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선관료의 재량과 적응적 집행 -

 

 

 

 

 

박훈 합격의법학원 행정학 전임

1. 의의

상향적 접근방법을 강조하는 시각에서는 정책의 집행 현장을 매우 중시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집행현장은 정책수단이 물리적으로 실현되어 정책의도가 실현되는 현장이다.
② 정책의 내용이 애매모호하거나 추상적인 경우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상당한 재량권을 가진 일선 집행관료의 집행방법이나 집행내용에 따라서 정책의 내용이 실질적으로 결정된다.
③ 집행현장은 정책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가 발생한 현장이기 때문에 상황 변화에 따른 신축적인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

2. 행담당자의 재량권 강화의 필요성

(1) 정책내용이나 정책지침이 불명확한 경우

정책내용이나 지침이 불분명하거나 무리하게 정책내용이나 지침을 명확하게 만드는 경우에는 일선집행담당자에게 광범위한 재량권을 부여하는 것이 성공적 집행을 위해 필요하다. 정책내용이 불명확해지는 이유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① 정책과정의 참여자들 사이에서 이해관계가 대립하여 모순, 갈등, 대립관계에 있는 정책목표와 정책수단들이 우선순위 없이 나열되는 경우이다.

② 정책목표는 명확하다고 하더라도, 정책목표와 정책수단 사이의 인과이론이나 기술이 부족한 경우이다.

③ 일선집행현장의 상황이 복잡한 경우 정책의 내용은 공통적인 측면만을 취급하여 일반성과 추상성을 띠게 된다. 이와 같이 정책내용이나 정책지침이 불명확한 경우에는 일선집행담당자의 광범위한 재량권이 필요한 것이다.

만약 일선관료에게 재량을 인정하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생긴다.

① 정책의 내용과 관련하여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는 경우에도 명확한 정책내용이나 정책지침을 개발하는 경우에는 집행과정에서 광범위한 저항과 형식적인 순응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② 이론이 부족하고 상황이 복잡한데도 중앙에서 사전에 자세하고 구체적인 정책지침을 만들면 집행현장의 구체적.개별적 사례에 적합한 지침이나 결정이 이루어지지 못해 집행은 실패하게 된다.

(2) 다수의 집행 관련자들이 참여한 경우

집행현장에는 많은 이해관계인들이 참여하고 있고, 특히 민주화된 정치체제에서는 이들의 참여가 권리로 보장되어 있어 이들의 협조나 최소한의 묵인 없이는 정책집행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들 참여자나 집행관련 기관들은 서로 느슨하게 연결된 체제(loosely coupled system)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명확하고 자세한 정책지침에 따라 행동하도록 강요하면 정책참여자들 간에 타협과 흥정이 어려워지고 보고서상으로만 순응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관련 집단의 참여를 인정해야한 획일적인 명령체계가 없는 집행기관들이 참여를 통해서 이해를 상호 조정하여 집행이 용이해진다. 물론 공동행동의 복잡성에 대한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정책집행 과정에 참여자가 너무 많으면 거부점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협조가 없으면 집행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더욱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참여를 위해서는 참여과정에서 흥정과 타협을 할 수 있도록 집행담당자에게 재량을 부여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3. 일선관료제와 정책집행

(1) 내용

1) 일선관료제의 개념

립스키(Michael Lipsky)는 업무수행과정에 있어서 시민과 직접적으로 접촉하여 업무수행상 상당한 재량을 보유하는 공무원을 일선관료(street-level bureaucrats)라고 하며, 경찰서와 사회복지기관처럼 그 구성원의 상당부분이 이러한 일선관료로 구성되는 공공서비스기관이 일선관료제(street-level bureaucracy)이다.

2) 일선관료의 업무환경
① 불충분한 자원
② 권위에 대한 위협과 도전
③ 모호하고 대립되는 기대의 존재. 이상과 현실적 요구 간 괴리

3) 적응 메커니즘의 개발 : 단순화와 정형화

일선관료들은 복잡한 문제와 불확실한 환경에 직면하여 직무를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한 대응 메커니즘(coping mechanisms)을 개발하게 되는데, 크게 보면 단순화와 정형화이다. 단순화란 복잡한 환경을 자신이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환경으로 구조화시켜 인지하는 것을 의미하고, 정형화란 업무가 수행되는 방식을 규칙적이고 습관적인 것으로 유형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단순화와 정형화라는 적응 메커니즘을 개발하여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① 부족한 자원에 대처하기 위해 일선관료들은 재빨리 결정을 내림으로써 시간을 절약하고 정책대상 집단과의 갈등, 결정에 대한 심리적 불안을 피하고자 한다. 또한 문제 상황을 미리 구조화하여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한다.

② 육체적.신체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잠재적 공격자’의 특징을 사전에 규정함으로써 집행현장의 의사결정을 단순화한다. 또한 자신들의 관여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회피전략을 사용함으로써 위협요인을 줄이기도 한다.

③ 모호하고 상반된 역할기대에 적응하기 위해 역할기대를 재정의하고, 고객집단을 재정의한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과 고객집단에 대한 재정의가 일선관료의 책임전가로 나타날 수 있다.

적응 메커니즘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시민들을 구분하여 인식하고, 특정계층에 집중적인 관심을 쏟는다는 점이다.

4) 고정관념의 영향

일선관료들이 처해 있는 불리한 업무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메커니즘은 진공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개인 또는 조직의 적응 메커니즘을 형성하고 제도화시키는 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일선관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 선입견 등으로 지칭될 수 있는 ‘고정 관념’이다. 고정 관념의 가장 기본을 이루는 것은 유형화 또는 분류인데, 이에 근거하여 일선관료들은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환경을 인지하고 어느 집단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것인지를 판단한다.

일선관료들이 행하는 차별은 큰 파급효과가 있다. 따라서 고정관념에 의해 형성된 단순화와 정형화가 집행조직 내에 제도화되어 있다면 사회에 자리 잡고 있는 차별은 더욱 공고화될 우려가 있다.

(2) 평가

1) 공헌

① 종래 정책이론에서 경시되어 온 정책전달자로서 일선관료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는 점에 가장 큰 의의가 있다. 다시 말해, 권위의 계층제와 영향력의 계층제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② 일선관료에 의한 정책의 ‘재발명’을 조명해주었다. 일선관료들은 집행현장의 특수성에 대응하기 위해 광범위한 재량권을 행사하는데, 이들이 행사하는 재량은 현지실정에 맞도록 정책을 수정하는데 이바지할 수 있다. 따라서 정책의 재발명이 정책의 성공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재발명의 실태를 제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책의 재발명이 가능한 이유를 명확히 하였기에 나름대로의 의의가 있다.

③ 정책집행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데 일조하였다. Pressman과 Wildavsky가 현대적 정책집행 연구를 이끈 것은 사실이나, 하향적 접근방법에서는 정책과정에 있어서의 주된 행위자를 여전히 정책결정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선관료의 광범위한 재량이 불가피하다고 보며 일선관료의 정책결정을 강조하는 일선관료제 이론은 정책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정책형성이 아니라 정책집행이라는 주장을 다시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다.

2) 문제점

① 민주적 통제와 조화되기 어렵다. 일선관료들이 정책의 최종적 결정을 위한 가장 중요한 활동을 담당한다는 주장은 민주적 정치체제의 정책 통제라는 규범적 시각에서 보면 문제가 있다.

② 정책결정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였다. 일선관료제이론은 일선관료의 정책과정에서의 역할과 정책집행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부각시킨 결과 정책결정 과정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③ 지나친 획일성이다. 일선관료제이론에 의하면 일선관료조직은 그 기능에 상관없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는 이와 다른 경우가 많다. 따라서 획일적인 일선관료제이론으로 모든 일선관료의 행태나 활동을 설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4. 적응적 집행

(1) 개관

정책집행의 하향적 접근방법과 상향적 접근방법을 일률적으로 적용할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달리 적용할 것을 주장하는 입장이 나타났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버만(Paul Berman)의 상황론적 접근방법이다. 그에 의하면 집행의 성공 여부는 정책과 그것을 둘러싼 제도적 환경(상황)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집행의 제도적 환경은 거시적 집행구조의 제도적 환경과 미시적 집행구조의 제도적 환경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중앙정부에서 지방의 집행조직에까지 이르는 관련 정책분야의 모든 참여자와 활동을 포함하며, 후자는 주로 서비스 전달조직에만 한정된다.

(2) 제도적 환경

1) 거시적 집행구조

거시적 집행구조는 다양한 정책참여자들이 느슨하게 연계된(loosely coupled) 연합체의 성격을 갖는다. 여기에서 정책결과는 느슨하게 연계된 조직들 간의 집행활동의 통로에 의해 결정되는데, 그 통로에는 다음의 4가지가 있다.

① 행정(administration)은 정책결정을 구체적인 정부 프로그램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② 채택(adoption)은 행정을 통해 구체화된 정부 프로그램이 집행을 담당하는 지방정부 사업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③ 미시적 집행(micro-implementation)은 지방정부가 채택한 사업을 실행사업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④ 기술적 타당성(technical validity)은 미시적 집행을 통과하면서 실행사업으로 변환된 후에 실행사업이 정책결과를 산출하는 것이다.

2) 미시적 집행구조

미시적 집행이란 서비스를 전달하거나 규제를 직접 담당하는 일선집행기관 또는 지방정부의 하위수준에서 발생하는 좁은 의미에서의 정책집행 단계이다. 미시적 집행구조의 특징은 다음의 3가지로 요약된다.

① 집행현장에서는 서비스 전달자인 전문적인 집행관료와 서비스 수혜자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② 미시적 집행구조의 성과(정책결과)에 대한 측정의 어려움이 존재한다.

③ 집행조직은 불확실하고 통제가 불가능한 외부 환경의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상호작용한다.

그리고 미시적 집행구조의 3가지 국면은 다음과 같다.

① 동원(mobilization) 국면은 집행조직에서 사업을 채택하고 실행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실질적인 서비스 전달자들의 정치적.관료적.개인적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계획과정에 광범위하게 참여시키고 연합형성과 협상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② 전달자 집행(deliverer implementation) 국면은 적응(adaptation)이 핵심이다. 즉 채택된 사업을 실제 집행하는 단계에 들어서면 선택의 상황에 직면한다. 이때 선택이란 사업을 자신들의 표준운영절차(SOP)에 맞출 것인가 아니면 표준운영절차를 변화시켜 사업에 맞출 것인가 하는 것이다.

㉠ 불집행(non-implementation)은 사업과 표준운영절차 모두 적응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 적응적 흡수(동화, co-optation)는 집행조직이 개발해 놓은 기존의 표준운영절차에 채택된 사업이 적응하는 것이다.

㉢ 기술적 학습(technological learning)은 집행조직의 표준운영절차가 채택된 사업에 맞게 변하는 것이다.

㉣ 상호적응(mutual adaptation)은 사업과 조직이 모두 서로에게 적응하는 것이다.

이들 중 바람직한 정책집행은 정책결정자가 추구하는 정책집행을 위하여 집행기관의 표준운영절차가 변하는 조직의 적응(organizational adaptation)과 집행환경의 특수성에 맞춘 정책결정자의 정책프로그램 자체의 적응(project adaptation)이 동시에 일어나는 상호적응적 집행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호적응적 집행이 의미 있는 정책유형은 서비스 전달자인 전문적인 집행관료와 서비스 수혜자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필수적이고, 정책산출의 측정에 어려움이 수반되며, 불확실하고 통제가 어려운 환경에서 집행해야 하는 교육, 의료, 사회복지 등 공공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정책분야이다.

③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는 조직절차의 일부분으로 정형화하는 관리자의 의도적인 의사결정 및 직접적인 서비스 전달자들에 의해 실행될 때 정착될 수 있다.

(3) 상황적 집행

결국 정책결정자의 결정을 그대로 집행하는 것이 최선의 집행이 아니라, 집행의 제도적 환경에 부합하는 ‘적응적 정책집행’이 필요하다. 다음의 경우 현지 적응적 집행전략이 더 중요하다.

① 정책 목표 및 수단에 관해 갈등이 있는 경우
② 집행 현장의 특수성이 강할 경우
③ 기존의 집행 기술로는 구체적 집행 지침을 세우기 어려운 경우
④ 다양한 정책참여자들이 느슨하게 연계된 연합체인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