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86 / 통계와 가격비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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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86 / 통계와 가격비준표
  • 이용훈
  • 승인 2015.04.2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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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회사 옆 중국음식점이 ‘수타면 전문’을 내걸고 야심차게 출발했다가 얼마 전 기계로 면을 뽑는 평범한 중국집으로 내려 앉았다. 몰려드는 점심 고객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찰진 반죽에서 나온 꼬들꼬들함, 수타면을 씹는 맛에 길들여지면 기계로 뽑은 면은 성에 안 찬다. 수타면의 탄력성은 주방장의 팔을 빌려 분주히 타원운동을 한 뒤 도마 위로 힘찬 낙하운동을 한 덕택이다. 힘깨나 들여야 되는 일이다. 수타면과 기계면 사이의 타협도 가능하다. 반죽까지는 기계, 면 뽑는 과정은 사람 손이 맡는 분업의 과정이다. 눈에 확 띄지만, 기계면과 수타면을 절반 섞어 내놓는 곳도 있다.

맛을 위해 손수 면을 뽑듯이 청소할 때 유난히 깔끔 떠는 이들도 있다. 청소기의 도움 안 받고 직접 엉덩이 바닥에 붙이고 오밀조밀 걸레질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말이다. 손으로 훔쳤을 때의 깨끗함, 그 상쾌함이 주는 쾌감의 영향일 것이다. 일단 손이 들어가면 들인 정성은 곧바로 맛으로 연결된다. 손 맛 들어간 음식과 인스턴트 음식의 차이는 확연하다. 그러나 산출량이 소득과 수익으로 연결되는 구조라면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은 외길이다. 간헐적이 아닌 일상화된 주문 폭주라면 용량을 대폭 늘리기 위해 아쉽지만 가내수공업 생산 방식은 접어야 한다.

통계학은 시간과 비용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보완책이다. 전수조사가 가장 확실하고 정확한 조사 방법인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인구총조사, 지역 내 사업체조사와 같이 일정 기간마다 전수조사가 이뤄지는 예외가 있으나 대부분은 대표성 있는 표본에 대한 선별조사라고 보면 된다. 모집단의 모수(parameter)를 추정하기 위해 표본의 설계부터 분석까지 최근의 통계분석기법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정밀해졌다. 통계 프로그램도 어디 한 둘인가. 모형의 수도 워낙 많다 보니 반 년 정도만 프로그램을 묵혀 놓으면 사용 방법이 가물가물해진다. 휘발성이 강하다는 게 중론이다.

우리 나라는 재산세 부과를 위해 정부가 직접 과세 대상의 가격을 산정하는 공적 평가 체계를 갖추고 있다. 과표금액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은 재산권자가 직접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과세권자가 결정한다. 정부가 일일이 전 국민의 재산가치를 결정한다면 얼마나 품이 많이 들겠는가. 통계적 기법이 수작업을 대신한다. 표본을 설계, 분포시키는 과정은 통신사의 기지국 설치 작업과 방불하다. 기지국에서 일정거리까지 통화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전국단위의 효율적인 기지국 설계와 배치를 도모하지 않는가. 공시가격의 표본인 ‘표준지’, ‘표준주택’도 의도적으로 선별되고 배치된다. 그리고 표본 주위의 일정 권역은 표본의 가격을 기준으로 자동 산정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개별토지’와 ‘개별주택’은 ‘표준지’, ‘표준주택’ 대비 우열의 정도가 통계적으로 산출돼 제 값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 통계의 힘을 빌린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과정 전체가 전자동 시스템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전반부는 수작업, 후반부는 프로그램의 힘을 빌리는 반자동 라인쯤 된다. 기지국 역할을 하는 ‘표준지’와 ‘표준주택’의 선별, 배치, 주파수 부여 모두 외부전문가인 감정평가사가 맡는다. 이 일에 적지 않은 예산이 매년 투입된다. 한 기지국의 통화품질 보장 권역을 어디까지로 정할 지는 공무원이 결정한다. 부동산 가격이나 통계 모두에 전문성이 없어도 충분히 업무 처리가 가능하다. 그 주변 알맞은 기지국과 해당 통신기기를 연결시켜 주는 단순 업무라고 볼 수도 있다. 이후 각 개별 토지와 주택의 공시가격 결정이 통계적으로 처리된다. 그 역할을 하는 ‘토지가격비준표’, ‘주택가격비준표’는 통계적 방법인 헤도닉 모형을 통해 등장한 것이다.

통계의 유용성이 발휘되려면 기지국이 지나치게 조밀, 조방적으로 분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표준지와 표준주택의 주파수도 그 주변 지가와 주택가격 수준에 맞게 균형있게 부여되도록 조심해야 한다. 공무원은 각 통신 기기의 기능이 제대로 발현되도록 가장 신호가 센 기지국에 연결시킨다. 무선 인터넷 신호가 약하다면 인터넷 엑세스 지점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표본에 연결되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개별 통신기기의 모델을 확인하듯, 토지와 주택의 특성을 현장 조사해 파악하는 것도 이들의 임무다. 신호가 지나치게 강하거나 약한 곳은 특성 입력의 오류로 판명되곤 한다. 여기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다면 이제 통화 품질은 통계로 태어난 ‘가격비준표’가 맡는다.

‘가격비준표’는 정밀한 작업으로 기지국을 세워 놓고 기지국의 주파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하는 과정을 거쳐 작성된다. 기지국은 표준지, 주파수는 이의 공시가격에 해당된다. 지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어디 한 둘인가. 도로조건, 형상, 방위, 지세, 유해시설로부터의 거리 등 물리적 특성과 용도지역, 용도지구, 용도지대(토지이용상황), 공법상 제한사항 등의 요인이 검토해 볼 수 있는 가치형성요인이다. 이런 특성들이 결합해 표준지의 가격이 결정됐다고 이해할 때 각 항목이 가격에 미치는 독립적 영향의 정도를 파악해 산출된 값을 총 망라한 것이 ‘가격비준표’가 된다. 철도에서 100미터 떨어진 표준지 A와 500미터 바깥에 위치한 표준지 B가 제반 토지 특성은 차별 없고 철도에서의 거리만이 차별적 요소라면 이 두 표준지 가격의 격차비율에서 철도라는 유해시설로부터의 거리가 가격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를 파악한다. 이 모든 요소의 가격 기여도는 회귀모형 하나에 모두 녹아 들어 있는 셈이다.

토지 특성 중 각 항목이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지역별로 균등하지 않다. 작성단위가 용도지역과 행정구역으로 나눠지는 이유다. 특정 지역에 맞는 가격비준표의 필요성에 의문이 든다면, 상권이 성숙한 상업지역과 주택과 상가가 혼재하는 제3종일반주거지역의 비준표를 통일시켰을 때의 문제점을 떠올리면 된다. 표준지와 개별지가 각각 8m도로와 4m도로에 접해 도로폭의 차이를 반영해야 할 경우, 상업지역은 번화한 상가지대와 후면 상가지대의 격차, 제3종일반주거지역은 주상지역과 주거지대의 가격 수준 격차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후자는 10% 차이 정도에 불과할 수 있으나 전자는 15% 이상 벌어질 수 있다.

통계표가 작성되는 기술적 작업은 다음과 같다. 작성단위별로 토지특성 항목을 가변수로 변환한다. 토지특성은 대개 질적변수다. 토지의 형상은 연속된 값이 아닌, 정방형, 장방형, 사다리형, 삼각형, 자루형, 부정형 등으로 구분해 번호를 부여해 놓았을 뿐이다. 이어 상관분석에 의해 다중공선성이 높은 변수를 제거하거나 투입의 순서에 반영하며 회귀분석을 반복한다. 변수들 간의 위계와 유의성을 점검하며 최적 모형을 도출하는 것이 1단계다. 이 모형의 계수를 뽑아서 공시가격 품질유지를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제시한다.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주거지역에서 방위의 차이가 크게 나타났는데, 실상 조금 줄여줄 필요가 있다는 구체적인 의견 등을 취합해 일부 조정을 거쳐 최종 가격배율을 결정한다. ‘가격비준표’는 매년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가격비준표’가 헤도닉 모형을 거쳐 등장한 이상 통계모형이 갖는 약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측정치들이 공간적으로 차이가 있는 경우 공간단위에 따라 상관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작성단위 범위 설정에 따라 토지가격비준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그 지역의 개별공시지가 전수자료를 이용할 것과 작성 지역 범위를 세분화하고 공간단위를 입지 및 지역기능별로 구분해 정밀도를 높이자는 주장도 등장했다. 토지의 특성은 질적변수로 통계모형을 위해 가변수로 변환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변수들에 대한 정밀한 영향력(설명력)의 정도를 파악하기 힘들고, 변수의 수가 지나치게 늘어 분석의 한계를 보인다는 원론적 지적도 있다. 최적의 회귀모델은 너무 많은 변수를 투입하지 않고도 종속변수가 잘 설명되는 날씬한 모형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질적변수를 다루는 이상 항목을 줄이는 데 기술적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선형모형보다 이중로그모형의 설득력이 높다는 의견, 외부전문가에 의해 결정된 표준지 공시지가 자체의 불균형성이 가격비준표에 녹아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지금보다 더 정밀한 ‘가격비준표’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신선한 아이디어와 정밀한 통계분석 기법에 의해 개선될 여지는 충분하다. 그러나 통계표가 갖는 근본적 한계는 직시해야 한다. 부모의 직업 및 재산, 학군, 개인교습 여부, 편부모 여부, 지능지수 같은 눈에 띄는 항목만으로 자녀의 학업 성취도를 판단할 수 없다. 각 개인의 학습동기, 가치관, 가정의 화목 등의 정성적 요소의 기여도가 상당하지 않는가. 토지나 주택의 가격도 상권의 번화정도, 주거의 쾌적성, 장래의 동향, 가로의 계통성, 인근 교통시설과의 거리 등 가치형성요인 중 정성적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를 통계적으로 반영할 수 없는 기술적 약점을 염두에 두고 접근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현 ‘가격비준표’는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이라고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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