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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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19)
  • 신종범
  • 승인 2015.01.1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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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 받아쓰기 수사

 

 

 

 
 

 

 

신종범 법무법인 더 펌(The Firm)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지난 연말에 불거진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에 대한 검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가 있었다. ‘국정농단’이나 ‘십상시(十常侍) 모임’ 의혹이 담긴 문건의 내용은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이 만들어낸 것으로 허위라고 결론내렸다. 이에 대하여 일부 언론들은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에 맞추어 수사한 것, 예견된 수사결과, 검찰수사의 한계 등의 표현을 쓰며 검찰 수사를 비판했다. 그 중 필자의 눈에 띈 것이 ‘진술 받아쓰기 수사’라는 표현이었다. 관련자의 차명전화 이용 여부나 객관적 증거조사 없이 문건 내용에 등장하는 청와대 비서관의 진술을 토대로 수사 후 그에 따라 결론을 내버렸다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과정을 자세히 알 수 없는 나로서는 그 수사과정이 공정하고 치밀하게 이루어진 것인지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양 당사자의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객관적 증거 없이 일방의 진술만을 근거로 결론을 낸다면 그 결론을 납득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그 일방 당사자에 대하여 수사기관이 선입견을 가지고 있거나 수사의 의지가 없을 때는 더욱 그렇지 않을까?

군법무관으로 재직한 경력으로 인하여 군과 관련한 사건들을 가끔씩 의뢰받게 되는데 그 중에 안타까운 사건이 군에서 복무 중 자살한 사건이다. 건강하게 군에 보낸 자식의 주검을 맞이한 것도 억장이 무너지는데 그 죽음에 대한 정당한 평가마저 받지 못해 필자를 찾아오는 것이다. 보통은 자살사건에 대한 수사기관의 조사가 종결되고 전공사망심의에서 순직으로 결정되지 않거나 국가유공자등록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의뢰가 들어오는데 한 번은 사건이 발생하고 헌병에서 수사를 진행하는 중에 의뢰가 들어온 적이 있었다.

00사단에서 근무하던 A 일병이 부대 인근 야산에서 목을 메어 사망하였는데 그 부모가 진행 중인 헌병의 수사를 믿을 수 없으니 필자가 유가족의 대리인으로 수사가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여 달라고 했다. 부모는 A가 아무런 문제 없이 군에 입대하였고 입대 후에도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하면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A가 휴가를 나와서 부대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등 군 생활을 힘들어 했다는 것으로 보아 군대내의 문제가 그 원인인 것 같다고 하였다. A의 유가족과 함께 헌병대를 방문하여 그 동안의 수사과정을 이야기 듣고 A가 군생활을 힘들어 했다는 친구들의 진술서와 함께 유가족들이 갖는 의문점을 정리하여 제출하면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였다.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헌병대로부터 수사가 마무리 되어 그 결과를 알려 주겠다는 연락을 받고 유가족들과 함께 헌병대를 다시 찾았다. 헌병대에서는 A가 계속된 훈련으로 인하여 심신이 지친 상태였는데 훈련 중 잠깐 존 것이 지휘관에게 발견되어 영창처분과 전출을 당할 처지가 되자 불안감을 느끼고 자살을 한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부대 내 선임병들이나 간부들로부터 폭행 등 부당한 대우가 없었는지 물어보니 부대원들을 조사한 결과 특별히 문제될 만한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헌병대에서 조사한 기록을 보니 A에 대한 인성검사결과 ‘부대내 괴롭힘’이 예상된다는 내용과 ‘자살징후’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휴가를 나와 A가 친구들에게 부대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 같아 힘들다는 말을 하였고, 군에서 실시한 인성검사결과 위와 같은 내용이 확인되었다면 A가 부대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있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헌병대는 부대원들의 조사에서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가혹행위 등이 없었다고 결론내린 것이었다.

헌병대에 부대원들을 어떻게 조사하였는지 물어보니 부대원들 전원을 상대로 진술서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진술서를 받은 부대원들이 어쩌면 A에게 가혹행위 등을 한 피의자가 될 수도 있는데 그 진술을 그대로 받아 써 수사를 하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헌병대에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다시 재수사를 하여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고 헌병대에서 이를 받아들여 재수사를 하게 되었다. 그 후 헌병 수사만을 믿을 수 없어 전역한 병사들과 A의 동기생들을 상대로 개별적으로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A가 선임병들로부터 괴롭힘을 받아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에 대한 진술서를 받아 헌병대에 제출하였다. 또한, A가 사망 후 부대 간부가 병사들을 모아 놓고 소위 입단속을 한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달 후 헌병대로부터 재수사 결과를 설명 들었다. 부대원들을 상대로 개별적으로 다시 수사를 하였고 그 결과 A에 대한 괴롭힘이 있었고 A가 오랫동안 군 생활에 힘들어 했음에도 부대 내에서 적절한 조치가 없었음이 확인되었다고 하였다. 비록 바로 잡히기는 하였지만 A의 부모는 자식을 먼저 보낸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부실한 수사 때문에 상처에 생채기까지 입었다. 헌병대에서도 공정하게 수사하려고 했겠지만 좀 더 유가족의 입장에서 처음부터 철저히 수사하였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진술 받아쓰기 수사’는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는 참 편한 수사방법이다. 찾기 어려운 객관적인 다른 증거를 찾는 수고를 덜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받아쓰기는 초등학교 때 하는 것으로 족하다. 국민들이 단순히 받아쓰기 잘 하라고 수사기관에 그렇게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지는 않았을테니 말이다. 국민의 편에 서서 거악에 맞서 싸우는 믿음직한 수사기관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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