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1987년 체제와 한국의 민주주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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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1987년 체제와 한국의 민주주의 (5)
  • 신희섭
  • 승인 2014.09.2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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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권위주의를 경험하고 민주화가 진행된 나라들은 체제변화라는 과실을 맛 본 뒤에 체제작동에 있어서 기존 체제의 관성을 걷어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정치권력이 있을 때 사회제도와 경제적 조건에 손을 댈 수 있기 때문에 정치권력을 운용하는 방식에 있어서 대대적인 수정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정치개혁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과연 정치개혁은 쉬울까?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치개혁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손쉬운 일은 절대로 아니다. 정치제도를 고친다는 것은 기존의 정치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이 문제가 있는 제도를 운용함으로서 혜택을 보고 있는 이들에게 제도 개혁은 정치생명을 빼앗기는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체계적인 저항을 하기 마련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미국의 정치학자 헌팅턴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신생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정치개혁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헌팅턴(S. Huntington)은 Political order in Changing Society에서 왜 개혁정치가 어려운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내재적 어려움의 문제이다. 민주화 세력은 개혁을 위해서는 혁명세력 및 수구세력에 대해서도 맞서야하는 양면전을 펼쳐야 한다. 하지만 두 진영 모두 포섭하거나 만족시킬 수 있는 전략의 구성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다.

둘째, 집합적 행동 (collective action)의 어려움의 문제이다. 이 부분은 만수르 올슨(Mancur olson)의 집단행동이론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개혁은 일종의 공공재를 생산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임 승차자(Free-rider)의 문제가 발생한다. 공공재가 가지는 소비의 배제 불가능성과 소비의 비경합성은 항상 공공재의 과소 생산문제를 가져온다. 특히 배제불가능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비용을 부담하지 않더라도 사용하는 데 있어서 배제되지 않는 다는 속성을 가지게 함으로서 무임승차의 유혹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 이론을 개혁정치에 적용하면 사람들은 개혁에 동참할 유인이 없다. 공공재로서 개혁의 효과는 나중에 오고 개혁의 비용은 급속히 증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혁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그 혜택만을 받고 싶은 무임 승차자들이 늘어난다. 따라서 개혁에 거부세력이 나타나고 개혁에 대한 지지 세력의 결집은 어려워진다.

셋째, 집행자의 딜레마문제를 들 수 있다. 개혁은 법, 규칙의 변경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렇게 법을 만들고 변경해야 하는 입법 및 집행담당자들은 자신들이 대상이 되는 개혁법안을 만들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즉 입법자가 되는 정치인들이 자신들을 개혁 대상으로 하는 입법안을 과연 외부 압력 없이 만들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부딪친다.

넷째, 집행과정에서의 딜레마를 들 수 있다. 개혁은 빠른 개혁과 느린 개혁, 쉬운 개혁과 어려운 개혁이 구분되고 이들 조합(package)을 구성하여 집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 작업은 대단히 어렵다. 만일 패키지 구성에 실패할 경우 반동세력과 급진세력 모두에 의해 공격을 당하기 때문이다. 즉, 개혁연합내부의 결속을 유지하는 것과 새로운 폭넓은 세력의 참여, 지지, 동원이라는 두 가지 입장 차이에서 오는 딜레마이다. 따라서 개혁 지지 세력의 증대는 전통적인 지지 세력의 약화와 분열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설명은 다분히 행위자 중심적 설명이다. 이런 행위자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설명은 제도론을 통해서 보충될 필요가 있다. 행위자의 행동이 제도속에서 이루어지며 제도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제도적 관점에서 정치개혁의 어려운 점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설명은 선거주기의 불일치문제이다. 한국에서 총선과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 등은 대통령과 정부의 중간 평가역할을 수행한다. 선거의 주기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중간 중간에 있는 선거는 지지율과 여론을 반영하기 때문에 정치 개혁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특히 여론의 동향을 통해서 정치 쟁점화될 경우 장기적인 개혁정책은 그 중간에 발목이 붙들릴 수도 있다.

둘째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분점정부의 문제이다. 분점정부의 문제 역시도 개혁 정치를 어렵게 할 수 있다. 대통령제도는 권력의 분립과 견제와 균형이 그 제도의 근본 취지이기 때문에 몽테스키외식의 아이디어를 국민이 가진다면 자신들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 분점의 정부를 구성할 것이다. 즉 대통령소속정당이 아닌 당을 견제 심리로 인해 지지함으로서 국회를 통해서 대통령을 견제할 것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제도는 특별히 미국과 같은 특별한 조건이 아니고서는 돌아가기 어렵게 만든다.1) 따라서 대통령제도의 일반적인 형태가 분점정부라면 대통령제도는 개혁정치에 걸맞은 제도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대통령제도와 다당제가 결부되는 경우 대통령제도는 더욱 작동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다당제에서 정당의 수가 늘어날수록 대통령소속정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대통령과 정부를 지지할 수 있는 가능성은 줄어든다. 따라서 한국과 같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면서 새로운 사회균열을 반영해야 할 경우 다당제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대통령의 지도력 발휘는 쉽지 않을 수 있다.

네 번째로 대통령의 임기고정성 문제는 장기적 개혁정치를 어렵게 할 수 있다. 대통령제도는 임기의 안정성이라는 특성이 있고 강력한 권력의 보유로 인해 임기 규정이 있다. 임기 규정이 없는 의원내각제의 수상과 비교할 때 대통령제도는 입헌적으로 장기 집권을 보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장기적인 개혁정치가 곤란할 수 있다. 만약 대통령소속 정당이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여 이전 정부를 계승하는 경우도 정치의 연속성이 보장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차기 대선 후보는 상대정당의 현직 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비판에 대항하면서 자신을 차별화해야 하기 때문에 현직 대통령과의 유사성 뿐 아니라 차별성도 부각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통령제도는 정책의 연결성을 유지하기 곤란 한 면이 있다.

다섯 번째로 지적될 것은 한국과 같이 단임제도로 규정할 경우 개혁정치는 더욱 곤란해진다는 점이다. 다음번 선거에 나올 수 없다는 점은 현직 대통령이 결정되는 순간부터 다음 대선 후보를 누구로 할 것인지의 문제를 부각시킨다. 따라서 단임 임기의 경우 대통령의 레임덕은 조기에 올 수 있다. 게다가 임기가 짧기 때문에 그 임기 안에서 특히 지지도가 높은 대통령의 여론과의 허니문기간에 개혁 정치를 시도하고 이를 강행하여야 한다. 만약 이 기간에 어려운 개혁 이슈를 제기하고 추구하지 못할 경우 개혁정치를 추구하는 것은 외부에서의 특별한 사건이나 압력이 없는 한 곤란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단임제도 규정은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장기적인 개혁정책의 수행이 곤란하다. 만약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이 가시화될 경우 차기 대통령게임이 수면에 부상하면서 현직 대통령은 새로운 시도보다는 국정을 보수적으로 유지하는 것에 만족하도록 압력을 받게 된다.

여섯째로 경제개혁과 정치개혁의 순차 문제를 들 수 있다. 먼저 민주화가 된 나라의 경우 그동안 비민주주의로 남아있는 동안 왜곡된 경제 배분구조가 자유주의로 인해 변하게 된다. 그러나 과거 경제가 가지고 있던 특성들도 경로 의존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경제 개혁은 중요하게 된다. 문제는 경제개혁을 누구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경제 개혁은 경제세력에 의해 일어나지 않고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경제 개혁에 대해서 저항을 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경제개혁에 있어서 국가가 중요해진다. 그러나 경제개혁에 나서는 국가는 과거처럼 권위주의 국가가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는 권위주의가 한 것처럼 중앙 집중적이고 계획적이고 강제적으로 경제문제를 풀어갈 수 없다.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면서 경제문제를 풀어가는 민주정부는 초기의 사회 요구 폭발에 대해 이해 반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신속한 경제개혁이 어려울 수 있고 이는 경제적 실적이 나빠지게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 민주주의로 이동한 국가들의 경제적 여건이 이후 경제적 개혁과 민주주의의 동시 진전에 도움이 된다. 쉐보르스키(A. Przeworski)는 실증분석을 통해서 민주화된 나라가 1인당 GNP가 6,055 달러 이상이면 권위주의로의 반동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경제 발전이 어느 정도 이룩된 나라에서 초기 경제적 후퇴를 참아내면서 민주화 경로를 지속시켜 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상관성을 주장하는 입장을 신근대화론자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경제 개혁에 앞서 중요한 것은 정치개혁이다. 정치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개혁을 밀어붙이게 된다면 경제주체들의 반발을 사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게다가 정치 개혁이 이루어져 있지 않으면 정치를 통한 문제해결의 중심축인 대표성과 투명성과 책임성에 대한 추궁이 안 된다. 따라서 사회의 나가야 할 방향 설정이 곤란해진다. 게다가 경제적 관점에서 보아도 정치개혁의 부재는 대표성이나 투명성의 부족으로 인한 사회적 자본의 부족과 신뢰의 부족을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 장기적으로 민주주의의 질적 심화라는 공고화의 조건을 위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정치의 저발전→ 경제의 저발전 → 정치의 저발전이라는 악순환 고리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각주)-----------------

1) 사르토리는 미국식제도가 작동하게 되는 것은 미국정치의 특성 세 가지에 근거한다고 한다. 미국의 약한 정당기율과 낮은 이데올로기와 지방분권정치가 대통령제도가 미국에서는 작동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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