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69 / PF 감정평가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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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69 / PF 감정평가 담론
  • 이용훈
  • 승인 2014.12.1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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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최근 건축설계사무소의 반란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대규모 건축을 동반한 개발 사업에 설계자로 용역 입찰하는 것이 주된 밥벌이였는데, 보폭을 넓혀 시행자의 자리를 파고든 것이다. 이들은 부동산 자산이나 투자금이 없는 이들이 시행자로 참여할 수 있는 지주공동개발방식을 생존전략으로 채택했다. 현명한 선택이다. 잘만 되면 시행자나 지주 모두에게 득이 된다. 지주 입장에서는 현 상태로는 잘 팔리지 않는 토지를 현금화시킬 수 있다는 제안에 매력을 느낀다. 땅 판 값을 넣으라는 게 아니고 땅 자체를 제공하라는 것이므로 실물 자산의 소유권은 분양전까지는 여전히 내 손 안에 있다. 토지에 대한 대접 역시 섭섭치 않다. 개발하기 전 현 상태의 토지가치를 평가받거나 추정해 이 가격으로 대물권리가액을 인정받는다. 개발 후 분양이 순조로워 현금이 들어오면 먼저 정산받을 수 있고, 분양 열기가 기대에 못 미쳐도 권리가액만큼 신축부동산을 대물로 변제받는 차선책이 있다. 물론, 시행자 입장인 설계사무소는 본전만 넘기면 모든 수익을 호주머니에 챙긴다. 자본 없이 몸으로 떼운 노고는 적잖은 대가로 보답받을 때가 있기에 개발사업 ‘시행자’ 좌석 쟁탈전이 여전히 치열하다.

요 몇 년 국내 부실 사업장을 매각하는 작업이 한철이었다. 이들 사업장에 누구보다 발 깊숙이 들인 건저축은행이다. 몇몇 저축은행의 파산과 손바뀜은 부실경영 탓이다. 그리고 부실해진 사유를 꼽을 때면 PF대출부실이 빠짐없이 오르내린다. 부동산 프로젝트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PF’(project financing)는 전문 금융용어에서 일반인의 경제 상식 용어로 격을 낮춘 지 좀 됐다. 어감이 썩 좋지는 않다. 예금 이자 1%라도 더 받겠다고 허리띠 졸라매면서 맡긴 소시민의 예금을 땅에 뭍어 썩힌 사업이란 낙인이 강해서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6조는 금융투자업 중 집합투자업에 대해 ‘2인 이상에게 투자권유를 하여 모은 금전등 또는 「국가재정법」 제81조에 따른 여유자금을 투자자 또는 각 기금관리주체로부터 일상적인 운용지시를 받지 아니하면서 재산적 가치가 있는 투자대상자산을 취득·처분, 그 밖의 방법으로 운용하고 그 결과를 투자자 또는 각 기금관리주체에게 배분하여 귀속시키는 사업’ 으로 규정했다. 동법 94조는 ‘집합투자업자는 집합투자재산으로 부동산개발사업에 투자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추진일정·추진방법,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이 기재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여 「부동산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에 따른 감정평가업자로부터 그 사업계획서가 적정한지의 여부에 대하여 확인을 받아야 하며, 이를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이용하여 공시하여야 한다.’고 강제한다. 여기서 말한 부동산개발사업에 들어가는 돈은 주로 PF를 통해 조달된다. 자금조달에 앞서 사업성을 감정평가업자에게 확인받게 한 것은, 투자금만 삼켜버리는 부실 사업장이 될 낌새가 있는지 검토받도록 한 것이다.

창업자의 패기에 혹했든 사업 아이템에 감동했든 손정의 씨의 14년 전 알리바바 투자는 결실을 맺었다. 잠재가치가 현재가치로 밝히 드러난 건, 투자 후의 결과물을 투자 당시 그려 본 혜안 덕택이다. 투자 대상을 회사가 아닌 개발사업으로 대체하고 투자금을 넣게 되면 PF의 틀이 갖춰진다. 전정한 PF는 물적 담보를 요구할 필요가 없으나, 우리의 경우 변형된 PF 형태를 띄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파트 사업에 투자하면서, 아파트 사업부지의 개발 전제 가치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감정평가법인에서 발행하는 PF평가 보고서는 추정 사업수익 혹은 수익률을 최종 결과물로 보지 않고, 사업성이 있는 현 토지의 잠재가치 확인을 목표로 한다.

일반적인 PF사업장에서 사업 자금 조달을 위해 2번에 걸쳐 토지를 평가한다. 브릿지론이라고 부르는 초창기 사업자금 대출은 개발 전 현 상태의 토지평가액을 기준으로 실행된다. 그러나 이 금액으로 공사비 전액을 충당하기는 벅차다. 부족한 물적 담보는 ‘잠재가치’를 추계한 재평가 보고서로 해결해야 한다. 이 때 토지의 기대가치는 개발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이는 ‘조건부 평가’로 불린다.

감정평가의 대원칙은 ‘현황평가 원칙’이다. 평가 기준 시점의 이용상황과 공법상 제한 사항을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평가 기준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기준시점의 가치형성요인 등을 실제로 다르게 가정하거나 특수한 경우로 한정하는 조건을 붙여 감정평가할 수 있다. 이를 조건부 평가라고 부른다. 법령에 다른 규정이 있다든지 의뢰인이 특정 조건을 붙여 달라고 요청한 경우, 감정평가의 목적이나 대상물건의 특성에 비춰 사회통념상 그런 조건을 부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받게 되면 허용된다. 그러나, 조건이 합리적이고 적법하며 실현 가능한지를 평가자가 사전 검토해야 한다. 간혹, 혀를 차게 하는 조건부감정평가서를 볼 때가 있다. 특정 용도로 개발했을 때의 토지가치라면 납득되지만, 건물 용도를 현 판매시설에서 숙박시설로 전용했을 때를 전제해 부동산 가치를 추계했다면 의도가 불순하다. 매매참고용으로 쓰려는 목적일 텐데, 어수룩한 매수자가 평가결과에만 신경쓰다가 그 내용물을 들춰보지 않았을 때를 노린 고도의 매도전략이다. 거기에 수수료 몇 푼 받고 합리적이지 않은 조건을 붙여 찝찝한 평가보고서를 작성한 감정평가사가 있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낀다.

PF감정평가서도 조건부 평가보고서에 포함된다. 지구단위계획이든 건축계획이든 이에 따라 사업이 진행됐을 때를 조건으로 한 토지의 몸값이기 때문이다. 요즘 프로야구 FA 계약금액은 쉽게 수십 억을 웃돈다. 잔뜩 거품이 끼었다고 볼 여지도 있지만, 당사자는 수 년 간 보인 꾸준한 활약에 대한 보상, 이력으로 입증된 실력, 지금껏 보인 활약이 수 년 간 지속될 수 있다는 기대가치가 모두 반영된 금액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PF평가보고서는 오로지 앞만 쳐다본다. 이런 용도로 개발했을 때 이 정도 분양수입을 낼 수 있는 FA 토지의 계약금액이기 때문이다.

시행자의 셈법과 PF감정평가서의 추계 논리가 다르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시행자는 얼마의 웃돈을 얹어 토지를 취득하고 공사비와 관리비 등 사업비용을 들여 개발했을 때 분양 수입을 추산해서 앞선 투자비용 총계를 빼고 난 결과, 곧 ‘시행이익’을 셈한다. 반면, PF감정평가서 상의 토지가치는 분양수입에서 토지 취득비용을 제외한 투자비용 총계를 빼고 난 금액을 말한다. 정리하면 전자는 ‘분양수입-(토지취득비용+건축비 등 사업비용)=시행이익’의 산식이고, 후자는 ‘분양수입-(토지취득비용 제외한)사업비용=토지가치’로 요약된다. 결국, PF감정평가서 상의 토지가치는 현 상태 토지의 적정 취득비용에 사업시행이익을 가산한 상투금액이다.

유사한 개발사업의 사업수지 분석 데이터를 취합해 만들 수 있는 가장 유의미한 통계결과는 사업수지 구성 항목의 점유율에 대한 것이다. 100의 분양수입이 발생했을 때, 토지 취득가, 건축비, 일반관리비, 금융비용, 시행이익이 각각 얼마의 비율로 자리를 잡고 있는지 분석한 결과는 어떤 유용성이 있을까. 최소한 예상분양수입 대비 일정 비율 내외로 사업부지를 매입해야 한다는 통계적 조언을 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취득상한 곧 토지 기대가치 비율은 여기에 시행이익비율을 더한 결과다. 시행자는 줄 거 다 주고 토지를 취득했으므로 사업이 완료돼도 시행이익은 한 푼도 건지지 못할 것이다. PF감정평가 결과물은 이런 특수성이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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