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손해배상 업무를 담당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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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손해배상 업무를 담당하며
  • 박종열
  • 승인 2014.11.21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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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열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필자가 맡고 있는 업무는 ‘손해배상’에 관한 재판입니다. 손해배상 중에서도 ‘교통사고, 산업재해’를 원인으로 하는 소송을 다루고, 그 중에서도 특히 교통사고를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 재판이 주 업무입니다.
 
업무내용이 그렇다보니 각종 사고를 매일 접하게 됩니다. 이 글을 작성하기 직전에도 차량이 도로를 횡단하던 피해자를 치여서 피해자가 사망하게 된 사건에 관한 기록을 검토하였습니다. 이런 사건들을 매일 다루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인생이 참 허무하다. 삶과 죽음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곁에 붙어 있구나.”

어느 글에선가 ‘사람의 삶은 하나의 우주’라는 말을 본적이 있는데, 참 공감가는 말입니다. 가족의 사랑으로 낳아 길러지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무한한 가능성으로 이루어진 자신만의 우주를 만들어가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주 하나가 너무나 사소한 부주의로 사라집니다.

사고의 형태는 매우 다양합니다. 교차로에서의 사고, 보행자를 친 사고, 고속도로에서의 사고 등등. 그러나 의외로 사소한 부주의로 발생하는 사고들이 많습니다. 법관을 직업으로 하는 필자도 간혹 위반하거나 위반할 수 있는 그런 부주의들입니다. “좌, 우회전을 하면서 주위를 잘 살피지 않았거나, 신호가 거의 끝날 무렵에 횡단보도에 뛰어들었다든가 등등”, 그런데 그런 부주의의 정도에 비해 발생한 결과가 너무 중대하여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그런 부주의를 할 때마다 항상 사고가 생기는 것인가요? 절대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별 문제 없이 지나갑니다. 오히려 그런 부주의나 고의적인 규칙위반으로 이득을 취하기도 합니다. 대개는 남들보다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는 이득을 얻게 됩니다. 어떤 경우는 그러한 교통 습관을 능력으로 자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몇 시간 만에 주파했다느니’하는 식으로 말이죠.

이렇게 사고는 어쩌다 운 없는 한 번에 발생합니다. 같은 부주의나 규칙위반을 했어도 이전 100번의 경우는 아무 일 없이 지나갔는데, 그날따라 여러 가지 좋지 않은 고리들이 연결되어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죠. 그래서 사고가 발생하면 자신의 부주의를 생각하기 보다는 그냥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 100번 동안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서 얻었던 이득이 내가 운전을 잘해서 생긴 것이고, 사고가 발생한 한번은 그냥 운이 없었던 것일까요. 사실은 그 반대일 수 있습니다. 운전자의 부주의나 규칙위반에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대부분의 이유는 그 현장에 있던 다른 교통 이용자들이 우연히 상대방의 규칙위반을 발견하고 미리 사고를 피할 수 있는 교통 진행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규칙위반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편에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잘 피해주겠거니 하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죠. 만약 다른 교통 이용자가 상대방의 규칙위반을 미리 발견하는 ‘우연’이 생기지 않았다면 사고가 발생하였을 것입니다. 100번의 규칙위반을 하는 동안 우리는 생명이나 신체를 알 수 없는 운에 맡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그 ‘우연’이 작동하지 않아서 한 번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치러야할 대가는 너무 클 수 있습니다. 한 번의 사고로 자신 또는 타인의 생명과 신체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생긴다면 앞의 100번의 이득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집니다.

문제는 그 한번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운 좋게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고, 운 없게 여러 번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다만 운이 좋았던 회수가 늘어난 만큼 그 한번이 찾아올 가능성도 높아질 것입니다.

이처럼 언제 한 번의 사고가 찾아올지 알 수 없는데, 그 한번으로 너무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면, 이를 피하기 위해 100번의 이득은 포기하는 게 맞습니다. 우리가 불확실한 한 번의 불행을 대비해 보험료를 지불하듯이, 자신과 타인의 삶을 해치는 한 번의 사고를 막기 위해 100번의 법규위반 욕구를 억누르는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피해의 엄중함을 생각한다면 큰 비용이라 할 수 없습니다.

최근에 우리 사회는 부주의나 규칙위반으로 발생하는 희생이 그로 인해 얻는 이득에 비해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크다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세월호는 사고 이전까지 규칙을 위반하여 운행하면서 회사나 그 관계자들에게 적지 않은 이득을 안겨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한 번의 사고로 희생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깊은 절망으로 빠지게 했습니다. 사고 이전에 발생했던 이득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모두를 위해 사소한 이득을 포기하고 안전을 위한 비용을 기꺼이 지불해야 합니다. 그 비용은 꼭 금전적인 것만이 아니고, 시간일 수도 있고, 노력일 수도 있습니다. 그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 발생할 결과는 자신 또는 상대방의 우주를 바꿀만한 큰 불행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손해배상 업무는 교통사고 등으로 인한 피해자들이 입은 손해를 금전적으로 계산하여 배상해주도록 하는 것인데, 피해자들이 손해배상금을 받는다고 하여 사고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거나 사라진 생명이 돌아올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안전에 대한 비용, 시간, 노력을 아끼지 말고 투자하여 아름답게 빛나는 우주 하나가 허무하게 사라지는 일들이 줄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홈페이지 소통광장 법원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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