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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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27)
  • 이성진
  • 승인 2015.05.1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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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합의

 

 

 

 

 

 

 

신종범 법무법인 더 펌(The Firm)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변호사를 시작할 초기에는 법리에 밝고 판례를 잘 알고 있다면 유능한 변호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변호사 일을 해 가면서 법리와 판례만 잘 안다고 결코 유능한 변호사가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다양한 분야의 여러 사람들을 알아야 하고, 법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의뢰인이 사건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신뢰감을 갖춰야 하고, 사무실의 다른 변호사나 직원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자세도 있어야 한다. 그 외 다른 것들도 많이 필요하겠지만 사건의 상대방과의 소통 능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 특히, 형사사건의 피고인을 변호하게 될 때는 더욱 그렇다. 

얼마 전 지인 A로부터 밤에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A의 조카 B가 경찰에게 현행범 체포를 당해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왔다는 것이다. A의 이야기는 B가 술을 먹고 지나가다가 한 여성과 부딪혔는데 그 여성이 추행을 당했다고 112에 신고하여 경찰이 출동하여 B가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고 하였다. A로부터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 다음 날 B와 함께 우리 사무실에 방문하여 자세한 이야기를 해 보자고 했다. 다음날 A와 B가 함께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그 사연은 이랬다. B는 집안에서 공부를 잘 하여 서울에 있는 모 대학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의대생이었는데 사건 당일 중간고사를 마치고 낮부터 친구들과 술을 마시게 되었다고 한다. 술 자리는 늦게까지 이어졌고 술에 취한 B는 친구 몇 명과 인근편의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편의점에서 B가 한 여성과 부딪혔다고 한다. B와 부딪힌 여성은 B에게 “어딜 만지냐?” 며 소리를 치고 사과를 요구하였지만 B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실수로 부딪힌건데 왜 그러냐” 며 맞섰다고 한다. 그러자 그 여성은 바로 112에 신고를 하였고 경찰이 와서 B를 현행범으로 체포하여 조사한 것이었다. 경찰에서 그 여성은 B가 자신의 엉덩이를 손으로 만졌다고 주장하였고, B는 지나가다가 실수로 부딪힌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경찰은 양 당사자의 진술을 그대로 작성하면서 편의점에 CCTV가 있으니 분석해 본 후에 다시 조사를 하겠다고 하고 B를 돌려 보냈다. 

나는 B에게 정말 실수로 부딪힌 것이 맞냐고 물어 보았다. B가 잠시 움찔하더니 당시 술을 많이 마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의도적으로 그 여성을 만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진술의 변화가 있었고 B는 꽤 긴장하고 있었다. B의 사건을 맡기로 하고 바로 담당 경찰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찰이 파악하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확인한 후 CCTV를 분석하였냐고 물어보니 분석이 끝났다고 한다. 다음 날 경찰서로 찾아가 담당 경찰을 만났다. 담당 경찰은 CCTV 상으로 B가 지나가면서 여성의 엉덩이를 만지고 지나간 것이 명백하다고 하면서 증거가 확실하니 B에 대한 더 이상의 조사 없이 검찰에 송치하겠다고 하였다. 이제 사실은 명확해졌고 B를 최선을 다해 변호해야 했다. 더욱이 B는 의대생으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성범죄로 형이 확정되면 10년간 의료기관을 운영하거나 취업을 할 수 없는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한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피해자와 합의를 하는 것이었다. 경찰에 피해자와 합의를 하려고 하는데 인적사항과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하니 피해자를 위한 국선변호사가 선정되어 있으니 그 국선변호사와 협의를 하라고 하면서 국선변호사의 연락처를 알려준다.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는 2012년 3월 성범죄 피해를 당한 19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을 위해 검사가 무료로 변호사를 지정해주는 ‘법률조력인’제도에서 시작하여 2013년 7월부터는 연령에 상관없이 모든 성폭력 피해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성폭력 피해자를 위해 사건 발생 초기부터 수사, 재판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법률 지원을 하는 역할을 한다. 

피해자의 국선변호사에게 연락을 하여 합의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가능하면 필자가 피해자에게 직접 피의자의 사죄의 뜻을 전하고 합의를 하고 싶다고 하였다. 몇 일 후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피해자가 피의자는 물론 변호인인 필자하고도 직접 연락을 취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고 하면서 자신을 통하여 협의를 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몇 일간을 그 국선변호사와 협의를 하면서 가까스로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변호인인 필자가 마치 피의자인 것처럼 위축되었었다. 변호사를 시작할 초기에는 피의자에게 피해자와 합의를 해 오라고 한 적도 있었다. 이제는 피해자와의 합의가 변호인으로서 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임을 알고 있다. 위 사건에서 피의자가 직접 나서 합의를 하기는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고 합의를 했더라도 훨씬 많은 금액으로 합의가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사건은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도 좋게 나와 무척 다행이었다. 

이제는 ‘법률서비스’라는 표현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책상에만 앉아 의뢰인이 가져다 주는 자료만을 정리해서 사건을 처리하는 때는 이미 지났다. 의뢰인의 입장에서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해 최선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 바로 능력있는 변호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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