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한소운 시인의 “대숲”과 박포국민
상태바
오시영의 세상의 창-한소운 시인의 “대숲”과 박포국민
  • 오시영
  • 승인 2015.01.16 12: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2일 신년기자회견을 가졌다. 무언가를 기대하며 티브이 생중계를 내내 지켜보았지만, 또 다시 “역시나”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필자는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다, 가능한 한 막연한 언어를 사용하지 말고 구체적 언어를 사용하는 훈련을 거듭 해야 한다고. 물론 법학의 속성이 구체적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구체적인 법해석과 법적용을 통해 해결되지 못하고 있던 문제의 최종적 해결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보니 그렇기도 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고 마는 것이 법학, 즉 법률의 영역이다 보니 그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박또박 강대상 앞에 설치된 모니터에 비춰지는 회견문을 읽어나가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간혹 미소를 짓기도 하고, 한 템포 호흡을 고르며 분위기를 잡기도 하는 여유를 보이는 모습을 보다 보면, 국어책을 소리 내어 잘 읽는 귀여운 초등학생 모습이 보일 때가 많다. 참 글을 잘 읽는다. 하지만 문제는 글 읽는 모습이 아니라, 글 내용의 진정성이다. 국민을 향한 진정한 호소력이 전혀 보이지 않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회견 후 실시한 국민 여론 조사 역시 부정적 견해가 압도적으로 높다. 기대치가 큰 만큼 실망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국정 전반에 걸쳐 수많은 분야별 언급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 해결방안 제시가 전무하고 뜬구름 잡는 듯한 재탕 삼탕의 미사어구의 나열이니 문제인 것이다. 한 마디로 평해 “구체적 비전 제시”가 전혀 없는, 알갱이가 별로 없는 맹물 같은 기자회견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번 기자회견 내용 중 필자에게 가장 압권이었던 장면은, 대면보고가 없어 참모나 내각과의 불통 문제가 심각한 상황인데 이에 대한 소통의사가 있느냐는 질문 대목에서 배석한 장관들을 향해 뒤돌아보며 “대면보고가 필요한가요?”라고 물으며 대답하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에서 장관도 웃었고, 기자도 웃었고, 대통령도 웃었고, 국민도 웃었을 것이다. 서면보고만으로는 문제의 본질에 대한 행간을 읽어낼 수 없는 “난마처럼 얽힌 문제의 실상”을 제대로 전달하고 해결하기 위해 실무진과의 대면보고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소통요구에 대해 “대면보고가 필요한가요?”라는 역질문으로 “대면보고가 필요 없지요?”라는 강한 추궁의 결론을 도출해 내는 황당한 대답 앞에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그 웃으면서 역으로 되묻는 모습에서 대면요구하면 “당신 짤려.”와 같은 강한 반의적 의미가 느껴졌을 뿐이다). 누군가는 겁에 질려 웃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기가 막혀 웃었고, 누구는 썰렁한 개그를 잘 했다고 생각하며 웃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절망하며 웃었을 것이다. 다 같이 소리내어 웃었지만, 그 소회는 각기 남달랐을 것이니 이 일을 어찌할꼬.

두 번째 압권은 비서실장을 지낸 정윤회 씨 국정농단 문건 관련한 질문에 대하여 “오래 전 곁을 떠난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이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 해 12월 7일에도 정윤회 씨 관련하여 “정씨는 이미 오래전에 내 옆을 떠났고, 전혀 연락도 없이 끊긴 사람”이라고 표현했던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부하직원이나 데리고 있던 사람이 그만 둘 경우에 상급자는 “그만 두었다.”거나 “해고하였다.”라는 등의 공식적 표현방법을 사용한다. “내 옆을 떠났다.”거나 “내 곁을 떠났다.”는 식의 표현방식은 피붙이이거나 사랑하는 이와 헤어졌을 경우처럼 그리움이 남아 있을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표현방식이다. 시인이나 소설가 같은 문필가들은 이런 문장 표현에 익숙하지만, 정치인들은 대부분 부하가 그만 두는 경우 그의 책임을 물어 그만 두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정윤회 씨도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에 고용한 비서실장이었지만 2007년 대통령후보로 나왔을 때 최태민 목사의 사위라는 사실이 밝혀져 문제가 되자 그만 두었었다)에 자신과의 거리를 두기 위해 그만 두었다거나 해고하였다거나 면직처리하였다는 등 무미건조한 중립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언론이나 야당 등에서 계속해 문제를 제기하는 데도 계속해서 “옆을 떠난 사람”이라거나 “곁을 떠난 사람”이라는 식의 주관적 감정이 개입된 듯한 언어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 시인인 필자의 눈에는 예사로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옆에서 보좌하는 참모들이 사소한 것 같지만 내심이 들춰 내 보이는 그런 사적인 언어사용의 경우에는 조언을 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한소운 시인의 “대숲”이라는 시 한 편을 본다. “대숲에 와서/ 내 청춘, 푸른 시절을 추억한다/ 삶이 휘청거릴 때마다/ 손목 긋듯/ 시퍼런 비수 한 줌씩 가슴에 새기며/ 꼿꼿해지려/ 속없이 텅-텅-/ 마음을 비웠던 날들// 대숲에 서면/ 속없이/ 비워야 삶을 견뎌낼 수 있다고/시퍼런 바람 한 줄기 죽비가 된다” (시집 ‘꿈꾸는 비단길’에 수록, 2014년 황금알 간). 대나무는 비어 있음을 통해 채우는 꼿꼿함을 자랑으로 여기는 나무이다. 수많은 대나무로 이루어진 숲에 오면 대나무의 푸른 비어 있음이 우리에게 스승이 된다. 한소운 시인은 대나무가 바람 앞에 휘청거리듯, 자신의 삶이 휘청거릴 때마다 오히려 대나무를 닮으라고 한다. 손목 긋듯 시퍼런 비수 한 줌씩 가슴에 새기며 꼿꼿해지려, 비워야 삶을 견뎌낼 수 있음을 배우고자 한다. 대나무를, 인생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한 줄기마저 죽비가 되어 사람의 정신을 깨우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는 것이라고 조용히 속삭인다.

한 번 언급한 바 있지만, 이재만 비서관을 비롯한 3인방 비서관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의존도는 거의 “일심동체”적 수준인 듯하다. 이번 청와대 비서관들에 의한 국정농단사태에 대해 3인방은 전혀 사심 없이 자신을 보좌해 준 것일 뿐이라며 더 큰 신뢰를 보낸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인적 쇄신 요구를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런 확신 앞에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뿐만 아니라 여당인 새누리당조차도 거의 멘붕상태에 온 듯하다. 거기에다가 정윤회씨 관련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과 관련하여 청와대가 그 유출배후세력으로 김무성대표와 유승민 최고위원을 지목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청와대 홍보수석실의 음종환 행정관의 말을 이준석 전 새누리당비대위원으로부터 전해들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수첩메보가 뉴스에 보도되어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청와대와 각을 세우고 있는 김무성 대표가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3인방 비서관을 견제하기 위해 이번 정윤회씨 관련 문건유출에 개입했다는 것이 청와대의 시각임이 드러나게 되었으니, 검찰의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청 경정의 기소로 사건을 일단락하고, 박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으로 분위기 반전을 도모하려 했던 청와대의 구상이 완전 뒤틀려 버린 것이다.

모든 것은 정도로 갈 때 어렵지만 가장 확실하다. 그리고 단 한 번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한소운 시인의 “대숲”처럼, 수많은 대나무들이 이루고 있는 군락 속에서, 바람 한 점 스치고 지나갈 때 모든 대나무들이 소리를 내고 흔들릴지언정 결코 부러지거나 쓰러지지 않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 푸르고 꼿꼿한 대나무들은 하나같이 모두 속을 비우고,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를 채워야겠다는 욕망을 비우고 있으니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소운 시인은 대나무 한 그루를 통해, 아니 무리 진 대숲을 통해 우리 모두 속없이 마음을 비울 때 힘든 삶을 견뎌낼 수 있다고, 우리를 휘몰아치는 바람 같은 세상에서, 이 모든 바람을 노승이 동자승을 가르칠 때, 중생을 가르칠 때 사용하는 죽비이듯 여기면 우리 모두 대나무처럼 푸르고 꼿꼿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통일은 대박이라며 남북 간 당국자들이 조건 없는 만남 갖기를 원한다고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에 재미동포 신은미씨의 북한여행경험담을 풀어 놓는 대담콘서트를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며 신은미씨를 강제출국조치 시키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청와대가 국민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에 대해 사과하면서 비서관 3인방에 대한 지지의사를 더욱 강고히 하는 모순적 행동을 보이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러니 또박또박 회견문을 읽어내려가는 “초등학생의 국어책읽기” 같은 회견 모습에서 국민들이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고 진한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문득 박포장기가 생각난다. 박보장기를 보통 박포장기라고 말한다. 길거리에서 사깃꾼들이 펼치는 일종의 내기장기, 도박경기 같은 것이다. 그런데 박포장기는 사기는 아니다. 장기 수를 잘 읽으면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점은 박포장기를 통해 돈을 벌고자 하는 꾼들이 바둑을 바꿔 두면 그들이 이기는 것을 보면 충분하다. 수십 수를 읽어야 이길 수 있는 박포장기를 불과 몇 수밖에 읽지 못하는 호갱이 자만감으로 박포장기에 말려들었다가는 판판이 지고 만다. 박포장기를 펼친 이들은 대부분 여러 명이 한 팀이 되어 마치 구경꾼처럼 옆에 서 있다가 달려든 호갱이 실제 실력이 좋아 이길 듯하면 겁을 줘 끌고 가 버리거나 주변을 시끄럽게 만들어 판을 뒤집어 버리거나, 경찰이 온다고 거짓말을 해 도망을 가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박포장기 내기꾼들의 사기수법이다. 3포세대라고 한다. 아니 연애, 결혼, 출산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한다고 해서 5포세대라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되는 세상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그들이 제대로 된 직장을 얻지 못해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한 데서 비롯되는 비극적 현실인 것이다.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들이 “박포국민”이 되는 것은 아닌지 슬퍼진다.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고 포기하는 극한상황 말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자기 편이라는 진영논리에 갇혀서는 안 된다. 모든 국민을 우리 국민이라 생각하고 모두를 위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통일을 부르짖으며 통일의 구체적 행동지침을 방기하거나 반대방향으로 나가고, 일자리를 창출한다 하면서도 젊은 세대가 안정적으로 구할 수 있는 일자리 마련을 위한 정책을 위한 비전 제시가 전무한 신년기자회견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루 여덟시간의 근로시간만 철저히 하고, 최저임금수준을 1만 원 정도로만 올릴 수 있다면, 엄청난 고용창출이 이루어질 것이다. 대기업들의 엄살에 그만 속았으면 한다. 최저 임금을 올리면, 지급능력한계점의 자영업자들이 근로자로 돌아서고, 그로 인해 자영업자의 축소로 인한 경쟁 자영업소의 이익 증대로 이어져 새로운 근로자 고용이 늘어나는 선순환구조로의 획기적 방안을 세워야 할 때다.

한소운 시인은 “대숲”에서 말한다. 비우면 모두 푸르고 꼿꼿하게 서게 될 것이라고, 바람 한 점에도 죽비를 맞든 정신을 차리면 모두 살 것이라고. 박포장기는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듯이, 박포국민 역시 이기게 되는 그런 정책을 박근혜 대통령이 펼쳐주기를 기대한다. 연목구어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박포국민, 만세.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