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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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22)
  • 신종범
  • 승인 2015.03.0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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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재판

 

신종범 법무법인 더 펌(The Firm)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긴 설 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하니 쌓인 일을 처리 하기가 쉽지 않다. 아직 긴 연휴의 아쉬움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연휴 마지막 날에 아내와 함께 이제 철이 좀 지난(?) ‘국제시장’을 보았다. 이미 언론을 통해 그 내용을 익히 알고 있는터였지만 몇 몇 장면에서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우리 아버지께서 살아오신 그 세대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나도 그 상황이라면 가족을 위해 그렇게 헌신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나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영화 ‘국제시장’도 그렇지만 요즘 아버지를 주제로 한 드라마나 책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종영된 TV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도 한 가정의 아버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말 저녁에 아내, 아이들과 함께 참 재미있게 본 드라마였다.

대략의 줄거리는 가족으로 살아가는 삶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삼남매를 위해 헌신한 아버지와 이러한 아버지와 달리 자신의 성공만을 생각하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무시하며  살아가는 삼남매의 갈등이 아버지의 말기암을 계기로 아버지와 삼남매가 사소한 것들부터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조금씩 치유된다는 이야기이다. 통상의 드라마라면 아버지의 말기암 소식을 자식들이 알게 되고 슬픔 속에 아버지와 화해한다는 설정이었을 것이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아버지가 자신이 말기암에 걸린 사실을 숨기고 삼남매를 상대로 ‘불효소송’을 제기하면서 역설적으로 가족간 갈등이 치유되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드라마 속 아버지는 변호사를 선임하여 삼남매를 상대로 성인이 된 이후 삼남매에게 들어간 비용의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삼남매의 월급과 동산에 대하여 가압류까지 하게 된다. 처음에는 이 ‘불효소송’을 제기한다는 설정이 터무니 없다고 생각했다. 자녀들에게 성년 이후 지급된 비용이 부양의무에 따른 것은 아니더라도 증여에 해당하고 그 증여에 어떠한 부담이나 조건도 없었을 것이니 그 반환을 청구하는 것이 인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도 사건을 담당한 판사가 초기에는 ‘불효소송’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하여 의문을 표시하지만 소송을 제기한 아버지의 의도를 듣고 사건을 조정에 회부한다. 몇 차례 조정기일이 열리고 갈등이 있었지만 조정안이 마련되었다. 아버지는 삼남매에 대한 가압류를 취하하고, 삼남매는 아버지의 요구사항을 이행하며 그 이행이 완료되면 아버지는 소를 취하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의 요구사항은 3개월 동안 가족끼리 아침 밥 같이 먹기, 하루에 한번씩 전화하기 등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마련하는 것이었다. 조정안 속의 3개월은 아버지가 살아갈 수 있는 기간이었다. 삼남매는 이 조정안을 이행하면서 차츰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결국 아버지가 말기암에 걸린 사실도 알게 되지만 아버지 뜻을 이해하고 슬픔 보다는 행복한 시간을 함께 하며 아버지와의 영원한 이별을 준비한다. 아버지는 변화된 삼남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불효소송’을 취하하면서 ‘그래 이렇게 사는게 가족인거지’라고 말하며 생을 마감한다.

현실 속에서 이 드라마에서처럼 ‘불효소송’이 제기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가압류 신청은 바로 기각되고, 본안 소송도 조정에 회부되지 않고 기각되었을 것이다. 비록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이 가족들은 법원의 재판을 통하여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조정안을 이행하면서 가족 간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드라마 속 재판은 당사자들의 갈등을 치유해준 ‘힐링재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힐링재판’을 현실 속에서는 접할 수 없는 것일까? 많이 알려진 내용이지만 소년보호 사건에서 어떤 부장판사님이 한 재판이 기억난다. 이 부장판사님은 친구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훔친 소녀(16세)에 대한 소년보호사건에서 이미 수 차례에 걸친 절도 전력이 있음에도 ‘불처분결정’을 하면서 소녀에게 일어서서 다음과 같이 외쳐 보라고 말한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게 생겼다” 예상치 못한 판사의 요구에 소녀는 나지막하게 “나는 세상에서..”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이 판사님은 더 큰소리로 따라 하라고 하면서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외치게 하였다. 큰 소리로 따라하던 소녀는 “이 세상에서 나 혼자가 아니다”라고 외칠 때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소녀는 모두 14건의 절도, 폭행 등의 범죄로 소년법정에 섰던 전력이 있어 무거운 처벌이 예상되었지만 판사는 무거운 처분 대신 ‘일어나서 외치기’를 하도록 하였다. 그 이유는 소녀가 원래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는데 귀가 중 남학생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후 병원치료를 받고 홀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신체 마비 증세가 오자 소녀가 학교를 가지 않고 비행청소년과 어울리다가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을 참작한 것이었다. 이후 눈시울이 붉거진 판사님은 눈물이 범벅된 소녀를 법대 앞으로 불러세워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중요할까? 그건 바로 너야! 이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 두 손을 쭉 뻗어 소녀의 손을 꽉 잡아 주면서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마음 같아선 꼭 안아주고 싶지만 너와 나 사이에는 법대가 가로 막혀 있어 이 정도 밖에 할 수 없어 미안하구나”

법의 집행은 엄격하고 준엄해야 하지만 때론 사람들의 아픈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따스한 면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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