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17)
상태바
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17)
  • 신종범
  • 승인 2014.12.19 12: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서의 증거력

 

 

 

 

 

 


신종범
법무법인 더 펌(The Firm)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작년에는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로 온 나라가 시끄럽더니 올해는 청와대에서 작성되어 유출된 문건으로 인하여 아직까지도 갖가지 의혹과 루머가 난무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은 그 일부가 정치인들의 말을 빌려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가 나중에는 정부 기관인 국가정보원이 그 내용 전부를 공개한 것으로 정치적으로는 문서 내용의 해석과 관련하여 첨예한 대립이 있었지만 법적으로는 내용이 아닌 그 공개가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법률에 위배된 것은 아닌지가 문제되었다. 현재 문제되고 있는 청와대 문건 사건은 청와대에서 작성된 문건이 청와대의 의사와 무관하게 유출되어 언론에 보도된 것으로 정치적 뿐만 아니라 법적인 면에서도 그 내용과 유출이 모두 문제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야 회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 그 내용의 진위가 문제될 것이 없지만 - 다만, 그 해석에 있어서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다. - 금번 청와대 문건 사건은 내용의 진위에 대해 누구는 찌라시를 모아 놓은 것이라 하고 있고, 누군가는 상당부분 사실이라고 하고 있다. 다만, 그 문건 자체가 청와대에서 공식적으로 작성된 것임은 다툼이 없는 듯 하다. 만약, 작성 주체가 문제되었다면 그것부터 밝혔여야 하지만 검찰로서는 그 부분은 수고를 덜게 되었다.

재판을 하다보면 주장하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증거를 제출하게 되는데 많은 경우 문서가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양 당사자가 모두 제출된 문서의 존재와 작성자에 의해 작성된 것임을 인정하면 그 내용이 주장하는 사실과 일치하는지 여부만을 밝혀내면 되는데 당사자가 문서의 존재를 알 수 없다고 하거나 작성자에 의해 작성된 것이 아니라고 하면 그 내용을 살펴보기 이전에 문서가 작성자에 의해 작성된 것임을 먼저 밝혀야 한다. 이것이 문서의 형식적 증거력 즉, 진정성립 문제다.

예전에 공사대금을 지급 받지 못해 필자를 통해 공동소송을 제기하여 그 대금을 지급 받았던 A, B가 각기 다른 날 상담을 하러 왔다. A는 바닥재를 시공하는 업자인데 갑에게 도급을 받아 바닥재 공사를 마쳤음에도 그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여 집행권원을 얻어 갑에게 강제집행을 실시하려고 하였으나 갑 명의의 재산이 없어 갑을 상대로 채무불이행자명부 등재 신청을 하여 등재신청을 마쳤다고 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갑은 A를 찾아와 자신이 채무불이행자명부에 등재되어 있어 자신이 대표로 있는 회사가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수 없으니 자신을 채무불이행자명부에서 말소하여 주면 회사가 공사대금을 지급하겠다는 각서를 써 주겠다고 제안하였다. A는 고민을 하다가 갑의 제안을 받아들여 공사대금에 상당하는 금액, 변제일, 지연이자를 합의하고 이를 컴퓨터에 입력한 후 갑이 가지고 온 회사의 명판과 대표자인 갑의 인장이 날인된 백지의 A4 용지에 출력하여 각 1부씩 나누어 가졌다고 하였다. A는 변제일이 지난 후 갑이 대표로 있는 회사에 각서에 기재된 금액을 지급하라고 내용증명을 보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편, B는 전기설비업자인데 을 외 9인이 신축하는 아파트에 전기설비를 하도급받아 전기설비를 하던 중 건설사로부터 공사대금을 전혀 지급받지 못하자 설비를 중단하였고 이에 을 외 9인이 자신들이 연대하여 공사대금을 지급하겠다는 이행각서를 써 주겠으니 공사를 마무리하여 달라고 요구하여 각서를 받고 공사를 마무리하였는데 아직까지 그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A와 B의 의뢰를 받아 위 각 문서를 증거로 하여 각 갑이 대표로 있는 회사와 을 외 9인을 상대로 먼저 지급명령을 신청하였다. 각 지급명령이 있었고 이에 대하여 이의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갑이 대표로 있는 회사, 을 모두 이의신청을 하여 두 사건 모두 통상의 소송절차로 넘어가게 되었다. 각 소송은 다음과 같이 전개되었다.

먼저, A가 갑이 대표로 있는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갑은 자신이 회사의 명판과 자신의 인감이 날인된 백지의 A4용지를 가져간 것은 맞지만 당시 합의가 안되어 위 백지의 A4용지만 A에게 남기고 왔을뿐이고 합의 후 그 내용을 위 A4용지에 출력하였다는 A의 진술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하였다. 갑은 문서상의 회사 명판과 인영의 각 진정성립은 인정하지만 그 내용을 A가 임의로 보충하여 각서가 위조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달리 증인이 없었기에 A, 갑을 각 당사자본인으로 신문절차를 진행하였다. 필자는 갑이 먼저 A를 찾아간 이유, 갑이 A4용지를 가지고 와 각서가 작성된 경위 등을 집요하게 신문하였고 상대방측은 문서작성 후 날인하면 되는데 굳이 날인된 백지의 A4용지에 출력하는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음을 항변하였다. 제1심은 갑의 증거항변은 법원이 인정한 사실에 의하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간략히 설시하면서 A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이에 대하여 상대방이 항소하였고 항소심은 갑의 증거항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자세히 판결하면서도 이 사건 각서는 진정하게 성립하였다고 하며 항소를 기각하였다. “사문서는 본인 또는 대리인의 서명이나 날인 또는 무인이 있는 때에는 진정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사문서의 작성명의인이 스스로 당해 사문서에 서명, 날인, 무인하였음을 인정하는 경우, 즉, 인영 부분 등의 성립을 인정하는 경우에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문서 전체에 관한 진정성립이 추정되고, 인영 부분 등의 진정성립이 인정된다면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해 문서는 그 전체가 완성되어 있는 상태에서 작성명의인이 그러한 서명, 날인, 무인을 하였다고 추정되며, 그 문서의 전부 또는 일부가 미완성된 상태에서 서명날인만 먼저 하였다는 등의 사정은 이례에 속하므로 완성문서로서의 진정성립의 추정력을 뒤집으려면 그럴만한 합리적인 이유와 이를 뒷받침할 간접반증 등의 증거가 필요하다. 만일 그러한 완성문서로서의 진정성립이 추정이 번복되어 백지문서 또는 미완성 부분을 작성명의자가 아닌 자가 보충하였다는 등의 사정이 밝혀진 경우라면 그 백지문서 또는 미완성 부분이 정당한 권한에 기하여 보충되었다는 점에 관하여는 그 문서의 진정성립을 주장하는 자 또는 문서제출자에게 그 입증책임이 있다 할 것이다.”

한편, B가 을 외 9인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는 을만이 자신은 이행각서에 서명, 날인한 사실이 없고, 다른 사람이 대신 서명, 날인하는 것에도 동의를 해준 적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제1심은 을의 문서 위조 주장을 받아들였지만 항소심에서 증인신문을 통하여 이행각서상의 을의 서명과 날인이 을의 동의를 얻어 이루어진 것임을 주장 입증하여 B가 승소할 수 있었다.

A의 경우 합의된 내용을 작성한 후에 회사의 법인인감을 날인하고 그 인감증명서를 받아두었더라면, B의 경우 을로부터 직접 서명과 날인을 받던지 위임장을 받아두었더라면 소송까지 가서 문서의 증명력에 대하여 치열하게 다투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질병에 대비하여 건강 검진을 받는 것처럼 예기치 못한 분쟁을 대비하여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2014년이 얼마남지 않았고, 이 글이 필자가 올해 마지막으로 연재하는 글일거 같다. 재미없는 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글로나마 미리 새해 인사를 드린다. “올 한 해도 고생 많으셨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