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잔인한 미소, 박판식 시인의 “나는 말한다”
상태바
오시영의 세상의 창-잔인한 미소, 박판식 시인의 “나는 말한다”
  • 오시영
  • 승인 2014.10.31 13: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대한민국 국민은 2014년 10월 29일 오전 9시 42분 박근혜 대통령의 잔인한 미소를 보았다. 웃는 얼굴이 다 웃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시간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의 안내를 받아 국회 현관을 들어서면서 현관 옆에서 기다리고 서 있던 30여명의 세월호 유가족들을 외면한 채 고상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본인은 아주 고상하고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는지 모르겠으나, 필자의 눈에 그 미소가 더 이상 잔인할 수 없다고 느껴져 온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세월호 유가족은 “대통령님, 살려 주세요”라고 절규했지만, 잔인한 미소와 외면 이외에 어떠한 반응을 얻어내지 못했고, 결국 유가족들의 절규는 눈물로 변하고 말았다. 의경들의 인의 장막에 갇힌 채 유가족은 끝내 박근혜 대통령과 눈도 마주쳐 보지 못한 채 국회 의사당에서 고립된 외딴 섬이 되었고, 팽목항 앞 바다의 파도는 여전히 넘실거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16일, 언제든지 유가족을 만나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이날 끝내 외면한 채 등을 돌렸기에 그녀의 얼굴에 스치는 미소가 유독 잔인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날, 세월호 피해자 황지현 양은 자신의 생일날이기도 한 바로 그 날 295번째 주검으로 인양되어 부모 품에 안겼다. 딸의 시신을 부여잡고 부모는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자식의 주검을 부여잡고, 감사하다고, 행복하다고 말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비극적이다.

대통령의 잔인한 미소가 국회 의사당에서 세월호 유족의 절규를 외면하던 세월호 참사 196일째 되던 날, 자신의 열여덟 번째 생일날, 단원고 2학년 황지현 양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무엇을 일깨워 주려고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 왔을까? 세월호 유가족들이 세월호 미발견자 열 명에 대한 마무리 수색작업을 계속 할 것인지, 아니면 선체 인양작업으로 전환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묻는 투표가 있던 다음 날, 황지현 양의 시신이 돌아온 것은 나머지 아홉 명에 대한 수색을 계속해 달라는, 죽은 자들의 염원이 구천을 떠돌고 있어서 이지 않을까? 살아 있는 자는 잔인하고, 죽어 있는 자의 원귀는 처절하다 보니 현세에 현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마음이 먹먹해서 글을 쓰기가 힘들다. 아침저녁으로 차가운 공기가 가을의 끝자락을 알린다. 박판식 시인의 “나는 말한다”라는 시를 읽는다. “인생은 발걸음이 빠르다, 화요일에는 엉터리 같은/ 결심을 하고 금요일에는 2킬로그램쯤 살을 찌워서는/ 물방울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그 결심에 구멍을 내고 있다// 마음은 사물이 아니다, 그런데도 구멍이 난다/ 이이는 사, 삼삼은 구, 사사 십육/ 아무런 문제없는 인생을 우리를 속이는 거라고 이 친구야//삼 개월 감봉 당한 친구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목 아래로 흘러내린 양말을 당겨 올린다/ 곧 눈이 내릴 것 같다// 많은 사람이 거리에서 죽는다/ 굴다리 아래로 걸어 들어가는 외삼촌은 갑자기 파산했고/ 내용 없는 엽서가 사무실로 배달되었다// 무엇인가가 이 세상에서/ 당신과 나를 놓지 않고 있다/ 그 못은 대체 어떻게 생겼는가// 착오라도 있었다는 듯이 눈은 내리자마자 녹아내린다/ 바람이 눈을 밀치고 행인과 입간판을 차례로 밀친다” (나는 말한다, 전문,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14년 9-10에 수록)

박판식 시인의 시에는 물과 거울이 종종 등장한다. 박판식 시인은 물방울 안에서 내적 평안을 얻는 듯하다가, 물방울이 깨어지면 밖으로 뛰쳐나와 부딪히는 고달픈 현실을 거울에 투영한다. 거울 속에 투영된 현실의 곤고함에 시인은 깨어진 거울 조각처럼 가슴을 후벼파고 힘들어 한다. 시인은 말한다, 인생의 발걸음은 빠른 거라고, 사람의 마음은 사물이 아닌 데도 구멍이 나는 거라고. 이이는 사, 삼삼은 구처럼 숫자야 뻥튀기가 가능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닌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모두가 이이는 사, 사사 십육이 된다면, 그래서 가진 것을 뻥튀기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좋아지겠는가만, 어찌 소시민들이 그러한 행운을 바랄 수 있겠는가? 가진 것이나마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것이나마 지키겠다며 전전긍긍하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언감생심일 뿐이다. 시인이 말하듯, 세상의 추악함을 덮어버리려는 듯 눈이 내릴 수도 있지만, 그 눈도 하늘에서 착각해서 내려 보낸 것인 양 금방 없애버리려고 녹아지게 할 뿐만 아니라, 불어오는 바람마저 행인을 밀치고 입갑판을 밀쳐 쓰러뜨려 버리는 냉혹한 현실을, 시인은 말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잔인한 미소를 짓는 이들로 인해 쓰러지고 있다.

시인의 눈에는 신의 보호가 이 세상에서 실종되어 버린 것처럼 보이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희망을 가져야 한다. 시인의 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물방울의 세계 역시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 언제나 안전한 곳은 아닌 것이고, 황지현 양의 시신이 돌아와 우리의 심금을 울리며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듯 거울의 세계 역시 항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에서 2015년 예산안과 관련하여 시정연설을 하였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이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언제나 일방적으로 말을 할 수 있는 곳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우려스렵다. 일방적으로 앞에 펼쳐져 보이는 모니터의 자막을 보고 읽는 행사에 나타나서는 그 자막을 마치 초등학생이 국어책 읽듯 또박또박 읽고서는 사라져 버리니 말이다. 누구와 토론을 통해 그 당위성을 설득하려거나 상대방의 생각을 읽으려고 하지 않고, 일방적 화법으로 이러이러하니 이러이러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서는 그냥 휑 하니 사라져 버린다. 그러니 그 낭독에서 어떠한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경제가 어렵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실재 나타나는 경제지표가 내리막길을 치닫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세계경제의 불황 여파를 전혀 무시할 수야 없겠지만, 결국 이러한 경제지표의 하향화 발표는 지난 이명박 정권 때부터 지금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경제정책을 잘못 추진했기 때문이라는 “자기고백서”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상황이 이러하다라고만 하지, 그 원인에 대한 진단을 국민이 속 시원하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니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 말아먹은 경제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를 통해 어느 정도 활성화되어 경제지표가 모두 상승국면으로 내달리고 있던 것을, 어찌 해서 이명박 정부 이래 지금까지 하향곡선으로 반전되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전제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점에 대한 깊이 있는 설명 없이 일방적 경제활성화 방안 - 그것도 대기업 위주의 경제특혜 시비가 발생하거나, 국민의 부채증대를 가져와 가게부채를 더 심각하게 하거나, 재정을 마이너스로 운영하여 국가부채를 증가시키는 방법 등만을 추진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는지 알다가 모를 일이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가진 이들의 돈이 풀리게 하면 된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자본이 넘쳐나고 있다. 1970년대처럼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위해 줄을 서야 하고, 몇날 며칠을 기다려야 하던 시대가 아니다. 은행에서는 대출받아갈 사람을 찾고 있지만, 대출을 받아야 할 자들은 담보 여력이 없어 대출을 받지 못하고 있고, 대기업들은 사내 유보금이 수백 조를 넘어서 그 돈을 제조업 투자가 아닌 돈놀이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자본의 왜곡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지난 이명박 정권 때 추진되었던 감세 내지 면세의 범위를 줄이고, 가진 이들의 감세정책을 철회하여 그들의 소득을 정상적인 세금으로 징수하고, 그 가용자금을 활용하여 경제를 활성화하면 된다. 소민들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들고 있는 현재로서는, 정규직을 늘리고 최저임금을 높여 가계소득을 늘림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소비토록 하여 소비가 공급을 창출하는 경제구조로 가야만 전반적인 국가경제가 살아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제때 취직이 될 수 있도록, 제때에 장가와 시집을 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인데,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을 위해 몇 년을 기다려야 하고,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시달리다 보니 경제적 여력이 없어 결혼을 못하고, 혼기를 놓치니 자녀를 적게 갖게 되고, 이러한 현상들이 결국 “저징수, 고지출의 연금구조”가 되어, 국가재정이 파탄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들에 대한 과세를 높이면 기업의 의욕을 상실하고, 자본이 해외로 유출될 것이라는 우려를 하지만, 외환관리법을 비롯하여 공정한 법집행을 할 수만 있다면 이러한 부작용은 최소화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금이 나올 곳에 대한 올바른 인식, 그리고 그러한 자금흐름이 정상화될 수 있는 공정한 법집행이 이루어진다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보기에 따라서는 대한민국의 모든 조직이 마치 “범죄단체”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러한 부정적 국민의식을 정리해야 하고, 이렇게 하지 못하면 결국 모든 것이 불가능하게 되고 말 것이다. 공무원 조직, 군인 조직, 학교 조직, 기업 조직, 사회복지 조직, 사회단체 조직, 하다못해 아파트 관리업체까지 모든 조직이 내부적으로 범죄를 공모해서 저지르고, 비리가 밝혀지면 이를 감추기 위해 혈안이 되고, 그러면서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

도덕재무장운동이 다시 한 번 일어나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은 손해 보더라도 내일은 좋아질 것이라는 따뜻한 마음이 우리 국민 모두에게 공감되어야 한다. 세월호 유가족을 외면하는 대통령의 잔인한 미소가 아니라 따뜻한 손 마주잡음과 위로가 필요한 시점이다. 가진 자들이 먼저 양보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고 “함께 갑시다.”라고 위로하고 격려할 때 모두들 신이 나서 정부와 기업을 믿고 혼연일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누가 슬픈 자를 외면하는 대통령을 따를 것인가? 누가 약한 자를 착취하는 대기업을 믿을 것인가? 박판식 시인의 “나는 말한다.”가 아니라, 국민이 “우리 모두가 말한다.”라며 말을 해야 한다. 왜 황우석 교수의 비리를 고발한 내부고발자를 영화화한 “제보자”를 보게 되는가?

이 땅에 의인은 없는가? 성경 창세기에 기록된 바대로, 의인 열 명만 있으면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양보에도 불구하고, 의인 열 명이 없어 결국 멸망해 버린 소돔과 고모라성처럼 대한민국에도 의인 열 명이 없는가? 당신이 의인이 되어 주지 않겠는가?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