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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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14)
  • 신종범
  • 승인 2014.11.07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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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생

 

 

 

 

 

 


신종범
법무법인 더 펌(The Firm)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요즘 ‘미생’이라는 TV 드라마가 꽤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지인들과 이야기하거나 SNS을 하다보면 ‘미생’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처음에 제목을 들었을 때는 정치드라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생’이란 말을 정치기사에서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 때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당시 여당 의원이었던 박근혜 의원이 신뢰의 중요성을 내세워 수정안에 반대하자 정몽준 대표가 ‘미생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가 많이 오는데도 기다리다가 익사했다’는 중국의 고사를 인용하면서 ‘미생’이란 단어가 기사화 되었었다. 당시 신문에 등장했던 ‘미생’과 현재 드라마 방영 중인 ‘미생’의 의미는 다르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제목의 ‘미생’은 한자 ‘未生’ 으로 바둑에서 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히 살아있지 않은 그런 상태를 말하는데 프로기사를 꿈꾸었던 주인공이 입단에 실패하고 회사에 들어가서 겪게 되는 여러 상황을 바둑의 특성에 접목하여 풀어 나가는 줄거리에서 제목을 그렇게 정한 것 같다. 한편, 정치기사에 등장했던 ‘미생’은 한자 ‘尾生’ 으로 중국 고사에 나오는 사람 이름이다. 오늘은 중국고사에 나오는 이 ‘미생(尾生)’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춘추전국시대에 소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여러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능력을 팔아 신하로 발탁되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연나라 소왕이 소진의 능력을 높이사 발탁하려고 하였는데 주위 신하들이 처음 접하는 사람으로 그의 신의를 문제삼았다. 그러자 소진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자신의 신의를 표현하였다. “옛날 미생(尾生)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사랑하는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다렸으나 여자가 오지 않자 소나기가 내려 물이 밀려와도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교각을 끌어 안고 죽었습니다. 제 신의가 바로 미생과 같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소왕은 크게 감격해서 그를 등용하게 된다. 소진이 말한 위 이야기에서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한편, 위 이야기에서 소진은 미생의 행동을 신의로 보고 이를 높게 평가하였지만 일반적으로 ‘미생지신’을 이야기할 때는 작은 명분에 집착하여 미련하도록 약속을 굳게 지키는 것이나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없음을 나타낼 때 쓰이게 된다. 세종시 수정안과 관련하여 당시 정몽준 여당 대표가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박근혜 의원을 비판하기 위하여 ‘미생’의 고사를 인용했던 것처럼 말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미생’의 행동이 융통성 없고 어리석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미생’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가졌던 사랑과 신뢰가 너무나 컸기에 자신의 목숨을 던질 수 있었다. 자칫 ‘미생지신’의 고사가 융통성이나 사정변경 등을 내세워 신뢰에 대한 중요성을 훼손하는데 이용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그 신뢰가 국가를 향한 것일 때는 말이다.

지인 중에 건축업을 하는 갑이라는 사람이 있다. 갑은 원룸과 오피스텔을 짓기 위해 구청에 건축허가 및 건축계획심의신청서를 제출하였는데 반려되었다고 하면서 자문을 구해 왔다. 사연은 이랬다. 2013. 5. 27. 국토교통부는 원룸형 도시형생활주택에 대해 주차장 기준을 강화한 ‘주택건설기준등에관한규정’이 2013. 5. 28. 자 국무회의에서 의결되고 관보게재 절차 등을 거쳐 6월 4일 경 공포될 예정(공포일은 절차 지연시 변동 가능)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다음 날인 2013. 5. 28. 국토교통부는 위 보도자료를 홈폐이지에 게시하였으며 각 언론사는 위 보도자료를 근거로 위 규정이 28일 국무회의를 통과하여 다음 달 4일 공포되어 시행될 예정이라고 보도하였다. 2013. 5. 31. 갑은 위 홈페이지 내용과 언론 보도를 보고 주차장기준이 강화되는 위 규정이 시행되기 전에 건축허가를 받기 위해 건축허가신청서를 구청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위 ‘주택건설기준등에관한규정’ 개정안이 국토교통부의 보도자료 및 언론보도와 달리 갑이 건축허가신청서를 제출한 당일인 2013. 5. 31. 공포되어 즉시 시행되자 구청은 개정된 규정을 근거로 갑이 제출한 건축허가신청을 반려하였던 것이다. 당시 갑과 같은 건축업자들은 주차장 기준이 강화되기 전에 건축허가를 받기 위해 위와 같은 국토교통부의 보도자료를 믿고 개정안이 시행될 예정이라는 6월 4일 전에만 건축허가신청서를 내면 되는 줄 알고 있다가 - 개정된 규정 부칙은 개정 규정이 시행되기 전에 접수된 건축허가신청은 개정 전 규정에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 보도자료와 달리 개정안이 앞당겨 시행됨으로써 예측하지 못한 피해를 보야야 했다. 일부 언론에도 보도되었지만 통상 법령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 일주일 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공포하는데 대통령의 재가가 빨리 이루어지면서 개정안의 시행시기가 앞당겨지게 된 것이었다. 이 경우 구청의 반려처분은 정당할까?

행정법의 일반원칙으로 신뢰보호 원칙이 있다. 행정기관의 일정한 언동의 정당성 또는 존속에 대한 개인의 보호가치 있는 신뢰는 법적으로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러한 신뢰보호원칙이 적용되기 위한 요건으로 대법원은 “첫째, 행정청이 개인에 대하여 신뢰의 대상이 되는 공적인 견해 표명을 하여야 하고, 둘째, 행정청의 견해표명이 정당하다고 신뢰한 데 대하여 그 개인에게 귀책사유가 없어야 하며, 셋째, 그 개인이 그 견해표명을 신뢰하고 이에 기초하여 어떠한 행위를 하였어야 하고, 넷째, 행정청이 위 견해표명에 반하는 처분을 함으로써 그 견해표명을 신뢰한 개인의 이익이 침해되는 결과가 초래되어야 하는바, 어떠한 행정처분이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는 때에는 공익 또는 제3자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가 아닌 한 신뢰보호의 원칙에 반하는 행위로서 위법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갑의 건축허가신청을 반려한 구청의 처분은 신뢰보호원칙에 위반된다고 생각한다. 첫째, 국토교통부는 주차장건설기준이 강화된 ‘주택건설기준등에관한규정’ 개정안이 5월 28일 국무회의를 통과하여 6월 4일 공포될 예정(공포일은 절차 지연시 변동 가능)이라는 보도자료를 만들어 언론사에 배포하고 홈페이지에 게시함으로써 공적인 견해표명을 하였다. 둘째, 국토교통부가 위와 같은 보도자료를 만들고 배포하는데 갑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으므로 보도자료와 언론보도를 신뢰한 갑에게 어떠한 귀책사유도 없다. 셋째, 갑은 개정 전 규정에 맞추어 토지를 매입하고 건축설계를 하는 등 건축허가를 준비하다가 주차장 설치기준이 강화된 개정안이 6월 4일 공포, 시행된다는 보도자료와 언론보도를 보고 이를 신뢰하여 개정 전 규정을 적용받기 위하여 5월 31일 건축허가를 신청하였다. 넷째, 행정청은 보도자료에 반하여 5월 31일 공포, 시행된 개정안에 근거하여 갑의 건축허가 신청을 반려하였고 그에 따라 갑은 개정안에 따라 다시 설계를 해야 하는 등 이익이 침해되었다. 다섯째, 갑에게 개정 전 규정을 적용하더라도 개정된 규정에 의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과 그 실효성에 영향이 없고, 제3자의 이익 침해도 예상되지 않는다. 행정청은 보도자료는 개정안의 시기 시행를 예정한 것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보도자료에 따르면 절차 지연에 따라 시행시기가 늦어질 수는 있지만 시행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것을 도저히 예상할 수는 없다. 정부 내의 절차 진행에 대한 착오로 인하여 발생한 문제에 대한 책임을 정부의 발표를 신뢰한 국민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는 약속한 내용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달려 있다. 국민을 ‘미생(尾生)’처럼 만들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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