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26) - 꼭 007시리즈가 재미없어졌다는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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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26) - 꼭 007시리즈가 재미없어졌다는건 아니지만
  • 차근욱
  • 승인 2015.01.1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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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사람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다. 여자든, 남자든. 물론, 모든 면에서 부러운 사람도 있지만, 어떤 부분 부분들을 부러워하는 것이 사실 대부분인데, 예를 들자면 이렇다. 외모는 장동건, 몸매는 권상우, 성격은 유해진, 목소리는 한석규, 재산은 만수르. 뭐, 인생 그런거지. 하하하.

나의 경우는, ‘조지 클루니’다. 분위기라던가, 눈 빛이라던가, 목소리라던가, 유머감각이라던가. 물론, 사생활을 닮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난 그냥 조용하게 책이나 읽고 운동이나 하면서 살고 싶으니까.

그리고 남자를 좋아할 생각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없지만 - 하늘이 무너져도 없다 -, 그렇게 이성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 그냥 이렇게 평화롭게 살고 싶다. 오히려 경계하는 편이랄까. 오늘을 살아가는 남자이든 여자이든, 상식을 갖추고 주위를 배려하며 예의바른 사람을 좋아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사실, ‘ER’에서 조지 클루니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오히려 좀 느끼하다는 인상이 남았을지언정. 조지형, 쏘리.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깊어지는 세월만큼의 멋이 배어들어가는 조지형을 보면서, 아!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다. 요즘 들어서 거울을 보면, ‘이루지 못할 꿈은 슬픈거구나’ 라는 생각도 들지만.

뭐, 조지형한테는 예전부터 정치권에서 러브콜이 있었고, 지금은 대통령이 될 블루 프린트도 만들어 놓은 상태라고는 해서 좀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최근 결혼도 하시고 나름의 행복을 찾아가시는 것 같아서 축하드린다. 하지만 별로 부럽지는 않다.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해 본 적이 없거든.

그래서 말인데, 만약에 진짜로 007같은 스파이가 세상에 존재한다면 ‘조지 클루니’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충분히 매력적이고 유능하고 싸움도 잘 할 것 같고. 이런 인상은 ‘아메리칸’을 보면서 확실히 굳어졌는데, 개인적으로 ‘아메리칸’을 보고선 무척 좋았다. 뭐가 그리 좋았느냐고 묻는다면, 근사한 북유럽 시골마을 배경과 어우러진 조지 클루니의 쓸쓸하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좋았었달까.

게다가 대사도 많지 않았고. 말 많은 영화는 피곤하거든. 뭐, 사람도 그렇지. 말 많고 신경질적인 사람만큼 피하고 싶은 사람도 없으니까.

실제로 스파이라던가 정보부 요원이라면 그렇게 막막한 기분의 고독한 인생을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내가 그런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 분위기의 영화는 좋아한다. 하얀 눈이 가득 쌓인 겨울의 설국에서 통나무집 모닥불 앞에 앉아 말없이 묵묵히 커피를 끓이는 수염 까칠한 남자의 깊은 눈... 같은 거. 내가 빨간 내복을 입고 그러노라면, 남들이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겠지만서두.

스파이 영화나 소설을 떠올리면 대부분 007시리즈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나도 그러니까.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어떻게 된 일인지, ‘스파이’라고 하면 조금 쓸쓸하고 고독한 단절감 속의 지친 영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아마, ‘존 르카레’의 영향일지도.

‘존 르카레’는 필명이다. 작가는 실제로 정보부요원으로 활동했었고, 은퇴 이후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스파이 소설을 집필했었다. 몇 년 전 개봉했었던 ‘탱고, 테일러, 솔져, 스파이’같은 영화의 원작도 ‘존 르카레’였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이 더 좋았지만, 영화에서도 원작의 분위기를 잘 살려 좋았다.

그런데 조금 딴 얘기지만, IPTV에서 성우 아저씨가, “최신작 관람의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탱고테일러, 쏠져스파이!!”하고 분위기 타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닭살이 좀 돋았다. 그도 그럴 것이 ‘탱고, 테일러, 솔져, 스파이’같은 말은, 우리나라로 치면 ‘한놈, 두시기, 석삼, 너구리’. 뭐, 이런거거든.

그런데, 외국의 한 성우가 “최신작 관람의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한놈두시기, 석삼너구리!!”하고 읽는다면 좀 이상하지 않을까. 석삼이라는 너구리종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성우아저씨는 ‘탱고테일러’라는 이름의 ‘군인간첩’의 영화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다.

007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초등학생 시절에도 역시 나는 별로 친구가 없었어서 구석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지금이나 그 때나 변한게 없구나, 싶으면 회한이 몰려오기도 하지만서두.

초등학교 때 얼마나 책하고 놀았느냐면, 겨울방학의 어느날 그림책을 보고 놀던 초등학교 1학년의 나에게 어머님께서는, ‘나가서 팽이치는 것 배워오기 전에는 밥을 주지 않으시겠다’고... 그 때나 지금이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국은 먹는 것이었군. 뭐, 그렇게 내쫓으셔서 팽이를 들고 난감한 기분으로 동네를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누구한테 팽이치기를 배운다? 하면서.

그 초등학생 시절에 학교에 작은 도서관이 있었는데, 교장선생님이 훌륭하셨던 덕이었는지는 몰라도 재미있는 책이 잔뜩 있었다. 비록 담임 선생님은 대놓고 촌지를 요구하셨던 학교이긴 했지만, 도서관 하나는 훌륭했던 것이다.

그 작은 도서관에서 나는 학교가 끝나고 날이 저물 때까지 매일 매일 수 많은 책을 읽었다. 그래봤자 아동용 이야기책들이었지만, 그 때는 정말 그렇게 책읽기가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특히나 가슴 설레며 읽었던 이야기들이 우주여행텀험기나 007시리즈, 그리고 셜록홈즈였다.

얼마나 좋아했느냐면, 이안 플래밍이나 코난 도일경의 책들이 뭐 또 없을까, 하며 헌책방을 찾아 다니곤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 때 했었던 생각이, ‘어른이 되면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어로 된 007과 셜록홈즈를 꼭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봐야지!’였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열심히 영어공부를 해서 영어선생이 되고 난 후에는 어찌된 일인지 셜록홈즈 완역본을 종류별로 사들이게 되었다. 으흠... 왜일까. 뭐, 인생에는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거니까.

007시리즈는 훌륭한 소설이다. 재미도 있고 상상력도 자극하니까. 덕분에 새로운 007시리즈가 개봉된다고 하면 늘 기대하게 되기도 하는데, 영화로서의 007은 세월이 가면서 조금씩 아쉬워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간 역대 6명의 제임스 본드를 배출한 007시리즈는 갈수록 지루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랄까.

007은 분명 탁월한 소재이므로 더 재미있게 꾸밀 수도 있을 법한데, 뭔가 억지에 뭔가 현실성이 떨어진다. 내가 리얼리티를 좋아하는 지독한 오덕쟁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성인들이 보는 스파이 영화라면 적어도 어느 정도의 리얼리티나 긴장감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러브라인도 의상비를 극단적으로 아낀 장면들만 고집하기보다는 애절함이나 그리움, 뭐 이런 정서적인 것들도 좀 들어가고. 그런데 초기의 007시리즈 외에는 갈수록 재미가 줄어든다는 것이 솔직한 나의 소감이다. 당연히 내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갑다, 하고 생각은 하지만.

최고의 제임스 본드는 ‘로저 무어’라고들 하지만, 개인적으로 느끼는 최고의 제임스 본드는 역시 ‘숀 코네리’다. 넉살도 좋고, 유머도 있고, 진지함도 있으시고. 무엇보다 근사하잖아. 새해가 되어 한 살 더 들어서 그런 탓인지, 요즘은 멋있게 나이가 드는 배우들이 새삼 멋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너무 어려서는 남자의 멋을 알 수가 없어!’ 하고 있달까. 뭐, 그렇게 해서라도 스스로 위안이 된다면 다행이겠지.

숀 형님은 007을 은퇴하시고 ‘더 락’때도 정말 근사하셨다. 007이 아닌데도 왠지 제임스 본드의 그 뒤 이야기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 였으니까. 노신사이신데도 여전히 액션이 어색하지 않으셨던데다, 드라마에도 잘 어울리시는 중후함이 있으셨달까. 정말, 그렇게 늙어야 하는데... 요즘의 나처럼 얼굴에 뾰루지나 나고 살이나 쪄서는 택도 없는 일이겠지.

최근의 007 영화를 보면, 뭔가 재미있어 지려고 하다가 말고, 또 뭔가 재미있어 지려나? 하다가 만다는 인상이 강했다. 좀 지루하기도 하고. 본드걸도 별루.

아쉽지만 요즘 본드로 활약하고 계신 다니엘 크레이그 형님은 내 머리 속의 본드는 아니시다. 아마 어려서 읽었던 007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이겠지. 다니엘 형은 너무 뚱~하시달까. 마치 보쌈집에서 ‘사장님, 보쌈김치 좀 더 주세요~!’라고 말하자 슬리퍼를 딸깍 딸깍 끌고 8자 걸음으로 와서는, 온갖 인상을 다 찌푸린 채로 ‘보쌈 김치 더 시키시려면 돈 따로 주셔야 해요. 드려요?’라고 말하는 보쌈집 사장님처럼. 물론, 개인적으로. 감정은 없어요, 다니엘 형.

‘본드’라면, 누가 뭐래도 로맨틱하면서도 사교성이 좋아 보여야 하지 않나? 하는 내 고정관념 탓 일지도 모르겠지만. 차라리 등장 때부터 007 짝퉁이라는 느낌을 주었던 ‘본 아이덴티티’의 ‘제이슨 본’에 다니엘 형은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처음 ‘본 아이덴티티’의 주인공 이름이 ‘제이슨 본’이라고 해서 얼마나 웃었던지! ‘나이스’농구화 같은 느낌이었달까. 하하하.

결론적으로, 007영화가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조금 지루해지는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저는 007영화와 본드형이 좋습니다. 앞으로도 응원할테니 건승해 주세요. 007 제임스 본드 파이팅입니다!

아! 그건 그렇고, 초등학교 1학년 때 그래서 팽이치기는 배웠느냐고? 후후후,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결국엔, 팽이치기를 아주 잘 배워서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갔었다. 난감한 기분으로 동네를 배회하다가 후미진 공터에서 팽이를 치고 있던 얼빵한 녀석을 발견해 팽이의 모든 것을 전수 받았거든.

몇 번이고 연습해서 팽이치기를 드디어 익혀, 어머니 앞에서 팽이치기 시험을 봤던 기억이 선하다. 그리고 정말 뿌듯한 기분으로 저녁을 먹었었지. 그 때 내가 왜 그렇게 팽이치기를 열심히 배웠었는지, 그 친구는 몰랐을게다. 윤식아, 언제 한번 저녁 밥이나 먹자! 내가 살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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