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8)-여행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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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8)-여행을 가고 싶다.
  • 차근욱
  • 승인 2014.11.1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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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어린 시절에는 이사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부러웠던 친구들에 비해 우리 집은 이사를 그다지 안했던 터라, 이사를 좀 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돌아보면, 이사를 다니지 않았던 덕분에 안정적인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성장하게 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해야만 할 일인데, 당시에는 이사를 가지 않는 우리 집이 좀 불만이었다.

늘 똑같은 동네가 지겨웠다. 하다못해 UFO가 나타나 나를 납치해 가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래서 밤이면 큰 랜턴을 들고 대문 앞에서 하늘에 대고 빛을 쏘았다.

 
반짝이는 별을 한도 끝도 없이 바라보면서 UFO를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다. 나 여기 있으니까 데려가라고. 아마 사춘기 시절을 지나며 이사와 전학을 통한 새로운 시작을 동경한 것이었으려니 싶다.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공기에 대한 호기심이었겠지.

그래서 그 무렵에는 ‘내가 어른이 되면 난 맨날 이사를 다녀야지’, 라는 생각을 잘도 했었다. 후후후. 하지만 아직은 어른이 안된 탓인지, 지금의 나 역시 이사를 잘 다니는 편은 아니다.

일단, 이삿짐의 대부분이 책이라는 사실은, 한 두 번의 이사경험만으로도 사람을 질리게 한다. 어렸을 때는 잘 몰랐던 것이다. ‘이사’라는 것이 얼마나 번잡하고 품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일인지.

호기심이 많은 편인가? 스스로에 대해 그렇게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있다. 커 오면서 단순히 주어진 상황이나 내용들에 대해 늘 ‘왜?’라고 물었던 탓에 무지막지하게 많이 혼났다.

군대에서는 덕분에 많이 맞기도 했다. 내가 느끼기에 우리 사회에서 ‘왜?’라는 질문은 금기였다. 하지만 왜 이걸 하는지, 왜 이렇게 설명하는지, 배워서 어디에 어떻게 쓰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니 갑갑하기만 했다.

내가 유별나게 호기심이 많다면 많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꼭 특이한 호기심 때문 이라기보다는 인간이라면 당연한 질문들이었을 텐데 그런 질문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리고 아무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 답답해서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꿈꿨는지 모르겠다.

‘왜?’라는 질문은 나를 늘 외톨이로 만들었다. 주위에서는 ‘왜?’라고 묻는 것에 대해 적대적이기까지 했고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귀찮은 듯 그냥 외우라고 하셨고, 어느 책에도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적혀 있지 않았다. 그래서 늘 ‘왜?’에 대한 답을 찾으며 생각하고 공부하며 커 오느라 남들보다 더뎠던 듯 싶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 가장 좋았던 것은, 무조건 주어진 커리큘럼에서만 복종하듯 세뇌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자율적으로 선택해서 자율적으로 공부한다는 점이 좋았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 학교생활에서는 전혀 매력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런 자신에게 유일한 해방구가 이제는 ‘이사’ 대신에 ‘여행’이 된 듯 했다. ‘자율적인 공부’라는 것은 사실 굉장히 조심스럽다.

어떤 면에서는 전혀 체계를 갖출 수 없는 잡다한 관심사에 천착해 들어갈지도 모르는 위험일 수 있으니. 그래서 스승이 필요하고 친구가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이제 막 스무살이 된 나에게 그런 것까지 생각할 능력은 없었다. 단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새로운 길을 떠난다는 것이 너무나 좋았을 뿐이었다.

훌쩍 떠나고 다시 훌쩍 돌아온다는 매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래서 - 결국 변명이겠지만 - 대학시절 나는 학교를 거의 다니지 않았다. 1학년 첫날부터, 4학년의 마지막 날까지 학교에 간 날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보는 날 정도였다.

법과대학의 특성이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교수님들께서도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의례히 어디선가 몰두해 공부를 하고 있으려니 하고 이해해 주셨기 때문에 시험만 잘 보면 그다지 문제가 크게 되지는 않았다.

물론, 대학과정의 대부분을 거의 독학으로 해결해야 했으니 시험을 잘 보아야 한다는 점이 쉽지는 않았고, 훗날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 엄청난 후폭풍을 감당하느라 제법 고생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아침이면 학교에 갔다. 누구보다 일찍 학교에 가서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돈이 생기면 책을 샀고, 돈이 없으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과외 등을 해서 돈을 벌면 사고 싶은 책들의 목록 중, 가장 위에 있는 책을 하나 하나 사 모으며 읽었다.

책을 사 들고 나오는 길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준비한 책을 한권 정해 아침부터 밤까지 도서관에서 움직이지 않고 책을 읽었다. 종류는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기에, 마음이 가는 책이면 닥치는 대로 읽었던 것 같다.

재미있어 보이거나 호기심이 가는 책이라면 상관이 없었다. 나는 ‘대학생’이었으니까.

아침부터 밤까지 꼬박 충실하게 책을 읽으면 저녁 노을이 질 무렵 정도가 될 땐, 보통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수가 있었다. 그리곤 맥주 한 병을 사들고 노을이 지는 스탠드에 혼자 앉아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세상과 단절된 채로 재즈를 들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리플레이 하면서. 홀짝 홀짝 맥주를 마시면서 구경하는 땅거미 지는 노을은 그렇게 농염했고 아름다웠다. 빌리 홀리데이는 처절했고 루이 암스트롱은 해학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쳇 베이커는, 조금 철학적이긴 했지만.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ROTC를 본다던가 야구유니폼을 입고 혼자 달리고 있는 아저씨를 본다거나, 농구를 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날 읽었던 책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했다. 의미와, 나와, 그 이유를 생각했다. 책에 담겨진 삶의 의미에 대한 대부분은 잘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냥 그대로 그 시간이 좋았다.

무언가 끝을 냈다는 가벼운 성취감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작은 우울감은 달콤했고, 저자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이제부터 생각해 본다는 점도 근사했다. 나만의 비밀처럼.

맥주를 다 마시고 어두워진 후에는 버스 터미널로 직행했다. 주머니에는 차비 정도가 들어있었지만, 그래도 책을 사고도 돈이 남았다는 사실에 왠지 부자같은 기분이 들었고 들어보지 못한 곳으로 향하는 버스티켓을 샀다.

지금부터 알 수 없는 새로운 곳에 가는 거야. 새로운 사람이 있고, 새로운 공기가 있는 거지. 그 곳에선 나도 새로운 사람이 되는 거야, 라고 혼자서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해 주고 나면 왠지 설레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스무살이었으니까.

여행은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었었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운이 좋으면 히치하이킹을 할 수 있었는데, 꼴에 겁은 많아서 혹시 새우잡이 배에 팔려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면서도 잘도 얻어 타고 돌아다녔다.

절에서 재워달라고 청을 넣어 감사히 몸을 쉴 수 있었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감사하고 귀한 경험이었다. 길에서 노숙을 하거나 터미널 의자에서 밤을 지새운 적도 많았으니까.

여행을 하면서는 떠나오기 전에 읽었던 책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인생은 좀처럼 알 수 없었고, 뭔가 그 책에 담고자 했던 의미를 알고 나면 내 인생에도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을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늘 혼자 떠나는 여행은 쓸쓸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안심이 되기도 했다. 익숙했고, 편했으니까.

3~4일 간의 짧은 여행을 끝내고 돌아올 무렵이면, ‘왜?’라는 질문에 대해 나름의 답을 찾아 돌아오곤 했다. 어쩌면 그렇게 떠났던 여행이 나에겐 진짜 독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산을 듣고 바다를 걸으며 묵묵히 생각했다.

저자가 가슴에 담았던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딱히 고민을 하고 있는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책을 읽고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가슴 속으로 늘 ‘왜?’라고 물었고, 그 고민에 대한 나름의 정리가 되고 나면 그렇게 홀가분하고 개운할 수가 없었다.

구름에 개인 해를 보고서 스스로가 얼마나 미망에 어리석었는지를 깨우쳤고, 담 곁에 피어있는 토끼풀 들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배웠다.

여행을 다녀와서는 영어나 전공공부를 했다. 그래도 난 ‘대학생’이었으니까. 책에 한자가 많았던 탓에 한 손에는 옥편을 들고 모르는 한자를 노트에 차곡 차곡 정리해 가면서 착실하게 전공서적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다시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차 오르면, 다시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났다. 알 수 없는 곳으로, 알지 못하는 고민을 풀기 위해서.

어린 시절에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여러 곳에서 세상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사 가는 친구가 늘 부러웠다. 그 친구에게 주어질 새로운 순간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중요한 것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라는 것을. 떠나는 것은 시작하기 위해서라는 것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돌아와야 한다는 것도.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은 더위는 언제나 꺾이려나 싶었는데, 벌써 단풍이다. 이 불타는 가을 속 11월도 이렇게 지나가겠지. 강의 차 탔던 버스의 차창 밖을 바라보며, 문득 스무 살 시절 내가 탔던 고속버스가 떠올랐다. 아, 여행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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