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영화 국제시장과 변호인, 말과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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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영화 국제시장과 변호인, 말과 양
  • 오시영
  • 승인 2015.01.02 12:0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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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2014년이 가버렸다. 그리고 2015년이 와버렸다. 하룻밤 자고 났더니, 말띠해가 가버리고, 양띠해가 와버렸다. 사실은 아직 말띠는 가지 않았고, 양띠는 오지 않았다. 띠 계산은 음력으로 하는 것이지, 양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새로 벽에 걸린 2015년도 카렌더는 갑오년이 아닌 을미년이 표시되어 있다. 연말연시가 되면 “년”이라는 말을 유독 많이 사용한다. 그렇다고 년이라는 말을 다른 뜻으로 사용해서는 곤란하다. 물론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서민들은 시중에 떠도는 “년 시리즈”를 주고받으며 맞아맞아 하며 웃고 즐거워 하기도 한다. 이런 언어의 뉘앙스는 성별의 차이에서 오는 감각의 차이일 것이다. 놈이나 년은 남자나 여자를 낮춰 부르거나 욕하는 말이라고 국어대사전은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점잖은 체면에 놈이나 년이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인격을 의심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난 한 해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많이 사용한 비속어 중의 하나가 아마 놈이나 년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일상사에서 놈이나 년을 가장 많이 내뱉으며 스트레스를 풀거나 남을 비난하거나 아니면 자신을 비하하거나 하면서 살아간다.

갑오년이 가고 을미년이 왔다. 지난 해 갑오년이 시작되던 때 올해는 청말띠라면서, 모두들 복운이 왕성할 것이라는 덕담을 주고받았지만, 되돌아보니 갑오년에는 갑오징어 등껍질처럼 단단한 갑들의 “나쁜 갑질”이 유독 횡행했던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실규명이라는 대명제는 힘센 갑들의 횡포로 을들의 권리보호나 진실규명이 힘들게 된 이름뿐인 특별법으로 변질되고 말았고, 연말에 이르러 조현아 대한항공 전무의 항공기회항이라는 소위 땅콩갑질로 그녀는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또 다른 갑질 사건인 청와대 정윤회씨 관련 공직기강비서관실 작성의 문건유출사건은 누군가의 갑질로 진실은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졸지에 을이 되어 버린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에 대한 구속 시나리오로 사건을 종결지으려 했던 검찰과 청와대의 갑질은 법원의 영장기각으로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2014년 최고의 갑질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해산결정이 아니었을까?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적법절차에 의한 재판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시간적, 공간적 상황이어서 문제가 있다는 점에 대한, 즉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초고속 부당선고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지난 호에서 자세하게 언급한 바 있다. 300페이지 책을 600권 쌓아놓은 부피의 18만 페이지 재판기록을 18일만에 읽고 정리한다는 것은 신조차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민사재판절차에 의한 재판이었기 때문에 더 더욱 그러하다.

영화 “국제시장”이 국민들의 6-70년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2013년의 변호인과 2014년의 국제시장을 대비하며 진보와 보수로 분류하는 평론가들도 있지만, 국제시장은 우리 현대사에 있었던 가난한 아버지, 어머니들의 이야기라고 할 것이다. 가난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먹고 살기 위해서, 자식들을 갑으로 키우기 위해서 스스로 을들이 되어 모든 고생과 수모를 감내한 현대사의 질곡을 영화화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2월 29일 “2014년 핵심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애국가 가사 중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라는 가사가 있지 않나. 즐거우나 괴로우나 나라 사랑해야 되고, 또 최근 돌풍을 일으킨 영화(국제시장)도 보니까 부부싸움 하다가도 애국가가 들리니까 국기배례를 하고…”라며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을 언급하며 국민과 공무원들의 애국심을 강조하였다. 국제영화의 한 장면처럼 계절에 따라 매일 오후 5시 또는 6시가 되면 애국가가 전국에 울려 퍼졌고, 모든 국민은 하던 동작을 모두 멈추고 로봇처럼 국기가 있음직한 곳을 향해 가슴에 손을 얹고 부동자세로 경례를 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전 국민이 일순간에 정지된 석고상이 되어 버렸던 국가주의의 한 단면이었다. 어찌 그뿐이었나, 돈을 내고 영화를 보러 가도 영화 시작하기 전에 애국가가 흘러나왔고, 관객 모두는 일어서서 그 화면 속의 태극기를 향해 경건한 자세를 취해야 했었다. 1989년 1월에서야 국기하강식이 폐지되었으니, 군사독재권력이 무너지고 문민정부인 김영삼 대통령의 결단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국가주의, 전체주의를 상징하던 국기하강식의 폐지는 강요된 애국심이 아닌, 자율적인 애국심의 시대로의 시대정신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2014년 12월 개봉된 영화 국제시장은 을이었던 부모세대가 자식들을 갑으로 키우겠다며 자신들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몸부림치던 시대상황을 영화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6ㆍ25의 민족비극으로 가족이 흩어지고, 각자 살아남은 이들이 파독광부나 파독간호사가 되어 외화벌이에 나서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동두천 양색시가 되어 외화벌이에 나서고(60년대 초 동두천 양색시들이 벌어들인 외화가 단일항목으로 최대의 외화벌이였던 슬픈 통계도 있다), 머리카락을 모아 가발을 만들어 수출해 외화를 벌어들이기도 했었다. 그렇게 전 국민은 가난했고, 을들인 민초들은 을로서 목숨을 부지하고 살 수만 있으면 그것만으로 고마워 했던 시절이 있었다. 월남전 특수를 통해 월남인들과 일부 파병장병들이 죽어나갈 때 우리는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경제성장의 밑거름을 삼기도 하였다. 그러다 우리는 먹고 살만해 졌고, 그제서야 갑으로 키우고 싶었던 자녀들이 여전히 을로 고착되어 있는 슬픈 현실을 체감하게 되었고, 이래서는 영원히 을로 살아야 하는 새로운 신분사회를 방치할 수 없다며 계속해서 갑질을 해대는 재벌과 독재권력을 향해 우리도 인간답게 살아야겠다며 저항한 80년대 현실을 영화화한 것이 2013년에 개봉된 영화 “변호인”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자식들을 갑으로 성공시키겠다는 국제시장 속의 부모들의 염원과 달리, 그들의 자식들이나 그 자식들의 자식들은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생으로 상징되는 소위 “삼포세대-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한”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이를 어찌 아이러니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모 세대 역시 노후를 걱정해야 하고, 자녀 세대 역시 비정규직으로 신음해야 하니, 국제시장의 가치와 정신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이 지경에 이르다 보니 국민들의 정신상태가 참으로 이상해져 버렸다. 차량 끼어들기를 참지 못해 도로 한 가운데 차를 세우고 삼단봉으로 횡패를 부린 “소위 삼단봉사건”으로 상징되듯, 영원히 갑이 되고 싶은, 갑이 되어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살아온 갑이 되지 못한 을들이 심한 정신이상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현세태이다. 갑은 더욱 더 흉측한 갑질을 해대고, 갑들에게 시달리며 갑질은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 하는 간접교육을 받아온 을들이 또 다른 갑이 되어 자기보다 약한 이들 앞에 갑질을 해대는 5천만 국민의 5천만 갑질이 횡행하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싶어 두려운 것이다.

갑들의 무한 갑질을 멈추게 하려면, 이 세상에 정의와 양심이 살아나야 하고, 공정한 법집행이 살아나야 한다. 삼단봉 가해자를 구속하듯 땅콩회항의 갑질쟁이를 구속해야 하고, 엄중한 형사처벌을 해야 한다. 현재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재벌 총수들의 형기를 감면 가석방하는 특혜를 베풀지 않아야 한다. 그들이 수백억 원에 이르는 회사공금을 유용한 범죄는 그 범죄의 규모가 몇 만 원 훔친 절도범들보다 훨씬 사회적 영향력 면에서 죄질이 나쁘다. 그런데 절도범들의 가석방에는 인색한 법무부가 재벌총수들에 대해 관대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절도범들의 피해 액수가 적다고 해서 그들의 범죄가 가볍거나 죄질이 가볍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2014년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대학교수들이 “指鹿爲馬”를 선택했다. 지록위마는 진나라 간신 환관 조고가 자신의 권세를 내세워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겼던 황당사건을 조롱하는 고사성어이다. 그만큼 2014년 대한민국에 거짓이 횡행하였다는 것이다. 세월호참사가 그렇고, 국정원대선개입사건에 대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위반범죄에 대한 무죄판결에 대해 현직 부장판사가 비판하며 거론했던 말도 지록위마였다. 그리고 그 현직부장판사는 바른 소리 했다는 죄로 징계처분을 받았다. 승마협회 비리를 조사하여 정윤회씨 측과 승마협회 양쪽에 문제가 있다는 올바른 보고서를 제출한 문화체육부 해당 국장과 과장은 정기인사철도 아닌데, 징계절차도 안 밟은 채 좌천되고 말았다. 왜 이렇게 대한민국은 정의롭지 못하고, 상식적이지 못하며, 윤리의식과 양심이 사라지고 없는 것일까? 옳은 소리를 하는 자들이 왜 자꾸 좌천되고 배제되고 불이익을 받고 있을까?

대한민국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부당한 갑질부터 사라져야 한다. 대통령이 어느 한 편, 갑의 편에 서서는 안 된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을의 아픔을 보듬고 쓰다듬을 줄 알아야 한다. 필자가 가장 의아스러운 것은, 대통령은 어느 누구보다 그 일을 잘 할 수 있는 자리이고,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왜 안 하는 것일까 라는 점이다. 왜 안 할까? 대통령이 겸손하게 국민에 대한 갑질을 멈추고 을을 보호할 때, 대기업도, 다른 힘을 가진 공직자들도, 정치가들도 모두 겸손하게 을을 보호하게 될 것이다. 국민들의 정서가 순화되고 고와질 것이다. 표독스러운 갑들의 횡포가 계속되는 한 을의 처지에 있는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할 것이고, 어느 순간 어떻게 폭발할지 걱정되는 것이다.

2014년이 갔다. 2015년이 왔다. 갑오년 갑이 가고, 을미년 을이 왔다. 지난 한 해 갑오년 말띠해 여서인지 몰라도 말 타는 고교 여자 승마선수인 정윤회씨 딸의 승마경기 문제를 둘러싸고 대한민국이 온통 시끄러웠다. 하지만 말은 갔다. 2015년 대한민국은 을미년 양떼 무리가 갑오년 말떼 무리에 비해 숫자가 많은 것처럼 많은 서민들, 을들이 융성한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겸손한 양떼들이 목동의 보호를 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을이면서 더 약한 이들을 향해 갑질을 해대던 우리들도 스스로 반성하자. 그리고 좀 다들 겸손해지자. 우선 나부터 다짐해 보자, 겸손해지자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양털처럼 부드럽고, 따스하고, 평화로운 한 해가 되시길, 독자분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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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 2015-01-11 22:11:03
여기 말고 오마이신문 같은데나 쓰는게 어울릴듯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2015-01-11 22:11:03
여기 말고 오마이신문 같은데나 쓰는게 어울릴듯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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