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이규리 시인의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와 뒷걸음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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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이규리 시인의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와 뒷걸음질
  • 오시영
  • 승인 2015.01.0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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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새해 첫 주가 지나고 있다. 대학 교정은 겨울방학으로 차분하다. 도서관을 찾는 몇몇 학생을 빼고는, 그렇게 학기 중 붐비던 교정은 한가롭다. 겨울바람이 스치고 지나는 교정의 가로수는 혼자 외롭다. 교정을 아름답게 채색하던 그 가을의 꽃잎도 다 지고, 슬프디 슬픈 겨울 햇살은 바람 사이를 뚫고 차가워진 겨울땅을 데피려고 천리우주를 날아와 지친 마지막 온도를 내어주고 있다. 하지만 겨울은 그렇게 여전히 겨울이다. 운동장 트랙을 걸었다. 그것도 뒷걸음으로 한 바퀴를 돌고 두 바퀴를 돌았다. 귓불은 겨울바람으로 시리고, 손등은 차갑다. 주먹을 쥔다. 손바닥이 따뜻함을 느끼며, 그래도 살아 있구나 감사한다. 인조잔디가 깔린 대운동장의 트랙을 거꾸로 뒷걸음질하며 내가 걸어온 발자취를 되돌아본다. 앞으로 앞으로만 걸었던 시간들 속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내 발자국의 흔적을 본다. 저 자국이 내가 내 발을 내딛었던 자국인가? 슬프도록 선명하다. 저 걸음걸음마다가 내 흔적이다. 남겨진 것은 온통 잘못 투성이 이다. 내 자신을 되돌아보고, 또 뒷걸음질을 한다. 내 눈은 앞을 향하지만, 뒷걸음질하는 그 순간 내 온 신경은 뒤로 향하고 있다. 뒷걸음질이 나를 넘어뜨리고, 나를 쓰러뜨린다. 아, 앞으로 걷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로구나. 뒤에서 누군가 나를 항시 그렇게 쳐다 봤겠지? 비틀거리는 걸음을 수많은 사람들이 뒤에서 바라보았겠지?

이규리 시인의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를 본다.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다 하네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외롭다는 말도 아무 때나 쓰면 안 되겠어요// 그렇다 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요// 어느 때, 어느 곳이나/ 꼬리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 있겠지만/ 꼬리를 잡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와중에도 어딘가 아래쪽에선/ 제 외로움을 지킨 이들이 있어/ 아침을 만나는 거라고 봐요” (문학동네 시인선 54,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에 수록).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유상범 3차장검사)은 지난 5일 지난 연말 세상의 주목을 받았던 정윤회씨 관련 청와대 비선 실세 개입 문서 유출과 관련된 수사에 대하여 “박관천 경정이 작성한 ‘정윤회 문건’은 그 내용이 허위”이며, “비선 실세로 거론된 정윤회씨와 청와대 십상시들의 회동은 없었다.”라는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였다. 모든 것은 조응천 전 청와대공직기강비서관이 자신의 입신영달을 위해 대통령 동생인 박지만씨에게 문서를 부당하게 유출한 것으로, 부하직원인 박관천 경정에게 허위사실을 작성토록 지시한 것이라며, 그를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과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박관천 경정을 같은 혐의 및 공용서류은닉, 무고 혐의로 구속 기소하였다. 또한 박 경정이 불법유출한 문서를 무단복사하였다며 서울경찰청 정보분실 소속 한모 경위를 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수사 도중 자살한 최 모 경위를 공소권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하였다.

위 중간수사결과는 자체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 조응천 씨와 박 경정이 작성, 유출한 문서는 시중에 떠도는 풍문들을 짜깁기한 찌라시에 불과하지만, 정식 보고ㆍ결재가 이루어졌거나 업무수행결과에 대한 보고사항을 기록한 것이므로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찌라시라고 규정한 문서가 대통령기록물로 최종 판단된다는 검찰의 수사결과는 그 자체로 시중의 우스개가 되고 있다. 수사결과가 나오자마자 청와대는 “몇 사람이 개인적 사심으로 인해 나라를 뒤흔든 있을 수 없는 일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논평하였다. 그러면서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앞으로는 다시 이런 일이 없어야 하며 이제는 경제 도약을 위해 매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모든 것은 헛장난질이었고, 모든 것은 경제에 집중해야 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하지만 주변의 누구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은 것 같다. 그 사람들에게 필자처럼 한 번 운동장을 뒷걸음질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규리 시인은 말한다,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라고. 도마뱀은 제 살아야 할 경우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 몸의 일부를 냉정하게 버려 버린다고. 그리고 그 잘려나간 꼬리는 그 짧은 찰나의 몸부림을 통해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함으로써 도마뱀의 도망을 돕는다고. 하지만 도마뱀의 진리는 비록 꼬리일망정 자신의 몸의 일부를 자를 때에 몸통이 도망갈 시간적 찰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몸의 일부를 자르지 않으면 결코 몸통은 도망갈 수 없고, 결국 도마뱀은 포식자에게 생포되어 포식되고 만다는 사실을 청와대가 기억했으면 한다. 5천만 국민이 청와대를 포식자의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도마뱀이 되어 버린 청와대는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제 몸통의 일부를 자르지도 않고 꿈틀거리고 있으니, 이는 정말 개콘이나 웃찾사의 한 개그 코너를 보며 시청자들이 포복절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도마뱀이 되어 버린 청와대는 조응천 전 청와대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을 자신들의 꼬리인 양 착각하고, 몸통의 일부를 잘라내 자신들이 살겠다며 그들을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하였다. 하지만 청와대가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은 결코 청와대 몸통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도마뱀의 꼬리가 아닌 그들은 도마뱀과는 별도의 독립된 영역의 또 다른 포식자가 될 개연성이 대단히 높아 보인다. 몸통은 자름으로써, 자르는 것만으로 그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른 몸통을 직접 죽이겠다고 나서게 되면, 잘린 몸통은 제 살기 위해 “고양이 앞의 쥐”가 되어 고양이를 물게 되어 있는 것이 세상이치이다. 청와대가 죽이려고 하면 할수록 그들은 오히려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최고의 방어는 최고의 공격이라는 전술처럼 그들 역시 청와대를 향해 스스로 포식자가 되겠다며 칼을 벼리게 되고, 또 다른 몸통의 비리를 터뜨리기 위한 몸부림을 계속할 것이다.

이규리 시인은 말한다. “어느 때, 어느 곳이나/ 꼬리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 있겠지만/ 꼬리를 잡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라고. 포식자는 도마뱀을 잡는 것이 최종 목표이지, 도마뱀의 꼬리, 그 몸통의 일부를 잡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진정한 몸통의 일부, 꼬리를 잘라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사건의 중심축에 있는 이재만 비서관을 비롯한 세 명의 비서관 및 관련자들을 측근에서 내쳐야 한다. 그것이 국정논단의 중심에 서서 국기를 문란케 하고, 모든 국민의 연말을 피곤케 만든 원인을 제거하는 가장 유일하고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그들을 신임하고 측근에 두게 되면, 그들은 여전히 도마뱀의 꼬리가 되어 꿈틀거리게 되고, 이것은 포식자의 눈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서 여전히 몸통 전체가 포식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래, 포식자의 최종 목표는 꼬리를 잡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일부 사리사욕에 잡혀 있는 이들은 그 꼬리 앞에서 자신의 꼬리를 치며 아양을 떨겠지만, 그것은 그 꼬리의 진면목을 더욱 극명하게 각인시켜 줄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야당에서는 검찰의 수사결과가 너무나 비상식적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며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들도 상식적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라며 주요 언론이 국민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몸통 아닌 다른 곁가지를 쳐내고서 살아남겠다는 도마뱀은 도마뱀 생리의 원투쓰리도 모르는 어리석은 존재이다. 하지만 이규리 시인은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요.”라고. 정말 시인의 말대로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어쩜, 그 엉터리 꼬리자름으로 또 한 번 포식자의 시선이 헛갈리고, 도마뱀을 놓칠지도 모른다. 그것을 노리는 것이 도마뱀일 테니까. 하지만 세상은 이규리 시인이 “외롭다는 말도 아무 때나 쓰면 안 되겠어요 그 와중에도 어딘가 아래쪽에선 제 외로움을 지킨 이들이 있어 아침을 만나는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새로운 진실이 밝혀질 것을 기다리며 현재의 힘든 제 외로움을 지키는 이들로 인해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규리 시인은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라는 짧은 시 한 편을 통해 우리를 뒷걸음질치게 만든다. 운동장 트랙을 뒷걸음으로 한 바퀴 두 바퀴 돌면서 제 족적을 되집어보고, 살아온 어제를 되돌아본다. 뒷걸음질을 치면 칠수록 참으로 잘못한 것들이 많고, 사랑하는 이를 아프게 한 적이 참으로 많았음이 보인다. 도마뱀처럼 그 잘못한 일부를 잘라내어야 한다. 그 잘림을 통해 반성하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해야만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실직한 40대 가장이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을 죽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아직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는 약간의 종잣돈이 남아 있는 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재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절망이 그런 극단적 행동으로 나아가게 했던 것이 아닌가 미루어 짐작해 본다. 경제적으로 윤택하던 삶이 어느 날 한순간 실직으로 무너지고, 주식투자를 통해 회복해 보려던 시도가 오히려 빚더미 위에 앉게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됨으로써 상대적 빈곤감으로 치유 불능의 범죄를 저질렀다. 절대적 가난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세 모녀가 있었던가 하면, 상대적 궁핍으로 세 모녀를 살해한 남편이자 아내가 있는 세상, 여기저기에서 도마뱀들과 포식자들이 혼재되어 혼탁하다.

그러면서도 이규리 시인은 말한다, 최선은 그런 것이라고. 누구를 탓하랴, 전자도 후자도 모두 최선을 다 한 결과일지도 모르는데. 박근혜 대통령도,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한 세 명의 비서관들도. 그리고 조응천과 박관천 경정까지도. 하지만 죽은 최 모 경위는 말이 없고, 죽은 세 모녀 두 가족은 말이 없다. 아, 도마뱀이 되어 몸통의 일부를 언제, 어디서, 어떤 경우에 잘라야 하는가? 나는 오늘도 운동장에 나가 뒷걸음질로 트랙을 돌 예정이다. 뒷걸음질로 돌고 돌면서 내 앞에 새겨진 족적들을 되돌아보고 반성할 것이다.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라는 말을 곱씹는다. 모두의 관점이 다르고, 모두의 족적이 다르고, 모든 도마뱀의 꼬리길이가 다르다. 아, 이렇게 다른 세상에서 모두들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라고 하면서 자신의 꼬리를 잘라내 버리면 어떡하지. 꼬리도 내 몸통의 일부인데. 같이 살아온, 같이 살아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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