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42) - 개강 is 커밍
상태바
차근욱의 'Radio Bebop'(42) - 개강 is 커밍
  • 차근욱
  • 승인 2015.05.20 1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제목을 다시 한번 읽어보니 홍석천아저씨가 갑자기 떠올라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늘의 주제는 다른 이야기니 일단은 패스. 초등학교시절, 소심한 탓인지 방학의 끝나갈 무렵이면 개학을 앞두고 굉장히 긴장을 하곤 했었는데, 이런 상황은 어른이 되어서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개강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랄까.

개강이 주는 긴장은 제법 크다. 일단 출발이 좋아야 하니까, 개강 때 정말 좋은 수업을 해야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그런 긴장도 없겠지만, 개강을 앞두고 강의 욕심이 앞서는 편이라 역시 긴장되기 마련이다.

강의를 앞두고 삼는 목표는 간단하다. 합격을 위한 강의랄까. 시험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에게 부담과 고생을 조금 줄여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런데, 강의란 것이 대부분 ‘말’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짧게 설명하면서도 쉽게 이해되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은 항상 조심스럽기에.

사실, 공자님께서 ‘말이 많은 사람을 경계하라’고 하신 말씀을 처음 접했을 때는 조금 섭섭했다. ‘말’이 천직인 사람도 있으니까. 뭐, 공자님께서도 선생님이셨고. 그런데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말 많은 사람이 삿되다’라고 하신 공자님의 말씀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경험상, 정말로 말을 앞세우는 사람은 끝이 좋지 않았거든.

지금까지 말이 많은 사람을 보면서 그리 썩 좋아보인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경험은 대표적으로 2번 이었다. 한 번은 군대 후임을 통해서, 한 번은 사기꾼을 만나면서. 군대에서의 후임은 조금 권위적이고 제왕적인 권력을 누리고픈 친구였는데, 물론 나이가 어린 탓도 있었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입장이나 가능성이란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후임의 하급자가 너무 힘들어 하는 것을 보다 못한 상급자들이 그런 부분에 대해 의견을 말해주면 장황한 이야기를 끝도 없이 하곤 했었다. 나중엔 듣고 있는 사람이 지쳐서 ‘그래, 그래 알았다.’라고 말할 정도로. 결국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아랫사람에게 더욱 가혹한 분풀이를 하는 패턴이었어서 나중에는 갈등이 좀 심해지기도 했었다. 폭주하는 이가 얼마나 말을 간사하게 이용하는지를 생각하게 했던 안좋은 경험이었다.

두 번째는 불행하게도 사기꾼을 보았던 경험이었는데, 역시 장황하게 떠들어 요지를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늘어 놓는다. 핵심이 없으니 이야기는 한없이 산만해진다. 질문을 하면 또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알 수 없게 되면 돈을 뜯어낼 생각을 하는 친구였다. 나이는 30이라고 했었는데, 진짜인지는 알 수 없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었으니까. 말이 많고 거짓말만 일삼는 친구들을 보면, 나는 같이 말꼬리를 붙잡고 싸우기 보다는 그냥 피하는 편인지라, 빤히 보이는 말장난을 듣고 있자니 무척이나 불쾌해져서 말을 나누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류를 짚어 내라면 완벽하게 짚어낼 수도 있었지만, 그저 어서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게 하는 친구였달까. 인간을 불신하게 만든 불행한 만남이었다. 생각이 악한 사람에 의해 말이 얼마나 악하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뼈져리게 느꼈으니까.

이 두 경우를 일반화 시킬 수는 없지만, 경험상 말이 많은 사람은 상대를 무시하는 우월감에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대를 존중한다면 말을 자신의 입장에서만 늘어놓지는 않는 법이니까. 결국 말이란 것이 오만한 사람에게는 폭력의 수단이 된다는 것을 배운 셈이다. 그래서 강의를 하거나 상담을 할 때는 늘 조심스럽다. 혹시나 내 말이 폭력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최근에 가슴에 늘 와닿는 격언은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라는 말이다. 잔소리 많은 사람을 좋아할 친구들은 없을 터이니, 더욱 스스로 생활 속에서 말이 많은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물론, 세상을 살아가면서 너무 입을 다물고만 있어도 상대를 불편하게 하겠지만.

좋은 강의와 좋은 대화는 먼저 상대를 존중하는 데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조심스럽게 요점만. 늘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해서 짧게.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해야 한다는 지상과제는 그래서 쉽지 않은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것은, 좋은 수업을 준비해서 최고의 강의효과를 달성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개강날짜를 세고 있노라면 별의별 것이 다 재미있고 관심이 있어지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우선, 갑자기 청소가 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갑자기 영어단어를 외우고 싶어진다던가 대담프로그램까지 관심이 갈 때도 있다. 무언가 비슷하지 않나? 그렇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과 심리구조가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수험생도 시험을 잘 보아야 한다거나, 실수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시험이 다가올수록 시험과목 공부 외의 것이 재미있어지는 것처럼.

개인적으로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갑자기 식욕이 폭발할 때가 있기 때문에 불만족스런 자신의 능력이, 이상적인 수업준비 기준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허기가 지기 시작한다. 개강을 앞두고는 혐오스럽지 않은 외모도 신경써야 할 터인데 그간 봉인되어 있던 먹고 싶던 음식들이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다. 많이 먹으면 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배가 나와서는 안되는 개강의 특성상 허기를 참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는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김훈 선생님의 소설이나 스티븐 킹, 또는 미야베 미유키를 읽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만, 일단 개강이 코 앞이니 종강 이후에나 가능하다며 스스로를 달래 다시 책상에 앉아 수업을 준비하곤 한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긴장하다가도, 수업이 막상 개강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 지면서 즐겁다는 것이다. 학생들과의 만남도 즐겁고 새롭게 알게 된 것, 정성껏 준비한 내용을 설명해 이해를 돕는다는 보람에 행복해 진다. 물론, 장황하지 않게 짧고 확실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긴장은 변함 없지만. 결국 개강 스트레스란, 잘해야 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압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많은 수험생들이 시험을 앞두고 큰 부담에 힘들어 한다. 공부는 안되고 이런 저런 것들은 신경 쓰이고. 정말 온갖 소소한 자극들에 스트레스를 극도로 받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시험장에서 느끼듯, 실제로 출제되는 시험문제들이란 조금만, 아주 조금만 신경쓰고 준비했다면 다 풀 수 있는 평이한 문제가 출제된다. 그래서 시험장에서 나올 때면 다들 ‘조금만 더 열심히 했다면 충분히 더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을 남기곤 하지 않나. 물론 실제로 과제를 접하는 순간보다 과제를 준비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이 더 크다는 느낌은, 시험을 떠나서 어떤 상황의 인생살이에도 똑같은 이야기지만.

이퀄리브리엄의 세계관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기계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공부를 하면서 ‘언제 이걸 다 하나’라는 생각이 들거나 ‘오늘은 정말 책보기 싫다’라는 날이면 어김없이. 아마 세상 대부분의 학생은 다들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르겠지만, 우직하게 매일 매일 꾸준히만 읽어 간다면 분명 끝낼 수 있는 분량이고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데, 심리적으로 잘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압박이 공부하는 과정을 참 힘들게 한다. 결국 합격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조금은 무심한, 우직한 마음과 태도일지도 모른다. 수험생이나 합격생의 실력이야 사실 그리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들 열심히 공부하니까. 당락을 가르는 것은 얼마나 끝까지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지, 얼마나 심리적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는지의 차이일 뿐이지.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알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리고 별 것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느낄 정도의 실력이 되면 정말 쉽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어떤 분야이든 진리란 항상 단순한 것이므로.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네 삶에는 자신을 정말 믿어주어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이 개강이 되었든 시험이 되었든. 항상 본질에 충실하면 그걸로 된 거니까.

개강을 앞두고 자신을 돌아본다. 말은 진실되게, 요지는 간결하게. 그리고 준비는 우직하게. 시험 준비도 그럼 되지 않을까? 알고 모르는 것은 진실하게, 자신이 공부한 내용은 간결하게, 그리고 매일 매일의 태도를 우직하게 한다면 비록 시험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도, 시험 당일이라면 분명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세상 무엇이든, 막상 부딪혀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많으니까. 뭐, 그 맛에 헤쳐나가는게 또 인생아니겠습니까?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