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잊을 수 없는 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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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잊을 수 없는 법관
  • 박형준
  • 승인 2015.01.1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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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1.
저무는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지난 날 감명 깊게 읽었던 책 2권의 책장을 다시 넘겨 보았다.

- 하나는 사도법관使徒法官) 故 김홍섭 판사님의 수상집 「無常을 넘어서」.
- 또 다른 하나는 故 김정훈 부제의 유고집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

2.
주지하다시피, 故 김홍섭 판사님은 평생 ‘사랑과 청빈의 삶’ 그 자체를 몸소 실천하셨고, 특히 사형수와 수형인들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으로 인해 ‘수인(囚人)들의 아버지’, ‘법의 속에 성의(聖衣)를 입은 사람’, ‘사도법관(使徒法官)’ 등으로 널리 알려진 분이시다.

“재판은 완전무결한 것이 아니니 언제나 죄지은 이의 생명과 법관 자신의 생명을 비교해야 된다”고 외쳤던 그분은, 피고인을 비롯한 재판당사자들 앞에 ‘좋은 법관’이기에 앞서 ‘친절하고 성실한 인간’이고자 하셨다.
책장을 넘기면서, 예전에 그분의 일화를 처음 접했을 때의 벅찬 감동이 되살아나며 여전히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옴을 느낀다.

「○○공판에서 나는 님의 참 모습을 봤다. 세상을 뒤흔들던 끔찍한 사건의 피고인들을 앞에 세워놓고 친자제에게 타이르듯, 온갖 정성을 다하여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것이었다. …… 선고하는 날 “법의 이름으로 □□를 극형에….” 목메어 말문이 막힌 재판장은 머리를 푹 숙인 채 한참 동안 묵념하다가 다시 말을 이어 “하느님의 눈으로 보시면 어느 편이 죄인일는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불행히 이 사람의 능력이 부족하여 여러분을 죄인이라 단언하는 것이니 그 점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 30여명의 피고인들은(극형을 선고받은 3명까지도) 숙연히 머리를 숙이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교도소로 찾아가서 사형수를 위로하는 것은 공의 일과이었고, 몸 붙일 곳 없는 가족들을 돌보는 것은 예사이었다. 그 궁색한 생활 중에서도 피나는 돈을 떼어 그들을 돕곤 했다.」

3.
故 김홍섭 판사께서 영면하실 당시 경기고에 재학 중이던 그분의 장남 김정훈은, 이후 사제의 길을 걷고자 카톨릭대학 신학부에 진학하였고, 1974년 신학대학 졸업 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나, 사제가 되기 직전인 1977년 그곳에서 불의의 등반사고로 불과 30세의 나이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故 김정훈 부제 역시 자신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산과 사람을 사랑하고, 과묵하고 따뜻한 미소로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던 겸손하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유고집 곳곳에는 구도의 길로 나선 그의 맑은 영혼의 흔적들이 스며져 있다.

「자기를 과시하려면 할수록 자기는 빛을 잃고 그만 자기가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그가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한 채 마지막으로 적은 일기에는, 자신을 비우고 외로운 사제의 길을 택한 젊은이의 고뇌와 결단, 그리고 그 인품의 깊이를 짐작케 하는 글이 남겨져 있다.

「가난과 고독을 스스로 택하여 사는 것 - 이것이 내 사제행의 동기고 그런 그리스도인이고 싶다. 그리고 원하시면 조그만 향기도 풍길 수도 있는……」

4.
노자(老子)는 도덕경에서 「화광동진(和光同塵)」, 즉 “자신의 빛을 온화하게 조절하여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춰 자세를 낮추라(먼지와 하나가 되어라)”고 하였다.

故 김홍섭 판사님과 그분의 아들 故 김정훈 부제님에 관한 글을 다시 접해 보니, 그분들은 이미 자신의 삶에서 ‘화광동진(和光同塵)’을 올곧게 실천한 분들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올해는 사도법관 故 김홍섭 판사님의 선종 50주기가 되는 해이다. 반세기 전, 그분의 선종 직후인 1965. 3. 18.자 한국일보에 게재된 ‘추모의 글’은 다음과 같은 문구로 글을 맺고 있었다.

「……그와 같은 잊을 수 없는 법관이 이 땅의 법조계에 속출하기를 빌고 싶다.」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위 마지막 문구를 되새기면서, “법관의 자세는 기지나 직관에 의한 천재적 명단이 아니라, 심사숙고로서 인사를 다하는 것”이며 “법관은 …… 무엇보다도 ‘양심’으로써 불리우는 ‘신독(愼獨)’이 요청된다”고 하신 그분의 말씀을 떠올려 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홈페이지 소통광장 법원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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