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29)-문득, 장국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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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29)-문득, 장국영
  • 차근욱
  • 승인 2015.02.0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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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고개를 넘으면 바다가 있을 것만 같았다. 서울에서 차를 타고 가는 중에 갑자기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질 일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간혹 그럴 때면 혼란스러워지곤 한다. 아마도 Nostalgia 겠지... 그런 순간이면, 지나가버린 시절의 어떤 존재가 잔인할만큼 그리워지질 때가 있으니까. 문득, 장국영이 떠올랐다. 아니, 어쩌면 장국영과 함께 보냈던 시절이 떠올랐는지도 모르겠다.

장국영은 48살이 되던 해인 2003년, 거짓말처럼 4월 1일의 만우절에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24층에서 몸을 던졌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사망이유에 대해선 타살이라던가, 자살로 볼 수 없다는 등의 루머가 난무했다.

 

24층에서 몸을 던진 상태라고 보기엔 시신의 상태가 너무 온전했고, 호텔건물이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구조였음을 감안하면 중간층에 떨어지거나 중간층에 부딪혀 추락했어야 했는데, 출혈량이 너무 미미했던 정황 등을 감안하면 오리엔탈 호텔에서 추락했다고 볼 수 없는 탓이었다.

게다가, 의료진에 의하면 병원으로 이동중인 차량 안에서 사망했다고 발표되었는데, 24층에서 추락한 사람의 경우라면 즉사하고 만다는 상식에 비추어서도 납득이 되지 않는 죽음이었다. 뿐만 아니라 사망 10분 전에 마지막 통화를 했음을 고려할 때, 24층까지 10분만에 이동했다던가, 24층에서 사람이 떨어졌다면 굉장한 상황이 벌어져서 주목을 끌었을텐데, 모두가 몰랐다가 지나가는 행인이 겨우 발견하고 신고했다는 점도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의혹은 모두 장국영의 동성연인이었던 당학덕에게 돌아갔다. 사망 직전에 싸웠다는 점도, 장국영의 전재산인 460억을 모두 상속 받았다는 점도 모두가 의혹을 키웠다. 이제와서 장국영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길은 없다. 그리고 논픽션 추리 르뽀도 아닌 다음에야, 지금 장국영의 사망의 의혹을 밝히는 것이 이 글의 목적도 아니고. 그저 처음 장국영의 사망소식을 들었을 때에 그 모든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지금도 여전히 믿기지 않을 뿐이다.

장국영을 생각하면, 개인적으로 가장 처음 생각나는 영화는 ‘동사서독’이다. 왕가위감독의 ‘무협영화’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동사서독은 그저 무협영화라고 하기엔 정확하지 않다. 동사서독은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 라고 어느날엔가 일기에 끄적였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자꾸만 다시 보게 된다고. 많은 인생들이 얽혀가지만, 결국은 그 마음의 공허를 이기지 못해 울부짓듯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이야기 였으니까.

조용한 독백 속에서 한없이 허전한 눈을 하고 바람에 머리를 흩날리는 장국영의 모습은 동사서독의 다양한 인간군상들 중에서도 가슴에 남았다. 먼 곳을 바라보는 듯 하면서도 흡사 아무것도 응시하지 않는 듯한 눈동자가 애잔했으니까. 그러한 장국영을 동사서독에서 몇 번이고 다시 만나며 자신의 공허를 달랬던 시간들이 내겐 ‘위로’였었다. 그런 탓인지, 장국영을 떠올리면 먼저 쓸쓸히도 비어있던 그의 모습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리고는 ‘아비정전’의 첫 장면이 이어 떠오른다. 파랗디 파란 밀림의 나무들이 스쳐가는 화면 속에 재즈가 흐른다. 장난같으면서도 외로운 듯한 연주. 그리곤 나래이션이 이어진다. 발 없는 새가 있지. 날아가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번 땅에 내려앉을 때가 있는데 그건 죽을 때야, 라고.

이 ‘아비정전’이 한국에서 1991년 처음 상영되었을 때, 상영관은 ‘단성사’였다. 지금은 ‘단성사’라는 극장이 존재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제법 서울에서 얼마 되지 않는 개성이 강한 외화상영관으로 알려져있던 극장이었다. 하긴, 최근에 들어서는 홍대 앞의 개성강한 가게들조차 모두 프랜차이즈 커피숍이나 음식점으로 대체되어 문화골목이 몰개성의 상가로 사라져버리는 추세이니, 대부분의 극장도 이제는 어떤 개성이나 정체성보다는 그저 멀티플랙스관으로 변해버려 다른 극장들과도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 이제는 당연한 시대가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예전에는 그랬다. 대한극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극장으로 ‘햄릿’같은 주로 명화를 상영한다던가, 서울극장은 트랜드를 알 수 있는 ‘쉬리’등의 인기작들을 상영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단성사는, 조금은 새로운 외화를 그렇게 서울시민들에게 소개했던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 개성이 있었기에, 간혹 단성사에서 어떤 영화를 개봉한다고 할 때, 신문에 소개되는 일도 간혹 있곤 했다.

하지만, 아비정전이 단성사에서 처음 1991년도에 개봉되었을 때, 한국관객들에게는 너무나 낮설어 대규모 환불 요청사태가 벌어졌었다. 이게 ‘무슨’ 영화냐고 사람들이 따지고 들었던 탓이었다. 왕가위다운 왕가위 스타일을 구축했던 첫 번째 영화였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 낮선 방식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대부분 장국영을 추억하는 분들이 기억하는 ‘맘보댄스’장면이 인상 깊었던 아비정전도 처음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했다. 그리고 이야기란 보여주는 것만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된 이후에야 그 리듬에 취해 들어 물끄러미 빠져들 수 있었다. 마치 이야기는 처음부터 각자의 가슴 속에 있었다는 것을 늦게 알아버린 것처럼.

‘아비정전’의 ‘아비’는 우리나라 표현에 따르자면 ‘날라리’, ‘양아치’ 정도 된다. 그리고 ‘정전’이란 ‘일대기’정도의 의미이므로, 결국 ‘아비정전’이란, ‘날라리의 일생’이란 뜻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크한 듯한 무심한 제목이지만, 이 제목만큼 ‘아비정전’과 잘 어울리는 제목도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장국영이 오리엔탈 호텔에서 뛰어 내렸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처음 생각난 것도 ‘아비정전’이었다. 발이 없는 새가 죽을 때 단 한번 땅에 내려온다는 이야기를 장국영이 마지막 순간에 생각했을 것만 같았다. 그는 스타이자, 한 마리의 새와 같았으니까.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장국영이 양성애자라고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커밍아웃했을 때, 실은 무척 놀랬다. 처음 들었던 생각은 ‘도대체 왜?!’였었다. 무엇하나 부족한 것 없을 것만 같은 그가 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지 못했을까 라는 안타까움이었달까. 물론, 성적취향에 대해 편견을 갖는 것은 몰상식한 일이다. 사랑은 사랑일 뿐이니까. 하지만, 장국영은 누구보다 많은 이성 간의 사랑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았기에, 조금 의외였었다. 이제와서 돌아보면, 아마도 너무나도 섬세하고 여린 감수성을 지녔던 장국영을 이해해 줄 수 있었던 사람이 없었던 탓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굉장한 미모의 여성을 볼 때, 남성들이 그 여인의 영혼이나 인격보다는 외모에 집착하듯이, 어쩌면 대부분의 여성들도 장국영을 바라보면서 그의 겉모습에만 너무 매혹되어 그 마음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르지. 마음을 나누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에 자신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누군가가 나타났을 때, 장국영의 말처럼, 자신을 사랑해주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마, 장국영의 그 말은 진심이었을게다.

장국영은 모순균에게 일생에 단 한번 청혼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장국영의 청혼을 모순균이 받아들였다면, 결국 장국영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물론,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마 모순균과 결혼을 해서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의 인생은 고독으로부터 자유롭지도, 그리 쉽지도 않았으리라고.

수줍은 듯 풋풋하게 웃는 장국영의 미소로, 사람들은 마음을 무장해제하고 그를 아꼈다. 그러나 모두의 사랑을 받았기에, 어쩌면 장국영 자신은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장국영 자신은 스스로 장국영이라는 이름에 갖혀 끝까지 외로웠을지 모른다고, 나는 혼자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장국영이 사망한지 벌써 12년이 지났다. 아마 생존한 상태였다면 올해로 장국영은 60살이된다. 왠지 장국영이 60세의 노년기에 접어든다는 것도 좀 상상이 되지 않지만, 그래도 그렇게 떠나버린 것도 아직 믿겨지지 않는다. 그의 시간이 아직 미소년인채로 멈춰버린 탓이겠지. 그래도, 60이 되고 70이 되고 80이 되는 장국영의 모습을 간간히 TV에서 마주하면서 세월의 흔적만큼의 친숙함을 마주할 수 있었다면 더 행복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그의 죽음은 너무나도 말 그대로 비극이었고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었으니까.

소년시절에는 영웅본색에 열광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동사서독을 다시보게 된다. 장국영의 눈동자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어가는 탓이겠지. 조금은 쌀쌀한 바람이 부는 날에는 문득 창 밖을 우두커니 보면서, 문득 장국영의 노래를 듣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당년정(當年情)이 끝나간다. 물이 끓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그만 커피를 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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