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레미제라블, 황당한 홍준표 지사의 무상급식 철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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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레미제라블, 황당한 홍준표 지사의 무상급식 철폐
  • 오시영
  • 승인 2015.03.2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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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악마의 얼굴은 언제나 웃는 얼굴이다. 악마는 자신의 악마성을 감추기 위하여, 천사처럼 보이기 위하여 항시 웃는다. 악마에게 유혹당하는 착한 사람들은 악마의 미소 앞에서 정신을 놓는다. 그때 악마는 악마의 잔인함으로 착한 사람의 밥그릇을 뺏고, 그를 절망의 계곡으로 밀어 넣는다. 레미제라블 - 불쌍한 사람들 속의 장발장은 굶주린 조카를 먹일 빵 한 조각을 훔치다 붙잡혀 19년의 기나긴 죄수의 삶을 산다. 실정법이 지배하던 19세기 불란서의 낭만주의는 빵 한 조각을 훔친 그를 인정사정없이 벌하고 또 벌한다. 한 사람의 삶을 19년 동안 가두고 또 가두고 가둔다. 산업혁명의 뒤끝,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가 하늘을 찌르던 그때, 19세기 낭만주의 시대 자본가는 낭만주의의 낭만에 젖어 팔자걸음을 걸었지만, 착취당한 노동자들은 굶주리고 헐벗고 병들어 죽어나갔다. 그 중심에 장발장이 있고, 자베르 경감이 있다. 두 사람의 상징성, 노동자와 자본가의 극렬한 대립과 갈등이 모두가 불쌍한 사람, 레미제라블의 내면이다. 인간의 죄와 구원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레미제라블은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빵 한 조각의 진정한 가치는 얼마일까? 한 인간의 19년 삶과 바꾸어야 할 만큼 값어치 있는 것인가? 빵 한 조각의 설움, 성당에서 은촛대를 훔쳐 다시 수감자가 되어야 할 순간 미리엘 신부님의 용서로 새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장발장은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새 사람이 된다. 사업가로 성공하고, 그래서 시장이 되고, 그렇지만 가석방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도망자가 된 장발장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실정법주의에 사로잡혀 한 치의 동정심마저 베풀 줄 모르는 법집행자 자베르 경감에게 결국 발각이 되고 마는 장발장, 이제는 죽음뿐이던가? 하지만 프랑스 혁명군에게 붙잡혀 총살형을 받게 된 자베르 경감을 살려주며, 자신의 원수를 사랑과 동정으로 용서하며 장발장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Who Am I? - 나는 누구인가?”고. 장발장은 미리엘 신부를 통해 신으로부터 용서라는 사랑을 받아보았기에 원수를 죽이는 대신 사랑으로 용서를 실천한다. 하지만 죽이기 위해 쫓던 자, 장발장으로부터 자신의 목숨을 살림 받은 자베르는 절규한다, 네가 내 목숨을 살려줌으로써 내 영혼마저 죽여 버렸노라고. 자베르는 용서받는 자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한 번도 타인을 용서해본 적 없었기에 어떻게 용서받아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비극의 주인공 자베르, 그는 결국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으며 자살하고 만다.

오늘 나는 악마의 얼굴을 감추고 천사처럼 미소 짓고 있는 경남도지사 홍준표에게 묻는다, Who Are you? - 당신은 누구인가고. 당신, 홍준표 경남도지사에게 묻기 위해 홍준표 지사 당신이 쓴 자전에세이 “변방”을 읽는다.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부터 어린 시절 가난에 쩔어 배고픈 설움으로 눈물 흘리던 어린 아이 홍준표 당신을 만난다. 당신이나 나나, 6ㆍ25전쟁의 뒤끝, 대한민국 전체가 가난했던 시절에 젖먹이 어린 시절을 보내며 배고픈 설움을 철저하게 몸으로 배웠구나 싶다. 미국의 원조물자 강냉이빵을 먹고 강냉이죽을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워야 했던 그 시절, 당신은 배고픈 장발장의 조카였고, 누군가는 - 그래 장발장처럼 당신을 위해 공장에서 돈을 벌어 당신의 학비를 대었던 착한 누이는 장발장의 길을 걸었는데, 당신은 지금 왜 자베르 경감이 되려 하는가? 법실증주의에 빠져, 학생들의 의무급식을 무상급식이라며 도지사의 권한을 무한행사하여 아이들의 밥을 빼앗으려 하는가?

어린 시절, 비를 맞으며 수레에 짐을 싣고 이사를 다니던 당신, 처절하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도시락을 싸가지 못해 설움의 눈물을 흘렸던 어린 아이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냐고. 점심시간, 친구들이 맛있게 도시락을 까먹고 있을 때 배고픔에 수돗가를 찾아 수도꼭지에 입을 가져다 대고 맹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가난의 설움을 온몸으로 뼈저리게 느끼며 눈물 훔치던 어린 아이 홍준표에게 묻는다, 당신 정말 배고픈 설움을 잊었느냐고. 어쩌다 운 좋은 날 동창누나가 건네준 고구마와 감자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부끄러움과 기쁨이 묘하게 교차하며 언덕을 달음질쳐 뛰어내려 오며 청운의 꿈을 키워온 어린 아이 홍준표에게 묻는다, 이제 경남도지사의 판공비로 일 년에 몇 천만의 식비를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신용카드를 긁으며 이제는 배 불리 먹게 되어 그 어린 시절 가난을 모두 잊어 행복하냐고. 한 끼에 몇 만원씩 하는 상다리 휘어지도록 차려진 고기반찬의 진수성찬을 배 터지게 먹고 이쑤시개로 이빨 쑤시며 식당을 나서면서 나는 성공해서 이렇게 국가세금으로 공짜밥을 먹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게 되어 자랑스럽냐고, 묻고 묻는다.

장발장이 되어도 세상에 진 빚이 더 많을 사람이 스스로 자베르 경감이 되어 현재 전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어제까지 경상남도에서도 실시해 온 어린 아이들의 밥그릇을 뺏으며 이제부터는 돈을 내어야 한다고 윽박지르는 시대역행의 만용을 부릴 수 있는 객기가 과연 어디에서 나왔는지 묻고 또 묻는다. 많이 가진 자에게서 돈을 걷으니, 가난한 자의 밥그릇을 뺏은 게 아니라고 강변하지 말라. 자베르 경감이 장발장으로부터 목숨연명을 적선 받으며 내뱉은 말, “네가 내 목숨을 살려줌으로써 내 영혼마저 죽여 버렸노라.”는 절규를 일부 학생들로부터 밥값을 받는 순간, 밥값을 내지 못할 처지의 아이들로부터 “가난증명서”를 제출받는 순간 그들의 영혼이 죽임을 당해버렸다는 사실을 진정 알지 못하는가고.

지난해까지, 아니 어제까지 시행되던 급식비 예산이 하루아침에 어디로 사라져 버렸던 말인가? 땅으로 꺼져버렸나 하늘로 솟아버렸나? 아니다, 그 예산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단지 당신이 그 예산을 집행하지 못하겠다고 영혼이 죽어버린 자베르 경감이 되어 도지사의 권력횡포를 부리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당신은 당신 입으로 말했지 않는가? 도지사 선거에 나섰을 때에 “무상급식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학부형들에게 약속하며 그들의 표를 구걸하지 않았는가? 당신은 당신 입으로 말했다, 도지사 취임사에서 “무상급식을 그대로 시행하겠다고.” 불과 두 해 전의 당신은 어디로 가고 없는가? 당신은 거짓말쟁이인가. 아니면 기억상실증 환자인가? 스스로 한 약속을 스스로 저버리며 아이들을 굶기려 하는가?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지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라.”는 망언을 어찌 감히 할 수 있는가? 이 세상 온 천지가 모두 밥 먹는 곳이어야 한다. 공부하다가 밥을 먹고, 일을 하다가 밥을 먹고, 잠을 자다가 밥을 먹고, 놀다가 밥을 먹고. 이 세상천지가 밥을 먹는 곳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가 어찌 지방 방백이 되어 경남도 살림을 책임진다는 것인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당신은 어제도 세끼 밥을 먹고, 오늘도 세끼 밥을 먹고, 내일도 세끼 밥을 먹을 것이다. 당신이 밥을 먹지 못하는 순간 당신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아이들이 밥을 먹지 못하는 순간, 그 아이들은 학생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 것이다.

학교가 밥을 먹는 곳이 아니면 당신이 일하고 있는 경남도지사실도 밥을 먹는 곳이 아니니 국민의 세금으로 판공비를 긁어 당신부터 세금밥을 먹지 말고 당신의 급여에서 당신밥을 사 먹으라. 공무를 수행하든 안 하든 하루 세끼 먹는 것은 당신 책임이지 국가예산으로 당신 한끼 밥을 먹어서는 아니 되지 않는가? 공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판공비로 밥을 먹어야 한다고? 공무를 수행하니까 월급을 주지 않는가? 그 월급으로 세끼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공무수행 중이니 판공비를 써야 한다면 행사장에 나오는 공무원 아닌 이들의 밥값은 판공비로 결재해도 좋다. 하지만 당신은 공무수행에 대한 대가로 월급이 나오니 그 월급을 써야지 당신마저 판공비로 밥을 먹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다시 당신의 자전에세이 “변방”을 소리 내어 읽는다. 변방 1, 첫 페이지에 나오는 당신의 고백은 “고향에서 대구 신청동으로 이사를 갈 때 손수레에 이삿짐을 싣고 야반도주하듯이 이틀을 걸어서 대구로 갔습니다. 신천동 산동네에 단칸 월세방을 얻어 다섯 식구가 살게 되었을 때?가족은 구호물자인 강냉이죽에 의존하며 살았습니다. 여동생과 홍준표는 큰 고갯마루에 있는 동사무소로 가 줄을 서서 하루에 한 번씩 강냉이죽을 타 오곤 했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지섣달 추운 겨울, 아버지가 끄는 손수레에 매달려 종종걸음으로 이틀을 걸어 신천동 달동네로 이사 갔던 일곱 살짜리 어린 아이 홍준표에게 다시 묻는다, 당신 그때 다리가 얼마나 아팠냐고, 얼마나 추웠냐고, 얼마나 서러웠냐고. 강냉이죽을 무상배급받아 가족의 배고픔을 해결했던 그 어린 아이 홍준표 당신은 얼마나 배가 고팠냐고, 허거졌냐고 다시 묻는다.

학생들의 무상평등급식(지난번 말했듯 필자는 무상급식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학교급식이나 의무급식이 올바른 표현이다)을 시행하지 못하겠다며 신임주민투표를 시행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시대정신을 읽지 못해 몰락하고 말았다. 멀쩡하게 전국적으로 잘 시행되고 있는 학교급식을 하루아침에 못하겠다며 예산을 다른 용도로 전용하는 돈키호테식 만용은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정치생명을 단축시킬 것이다. 보수적이던 경남도민들조차 이런 막무가내식 도정에 대하여는 홍준표 도지사에게 엄중한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고 할 것이다. 벌써 그런 조짐이 곳곳에서 읽히고 있다. 어린 아이 홍준표가 강냉이죽을 타기 위해 긴 줄을 서 있는 동안, 가마솟에서 강냉이죽이 폭죽 끓듯 끓어오르는 것처럼 경상남도의 학부형들이 우선 들고 일어날 것이고, 학부형 아닌 경남도민이 들고 일어날 것이고, 그 압력에 굴복한 경남도의회 의원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고, 결국 홍준표 도지사는 백기를 들게 되고 말 것이다.

홍준표 도지사의 자전에세이 변방 3을 본다. 누군가 다가와서 “니 밥 묵었나?”하고 묻습니다. “내가 본께 니 매일 밥도 안 묵고 물배 채우던데 어디 아푸나?” 물으며 군감자와 고구마를 건넨 여학생을 향해, 가난해 도시락 안 싸온 걸 숨기려 “아이다, 아침밥 먹은 것이 배탈이 나서 그런다.”라고 둘러대는 어린 아이 홍준표에게 묻는다, “니 정말 아이들 밥 굶기도 괘안나?” “니 정말 아이들 점심밥값 받을라카나?”라고 묻는다.

레미제라블의 한 장면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 분노에 찬 사람들의 외침이!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다짐이 들리는가?”라는 노래가사를 듣게 되기를 바란다. 학교에서 돈 내고 점심 먹는 아이와 돈 대신 가난증명서를 내고 점심 먹는 아이를 편 가르는 것을 군감자와 고구마를 건네주던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동창누나가 본다면 “준표야 니, 너무 기름진 것 많이 먹더니 어디 아푸나?”하지 않을까 싶다. “시상에, 시상에 너무한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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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015-04-03 15:41:11
교수님. 잘 읽고 갑니다.

나그네 2015-04-03 15:41:11
교수님.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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