지금 당장은 필요가 없는 차를 말이죠. 결국 마냐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마냐의 비결은 그들이 이상적인 미래를 상상하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더 성공하고 더 자유로워질 때의 이미지이죠. 그리고 그들이 다른 차를 선택하는 것이 마치 그들이 꿈꾸던 것에 가까워지는 일처럼 느껴진다는 것을 마냐가 꿰뚫어보았던 것이죠.

우리는 실로 온전하고 이성적인 선택을 잘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택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추측하며 선택을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을 보고 선택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무엇이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선택인지 고민합니다. 우리는 이런 다양한 기준들 때문에 이미 차를 구입한 뒤에도 차에 대한 평가를 한없이 읽고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에게 이해시키려 하죠. 우리는 옳은 결정을 했다고.

<중략>

저는 이 사회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우리는 왜 여전히 자본주의 초기에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사상을 수용하고 있는가’라는 것이죠. 우리는 왜 자신이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하지 못할까요? 저는 몹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 증세를 지지하지 않는 것에 충격을 받습니다. 그들은 내 자식이 미래의 빌 게이츠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자녀에게 과세를 하는 것을 꺼리는 것이죠. 때때로 그들은 자신들이 수용하지 않고 거부하는 것이 선택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 그들은 자신을 위해 얻은 것이 없습니다.

마거릿 대처는 ‘사회 같은 것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오직 개인과 개인의 가족만이 존재할 뿐이죠.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를 탓하지 않고 자신의 가난을 부끄럽게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옳은 결정을 내리지 못해왔다고 끝없는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모자라다고 걱정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결국 성공하지 못합니다. 선택의 무게가 두려워서 선택의 힘을 쉽게 이양하기도 하죠. 우리는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해주는 영적 스승을 찾으려 들고, 그들의 선택을 자신의 선택이라고 착각합니다. 또한 위험천만하게도 선택에 대해 한 치의 의문도 없이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근거 없는 확신으로 위장한 전체주의 지도자를 수용합니다.

저는 선택에 대해 생각할 때, 선택을 너무 진지하거나 개인적으로 여기는 것부터 멈춥니다. 저는 제가 하는 많은 선택이 합리적이지 않음을 인정합니다. 선택은 그저 다른 이들이 선택하는 것을 참고하여 산출된, 무엇이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선택인가에 대한 제 추측일 뿐이죠. 저는 개인의 선택을 넘어 사회적 선택을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한 것을 선택할 때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공동의 선택에 대해서는 거의 고려하지 않죠.

자, 우리는 선택이 언제나 변화와 연결되어 있음을 잊어선 안 됩니다. 우리는 개인의 변화를 창출할 수 있지만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벌’이 살 수 있도록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변화를 만들어 낼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 대다수는 무엇인가에 떠밀려 공부를 시작하셨을 것입니다.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당한 것이죠. 그러면서도 이런 현실을 만든 사회에 분노하기보다 이런 처지에 놓인 자신을 탓하며 끝없이 자존감을 훼손하고 있어요. 멱살을 잡고 따질 사회라는 존재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대상을 잃은 분노는 자기 자신으로 향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끝없이 자신을 원망하면 이 힘든 수험 생활을 이겨나가실 수가 없습니다. 생각을 바꾸세요. 여러분은 보다 나은 국가,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 길을 걸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렇게 선택을 강요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금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과 소중한 사람들의 삶을 더욱 풍족하게 만들 수 있는 길을 찾으시다가 이 길을 선택하고 지금 걷고 있는 거예요.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를 고민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이 길을 의심하셔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여러분의 ‘훌륭한 선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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