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6) - 너가 왜 우울한지 얘기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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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6) - 너가 왜 우울한지 얘기해 줄까?
  • 차근욱
  • 승인 2014.10.2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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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보다보니 요즘 우울증 이야기를 많이 접한다.

뭐, 가을이다보니 나는 왜 이러고 있나 싶은 마음에 울적할 수도 있겠다 싶어 곰곰이 읽다보니, 우울증은 병이고 치료를 해야하고 약물로 좋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우울증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다는 나름의 해결책이 없어서 그냥 이번에는 나도 우울증 이야기를 해볼까 싶었다. 하지만 나는 정신과 의사는 아니니, 친애하는 우울증 패밀리들께서는 참고만 하시길.

개인적으로, 우울하다는 감정은 배부르고 배고프고 맛있고 맛없는 것과 같은, 지극히 당연한 인간의 감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정말 호르몬 이상으로 인한, 이유도 없고 까닭도 없는 무차별적 우울증도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대부분의 우울감이란 환경 때문에 겪게 되는 삶의 일부분이 아닌가 하고 말이지. 예를 들면, 하루죙일 굶으면 배고픈 일이야 당연한 것처럼.

대부분의 우울감은 우울한 상황 탓이리라 생각하는데, 시험에 떨어진 수험생이 우울하다거나 수입보다 카드결제 예상액이 더 많은 사람이라면 우울해야 정상이다.

상황이 그 정도 인데도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다면 그게 더 무섭지. 우울한 사람에게, 상황의 문제가 극복되기 전이라면 결코 그 우울증은 해결되지 않는다. 과로로 우울한 사람이 일을 줄이지는 않고 우울함을 못느끼는 약만 먹은채 과로로 또 일만 하도록 한다면 그것도 오싹한 일이다.

여기서 바로 이 대목이 좀 어려운 부분인데, 정신과 치료나 상담만으로도 ‘우울한 마음을 진짜 안 우울하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이유는, 정신과 치료나 상담만으로는 우리들이 처해있는 상황이나 환경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무능하고도 삐뚤어진 직장상사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이라던가 취업이 안되어 서글픈 취업준비생의 경우, 같은 상황이 계속되는데도 불구하고 우울하지 않게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않나요?

약물이나 상담이 어려움이나 괴로움을 조금은 둔하게 느끼도록 해주어 끝내 어려운 상황을 의젓하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결국 우울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울한 상황을 우울하지 않은 상황으로 스스로가 바꾸어 가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지 않나 싶다. 배가 고플 때에는 자기 입으로 밥을 씹어 먹어야 배가 고픈 허전함이 사라 지듯이.

물론, 인생의 각종문제를 꿰뚫어 보아 문제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문제되는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누군가 알기 쉽게 설명을 해 주고 그 안내에 따라 행동했을 때 상황이 호전된다면 그런 상담은 당연히 좋은 해결책이 된다.

하지만 그 정도의 인생 내공을 갖고 가이드를 해 줄 수 있는 분을 정신과나 심리상담실에서 만나기란 좀 어렵지 않을까. 그건 의학적 수준의 일이라기 보다는 인생 내공의 문제일테니.

각자의 우울한 문제에 대해서 남이 이야기만 듣고 정확하게 어떤 상황인지 알기도 어려울뿐더러, ‘해결책’이라고 부를 정도의 길을 보여주실 수 있는 분이시라면 어마무시한 비바람 속을 헤쳐오시면서 체득하신, 삶에 대한 성찰과 혜안으로 득도하신 경지의 분들일테니, 병원 상담실에서 기다리고 계시리라고 믿기엔 뭔가 좀 껄쩍지근하다. 물론 그런 선생님을 만나서 치료를 받거나 상담을 받아 해법을 찾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행운이겠지만.

이런 경지의 분들을 종교인 중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종교인이시라고 해도 그 정도의 학식과 인격과 깊이를 가진 분은 지구를 통틀어 몇 분 되지도 않을 뿐더러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장난으로 비즈니스를 하시는 분들께서도 계시는지라, 종교에 귀의하는 것은 좋지만 종교인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도 사실은 좀 민감한 문제다.

그럼, 이런 우울의 원인이 되는 인생문제의 답을 주시는 분들은 도대체 어디서 만나뵐 수 있는 것인가?! 난 그 질문이 더 이상했다.

내 인생에서 우울의 원인이 되는 문제의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나말고 왜 딴사람이어야 하지? 어떻게 내 인생의 문제를 남이 알고 있을 수 있는 거지? 무속인이 내 인생의 문제를 알고 있을 리가 없잖아요!

하도 답답하니 그냥 재미삼아 내 이야기에 귀를 귀울여 줄 사람을 찾아 자선사업을 하고 오는 것 외엔 아무런 의미도 없을 텐데. ‘어렵게 번 돈을 그렇게 쓸 꺼라면, 내가 들어줄테니 차라리 나 줘!’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라니까.

그러니 만일 인생 9단의 거인을 만날 수 있어 답을 듣는다면 그야말로 땡잡은 거려니 하시고, 찾을 수 없다면 우선은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어보시는 것이 어떨까 싶다.

자신의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다. 물론, 가치판단의 기준이 잘 서지 않아서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배우는 것이니까. 하지만 여러 가지 판단기준에 대해 배우고 책을 찾아보고, 지혜로운 이의 이야기와 경험을 듣고 생각해서 결국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은, 자신 이외에 어떤 누구도 할 수 없다. 자신의 인생이고, 자신의 문제이니까. 내 인생의 직무유기는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우울한 마음은 쉽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단순히 병원에 찾아가서 약을 처방받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치료는 중요하지만, 우울하다면 왜 그런지 먼저 생각해 보는 성의에서 우울증의 문제해결이 시작되는 것이니까.

나는 울적하면 일단 뛴다. 되도록 햇살을 한껏 받을 수 있는 아침, 새소리를 들으며 심장이 터질 것 같을 때까지, 더 이상은 뛸 수 없을 때까지 뛴다. 그리고 뛰면서 생각한다.

왜 지금 내가 우울한지, 무엇이 문제고 어떤 상황 때문에 이렇게 우울해진 것인지. 외롭지 않냐고? 인생, 언제는 외롭지 않은 적이 있었나?

달리고 나서는 개운하게 샤워를 한 후, 책상에 앉아 종이에 적어본다. 내 문제와 극복방법을.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있고 금방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관계나 상황 때문에 단칼에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있다. 그런 문제는 인정하자. 인간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짊어져야 할 무게다. 인내가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다.

그 상황으로 인해 외로울 수도 있고 괴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모든 것을 자초한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던 것을. 그러니 이제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

최선이 없다면 차선을, 차선이 없다면 차악을 선택할 수 밖엔 없다. 최악만은 피해야 하니까. 엄마가 모든 걸 해결해 줄 나이는 지났으니까. 별 것 아니다. 해결하면 그 뿐 이니까.

과거로 인해 괴롭다면,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과연 옳은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 누군가는 내 인생에 어떤 의미였는지. 아픈 기억이고 나쁜 기억이라면,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의미가 필요하다.

과거의 잘못 때문이라면 반성하고 속죄할 뿐이다. 상실로 인한 슬픔이라면, 시간과 망각이 필요하다. 그 과정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 처방이 필요하다면 병원에 찾아갈 용기도 있어야 겠지. 치료는 치료일 뿐이니까.

그 다음엔 좋은 친구가 필요하다. 함께 내 문제와 해결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조언을 줄 수 있는 사려깊고 현명한 친구라면 더욱 좋다. 경박한 친구에게 이야기를 해 마음만 더 상하지 않도록 의논할 친구를 신중히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말했잖아, ‘좋은’친구라고.

심사숙고 해서 결정 했다면, 이제는 행동으로 이 우울에서 빠져나갈 일만 남았다. 행동하고 행동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상황이 바뀌어야 우울증을 벗어날 수 있다고, 적어도 난 그냥 그렇게 믿는다.

일단 건강해야 문제를 해결하고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테니, 많이 먹고 많이 자고 많이 뛴다. 그리곤 이를 악물고 노력한다. 그렇게 하면 문제를 뛰어 넘을 수 있을 것이고, 상황이 달라지면 우울증은 없어질 꺼라고, 그렇게 자신에게 속삭이곤 했다.

우울하다고 방에만 틀어박혀서 우울한 노래나 들으며 누군가 구원해 줄 것을 기다린다면 어느 누구도 도울 수 없다.

그럴수록 자기 스스로의 도움이 필요하다. 일단은 안좋은 상황에서야 안좋은 마음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스스로 정상임을 확인하고, 자신이 아프다거나 환자니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도와줘야 한다고 어리광을 부리기 전에 스스로 털고 일어날 오기가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한 껏 울어버려서 털어내도 좋다. 아직 눈물이 난다면 건강한 것이니까. 그런 용기가 없어서 우울한 것 아니냐고? 억울하지도 않나? 이대로 끝나기엔 정말 분하지도 않나? 분하다면, 억울하다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나는 달리고 달리고 달리면서 그렇게 나에게 말해주곤 했다. 아직 멀었다고. 이까짓 것, 아무것도 아니라고.

청명한 하늘과 싱그러운 바람을 느끼며, 나는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 건지 눈물이 나려고 하시는 분들께서는 산책부터 시작해 보시는 것은 어떨지. 그리고 친구와 근사한 차 한잔이라도 나누어 보시는 것은 어떨지. 그럴 친구도 없다면 chaku21@naver.com에 메일이라도 보내보시라.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답장은 꼭 보내드릴 터이니.

우울증에 대한 포털사이트의 기사를 읽으며 꼭 병원에 가야만 해결되는 것이 우울증은 아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함께 마음을 나누는 것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사람 사는 일이 아닐까 하고.
괴벨스는 싫지만, 다시금 내게 우울이 찾아온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폭풍이여 불어라! 근욱이여 일어나라!” 근데, 이거까지는... 좀.. 오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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