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35)-디지털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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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35)-디지털 단상
  • 차근욱
  • 승인 2015.03.2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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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개인적으로는 휴대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나는 멀티테스킹이 되지 않기 때문에 원고를 쓰거나 책을 읽을 때 휴대폰이 근처에 있으면 괜히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작업을 하다가 갑자기 전화가 울려버리면 무언가 가느다랗게 이어지던 집중력의 끈이 끊어져버려 더 이상 이어서 작업을 하지 못하게 되곤 한다.

특히 마감이 정해진 일을 하고 있노라면 이런 현상은 굉장히 난감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하는데, 덕분에 휴대폰을 보면 왠지 불안불안하고 불길한 기분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그러니 원고를 쓰거나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할 때면 멀찌감치 휴대폰을 숨겨 놓고 일이 다 끝난 다음에나 확인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할 밖에.

 

예전에는 나도 집중력이 탁월하고 멀티테스킹이 가능한 인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에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해 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죽도 밥도 되지 않아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나는,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해야 겨우 한 가지 일을 해낼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는 그래서 욕심내지 않는다. 예전에는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아예 휴대폰을 꺼놓기도 했었는데, 그러자 주위에서 답답하다고들 성화여서 끝내 백기를 들고 항복하고 말았다.

결국 휴대폰을 켜놓고 살게는 되었지만, 사실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나에게는 조금은 멍하게 보내는 시간도 필요하고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책을 읽고 생각할 시간도 늘 부족하니까.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과의 대화에 집중하고 싶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사람을 앞에 두고 전화를 받고 싶지는 않으니까. 반대로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전화만 받고 있는 다거나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다면 굉장히 섭섭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인생을 어떻게 하면 의미 있이 보낼 수 있을까 라던가, 시간을 어떻게 하면 가치 있게 쓸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늘 휴대폰을 사용하는 시간은 참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없으면 아쉬운 것이 또 휴대전화라, 역시 인생은 이율배반적이네 라고 생각해 버리고 만다. 일 때문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 또 휴대전화이기도 하니까.

생각하면 이상하다. 사람과 더욱 교감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휴대전화일텐데, 휴대전화 때문에 사람은 더욱 외로움을 느끼게 되기도 하고 교감하기 더 어려워지기도 한다. 투박하고 어설퍼도 서툴고 시시해도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라던가, 약속 시간은 이미 넘어 오지 않을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서운함이 가끔은 참 아련할 때도 있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식은 생겨났지만, 무언가 사람의 마음과는 조금 멀어진 것만 같아서.

이제는 스마트 폰 시대이니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도 이제는 휴대폰으로 가능하다. 스마트 폰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더 많은 시간이 낭비되기도 한다. 게다가 휴대폰을 중심으로 세상은 점점 빨라져만 간다. 하루만 자고 일어나도 금방 모든 것이 구식이 되고 새로운 특별함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숨차게 따라가야 하는 시대가 가끔은 혼란스럽다. 모두들 그 속도에 맞추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지만, 애초에 왜 그 속도를 따라가야만 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듯도 하다. 단지, 그저 홀로 뒤처지는 것이 두려운 것일지도 모르지. 결국 우리 곁에는 우리가 빠진 ‘빨리 빨리’만 남는다. 디지털이 발달할수록 아날로그의 중요성이 더 강조되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더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전자책이 나왔을 때, 나는 열광했다. 일단 LCD화면과 다르게 눈이 편안하다는 점이 반가웠고, 엄청난 배터리 지속시간과 원하는 책을 인터넷에서 사서 즉시 읽을 수 있다는 점에 매혹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시 손에 들게 되는 것은 전자책이 아니라 종이책이 되고 말았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페이지의 감촉과 또렸하게 새겨져 있는 글씨의 알싸한 잉크냄새가 그리웠던 탓이다. 내가 촌스런 사람인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얕은 인문학이 인기라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그야말로, 디지털 시대다운 인문학이라는 느낌. 많은 것들이 효율적으로 만들어지고 소비되고 잊혀진다. 편리하지만, 그것뿐이다. 여운은 남지 않는다. 자고 일어나면 모르는 이야기가 미디어를 장식한다. 어느 순간, 사람들은 내가 모르는 일들을 하며 살아간다. 가끔은 멍하니 창밖을 내다본다. 무심히도 내가 잊어버린 것은 무엇일지를 생각하면서. 세상도, 사람도. 그렇게 디지털화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얼마 전에 그동안 고맙게 타고 다녔던 엘리자베스를 폐차하기로 했다. 차가 이상해서 수리를 맡기러 갔다가 수명이 다했음을 알고 개인적으로는 좀 난감하면서도 멘붕이었는데, 이제 그만 폐차하기로 마음먹고 천천히 걸어오며 주위를 둘러보니, 너무나 빨리 가는 디지털 시대이기에 어쩌면 더디고 늦게 가는 아날로그의 절실함을 잊어서는 안되겠구나 라는, 뻔해도 너무나 뻔한 이야기를 이제 겨우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똑똑해졌지만, 다들 얼마나 더 깊어졌을까.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의 운명과 깊이 마주하고 있을까. 눈앞의 보이는 것에만 급급해서 정작 자기 자신과 주변의 사람과 소중한 마음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문득 스스로를 뒤돌아보게 되었다. 새 봄에는 더 감사하며 진실하게 살아야지. 매 순간을, 나의 최선을. 어리석은 욕심보다는 조금은 늦고 조금은 서툴고 조금은 불편해도 가슴 깊은 곳 진심을 나누며 살아가야지.

돌아보니 어쩌면 뒤처지지 않고자 애를 쓰며 지낸 것은 아닌지, 순간 순간 더 생각하고 더 배려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문장을 대할 때도 요점이 무엇인지만 파악하려고 들고, 곰곰이 생각하지 못한 채로 자료만을 정리하듯 글을 수집했던 자신의 얄팍함에 귀까지 빨개져버렸다. 책이란 빨리 읽기보다는 깊이 읽어야 함을, 어느 순간 나는 잊어버렸던 것일까. 새 봄에 피어나는 목련과 벚꽃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사진만 찍어두려 했던 가벼움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사진을 찍기 위해서 봄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는지.

차를 몰고 다니며 시간에 쫓기던 때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생각들을, 갑자기 엘리자베스가 고장 나고 나서야 가까스로 알게 된 것이다. 갑작스럽게 엘리자베스를 폐차해야만 하는 상황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인생사 매사에 무의미한 것은 없는 탓인지 새삼 다른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으니, 이 또한 선물인 것이겠지. 이제 조금은 천천히 걸으며 말을 전하지 말고 마음을 전할 수 있기를. 정신없이 질주하는 이 디지털 시대에, 정작 중요한 것은 한발 한발 다가가는 나 자신의 속 깊은 발걸음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지.

굿바이, 엘리자베스. 굿바이, 마이 프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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