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의 '공감'(31)-선택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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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의 '공감'(31)-선택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해야 할 때
  • 이유진
  • 승인 2015.02.0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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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KG패스원 국어 강사

Min,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야.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너가 일어났다고 보낸 문자를 봐. 그리고 생각하지. 오늘 하루는 그대에게 조금은 덜 가혹한 하루였으면 좋겠다고. 갑자기 말기암 판정을 받으신 아버지와 얼마 남지 않은 시험 사이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나는 사실 상상조차 할 수 없어. 그대에게 그렇듯이 나에게도 아버지가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야.

이제는 부모님께 더 기댈 수 없다고, 이럴 때일수록 빨리 너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 드려야 한다는 생각도 들 것이고, 어쩌면 아버지와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매일 가방을 메고 나오는 게 이기적인 것 같아서 아침에 발걸음이 무겁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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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할 때 나는 말했어. 아버지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고. 아버지가 무엇을 원하실까? 아마도 하루라도 빨리 붙어서 어쩌면 본인이 지켜줄 수 없을지 모를 딸의 미래가 조금이라도 안전해지기를 바라실 거라고 그렇게 말했어.

그런데 그렇게 말하고 나서 정말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 내가 뭐라고 그 상황에 대해서 아는 듯이 조언을 했는지. 내가 아버지가 되어 본 것도 아니고 암과 싸우고 있는 사람도 아니면서 너무 경솔한 이야기를 한 건 아닌지 두고두고 생각했어. 그대의 아버지가 딸과 여행도 가고, 그간 해주지 못한 젊은 시절 이야기들도 해주고, 살면서 조심할 것도 알려주고, 무엇보다도 예쁜 딸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눈에 더 오래 담는 것이 매년 돌아오는 시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닌지…….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역시 나는 ‘국어’를 가르치는 것 외에는 누군가의 스승이나 선배가 될 만한 자질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아. 이미 오래 전 스스로 ‘선생’이 되기에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절실히 느끼고 ‘강사’의 길을 선택했으면서도, 이렇게 누군가에게 감히 아는 척하는 잡글을 쓰다보니 어마어마한 착각을 하고 살아온 것 같아. 너는 나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너의 고통을 털어놓았을텐데 미안하다. 해결은커녕 제대로 된 위로도 못해주고 결정을 도와주는 것도 아닌 그런 우유부단한 사람일 뿐이라서.

오늘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할게. 물론 내가 저번 상담에서 이야기한 것을 뒤집는 이야기는 아니야 다만, 판단의 과정을 정돈하는 거야.

내 자신이 제일 잘난 줄 알았던 대학 시절, 혼자서는 도저히 선택을 할 수가 없어서 딱 한 번 한 교수님께 내 인생에 대해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어. 오만한 내가 그 교수님을 존경한 건, 세상에 대해 긍정적(바람직한 - 바랄 만한 가치가 있다)이셨지만 낙천적(세상과 인생을 즐겁고 좋은 것으로 여기는)이지는 않으셨기 때문이야. 세상이 즐겁지 않다는 걸 알고 계셨지만 세상을 사랑하셨지. 그러기는 정말 어렵잖아? 지금 이 순간은 그 교수님이 소신껏, 그리고 거침없이 나에게 결정의 기준을 주셨다는 것이 존경스럽네.

어쨌든, 전혀 다른 문제이긴 했지만 ‘가족의 안위’와 ‘나의 꿈’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에게 그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

“유진아, 다 가질 수 없는 걸 슬퍼하지 마. 지금 너가 선택을 위해서 고민하는 시간, 이 기회를 가진 것만으로도 감사하도록 해. 세상은 정말 잔인할 때는 그럴 시간도 주지 않고 너가 원하지 않는 결과를 던져 주기도 해. 그럴 때는 누구를 원망하겠니? 너는 그래도 너가 내린 결정으로 인한 고통에 대해서 스스로를 탓할 수 있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끝없이 원망하게 되는 것보다 스스로를 탓하는 게 나은 거야. 사람은 결국 자신은 용서하니까. 제일 나쁜 것은 결국 둘다 가지지 못하는 거야.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최악이지. 무엇을 고를까 망설이는 사이에, 놓칠 것 같은 나머지를 아까워하는 사이에 하나라도 건질 수 있는 기회는 사라져 버리지.”

“네, 빨리 결정할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뭘 선택해야 해요?”

“성공확률, 가질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거.”

“둘다 불확실하면요?”

“지금이 아니면 다시 할 수 없는 거.”

“둘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할 수 없으면요?”

“보람과 쾌감 중에는 보람, 죄책감과 상실감 중에는 상실감을 선택해. 쾌감은 곧 사라지고 상실감은 다른 걸로 채워지니까.”

“…….”

Min, 나는 그래서 꿈을 포기, 아니 미루기로 했어. 내 꿈을 추구한다고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고, 내 가족을 위해 일하면 우리 가족의 상황이 좀더 편해지는 건 확실한 것이었으니까. 작가가 되는 것은 경제적인 상황을 많이 해결하면 다시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우리 가족의 삶의 질은 그 시기를 놓치면 영영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았거든. 또 가족을 위하는 것이 보람이고 꿈을 추구하는 것이 내 이기적인 욕심이라고 생각했어. 그때 내 욕심만 차리고 글쟁이가 되겠다고 결심하면 죄책감을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았지.

그런데 지금은 이래. 우리 가족의 상황은 확실히 편해졌어. 하지만 사람은 경제적인 안정 외에도 많은 게 있어야 행복한 거야. 그래서 내가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었는지는 아직 모르겠어. 그리고 지금은 먹고 살 만하지만 작가가 되는 것에 도전하지 못하고 있지. 그저 먹고 사는 것 다음에 뭔가가 계속 자꾸만 벌어졌거든. 가족을 위하는 것이 보람하기도 했지만 강사로서의 생활에도 쾌감이 있었어. 그건 정말 예상 밖이었지. 그러면서도 가족을 위한답시고 가족과 멀어져서 ‘바쁘고 냉정한 딸’이 되었다는 죄책감이 허를 찔렀어.

인생이 그래.

와, 진짜 도움이 되지 않는 글이다.

Min, 써놓고 보니 확실히 가진다는 기준도, 다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기준도, 보람의 기준도, 죄책감의 기준도 모호하구나.

그냥 힘내. 이게 다야. 힘내.

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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