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개소리]그리하여 2004년 새해 첫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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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개소리]그리하여 2004년 새해 첫 아침입니다
  • 법률저널
  • 승인 2004.01.13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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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일요일을 맞아 친구와 목욕을 갔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목욕탕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친구가 내 등을 밀면서 세상에 이렇게 크고 굵은 때는 처음 본다며 이것은 목욕탕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라고 놀려댔다. 다시 친구의 등을 밀 차례가 되어 미는 순간 나는 더 황당했다. 미술용 연필 지우개로 4B연필 자국을 지우고 남은 그 찌꺼기같은 때가 등을 타고 떨어지는 것이다. 이건 목욕탕을 두 번 죽이는 거라고 내가 말했더니, 친구는 그건 때가 아니고 살이라며 죽은 자기 살을 다시 살리겠다고 때밀이 아저씨를 부르겠다는 것을, 그런 행동은 배터진 붕어빵의 단팥을 리필하러 가는 놈이랑 같은 것이라며 말렸다. 목욕을 하고 났더니 목이 말랐다. 목마를 때는 시원한 귤이 최고라며 귤을 사러 가는데, 가까운 슈퍼에 가려는 나를 말리며 시장에 가면 훨씬 싼값에 많이 살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 18개에 2000원 하는 귤이, 시장에서는 40개에 2000원을 하고도 더 달았다. 지나오는 길에 어떤 할머니께서 차가운 보도블럭 위에 좌판을 벌이고 앉아서 물건을 정리하고 계신 모습을 보았다. 옷핀, 고무줄, 머리끈, 면봉...... 신호등을 건너며 친구가 그랬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 기사님이 운전하는 자가용을 타고 가다가 저 할머니 같은 분이 길거리에서 노상을 하시면 전부 사드리고 싶다는 것이다. 살다보면 돈은 많이 벌 수도 있다. 친구의 그 따뜻한 마음이 오래오래 변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돌아오는 길에 가방 가득 들어있는 귤 하나 할머니께 드리지 못하고 온 것이 마음에 걸리고 있을 때 우연히 안도현님의 '그리하여 2004년 새해 첫 아침입니다'라는 시를 보게 되었다.


마음 아픈 세상을 어루만져 주려고
해가 다시 떠오릅니다.
흰 눈 뒤집어 쓴 소나무 위에도
두 발이 꽁꽁 얼어붙어 오도가도 못하는
우리 나라 크고 작은 길 위에도
맨 먼저 일어나 마시는 냉수 사발 속에도
당신의 눈동자 속에도 해는 떠오릅니다
당신 한 사람을 오직 사랑한다는 말,
지금은 아끼려고 합니다.
상자위에 귤 몇 개 놓고 쪼그리고 앉은 할머니 앞에서
생선 비린내 나는 좌판을 여태 거두지 못한 어머니 앞에서
내 손은 한 숟가락의 밥과 국물도 나눠 먹지 못하였습니다
내 발은 한번도 낮은 곳으로 걸어가 보지 못하였습니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미워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하며 살았습니다
이 첫 아침에는 햇살을 회초리 삼아 나를 아프게 때려 주소서
내가 아픈 동안만이라도 이 세상이 아프지 않게 해 주소서
당신을 사랑하는 일은 당신의 세상까지 사랑하는 일이라고
내 정작 하고 싶은 말이
붕어빵을 담은 봉지 귀퉁이처럼 따뜻하게
당신에게 닿게 하소서                    <詩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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