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43)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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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43)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광주
  • 차근욱
  • 승인 2015.05.2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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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5월의 무게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특히 광주의 5월은 공기가 다르다. 대한민국의 그 어느 누구도 5월에는 광주에 빚을 지고 있다고,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5월의 광주는 더욱 살갑다.

광주는 개인적으로 많은 인연이 있어 늘 정겹다. 작년 초부터 계속해서 매주 주말이면 수업차 광주에 가고 있는데, 예향(藝鄕)이자 의향(義鄕)인 광주는 그 전통이 학생들에게서도 느껴질 때가 많다. 수업에 임하는 열정이라던가 시험을 준비하는 태도라던가 사람들간의 예절도 새삼 ‘다르다’라는 느낌. 게다가 서울에서 한 주를 보내고 지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무렵, 주말에 광주를 향해서 출발할 때면 그야말로 홀가분한 기분이 들어 즐겁달까. 뭐, 거리가 거리인만큼 이동으로 인한 피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광주로 가는 길은 즐겁다.

수업차 이곳 저곳을 다녀본 경험에 따르면, 광주의 맛을 압도하는 지역은 아직 가보지 못했다. 내가 그다지 비싼 고급요리를 먹어보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서민적인 음식을 기준으로 해서는 뭐, 그렇다. 소박하지만 풍성하고 맛깔스러운 솜씨는 대한민국 중에서도 광주가 단연 으뜸이랄까.

광주를 기억하게 하는 것은 음식 뿐만은 아니다. 내 기억 속의 광주는 꽃이 한껏 피어난 아름다운 도시다. 아기자기한 정성이 도시 곳곳에 닿아 있기에 이곳 저곳의 꽃들이 참 곱다는 생각을 했었다. 꽃이 한껏 피어난 광주의 거리를 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봄’이다.

광주에서는 작은 것에도 뭔가 재치가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 무등산에 가는 버스로 무등산 정상까지의 높이를 딴 1187번이 있고, 광주 민주화 운동의 성지를 지나는 518버스가 있을 뿐만 아니라, 4·19항쟁이 처음 일어났던 고등학교를 가는 419버스도 있다. 뭐, 이미 알고 계셨던 분들이야 ‘에이.. 그게 뭐야...’라면서 시시해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지난 여름 이 버스번호와 노선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다. 이 정도로 역사와 긍지를 담아내는 자부심은 정말 쿨하다는 느낌이었거든.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도 그런 마음과 정성들이 느껴지곤 할 때면 잔잔한 미소가 지어졌었다.

광주엔 반가운 분들이 계시기에 더 정겨운데, 대표적으로는 광주에 계시는 이정 원장님께서 그런 분이시랄까. 사람 좋고 정많다, 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정 원장님께서는 늘 교육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시기에 항상 곁에서 뵐 때마다 많은 것을 배운다. 물론, 광주 이정 원장님께서 그토록 맛있는 연포탕을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게 해 주셨기 때문에 아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말입니다, 원장님.

평생교육사를 취득하신 후, 평생을 교육자로서의 길만을 걸어오신 이정 원장님은 뚝심의 사나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겉으로 뵐 때는 항상 둥글둥글 웃으시면서 너그러우신 분이시지만 항상 새로운 변화를 통해 답을 찾아 내시는 승부사이시다. 이러한 점은 학생들과의 큰 신뢰로 이어져, 광주에서는 고민이 있을 때면 학생들이 직접 원장님을 찾아 뵙고 상담을 하는 모습이 낮설지 않다. 학생들이 고민이 있다고 해서 스스럼없이 원장님을 찾아뵙는 모습이 처음에는 신기했는데, 차차 원장님을 뵈면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원장님의 리더십은 한 가지 입장이나 생각만을 강요하시기 보다는 일단 상대의 입장을 먼저 이해하고자 하시는 모습에서 인상적이었는데, 원장님을 뵈면서 평소의 난 얼마나 상대의 입장에 서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배려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인생에는 늘 고수를 만나기 마련이니, 이정 원장님을 뵈면서도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곤 한다.

광주의 가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소는 전남대학교이다. 전남대학교는 그야말로 전통과 멋이 살아있는 명문대학인데, 교문을 지나 캠퍼스를 걷다보면 저절로 그런 느낌이 든다. 고풍스런 건물도 그렇고 싱그러운 공기도 그렇고. 전남대학교의 사계는 모두 아름답지만 가을의 전남대학교가 유독 뇌리에 벽화처럼 남은 이유는 지난 가을, 전남대학교 운동장을 한없이 뛰었던 탓이다. 수업이 끝난 다음에는 늦더라도 상쾌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전남대학교 트랙을 지칠 때까지 뛰었는데, 전남대학교에는 개성있는 뛸 공간이 여러 곳 있어서 특히 좋았다.

5월 즈음에는 학생들이 운동회 비슷한 달리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생동하는 느낌과 순수한 우정이 진하게 느껴져서 달리는 학생들과 응원하는 학생들을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았다. 만일 어딘가 달릴 트랙을 찾고 계신 분이 있으시다면 전남대학교 트랙을 강추하고 싶습니다. 필드도 시원 시원한데다가 트랙 근처에는 철봉까지 있어 일석이조거든요. 달리는 중간 중간 턱걸이를 하는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니까 말이지요.

광주의 겨울은 차분하고 진지한 느낌이었다. 수험가에서 강의를 하는 직업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겨울의 광주를 마주하고 있자니 차분히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진중함이 느껴졌다. 지난 겨울, 광주를 걸으며 느꼈던 것은 개발이 조금만 더 가속화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었다. 마침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잠시 시간이 나서 광주의 낮선 거리를 그냥 정처없이 걸어봤었는데, 그 때 광주는 광역시임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건물이나 규모의 면에서 변화가 좀 더디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에서 광주가 차지하는 위상이나 역할을 고려하면 조금 더 광주가 메트로시티로서 거듭나면 좋겠다라는 소박한 바램을 갖게 된 계기였달까. 물론, 꼭 도시가 거대해지고 고층빌딩이 들어서는 것만이 발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광주도 충분히 아름답기에, 이 아름다움이 파괴되지 않으면서도 조금 더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하면 좋겠다는, 그런 광주사랑의 마음을 겨울 속 광주 거리를 걸으며 느꼈다.

광주를 매주 가는 입장에서는 최근 KTX 고속철 개통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일단 티켓이 아주 저렴하게 책정되지는 않은 부분과 광주 송정역에서만 KTX를 탈 수 있기 때문에 종전의 광주역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입장에서는 좀 아쉬움이 있다. 광주역하고 광주 송정역간의 거리는 제법 멀거든.

뉴스를 보아하니 안전성에 대해서도 조금만 더 신경을 써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이런 저런면에서 이번 KTX정책에 대해서는 역시 조금만 더 고민해 주셨으면 좋았을텐데, 싶었다. 뭐, KTX의 좌석이 너무 좁다는 것부터 시작한 불만은 처음부터 있어 왔지만.

조금 엉뚱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는데, 사실 광주로 이동할 때의 교통편은 대부분 우등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편이다. KTX를 왜 안타느냐고 의아해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빠른 것은 좋지만 개인적으로 KTX의 좌석은 너무 좁아서 이동시간 내내 벌서는 기분이 들 정도다. 잠을 잘 수도 없고 원고작업을 할 수도 없는 공간인데다가. 무릎은 컵 받침대에 자주 찍혀서 다치기가 일쑤고 선반에 머리를 부딫히는 일도 잦다. 그렇게 KTX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다리를 절룩거리며 땀에 젖은 몸을 추슬러야 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조금 늦더라도 고속버스를 이용한다. 그냥 의자를 쭉 뒤로 하고 잠들 수 있으니까.

물론, 고속버스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날이 좋거나 연휴가 이어지면 고속버스의 이동시간은 갑자기 몇 배가 되곤 하니까. 최근에는 서울에서 광주까지 이동하는데 7시간이 걸렸고, 전에는 8시간도 넘게 걸린 적이 있다. 그러니 연휴가 있거나 날씨가 좋은 주말이면 늘 기차를 탈지 버스를 탈지 고민을 하곤 한다. 그래도 KTX만큼은 피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지만.

지난 주에는 기차를 타고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왔는데, 기차의 옆좌석에 우연히 태국 아저씨와 동승을 하게 되었다. 한국어든 영어든 모두 잘 못하셔서 의사소통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태국에 딸 둘에 아들 두 명으로, 4명의 자녀를 두고 있고 우리나라 딸기농장에서 일하시면서 버는 돈은 태국 집에 보내신다는 것까지는 알 수 있었다. 웃는 모습이 굉장히 순박하신 분이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본인의 열차 좌석을 찾지를 못해 내 옆자리에 그냥 앉으신 상태였다.

원래 내 옆자리 표를 가지신 분이 나중에 차를 타시자 이 태국 아저씨는 갑자기 그냥 서서 가려고 했어서, 본인의 좌석을 찾아 드리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었다. 남에 나라에 온 탓인지는 몰라도 뭔가 눈치를 보시는 모습이 참 안스러운 느낌이었는데, 왠지 그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았다. 우리네 사는 일들도 그렇지 않나. 항상 깨지고 치이다 보니 어느샌가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간달까. 짧은 인생, 서로 조금만 더 배려하고 조금만 더 존중하면서 아끼고 사랑하면 좋으련만. 세상 일이 그렇게 마음만 같지는 않아서 섭섭하고 각박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않나. 우리 손으로 앞으로 바꾸어 나아 가야지. 돌아보면 우리 서로가 모두 갑이자 을이고, 우리 모두가 실은 정겹고 살뜰한 이웃들인데.

그건 그렇고, 얼마 전에 광주 이정 원장님께서 쓰러지셔서 입원하셨었다는 말씀을 나중에 들었다. 죄송스럽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지난 주에 뵈었을 때는 살이 쏙 빠지셨달까.

존경하는 이정 원장님, 하지만 정말 턱선이 살아나셨습니다. V라인 이십니다. 슬퍼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좀 고민은 됩니다만, 좌우간 꼭 건강히 오래 오래 만수무강 하십쇼~!!! 진심으로다가 아부는 아니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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