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34) - 종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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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34) - 종말에 대하여
  • 차근욱
  • 승인 2015.03.1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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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일전에, 앞으로 사회가 발전할 일보다 변고가 생겨서 모두 ‘초기화’되기를 바라는 20대가 더 많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최고의 초기화는 아마도 군입대일텐데 말이지). 게다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한국전쟁이 다시 일어날테니 어서 피난들을 가라는 말을 듣고 해외로 피난간 분들의 이야기를 다룬 ‘노아의 방주를 타는 사람들’편을 보고 조금 놀란 적도 있었고. 뭐, 몇 일 전에는 ‘알토란’이라는 예능프로그램에서 급변시에 필요한 비상물품이라던가 피난장소를 방송의 주제로 삼아 방영되고 있길래 조금 식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TV를 보기도 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종말영화나 종말문학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라 이런 주제들에 대해서는 눈을 떼지 못하지만 어디까지나 ‘흥미’가 있을 뿐이지 ‘종말’을 염원하고 있다던가 하는 편은 결코 아니다.

 

1999년에는 종말론이 한창 기승이었는데, 그때는 어린마음에도 좀 신기한 기분이었다. 과연 세상이 끝나는 것일까, 하고서. 2012년에도 마야달력에 따라 세상이 끝난다고 해서 역시 살짝 두근두근 했었다. 이번에는 진짜일까, 하고서. 뭐 결론은 모두 ‘뻥카’였지만.

어수선한 요즘 분위기 탓 인지 ‘전쟁·종말’ 비즈니스도 드디어 레드오션이 되고 만 것인가 싶었는데, 아마도 하루 하루 살아가는 우리네 현실이 너무 팍팍해서 모두들 새삼 ‘종말’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뭐 종말이 별건가. 먹고 살길 막막해지면 그게 종말이지. 얼마 전에 친구와 세상 사는 이야기를 이래저래 하다가 친구가 좋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경험상 ‘산 입에 거미줄 치지는 않는다’라는 것이다. 이리 뛰고 저리 뛰다보면 결국 굶어죽지는 않는다는 얘기였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름 맞는 말. 뭐, 우리의 걱정은 ‘100세시대의 노후보장’이라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건 내 생각일 뿐인데, 세상의 종말이 그리 쉽게 올까, 싶기는 하다. 간통죄도 위헌이 난 판국에. 사람은 본능적으로 불안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종말’이니 ‘전쟁’이니 하는 말은 너무나 위협적으로만 들린다. 특히 우리나라는 현재 ‘휴전’상태이기까지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나 ‘종말’은 배부른 소리라는 느낌도 솔찍한 심정이다. 재산을 처분해서 외국으로 미리 피난을 떠나시는 분들만 해도, 일단 처분할 재산이라도 있으시지 않나. 굳이 극단적으로 이야기 한다 해도, 인간에게 종말은 사망보다 클 수가 없다. 그렇게 따지면 종말은 일상 다반사이니, 종말을 피해 그리 먼 곳으로 갈 필요가 과연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비참하게 사는 것과 비참하게 죽는 일이 두려운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까? 세상에 종말이 올까? 전쟁이나 종말사태가 일어났을 때 가장 큰 위험을 부담해야 되는 집단은 기득권층이다. 그렇게 본다면 어느 쪽도 섣불리 전쟁을 감수하기 어려울뿐더러 가진 것이 많아서 전전긍긍하시는 분들께서 종말을 필사적으로 막아주실테니 지구를 지켜주실 분들은 쎄고 널렸다. 그러니 다들 일단은 전쟁과 종말의 공포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시길. 정말 두려운 것은 당장 다음 달 카드값이지, ‘전쟁이 날테니’ 혹은 ‘종말이 다가오고 있으니’ 헌금하라고 일러주시는 친절함이 아니다. ‘종말’이나 ‘전쟁’의 두려움을 애써 일깨워 주시는 분들도 실은 다음 달 카드값이 두려워 그러신 것은 아닐까.

처분할 재산이라야 헌 책 몇권 뿐인 수험생에게 종말은 불합격이다. 그러니 종말을 피할 방법도 간단하다. 합격하면 되니까. 시험에 떨어지는 것이 불안해서 세상에 종말이라도 오면 좋겠다고 바라는 마음은 그야말로 넌센스다. 벼룩잡자고 고대광실 집 한 채를 통째로 태우는 것과 뭐가 다르겠나. 조금만 부지런 떨면 살 길이 열리는데, 부지런을 떨어도 살아남기 힘든 종말을 바란다면 가성비가 너무 떨어지잖아. 아무리 노력해도 수험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다른 길을 찾으면 그만이다. 우리가 학생이라 몰라서 그렇지, 찾아보면 합격만큼이나 살 길도 다양하다. 물론, 수험도 생활도 녹록하지는 않다. 하지만 세상에 날로 먹는 것이 어디있나. 생선회도 공짜로는 못먹는다. 여름이 뜨거워야 열매가 달아지는 법이고 태풍이 지나가야 알곡이 튼실해 지는 법이다. 물론, 80년대 학번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이 되는 시절이 아니어서 투덜댈 수는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기회와 새로운 혜택이 부여된 세대도 바로 2000년대 학번이다. 개인차가 있다는 것은 물론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종말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혜성이 지구로 떨어진다거나, 핵전쟁이 일어난다거나, 좀비 바이러스가 지구를 덮어 모두가 멸망할 일은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내 후손을 내가 만날 가능성 만큼이나 희박하다. 내가 느끼는 개개인의 종말은 스스로의 꿈을 포기하는 상황이거나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맞닥드려야 할 상황이다. 결국 종말을 막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현장은 지금 내가 내 목표를 이루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가는 오늘이 아닐까 싶었다. 꿈을 향해 가는 과정은 당연히 험난하다. 고단하고 수고롭다. 하지만 그렇기에 또한 숭고하다. 아름답고 찬란하다.

임제록에, ‘올바른 견해를 얻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미혹을 당해서는 안되니, 진정한 깨달음을 향해 가는 길에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말씀이 있다. 다른 사람의 인격은 당연히 존중해야겠지만, 사람의 말처럼 믿기 허망한 것도 없는 법이다. 내가 내 꿈을 향해 가는 과정에 누군가는 격려를 할 것이고, 누군가는 포기를 권할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의 말도, 결국은 ‘말’일 뿐이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흔들릴 것도 없고, 달콤한 이야기를 한다고 기뻐할 것도 없다. 그냥 그건 그 사람의 ‘말’일 뿐이니까.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 뿐이다. 내가 매일 매일을 얼마나 성실히 노력해 왔는지는 본인만이 안다. 무속인이 이번 시험에는 반드시 합격할 것이라고 해도, 내가 공부를 그동안 안했다면 합격할리 만무하다. 마찬가지로 이번 사업은 반드시 대박이라고 해도, 내가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면 대박이 날리 없겠지. 혹독한 여름을 보낸 뒤의 추수가 더욱 알곡이듯이, 종말을 바랄만큼 힘든 시간동안 땀흘렸다면 결국 봄은 오기 마련이다. 이건 만고불변의 진리다. 만유인력의 법칙만큼 분명한 사실이다.

종말이 오냐고? 종말은 없다. 적어도 자신이 스스로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 한은. 전쟁이 일어나느냐구? 전쟁은 없다. 대한민국 모두가 나사 풀리기 전에는. 정치인들 나사가 풀려도 국민들 나사가 안풀리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의 카드 값을 이웃의 불안감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의 말은 그래서 딱하다.

혜성이 떨어지고 핵전쟁이 일어나고 좀비 바이러스가 맹위를 떨친다면, 아무리 애를 써도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다. 그러니 살아있는 동안 후회없이 사는 것이, 종말에 살아남으려고 벌써부터 불안해 하는 것보다 가치있지 않을까. 언제나 두려운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의미있이 보내는 것일 뿐이니까.

나는 지구의 종말이 오면 미련없이 갈 수 있을 만큼 후회없이 살고 싶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싶고,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며 살고 싶다. 귀신보다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고 했다. 세상이 어수선할 때에는 별의별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마련이다. 남을 두려워 할 일도 아니고 종말을 두려워 할 일도 아니고 전쟁을 두려워 할 일도 아니다. 소문 따위는 웃고 지울 뿐이다. 오직 두려워 할 것은, 지금 이 순간, 내가 얼마나 진솔하게 노력했는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를 두려워 할 뿐이다. 그토록 충실히 산다면 종말에도 살 길이 열리고 전쟁에도 살아남을 방도가 생기리라고, 나는 적어도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 오늘을 충실하게 살면 종말은 없다. 오늘이 자랑스러우면 매일이 행복한 법이다. 그렇게 행복하게 오늘을 살자. 진솔하게, 후회없이. 종말도 전쟁도 비껴갈 만큼, 아름답게 찬란하게. 그러다보면, 우리도 활짝 웃을 날이 오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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